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부터 레벨업-48화 (48/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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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체 운반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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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규태 써전이 언제 돌아올지, 하급 헌터들의 관심은 온통 거기에 쏠려 있었다. 팀이 깨지다보니 불편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매일 일자리를 새로 구해야 한다는 정도의 불편이야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정작 사람을 성가시게 만드는 문제는 매번 새로운 사람들과 부대껴야 한다는 거였다. 자신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이해시키는 일은 언제나 어려웠다. 그래도 써전이 돌아올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강현은 사체 운반 일자리를 구할 때 거의 항상 세 사람 이름으로 같이 신청을 했다. 그렇지만 한꺼번에 세 사람을 구하는 곳은 많지 않았다. 그러면 강현은 차선책으로 두 사람 이름을 넣었고 그럴 경우에는 태인이 탈락했다. 두 사람이라도 같은 곳에서 일을 하게 될 수 있는 날은 그나마 운이 좋은 날이었다.

지우와 강현은 같이 사체 운반 일을 하러 늪으로 가면서 빨리 서규태 써전님이 돌아오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끝나고 ‘익스트림 헌터’에 갈 건데 같이 갈래?”

지우가 물었다.

“왜요? 정이 누나 만나기로 했어요?”

“응.”

“껴도 될지 모르겠지만 괜찮다고 하면 저야 고맙죠.”

“괜찮을 거야.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크리티컬 훅이랑 검을 보고 대여가 나을지 구매가 나을지 결정하기로 했거든.”

“잘 됐네요. 같이 가요.”

두 사람이 처음 해치워야 하는 곳은 4급 늪이었다.

서규태 써전이 있을 때는 4급 늪도 써전의 팀 하나로 처리가 가능했는데 그게 흔한 케이스가 아니라는 것을 서규태 써전이 사라진 후에야 알게 되었다. 다른 사체 운반팀은 4급 늪도 다른 팀과 연합해서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4급 괴수는 10미터가 조금 안 되는 크기였는데 그 개체를 절단하고 운반하는 것도 버거워하는 헌터들이 많다는 거였다.

차크라는 하급 헌터들이 바디 팩을 나를 수 있도록 신체를 강화해준다. 4급 괴수 사체를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는 팀이 많지 않다는 것은 그동안 지우의 팀이 차크라 숙련 훈련을 잘 받아왔다는 설명이 되기도 했다.

약속 시간이 되지 않았지만 늪 앞에는 이미 여러 사람이 모여 있었다. 서규태 써전이 하던 것처럼 피자 가게 같은 곳에서 미리 따로 모이지 않고, 이렇게 처음부터 늪 앞에서 집결하는 일이 잦았다.

일찍 도착한 헌터들은 먼저 늪 아래에 내려가서 맵을 공부하기도 하고 괴수를 보기도 했다. 언젠가는 레이드를 할 사람들이라서 그런 식으로 미리미리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날은 늪에 먼저 내려간 헌터가 없었다. 아직 레이드가 끝나지 않은 탓이었다.

“레이드가 오래 걸리는 모양이네.”

강현이 말했다.

“너. 입 조심해라. 레이드 오래 걸리면 레이더들 신경이 곤두서 있을 테니까.”

지난 일을 상기시키면서 지우가 말하자 강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가 다른 하급 헌터에게 슬쩍 물었다.

“레이드가 지금 몇 시간째인 거예요?”

“열 시간이 넘었어요.”

그 말을 듣고 지우와 강현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4급 늪에 열 시간째라니. 5급 늪의 괴수보다는 확실히 강하겠지만 너무 오래 걸린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4급 늪을 공략할 수 있도록 공격대를 꾸려서 들어갔을 텐데.’

지우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늪이 오픈되면서 공격대장이 나왔다. 그의 표정은 말을 붙이기가 어려울 정도로 사나웠다. 그의 뒤를 따라 나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실수를 했나봐요. 한 사람이 실수를 해서 레이드가 어려워지면 그 팀 표정이 저렇게 되죠.”

지우의 옆에 서 있던 헌터가 말했다.

“그러게요.”

지우는 신경이 예민해진 레이더들에게 책잡히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짧게 대답을 하고 입을 다물었다. 강현도 단단히 조심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급 헌터들이 아무리 조심을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늪에서 헌터들이 꾸역꾸역 나오더니 인상이 더럽게 생겨먹은 녀석 하나가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하급 헌터 하나를 밀쳐버렸다. 몸이 닿은 것도 아니었고 하급 헌터가 그 녀석을 바라본 것도 아니었다. 단지 그 녀석에게는 화풀이 상대가 필요한 것 뿐이었고 만만한 게 하급 헌터였던 것이다.

그런 일이야 흔하게 일어났다. 새삼스럽게 화가 나지도 않았다. 그들의 잘못이라면 레이드가 끝나기 전에 너무 일찍 온 게 잘못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인간적으로 너무 오래 걸려서 이 시간까지 끝내지 못했을 거라는 건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그러다가 지우는 일이 생각보다 심각해질 수 있다고 깨달았다. 공대장에게 러프 스톤이 없었던 것이다.

‘공략에 실패한 거다.’

러프 스톤은 그 자체의 크기는 대수롭지 않지만, 외부의 충격이나 열에 의해 손상되지 않도록 특별한 케이스에 담아 공대장이 옮기는 것이 보통이다. 케이스를 끈에 걸어서 어깨에 걸기도 하고 두 손으로 직접 들고 가기도 하는데 공대장에게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러프 스톤이 들어있지 않은 빈 케이스라면 공대장이 직접 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우가 고개를 돌리자 가장 뒤에 쳐진 채 힘없이 걸어오는 레이더가 조심성없이 러프 스톤 케이스를 덜렁덜렁 들고 오고 있었다.

케이스가 비어있다는 것에 모든 것을 걸 수도 있었다. 그것으로 공략이 실패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해졌다.

날카롭고 째진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천 년 만 년 지나도록 F등급에서 벗어나지도 못할 식충이 같은 새끼들아! 그래놓고도 돈은 잘도 받아챙기지. 우리가 목숨 걸고 레이드를 해놓으면 하이애나 새끼들처럼 시체를 발라서 돈 벌어먹고 사는 주제에. 그러고도 헌터라고 잘난 척 하고 돌아다니겠지? 빈대 같은 새끼들!!”

거의 마지막쯤에 나온 레이더였다. 그 레이더는 그걸로는 화가 안 풀리는지, 가까이에 있던 하급 헌터의 팔을 확 낚아챘다.

“차크라 숙련도 0%. F등급이면서 차크라 숙련도는 0%. 이러고도 사람이냐? 이러고도 헌터야? 좀비 새끼들아. 괴수 피나 빨아먹는 좀비 새끼들이지, 니들이 헌터야?!!”

그는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팔을 낚아채서 바닥에 패대기를 쳐버렸다. 레이드를 같이 뛰고 나온 상급 헌터들은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듯이 걸음을 멈추고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얼굴에 웃음까지 지었다. 괴수를 잡지도 못한 주제에 레이더는, 도시를 접수하라는 말을 들은 군사처럼 광포하게 미처 날뛰었다. 공략에 실패했으니 돌아가라는 말을 하는 게 수치스러웠을 수는 있겠지만 이건 선을 훨씬 넘어서고 있었다.

“늪이 소멸하기 전에 들어가서 사체를 가져와야…….”

써전이 나섰지만 그것은 불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되었다.

“왜? 썩은 고기라도 처먹어야되겠다는 거냐? 나는 못 주겠는데? 늪이 소멸될 때까지 아무도 못 들어가. 오늘 온 놈들은 다 공친 줄 알아!!”

녀석은 기세좋게 소리를 쳤다. 나름대로 머리를 굴린 것 같았다. 사체 운반 헌터들은 어차피 늪에서 사체를 꺼내올 수 없었다. 괴수가 죽지 않았으니 늪에 괴수의 사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살아 숨쉬는 괴수가 있을 뿐이다.

공대장이 제지하지 않자 그것이 묵시적인 허락이라고 생각한 녀석은 점점 더 날뛰었다. 이제는 차크라 숙련도를 확인하기 위해서라기보다 화풀이를 하기 위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팔을 잡아챘고 갈수록 더욱 맹렬하게 바닥에 패대기를 처버렸다. 바닥으로 쓰러지는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점점 고통에 차올랐다. 그 녀석은 먹잇감을 놓치지 않고 하나 하나를 전부 손봐주더니 순서에 따라 강현에게 다가갔다. 녀석의 손이 강현의 팔에 닿기 직전의 순간이었다.

강현이 먼저 팔을 들어올렸다. 녀석은 강현이 저를 공격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강현은 제 팔의 타투를 보여주려던 것 뿐이었다.

“차크라 등급 5등급. 차크라 숙련도 84퍼센트. 아마 내가 더 낫지 싶은데요?”

레이드 경험도 있다고 말을 하려다가, 나이 제한 규정을 바꾸는 작업이 어디까지 진척이 됐는지 확실치 않아서 그 점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차크라 숙련도가 낮은 것을 트집 잡아서 행패를 부려왔던 녀석은 강현의 차크라 등급과 차크라 숙련도를 보고 솔직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등급은 저와 같았고 숙련도는 저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었다.

그 녀석은 당황한 기색을 애써 숨기면서 지우에게 다가왔다. 지우는 조용히 제 타투를 보였다. 은근슬쩍, 공격력과 방어력 수치가 나타난 부위는 가렸다.

녀석은 지우의 차크라 등급이 4등급인 것을 보고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녀석은 지우를 건너뛰고 다른 먹이를 찾아나섰다.

그때 공대장이 치안대를 불렀다. 지우는 강현을 바라보았다. 아무 것도 잘못하지 않았고 소극적인 저항조차 하지 않았는데 공대장이 스스로 치안대를 불러서 사체 운반 헌터들에게 패널티를 안기려는 속셈인 것이 뻔했다.

“누나한테 전화해야 하지 않을까요?”

강현이 지우쪽으로 몸을 틀면서 허공에 대고 말하듯이 작게 속삭였다.

“아직은 기다려보자. 치안대도 이런 경우까지 레이더들 편을 들어주지는 않겠지.”

강현은 지우의 뜻을 존중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다지 운이 좋지 못했다. 하필, 현장에 나온 사람이 임재욱이었던 것이다. 임재욱은 C급 치안대원을 내보내고 자기는 계속 지바겐에 타고 있다가 지우와 강현을 알아보았다. 임재욱이 내리자 안에서 버티고 있던 두 명의 치안대원들도 한꺼번에 내렸다. 딱 봐도 심각한 사안이 아니고, 공략에 실패한 레이더들이 하급 헌터들을 상대로 화풀이를 한 거라는 것을 뻔히 알 수 있었는데 B급 헌터인 임재욱이 직접 나서려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써전이 와서 설명을 하려고 했지만 임재욱은 손을 들어서 간단히 그 시도를 막았다. 그러고는 지우를 바라보았다. 지우는 본 적이 없던 사람이 자신을 기분 나쁘게 바라보자 저도 기분이 좋지는 않아서 임재욱을 마주 바라보았다.

“헌턴가?”

임재욱이 물었다.

치안대원이 혐의가 있는 헌터에게 반말을 하는 것은 이 세계의 굳은 관행이라 초면에 반말을 한다고 따질 수도 없었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 ‘혐의가 있다’라는 말은 굉장히 넓은 의미로 사용이 되었다.

“예.”

지우는 말투에 신경을 쓰면서 대답했다.

“타투.”

지우는 제 타투를 보여주었다.

“호오오…….”

임재욱은 지우의 타투를 바라보면서 희한한 소리를 냈다. 순식간에 그의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의 정보들이 투다다닥 이어졌다. 타투에 나타난 기본 스텟이 지우의 비밀을 그에게 모두 드러내버린 것이다.

임재욱은 차크라 등급과 차크라 숙련도까지 보았고 저도 모르게 머리를 긁적이기까지 했다. 이 녀석이 바로 그, 실내에 나타난 늪에 팔을 담가서 타투를 얻었다는 녀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정작 임재욱을 가장 괴롭힌 것은 따로 있었다.

안지우가 연구소를 떠날 때 헌터 협회 사람들과 치안대원들이 모여서 내기를 한 일이 있었다.

내기의 구도는 헌터 협회 사람들 대(對) 치안대원의 구도가 아니었다.

임정 대(對) 나머지.

아무도 믿지 않는 것을 임정 혼자만 믿었다.

안지우는 3년 안에 D급으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것은 너무 명백한 사실로 보였다. 왜 임정이 고집을 부리는 건지 알 수 없었던 임재욱은 그 내기에 23억을 걸었다.

3년이 지나기만 하면 그 돈이 저만한 새끼를 쳐서 돌아올 줄 알고 있었는데 이 녀석의 차크라 등급이 벌써 4등급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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