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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체 운반 헌터
“그래도 저는 론 디어를 가지시라고는 못 하겠네요.”
선아영이 웃으며 말했다.
쉽게 안 넘어가네, 라는 표정을 지으며 지우가 아쉬워하자 강현은 도대체 뭘 바랐던 거냐는 표정으로 지우를 바라보았다.
선아영은 건물의 꼭대기층에 있는 집무실로 두 사람을 안내하면서 자신을 소개했다. 굳이 소개를 할 필요도 없었다. 익스트림 헌터의 대표라는 말에 다른 부가 설명은 전혀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우와 강현은 자기들을 F등급 딜러라고 간단히 소개하고 끝냈다. ‘익스트림 헌터’의 대표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도대체 뭐라고 더 소개를 한단 말인가. 하나 하나를 내세울수록 더 궁색해지기만 할 게 뻔했다.
선아영은 두 사람을 집무실로 데려가 바디 팩을 꺼냈다. 바디 팩을 저장하는데 딱 맞도록, 적절한 온도가 유지되는 보관실에 바디 팩이 수북했다. 각각의 바디 팩에는 바디 펌의 로고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지우는 그런 곳에서 바디 펌의 로고를 보자 왠지 친숙하고 반갑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사체 운반 헌터들이 늪에서 운반을 하던 바디 팩과는 크기가 달랐다. 한 번에 100킬로그램씩 사용할 일은 거의 없을 테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강현이 냉큼 달려가서 선아영을 대신해 바디 팩을 꺼내왔다. 강현이 바디 팩을 꺼내오는 것에 맞춰서 지우는 론 디어를 꺼내들었다. 론 디어의 칼집은 괴수의 가죽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것은 성능을 개선시키기 위한 목적보다 장식의 효과가 커보였다.
손에 들고 보니 무기의 길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짧은 느낌이었다.
써전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이렇게 짧은 칼을 쓰는 사람은 현실에서 대인관계를 할 때도 좀 과격한 면이 있죠. 오래 생각하지 않고, 기회가 생기면 바로 노리고 달려드는 스타일이고 겁이 없어요. 이만한 칼을 들고 상대 앞에 섰다. 그러면 거리도 두지 못하고 끝까지 몰아붙여야 공격할 수 있는 거거든요. 활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이랑은 마음가짐 자체가 다르지.’
지우의 머릿속에는 론 디어를 든 헌터가 괴수를 마주하고 서 있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여유를 둘 사정이 없었을 것이다. 기회가 왔을 때 헌터가 론 디어를 잡고 주저하지 않고 달려드는 모습이 생생했다.
“론 디어를 사용하는 헌터가 많은가요?”
지우가 묻자 선아영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 무기는 너무 공격적으로 보이지 않나요?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공격적으로 보인다는 게 아니라 사용하는 사람 입장에서 봤을 때 그렇다는 거예요. 무기를 가지면 사람들은 안도감을 느끼게 되는 게 일반적인데 론 디어는 그런 감정을 거의 주지 못하죠. 론 디어는 약한 사람을 스스로 도와주는 타입의 무기가 아니예요. 몰인정하다고 해야 할까요?”
론 디어에 대해서 그동안 오랫동안 생각을 해 온 사람들이 아니라면 선아영의 말을 이해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지우와 강현은 그 말을 곧바로 알아들었다.
선아영은 론 디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론 디어는, 주저하는 헌터에게는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겠지만 단호한 헌터에게는 맹금류의 발톱과 같은 존재가 돼 주죠. 절삭력으로만 치자면 무기 중에 상위 0.1% 안에 들 거라고 생각해요.”
“그 정돈가요?”
지우가 물었다. 단번에 론 디어에 대한 호감도가 급상승하는 느낌이었다.
“직접 시험에 보시죠. 그러려고 오신 것 아닌가요?”
선아영이 말했다.
지우는 제 손에 쥐어진 론 디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론 디어에 차크라를 모으면서 괴수 사체에 론 디어를 찔러 넣었다. 처음에는 늪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자국이 나오지 않았다. 생각만큼 깊이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차크라 등급이 그 헌터보다 낮은 건가?”
지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괴수 사체에는 곧 여러 군데에 흠집이 생겨 났다.
“레이드를 할 때를 상상해 봐요, 형. 급박한 상황에서 절실하게 찔러 넣는다는 느낌으로 해야죠.”
강현이 옆에서 코치를 했다.
지우는 괴수가 살아서 자신을 향해 공격해 온다는 느낌으로 다시 론 디어를 밀어넣었다. 뺐다가 다시 찔러넣기를 반복하면서 지우는 어느 순간, 완전히 론 디어를 사용하는 감을 익혔다. 무기에 차크라를 순간적으로 폭발력있게 밀어넣는 방법도 터득이 되었다.
강현에게도 그것이 확연히 보였다. 처음에는 지우의 팔 주위에만 머물렀던 차크라의 기운이 론 디어까지 길게 감쌌다. 연하게 푸르스름한 기운을 띠던 차크라는 이제 짙은 노란 색을 띠면서 뭉쳐졌다.
지우의 팔이 여러 방향에서 움직였다. 지우가 론 디어로 괴수의 사체를 찌를수록 차크라는 점점 더 정교하게 자리를 잡아갔다.
어느 순간, 강현이 갑자기 지우의 손을 붙잡았다.
지우가 강현을 바라보자 강현이 하나의 자국을 보여주었다.
“이건 정말로 많이 비슷해요. 론 디어가 확실해요. 그 헌터가 사용했던 무기는. 형이 아무리 해 봤자 그 사람이 만들어낸 자국이랑 완전히 똑같이 나오지는 않을 거예요. 두 사람이 가진 힘이랑 차크라 양도 다를 거고 차크라 숙련도도 다를 테니까요. 그리고 그 사람은 F급도 아닐 거고. 그래도 이 정도면 두 무기가 똑같다는 건 거의 100퍼센트 확실한 것 같아요.”
강현이 말했다.
지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한 것 같다.”
지우가 말했다.
그것은 처음에는 그냥 써전의 취미 생활이었다.
써전이 부검을 하면서 우연히 그 칼자국들을 발견했고, 칼자국을 보면서 여러 가지 추리를 해 냈다. 써전이 추리한 것중에 얼마나 맞을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써전의 팀에 속해 있던 하급 헌터들은 그 일에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그 헌터를 찾아서 뭘 어쩌자는 것도 아니었다. 만약에 정말로 그 헌터를 찾게 된다면, 그래서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허망해질 것 같기도 했다. 추적하고 찾아가는 재미가 끝나면, 마치 수 천개의 모자이크를 전부 맞춰 그림을 완성한 것처럼 허무할 것 같았다. 모자이크가 완성됐을 때 어떤 그림이 나올지 그건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다. 이 조각 옆에 어떤 것을 가져다 붙여야 할지 고민하고, 적당한 것을 찾고, 성공을 기대하고, 실패나 성공을 경험하는.
점점 그 재미에 중독돼 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지우와 강현은 문제의 헌터에게 다가가는 것이 즐거운 한편 걱정이 되기도 했다.
“누나랑 써전님한테, 문제의 헌터가 사용하는 무기가 론 디어라고 말해주면 될 것 같아요. 이름도 절묘하네.”
강현이 말했다.
“왜?”
“론 디어라잖아요. 대출(loan) 잘못 받으면 딘다는 거죠.”
“설마.”
지우는 그런 녀석을 동생이라고 데리고 다니는 제 현실이 안타까워서 재빨리 강현의 입을 막아버렸다.
“론 디어는 정말 잘 봤습니다. 정말 친절하시네요. 그런데 도와주신 김에 한 가지만 더 부탁해도 될까요? 혹시 크리티컬 훅을 아세요?”
지우가 선아영에게 물었다.
“그걸 사시려고요?”
“네. 여자친구가 그걸 추천해 줘서요.”
“아아.”
‘김칫국 마실 사람은 준비를 다 끝냈는데 떡 줄 사람이 떡을 집어넣는 꼴인 건가?’
아영은 저도 모르게 실망하는 기색을 내비쳐버렸다. 그래서 강현은 그 순간부터 아영을 싫어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자기가 탱커 누나의 편이 되어주지 않으면 앞으로 두 사람 사이가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혼자 하면서 혼자서 고개까지 절레절레 저었다.
지우와 강현은 태인의 손도끼와 자신들이 쓸 검까지 두루두루 실컷 구경을 하고 아영과 헤어졌다.
매장에서 나오면서 강현이 지우를 빤히 바라보았다.
“왜?”
“여자들이 왜 형한테 맥을 못추나 해서요.”
“여자들이 나한테 맥을 못 춰?”
“태인이 형네 누나도 그랬죠? 탱커 누나도 그랬죠? 여기 사장도 그랬죠.”
“내가 쉬워 보이나?”
“눈꼬리가 내려가서 인상이 착해보여서 그러나?”
“내 눈꼬리가 착해보여?”
“내가 생각을 오래 해 봤는데 형이 특별한 건 없는 것 같거든요. 두드러지게 잘 생긴 것도 아니고. 잘 생긴 얼굴이라고 하면 우리 셋 중에는 태인이 형이 그나마 제일 낫지 않아요? 나는 귀여운 상이고. 형은 굉장히 흔하고 평범한 얼굴인데 여자들이 편안하게 여기면서 꼬이잖아요.”
“편안해 보여서 그런가보네.”
강현은 여자들이 왜 지우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몇 가지 이유를 더 늘어놓았지만 지우 입장에서 수긍이 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리고 지우에게는 그런 것이 전혀 궁금하지도 않았다. 머릿속에는 문제의 헌터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어쨌든 수확이 있어서 다행이다. 우리가 처리한 늪에서 레이드를 한 사람들 중에 론 디어를 주무기로 사용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면 되겠어."
지우가 말했다.
“그때 그때마다 늪을 공략한 레이더들 명단을 입수할 수 있으면 그게 제일 쉽긴 한데. 그러면 겹치는 사람을 골라내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론 디어 자국이 난 괴수 사체를 추리고 그 레이드에 참가했던 레이더들을 추리면 모든 레이드에 공통으로 참가한 사람은 몇 사람으로 좁혀지겠지. 애초에 론 디어를 쓰는 사람이 별로 없다잖아. 곧 알게 되겠다. 그게 누군지. 알 때까지는 그 사람을 론 디어라고 부르자. 사람 이름 같고 좋네.”
지우가 말했다.
론 디어 (lone deer).
누가 뭐라고 해도 그는 확실히 강한 사람이었다.
원하기만 하면 레이드를 성공으로 이끌 수도 있고 실패로 이끌 수도 있는 사람.
써전이 했던 말이 지우의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써전은 그런 사람이 사회에서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어떻게 대응할지 모르겠다고 말했었다.
“김강현. 론 디어 같은 사람이 사회에서 일반인이랑 부딪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갑자기 지우가 묻자 여전히 지우의 매력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던 강현은 느닷없는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그런 사람이 사회에서 제대로 적응할 가능성은 적을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일상 생활에서 사람들이랑 접촉할 때,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안 들거든요.”
“그게 무슨 뜻이야?”
“그런 것 있잖아요. 운전을 하는데 누가 끼어들었다거나 누가 길을 가다가 몸을 부딪쳤다거나 사소한 시비가 생겼을 때 론 디어는 절대로 참지 않겠죠. 아니. 론 디어랑 마주친 사람들은 미리 조심을 할 것 같네요. 이런 사람들한테서는 살기가 느껴지겠죠. 일반인이라고 해도 그 정도 살기는 감지를 할 수 있을 거고. 어쩌면 론 디어가 시비를 걸려고 일부러 부딪칠 수도 있겠네요. 문제를 일으키고.”
“외로운 사슴이 꽤나 난폭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네.”
“레이더들을 봐요. 조그만 힘만 가져도 하급 헌터들을 무시하고 괴롭히잖아요. 그런데 그게 이해는 돼요. 늪에 들어가서 괴수랑 마주했을 때의 엄청난 위압감에, 매번 죽음과 대면해서 싸우고 나오는데 레이드가 끝났다고 해서 괴수하고의 대치 상태가 완전히 끝난 게 아니잖아요. 다시 또다른 늪으로, 또다른 괴수가 있는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부담감이랑 공포를 생각하면 레이더들의 스트레스는 말로 하기 어려울 걸요?”
“그렇겠지.”
“내 생각에는 형. 우리는 이쯤해서 멈춰야 할 것 같아요. 무기가 론 디어라는 걸 찾아냈으니까 된 거잖아요. 재미로 시작한 일인데. 그리고 우리도 앞으로는 엄청 더 바빠질 거고요. 사체 운반 일 하랴 훈련하랴.”
강현은 저답지 않게 진지하게 말했다. 지우는 강현이 정말로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그러자.”
강현을 달래듯이 말을 하면서 지우는 ‘익스트림 헌터’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