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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51화 (5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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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체 운반 헌터

돈은, 지고 다니다가 등창이 날 정도로 많았다. 허무영은 그런 집안의 외동 아들이었다. 대여를 해서 그 기간동안 그냥 집에다가만 처박아뒀다 반납을 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김강현에게 좌절감을 안겨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강현은 검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지만 점원을 바라보았다.

“다시 주문하면 새 제품을 받을 수 있나요?”

강현이 물었다.

“두 달은 걸릴 겁니다. 재고가 없고,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 수가 제한돼 있어서 지금 바로 주문이 들어간다고 해도 순서를 기다리셔야 되거든요.”

허무영의 농간에 넘어간 것도 아니고 그 말에 설득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자기가 원했던 파이를 다른 사람이 주물럭거리는 걸 본 것처럼 불쾌감이 생겼다. 강현은 굉장히 기분이 상해서 그대로 돌아서버렸다. 그 순간의 강현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은 태인밖에 없었다. 태인이 강현의 어깨에 손을 얹자 강현은 시무룩한 소리로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세 사람은 익숙한 발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임정이 평상시에 신고 다니는, 굽 있는 워커 소리였다. 누나가 어떻게 알고 여기에 온 거냐고 묻는 강현에게 태인이 말했다.

“탱커님이 지우한테 위치추적기 달았나보다.”

하지만 임정은, 그들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처럼 그들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세 사람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돌아서면서 임정을 바라보았다. 임정은 곧장 허무영에게 다가갔다.

“타투.”

허무영은 임정을 위아래로 바라보다가 임정의 타투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임정이 B급 탱커라는 것을 알아보고 두 발끝을 붙이며 허리를 세웠다. 턱끝은 자연스럽게 올라가고 저도 모르게 군기가 바짝 들었다.

“타투 보이라고. 이 멍청아.”

임정이 다시 말했다.

“예!”

허무영은 팔을 내밀어 타투를 보였다. 허무영이 눈을 굴리며 임정을 바라보자 임정은 눈을 내리깔고 허무영의 타투를 보면서 뇌까렸다.

“치안대 맞다. 지금 그게 궁금해서 눈알을 부지런히 굴리는 것 같은데.”

“아닙니다!”

“됐고. 타투가 위작인지 확인한다.”

그 말에 허무영은 자신있는 표정을 지었다. 그 타투를 가지려고 자기가 얼마나 돈을 들였는데 그게 위작일리는 없었다. 시스템이 만들어주고, 시스템이 공증해 준 타투인 것이다.

지우는 임정의 말을 듣고 임정이 스캐너를 꺼내서 허무영의 타투를 확인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임정은 곧바로 오른 팔에 차크라를 실어서 허무영의 왼쪽 쇄골을 쳤다. 허무영에게는 그 공격을 막을 힘이 없었다. 임정은 다리를 휘둘러 허무영의 종아리를 쳤다. 허무영은 그대로 쓰러졌다.

“자기 힘으로 차근차근 올라간 E등급 헌터라면 이 정도 공격에 너처럼 쓰러질 수는 없다. 순간적으로 차크라를 둘러서 방어를 할 수 있는 실력이 되지. 헌터 등급과 경험치는 꼼수를 부려서 올릴 수 있지만 차크라 등급과 차크라 숙련도는 속일 수가 없다. 위작이라고는 안 하겠지만 경험치를 몰아준 사람들 이름을 지금 바로 댄다.”

“예?”

그거야말로 허무영의 아킬레스건이었다.

경험치를 몰아서 올려주는 것은 명백히 불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불법의 소지는 다분했다. 경험치를 올려서 공격력을 높여주면 같은 횟수의 공격을 가하더라도 많은 데미지를 입힐 수 있다. 하지만 헌터 등급으로 실력자를 구분해내는데는 오히려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E급 헌터라면 공격력의 기본 스텟이 올라가는 것 뿐만 아니라 E급으로 올라오기까지의 경험으로 인해 적절히 괴수를 공략할 수 있는 노하우도 터득했을 거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고용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남의 힘으로 등급이 올라간 사람들은 그런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공대장이 팀을 꾸릴 때 헌터 등급만 보고 딜러를 모집하면 예상하지 못한 폭탄을 떠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돈을 들여 B급이 됐으면 뭘 하는가. 일단 한 번 공격을 하면 공격 증폭률의 효과를 입어서 (그런 경우에는 기대할 수 있는 차크라 증폭률이라는 게 거의 없다.) 3000의 데미지를 입힐 수도 있겠지만 공격 기회를 영리하게 찾아들어가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인해서, 유능한 딜러를 모집해 레이드를 해야 하는 탱커들 사이에서는 경험치 몰아주기를 엄격히 금지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었다.

입법자들이 결단을 내리기만 하면 언제라도 그 행위를 금지하고 처벌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민감한 사안이다보니 경험치를 몰아주기 위해 레이드를 같이 해 주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분이 밝혀지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경험치 몰아주기를 하는 사람들은 거의 B급 헌터들이었다. F급 헌터가 E급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경험치 300을 채워야 하고 E급이 D급으로 올라가는데는 600, 그런 식으로 C급과 B급에 달하기 위해서 각각 1800과 18000의 경험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B급 헌터의 경우에는 승급을 위한 기준 자체가 다르다. 다른 헌터들의 타투에는, 승급을 위해 필요한 경험치와 자신이 얻은 경험치가 비율로 기록된다. 300번 중에 지금 4번을 채웠으면 ‘4/300’ 이라는 형태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B급 헌터는 그렇지 않았다.

B급 헌터 중에 A급으로 올라간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세 명뿐이었다. 우리 나라에도 B급 헌터는 있었지만 A급 헌터는 한 사람도 없었다. B급 헌터 중에 경험치가 20만에 육박하는 사람이 있었다. 임정이었다. 임정의 타투에는 ‘경험치: 196480’이라는 식으로 나올 뿐, 채워야 할 목표치라는 게 없다. 경험치가 그렇게나 쌓였는데도 임정은 여전히 B급에 머물렀다.

그래서 사람들은, A급 헌터가 되기 위해서는 괴수를 잡는 것 이외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 거라고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B급 헌터들은 경험치를 채우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A급 헌터를 보유한 나라들은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꺼렸다. A급 헌터를 보유했다는 것은 국가의 경쟁력이나 마찬가지니 한편으로 수긍이 가면서도, 인류가 공통으로 직면한 위기 상황에 정보를 돈벌이로 사용하는 모양새가 꼭 좋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그런 배경이 있다보니, 경험치를 몰아준 사람들의 명단을 내놓으라는 임정의 느닷없는 요구에 허무영의 얼굴은 거의 백짓장이 되어갔다. 자기가 그들의 신상을 공개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헌터들이 자신을 헌터들의 세계에서 생매장해버릴 거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던 것이다.

“셋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게 해 줄 수는 있다. 경험치를 몰아준 사람들의 명단 제출,  타투를 제거하고 헌터로서의 활동정지, 익스트림 헌터에 자발적으로 출입 금지.”

“이, 익스트림 헌터에 다시는 오지 않겠습니다.”

“그러든가.”

“…가, 봐도, 되겠습니까?”

“한 가지는 새겨라. 갑질은 갑이 하는 거다. 쓰레기야.”

임정은 허무영에게 조용히 말하고 돌아섰다. 허무영은 그것이 허락이라고 생각하고 줄행랑을 쳤다.

점원은 숨소리까지 죽인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음부터는 이런 상황에서 더 확실하고 강경하게 대처하도록 합니다. 저런 놈들이 나타나서 분란을 일으키면 치안대를 불러도 좋습니다. 알겠습니까?”

임정이 말했다.

“예.”

가장 먼저 다가온 사람은 강현이었다. 강현은 여전히 시무룩한 얼굴로 제가 사려고 했던 검을 바라보았다.

“네가 좋아하기 시작했으면 네가 지켜. 다른 사람이 건들어서 싫다는 거야?”

임정이 강현에게 말했다. 시선을 제대로 향하지도 않은 채 한 말이었지만 강현에게 한 말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

이제껏, 나이가 어린 강현에게 한 번도 반말을 한 적이 없던 사람이 갑자기 반말로 말을 하자 메시지가 보다 확실히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말이 귀로 들어오지 않고 뺨따귀를 때리는 느낌이었다.

“정말로 타투를 제거하는 게 가능해요?”

강현이 물었다.

질문을 하기에 적당한 때가 아닌 것 같았지만 궁금한 것은 웬만해서는 못 참는 성격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타투가 있던 부분의 살갗을 벗겨내면 그건 주홍글씨 같은 낙인이 되지. 레이드를 할 능력이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만 헌터 사회에서 존재를 인정해주지 않겠다는 의미가 된다.”

임정이 말했다.

임정도 확인을 해 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전해지고 있었다. 그걸 확인하자고 누군가의 팔에서 피부를 벗겨낼 수도 없고 팔을 잘라낼 수도 없으니 지금까지 그것을 확인한 사람은 없었다.

“허무영이 버티면 정말로 그렇게 할 생각이었어요?”

강현이 물었다. 이걸 그대로 믿었다가 바보 취급을 받지는 않을지 고민이 되는 표정이었다.

“만약에 저 남자가 그걸 선택했으면 네가 고른 이 검으로 살을 벗겨내 주려고 했다. 그러면 좋은 선물이 됐을 텐데. 이 검에 앞으로 괴수의 피는 숱하게 묻히겠지만 헌터의 피를 묻힐 기회는 많지 않을 텐데. 아쉽네.”

강현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임정을 바라보았다. 임정이 부드럽다고 말한 게 누구였나 싶었고 앞으로 이 누나 앞에서는 정말 정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검, 이름이 뭐래?”

임정이 물었다.

“몰라요. 크리세라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강현은 검의 이름을 보려고 했다.

“그동안 뭐라고 불리웠든 이제 그 이름을 불러줄 사람은 너니까 네가 이름을 정하는 건 어때?”

“뭐라고 지어요?”

“네메시스는 어때? 복수의 여신. 강현씨가 원한 것을 뺏길 뻔 했던 마음을 생각하면서 강해져. 강현씨가 마음에 들어했던 것을 지키지 못할 뻔 했던 걸 기억하면서.”

강현은 멍하니 임정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메시스. 좋네요.”

“기억해. 네메시스는 율법과 복수의 여신 이름이라고. 이름을 거창하게 지었으면 이름에 걸맞게 되도록 만들어줘야 되는 거야.”

강현은 뿌듯해져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근데 이 팀 주위에는 왜 항상 똥파리가 끼어요? 이 팀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

임정이 지우에게 장난스럽게 물었다.

“글쎄요. 그건 똥파리 입장에 가까운 사람이 생각해야 답이 빨리 나오지 않을까요? 우리 팀 주위에 항상 어슬렁거리잖아요.”

지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에? 아니죠. 나는. 나는 똥파리라서 그러는 게 아니고 이 팀이 항상 위태위태한 것 같으니까.  나는 멘토죠. 멘토. 멘토로서 있는 거고. 팀 주위에 어슬렁거리는 게 아니라 팀의 일원으로서 함께 다니는 거죠.”

"근데 누나. 누나가 우리한테 경험치를 몰아서 올려주려고 하고 있잖아요. 근데 그거 불법이예요?"

강현이 물었다.

"규제는 언제나 현실보다 한 발 늦는 법이지. 그러니까 법으로 금지되기 전에 빨리 해치워야 되는 거고."

"그럼 허무영한테는 왜 그렇게까지 하신 거예요? 아직 처벌하는 법도 없는 거면."

그러자 임정은 별 희한한 소리를 다 듣겠다는 듯이 강현을 바라보았다.

"지금 우리가 하는 거랑, 허무영인가 하는 헌터가 몰아받은 거랑 같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거 왜 이러셔? 나는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 뿐이지 확실히 그 등급에 맞는 헌터로 키우고 있다고. E등급이 됐을 때는 E등급 헌터로서의 자질도 확실하게 갖추게 할 거고 D등급 헌터가 됐을 때는 어떤 D등급 헌터보다 더 D등급다운 헌터로 만들 거야."

임정은 자존심에 데미지라도 입은 것처럼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김강현이 잘못했네."

태인이 판결을 내리듯이 말했다.

지우도 그 말에 동조했다.

"우리는 허무영처럼 무임승차를 하려는 게 아니잖아. 김강현이 잘못했다."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강현도 시인을 했다. 꼭 강현의 잘못만은 아니었지만 임정과 말싸움을 하다보면 언제나 상대방이 사과를 하게 되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곤 했다. 기가 죽은 강현의 목을 확 잡아 끌면서 태인이 강현에게 장난을 걸었다.

"그렇다고 너무 기죽지는 말고. 멍청할 수도 있지. 그게 네 잘못이겠냐?"

네 사람은 왁자하니 떠들면서 걸음을 옮겼다. 언제 소란스러웠냐는 듯이 매장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무기를 찾으려는 헌터들의 발길은 끝이 없었다.

[2부 끝. 다음 편부터 3부가 이어집니다. 내용이 연결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3부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3부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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