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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체 운반 헌터
“좋아요. 말하죠. 그렇게 입은 것도 싫었고 그렇게 웃는 것도 싫었어요.”
지우가 말했다.
-안지우씨를 보고 웃은 게 아니라서요?
“그렇게 따지자면 할 말은 없습니다. 이런 말 할 자격 없는 건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말은 해야 될 것 같았어요.”
-몰랐네요.
“……. 나중에 얘기하죠. 레이드 잘 해요. 괜히 레이드 앞두고 있는 사람, 심란하게 만든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아뇨. 괜찮아요. 괜찮다기보다. 앞으로는 더 조심해서 안전하게, 레이드,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화난 거 아닙니까?”
-화날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한 거예요? 그러면 못된 사람이네요. 그런데 그 말을 들으니까 저는 기분이 좋은데요? 아. 간만에 돈 쓸 일 생기네. 위약금이 꽤나 나올 텐데.
“왜요? 엎으려고요?”
지우야말로 임정의 반응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말했다.
-엎어야죠. 애인이 싫다는데. 그깟 출연료야 대단한 것도 아니고. 돈 버는 게 중요한 거면 그냥 지나가다가 리드 열고 늪에 들어가서 괴수 죽이고 러프 스톤 하나 주워가지고 나오면 되는 건데.
“정말 그러겠다고요?”
-안지우씨가 그렇게 말해줘서 나는 고마운데요? 근데 슬슬 통화 끝내야겠어요. 괴수가 도망가지는 않겠지만 위약금 내려면 이번 레이드는 성공을 시켜야 할 것 같거든요. 늪에 거의 다 도착했어요. 일 끝나면 전화할 거죠?
“네. 그거야. 뭐. 레이드 잘하고.”
뒤에 한 문장을 더 붙일 생각으로 그렇게 말을 해 놨지만 끝내 뒷말을 잇지는 못했다. 쑥스러운 기분에 소름이 오소소소 돋아나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임정은 쾌활한 목소리로 지우에게 좋은 하루 보내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지우는 왠지 으쓱해져서 저 혼자 웃음을 지었다.
일을 끝내고 훈련을 위해서 세 사람이 같이 모였을 때 태인은 지우에게, 초특급 울트라 슈퍼 파워를 가진 여자친구를 둔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태인도 임정이 나오는 TV 광고를 본 것이다.
“글쎄요. 나하고 같이 있을 때는 부드러우니까 그런 생각은 별로 안 해 봤는데요? 왜요?”
“왜긴. 부러워서 그렇지. 임정 탱커님이 여자친구라고 생각해봐. 뭐가 무섭겠어? 나같으면 아는 사람들한테 전부 자랑하고 다닐 텐데.”
태인이 말했다.
부럽다는 말을 굳이 할 필요도 없었다. 얼굴이 그냥 막, 부러워하는 얼굴이었다.
“근데 지우 형. 형은 임정 누나가 무섭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강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 내가 왜?”
“아니. 나는 가끔 누나가 무섭거든요.”
“왜? 훈련할 때 무섭게 말해서?”
지우는 별 것 아니라는 투로 물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그냥 헌터인 입장에서 치안대원인 누나를 만났다고 상상해보면. 허벅지에 힘이 저절로 들어갈만큼 겁나는 그런 거 있잖아요.”
“설마. 그 사람은 천성이 부드러워서 그러지 않을 거야. 불의를 못 참는 것 뿐이지. 그건 치안대원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거고.”
“치안대원이 불의를 보면 못 참는다고요? 요즘 들어서 들은 얘기 중에 제일 재미있는 얘기 같네요. 치안대원이 불의를 보면 못 참는대. 하, 참. 진짜 어이없네. 어떻게 형이 그런 말을 해요? 아무리 여자친구가 치안대원이라고 해도 그렇지.”
“그러니까 내 말은. 다른 치안대원들이 다 썩어있는 와중에 혼자 정의를 지키려다보니까.”
말을 하면서 자신도 전혀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하긴 했다.
‘정의’와 ‘임정’이라는 말처럼 서로 대립되는 말을 찾기도 어려울 것 같았던 것이다.
“그래도 그 사람에 대해서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줬으면 좋겠어.”
“‘그 사람’이래. 어우우우, 소름 돋았어!”
“나도. 나도. 이거봐. 소름.”
강현과 태인이 까부는 동안 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검술 훈련을 계속했다.
그리고 필연적이었다고 해야 할지. 지우는 마침내 임정의 본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세 사람이 익스트림 헌터에 갔을 때였다. 그 날은 태인이 손도끼를 사기로 한 날이었다.
지우는 아직 그만큼 돈을 모으지 못해서 고민만 계속 하고 있었는데 강현은 태인이 손도끼를 사면 자기도 무기를 살 거라고 거의 마음을 정하고 있었다.
강현은 검을 사고 싶어했다. 임정이 강현에게 석궁을 추천해주었기에 석궁 대신 검을 사겠다고 말하는 게 미안했지만 임정은 그런 거에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면서 쿨하게 넘어갔다.
태인의 손도끼는 18억 6천만원이었고 강현이 찜해놓은 검은 24억 얼마였다. 그 와중에 지우는 9천 3백만원짜리 단도를 살까 말까 하고 고민만 며칠째 계속 하는 중이었다.
세 사람이 익스트림 헌터에 도착했을 때, 처음에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레이드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쇼핑인데 어려울 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뜻밖의 곳에서 나타났다.
세 사람은 가장 먼저, 태인이 찾는 손도끼가 있는 3층으로 올라갔다. 태인은 손도끼를 사기에 앞서서 점원에게 손도끼에 대해서 꼬치꼬치 물었다. 하지만 태인이 알고 싶어했던 것중에 태반은 점원이 대답해 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손도끼를 사용한 공격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느냐, 손도끼에 순간적으로 차크라를 실어 넣으려고 할 때 좋은 방법이 있느냐, 손도끼를 사용해서 괴수에게 치명상을 가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으냐, 많은 종류의 괴수 중에서 특히 손도끼로 공략하기에 적합한 괴수가 있느냐.
그런 것들은 ‘익스트림 헌터’의 점원 보다는 현직에 있는 헌터들이 더 잘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결정했어요? 내 생각에는 형한테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일단 잡고 돌리는 게 벌써 자연스러워요. 일체감이 느껴질 정도로요.”
지우가 총평을 해 주었다. 태인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을 굳힌 듯했다.
“네. 그럼 이거로 할게요. 24개월 할부로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손님. 계산 도와드리는 동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점원이 말을 하는데 바로 그 순간,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 잠깐요.”
그 소리가 낯익다고 생각한 사람은 지우와 강현뿐이었다.
그러면서 그 목소리를 어디에서 들었던 건가 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허무영이었다. 허무영이 단번에 기억난 것은 아니었다. '저 사람. 언젠가 본 적 있는 얼굴인 것 같은데 누구지?' 라는 생각을 한참동안 해야 했다. TV에 나온 인기없는 개그맨인가? 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면서 저 사람이 왜 자기들에게 아는 척을 하는 건가 했다.
허무영은 지우와 강현 두 사람이 스스로는 자신을 기억해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마침내 스스로 제 이름을 밝혔다.
“아아. 우리 써전님이랑 같이 일했던 그 사람이네요, 형. 태인이 형 들어오기 전에요. 신기하네. 못본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얼굴을 완전히 잊어버렸네.”
강현이 말했다.
“아아. 알겠다.”
지우가 말했다.
웬만하면 그 뒤에 인사말이라도 나왔을 텐데 그런 게 나오지 않았다.
지우는 허무영이 자기들을 부른 이유가 뭔가 하면서 기다렸다. 그러자 허무영이 점원에게 다가가더니 손도끼를 대여하겠다고 말했다.
“이건 이 손님께서 구매하실 물건입니다.”
점원이 설명을 했다.
“사체 운반하는 하급 헌터가 구매하는 것보다는 레이드를 하는 E급 헌터한테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허무영이 말했다.
그제야 허무영이 무슨 수작을 하려는 건지 알 수가 있었다. 그러면서 지우와 강현은 뭔 일이래, 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지가 무슨 재주로 레이더가 돼?’
두 사람의 눈빛은 정확히 그런 의미를 품고 있었다. 허무영은 거들먹거리면서 손도끼를 집어들었다.
태인의 얼굴 색은 눈에 띄게 나빠졌다. 드림 카에 막 오르려는 순간 누가 뒤에서 박아서 차가 밀려버리면 이런 기분이 들까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우와 강현은 뒤늦게 허무영의 말을 알아듣고 허무영을 동시에 바라보았다.
“E급…이라고요?”
강현이 물었다.
“E급.”
허무영이 말했다.
‘아니. 진짜 무슨 재주로?’
강현이 따지려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자 허무영이 타투를 직접 보여주었다.
정말로 E급이었다. 그뿐 아니라 E급이 된 후로 경험치를 벌써 32나 쌓아둔 상태였다.
“내일도 레이드를 해야 되는데 나한테 맞는 적당한 무기가 뭘까 생각을 하다가 오늘 이걸 본 거거든. 그러니까 내가 빌렸으면 하는데.”
지우와 강현은 곧 사태를 파악했다.
98억을 주면 E급으로 승급시켜준다는 광고를 두 사람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등급을 올리고 스텟을 올려봐야 실력이 전혀 늘지 않을 거라는 건 분명했다. 돈을 투자해서 공격력을 상시 증폭시키는 효과를 볼 수는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의 실력이야 금방 들통이 날 텐데 그렇게 해서 등급을 올리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높은 등급의 딜러를 뽑는 건 큰 공격력으로 빨리 빨리 때려 박아서 레이드를 빨리 끝내려는 이유인 건데 남의 힘으로 경험치를 쌓고 등급을 올린 사람들은 실전에 투입됐을 때 그런 기량을 보일 수가 없다. 그런 사람을 한 두 번 겪다보면 탱커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다 나게 되고 블랙리스트도 만들어져 돌 텐데, 그건 절대로 현명한 투자가 아닌 것이다.
그러건 말건 지금 그들이 허무영을 걱정하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두 사람은 크게 실망한 태인을 데리고 다른 층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세 사람은 론 디어를 보았다. 지우는 나중에 그거나 사야할까 보다고 얘기를 했다. 매장에 있는 론 디어는 공격증폭률이 없는 대신 괴수에게 치명상을 입히기에는 적합했고 무엇보다 가격이 4천만원대였다. 하지만 태인은 이제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집중해서 듣지 않았다.
“아, 진짜. 그 인간 이상한 사람이네!”
강현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지만 그 인간이 계속 자기들의 뒤를 따라다니고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인간들 중에는, 남들이 쉽게 잊어버리는 일을 절대로 잊지 않고 가슴에 새겨두는 부류가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또다른 특징 중 하나는 자기가 잘못한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허무영은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허무영은 자기가 지우와 강현에게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특히 지우에 대해서 그런 마음이 더욱 컸다. 자기가 말을 걸어도 무시하고, 자기를 선배로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허무영의 마음 속에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제가 어쨌는지, 제가 지우에게 어떤 말들을 했는지는 별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익스트림 헌터에 와서 여기저기 생각없이 기웃거리다가 그들을 발견했을 때는 생쥐를 발견한 고양이처럼 흥분감이 감돌았다. 허무영은 지우가 론 디어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눈여겨 보았다. 지우가 그것을 갖기를 원한다면 그것도 뺏을 용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지우는 그걸 살 여력이 안 되는지 너무 쉽게 포기를 해버렸다. 허무영은 세 사람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강현이 검을 골라드는 순간을 포착했다.
“그건 내가 대여를 하고 싶은데.”
순식간에 나타난 허무영이 말했다.
점원은 강경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 손님께서 먼저 구매 의사를 밝히셨습니다. 만약에 이 손님이 대여를 하시겠다고 하고 손님께서 구매를 하시겠다고 하더라도 저희는 먼저 의사표시를 하신 분께 우선 기회를 드립니다. 먼저 의사표시를 하신 분이 구매나 대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한 이 분이 먼저입니다.”
“그러면 어려울 게 없겠네요. 김강현. 포기할 거잖아. 안 그래?”
허무영이 강현의 앞으로 와서 검을 챙겨 점원의 앞으로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