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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43화 (4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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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체 운반 헌터

세상에 어떤 헌터가 눈 앞에서 괴수가 날뛰고 있는 상황에서 정보창을 확인한단 말인가. 다른 헌터들도 정보창을 확인할 때가 있기는 하지만 그건 믿을 수 있는 동료들이 옆을 지키고 있고 괴수의 체력이 만만할 때나 그러는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을 하자 임정은, 태인이 혹시 지금 이 상황을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싶었다.

'믿을 수 있는 동료들이 옆을 지키고 있고 스컨데르의 체력이 만만하다?'

임정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도 스컨데르를 공격하며 도발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태인은 그 후로는 의식적으로 정보창을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중력처럼 정보창이 태인의 시선을 마구 끌어당겼다. 그건 비단 태인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하급 헌터들 모두, 공격을 가한 후에는 힐끔 힐끔 정보창을 보았다. 태인이 임정에게 호되게 혼나는 것을 봤기에 정보창을 대놓고 보지는 못했지만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힘으로 괴수의 체력을 깎은 것이다. 270만이라는 숫자가, 쥐가 갉아 먹은듯이 조금씩 조금씩 부서지고 있었다.

임정이 공수해온 무기의 공격 증폭률이 상당했고 차크라 등급의 영향까지 받아서, 하급 헌터들이 공격을 몇 번 성공시키자 순식간에 스컨데르의 체력이 몇 만이나 깎여나갔다.

태인과 강현은 모두 F등급 딜러에 차크라 등급이 5등급이었다. F등급 딜러의 기본 공격력 200에, 차크라 등급 1단계 승급으로 인해 10퍼센트의 공격력 증폭 효과를 보았다. 거기에 태인이 손도끼를 한 번 휘두르면 그때마다 200퍼센트가 추가 적용되고 있었다. 태인이 한 번 손도끼를 휘두를 때마다 기본 공격 200에 20이 차크라 증폭률의 지원을 받아 올라가고 220의 200퍼센트인 440이 증폭되었다. 그렇게 들어가는 데미지가 회당 660이었다.

강현의 무기는 250%의 적용률을 보였다.

B급 탱커인 임정의 공격력은 250이었다. 거기에 차크라 등급 승급으로 인한 증폭을 받았지만 무기의 효과는 방어증폭률을 올리는데 집중되었고 공격증폭률은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아무리 상급 헌터라고 해도 직종이 탱커라면 공격력면에서는 하급 딜러수준에 머무는 것이다.

지우는 무기 선택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기를 처음 본 순간 운명적인 끌림을 느꼈지만, 특별한 경우에 사용을 한다면 모를까 자주 데리고 다닐 녀석은 아니라는 생각이 점점 굳어졌다. 휘어진 칼날 때문에 공격을 하기가 애매했고 사용방법이 제대로 터득되지도 않아 갈수록 불편함이 더해졌다.

휘어진 칼의 바깥 쪽에 날이 있다면 어떻게든 해 볼 수 있었겠지만 지우의 블레이드는 안쪽에 날이 있었다. 그 안에 공격대상을 집어 넣을 수 없다면 벨 수도 없는 구조인 것이다.

그래서 결국 지우는 블레이드를 내던지고 주먹으로 스컨데르를 가격했다. 그러니 무기의 공격증폭률이니 뭐니 하는 효과를 볼 수도 없었다.

태인이나 강현 같았다면 무기가 안 맞네 어쩌네 해도 무기의 공격 증폭률이 아까워서라도 무기를 쉽게 포기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우가 포기해야 하는 증폭률이라고 해 봐야 고작 22정도였다. 지우가 주먹으로 스컨데르를 공격할 때마다 꼬박꼬박 11씩의 데미지가 들어가면서 괴수의 체력이 떨어졌다. 그나마 차크라 등급을 올려서 그렇게 올린 것이다. 그렇다고 지우를 보면서, 저러다가 어느 세월에 괴수를 쓰러뜨릴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모두 근접 공격을 펼치고 있었다. 근접 딜러가 차크라를 모으는데는 7초의 리로딩 시간이 걸린다. 태인은 한 번의 공격으로 스컨데르에게 660의 데미지를 가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한 번 공격을 한 후에는 7초동안 몸을 피하면서 차크라를 다시 모아야 했다. 강현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들은 7초의 리로딩 시간동안 무방비 상태가 되지 않기 위해서 서로가 협력을 했다. 한 사람이 공격을 가하고 나면 2초가 지난 후에 다른 사람이 공격을 가하는 식으로 해서 무방비로 되는 시간의 텀을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그 계획이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은 곧 밝혀졌다. 모두에게 적용되던 7초의 리로딩 시간이, 웬일인지 지우에게는 변칙적으로 나타났다. 지우는 차크라를 실어 공격을 하는데 처음부터 무리가 없었다. 처음에는 6초, 5초의 시간이 걸리면서 리로딩 시간이 점점 단축되더니 나중에는 그것마저도 필요가 없어졌다.

지우가 매번, 차크라를 실은 공격을 성공시키자 강현과 태인이 지우를 바라보았다. 7초의 리로딩 시간으로부터 자유롭다면 지우를 마냥 무시할 수만도 없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1초에 한 번씩만 공격을 한다고 하더라도 남들이 한 번 공격할 수 있는 시간동안 지우는 일곱 번을 공격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해 봐야 77이기는 하지만 공격증폭률을 높인 무기를 사용한다면 그 차이는 현저히 줄어들 터였다.

지우가 그렇게 싸워주니 태인과 강현은 점점 여유가 생겼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 하자고."

"옛썰!"

태인이 말하자 강현이 손을 이마에 올려 붙였다 내리면서 대답했다.

이제 그들의 움직임은 확실히 노련해지고 있었다. 공격을 가하고 난 후에도 스컨데르를 정신없이 피해 달아다니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세 명의 하급 헌터들은 희한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스컨데르가 움직이는 것에 따라서 공격을 가하는 게 아니었다. 공격을 하기는 했지만 스컨데르가 동선을 주도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임정이 보기에는 하급 헌터들이 스컨데르를 어떤 특별한 지점에서 계속 쫓아내는 것처럼 보였다. 스컨데르는 스컨데르대로 그 장소에 집착을 보였다. 그들이 서로 뺏고 뺏으려고 했던 지점은 잔치집 마당처럼 무수한 발자국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급 헌터들의 동작에 목적이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스컨데르는 초보 딜러들의 공격을 받으면서 크게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임정은 그들이 무엇을 노린 건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상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 헌터들이 취하는 대형은 남들과 달랐다. 스컨데르의 좌우측과 후방을 맡고 있다가 스컨데르에게서 틈이 보일 때 공격을 하는 식이 아니라 끊임없이 눈짓과 손짓으로 신호를 보내고 대형을 필요에 따라 바꿔가면서 스컨데르를 압박했다. 사체 운반팀으로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왔던 것이 헛되지는 않은 듯했다.

그들의 행동이 스컨데르를 퀘렌시아에서 쫓아내는 행동이었다는 것을 임정은 레이드가 전부 끝난 후에 들을 수 있었다. 스컨데르는 퀘렌시아에서 자꾸 쫓겨나면서 당황했고, 적절하게 숨을 돌릴 시간을 얻지 못한 탓에 주도권을 뺏겼다.

처음에는 어설펐던 하급 헌터들의 움직임이 점차 세련되게 변해갔다. 세 사람은 유능한 탱커가 레이드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실감했다. 임정은 세 사람이 아무 것도 걱정하지않고 딜을 가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바빠지다보니 이제는 정보창을 바라볼 시간도 없어졌다. 그러는 사이에 스컨데르의 체력은 급격히 떨어져가고 있었다. 태인과 강현이 감을 익히고 이제 전투 운영을 능숙하게 할 수 있다고 판단됐을 때 임정이 지우에게 다가왔다.

"차크라를 그런 식으로 계속 쓰다가는 막판에 지쳐서 쓰러지게 돼요."

임정이 말했다.

"아!"

지우는 그 사실을 몰랐기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내 임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예요. 방금 내가 한 말은 못 들은 걸로 해요. 어차피 이번 레이드는 스컨데르를 쓰러뜨리는 게 목표가 아니라 각자가 가진 감각을 알아보고 한계를 파악하자는 거였으니까 초반에 끝까지 몰아붙여 보죠. 다른 분들도 지금까지 한 것처럼 계속 해주세요."

임정이 말하자 모두들 알겠다고 기세좋게 대답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임정의 말이 맞다는 게 증명되었다. 각자가 가진 차크라에는 한계가 있었다.

사체 운반을 하면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 바디 펌으로부터 엄청난 패널티, 즉 경험치 50을 강제 삭감한다는 패널티를 받지 않으려고 한계 이상으로 사체를 운반했을 때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 앞이 빙글빙글 돌고 쓰러질 것 같고 토가 쏠리던.

지금은 그때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차크라의 소모가 극심했다. 태인과 강현은 그 증상을 슬슬 느꼈지만 태인은 강현을 보면서, 강현은 태인을 보면서 서로 버티는 중이었다. 그러나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다. 버티고 서 있을 수는 있었지만 더이상 차크라를 실어 공격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에 이른 것이다.

"차크라가 없어요."

결국 태인이 먼저 말했다.

강현도 고개를 끄덕이려고 했지만 고개를 끄덕일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임정이 지우를 바라보았다. 지우는 어깨와 가슴을 들썩이면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기는 했지만 여전히 싸울 수 있었다. 실제로 끊임없이 공격을 하고 있기도 했다.

단순히 공격을 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지우가 어느 정도까지 해내는지 보려고 임정이 일부러 손을 놓고 있었기 때문에 지우는 혼자서 스컨데르를 공격하고 피하는 것까지 전부 해야 했다. 그러느라고 체력과 차크라의 소모가 컸다. 그런데도 지우가 보이는 표정은 힘들다는 정도지, 이제 더이상은 못하겠다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지우를 보면서 다른 세 사람은 정보창을 보았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네 시간이었다. 헌터가 늪에 입장한 이후 12시간이 지나면 괴수의 체력은 리셋된다. 지우는 더 싸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래봤자 한 번의 공격으로 스컨데르에게 입힐 수 있는 데미지는 11이 전부였다.

강현이 중얼거리면서 계산을 했다.

"11곱하기 60곱하기 60. 한 시간동안 1초에 한 번씩 계속 공격을 할 수 있다고 할 때 지우 형이 스컨데르에게 입힐 수 있는 데미지예요."

"39600이네."

태인이 말했다.

그러자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답이 나오질 않았다. 지우가 혼자서 끝까지 버틴다고 해도 정보창의 타이머를 멈추지 못한다면 불가능했다.

"지우 형이 무기를 가지고 싸웠다면 가능했을 것 같기는 해요."

"그렇다고 해도 아직은 크게 변할 게 없어. 일단 안지우는 등급을 올려야돼. 등급이 올라가고 기본 공격력이 높아지면 대단하겠다. 어떻게 리로딩 시간이 없을 수가 있지?"

태인이 말했다.

임정이 스컨데르의 시선을 뺏으며 지우에게 소리쳤다.

"퇴장 준비해요. 오늘은 이걸로 됐어요."

임정이 스컨데르를 도발했지만 스컨데르는 임정을 향해 눈을 굴리기만 할 뿐 초반의 기세는 한층 꺾여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모두가 부지런히 공격을 가하면서 지금까지 스컨데르의 체력을 꽤 많이 깎아 놓은 상태였기에 모두에게 아쉬움이 컸다.

"이대로 퇴장해야 하다니."

강현이 말했다.

지우야말로 답답했다. 공격력이 조금만 높았어도, 남들 수준만 됐어도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서였다.  임정은 그런 그들을 몰아세웠다.

“모든 참극은 한 순간의 잘못된 결정으로 벌어져요.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으면 손을 내려놓을 수도 있어야 되는 거예요. 김강현씨. 퇴장하세요.”

실제로, 얼마 남지 않은 괴수의 체력 때문에 미련을 보이다가 참변을 당하는 레이더들이 꽤 되었다. 조금만 더 하면 러프 스톤을 손에 넣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다보면 판단이 흐려지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한테 차크라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도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을 거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러다가 차크라의 소진으로 현격히 느려진 신체 반응 때문에 괴수를 피하지 못하고 오히려 괴수의 공격에 당해서 부상을 입고. 그것이 정해진 절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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