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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체 운반 헌터
지우는 한 번 더 구석구석, 임정의 입술이며 연한 살들을 혀로 탐색하고 아쉬움과 기대감을 동시에 담은 채 임정에게서 떨어졌다. 태인과 강현을 한없이 차 안에 가둬둘 수만은 없었다. 게다가 첫 레이드를 앞두고 힘을 낭비해서도 안 되었다.
지우가 먼저 일어서면서 임정에게 손을 내밀었다. 임정은 순순히 지우의 손을 잡았다. 임정이 일어났는데도 지우는 잠시동안 그 손을 놓치 않았다. 오히려 기다란 엄지 손가락으로 임정의 손등을 한 번 쓰다듬었다. 지우는 임정의 손을 잡은 채로 자기 등 뒤로 손을 가져갔다. 임정은 비틀거리면서 지우에게 안겼다.
“자. 나를 안아보는 것까지가 수강료였습니다.”
지우가 말했다.
“이거 후불인 거죠? 처음 낸 거잖아요.”
“그럴 걸요?”
“다음부터는 선불로 받을까봐요.”
“매일, 그날 그날의 수강료를 낼까요?”
“그것도 좋겠네요.”
태인과 강현은 자기들이 돌아왔다는 걸 알리려고, 검으로 달그닥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걸어왔다.
“그러니까, 방금 그 속도는 좋았어요. 그 속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으면 좋을 거예요.”
임정이 지우에게 말했다. 지우가 웃음을 지었다. 몇 분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표정이었다. 자기가 임정에게 특별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됐다는 자부심을 가진 채 지우는 당당히 임정을 바라보았다. 지우의 눈빛과 웃음을 보면서, 이제는 저런 걸로도 공격을 하나 싶을 정도로 임정은 심장에 관통상을 입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임정의 손을 놓을 때 지우는 어쩔 수 없이 놔야 하는 게 아쉽다는 듯이 임정의 손을 한 번 꽉 잡았다. 임정은 앞장 서서 가다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지우를 불렀다.
임정의 앞에는 직경이 1미터는 되어 보이는 통나무가 놓여 있었다.
“아니. 전부 다 와 보세요. 태인씨랑 강현씨도.”
태인과 강현은 자기들이 방금 전에 목격한 장면 때문에 뻘쭘했지만 임정은 그 시간은 이미 끝났다는 듯이 서둘렀다.
“세 사람 모두 주먹에 차크라를 싣고 이걸 격파해보세요. 차크라를 아껴야한다는 생각없이 전부 싣는다고 생각하고. 아. 안되지. 있다가 레이드를 해야 되지.”
“네? 정말로 갈 거예요?”
강현이 물었다.
태인은 먼저 고개를 젓고 있었다.
“오늘은 무리예요. 이렇게 빨리는 안 돼요.”
태인이 단호하게 말했다.
“괴수를 꼭 잡겠다는 건 아니잖아요. 도망쳐 나오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니까요?”
임정이 말을 해도 태인은 계속해서 고개를 저었다. 말로 태인을 설득할 필요는 없었다. 임정은 다른 사람들이 가면 어차피 태인도 따라올 거라고 생각했다. 임정은 차크라를 실어서 격파해 보라고 했던 말을 철회하고 각자 다시 훈련을 시작하라고 했다. 하지만 지우는 갈 생각을 하지 않고 우물쭈물했다.
“뭘 알아보려고 한 건데요? 나는. 차크라가 좀 많이 남아도는 것 같긴 한데.”
지우가 말하자 임정이 눈을 빛냈다.
“아, 지우씨는 그렇죠? 그럼 해 봐도 되겠네요. 어차피 잘려진 나무들이니까 미안해할 것도 없겠네요. 주먹으로 쳐보는 거예요. 타격감이 완전히 익혀지고 차크라를 완전한 수준으로 섬세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됐다는 느낌이 들면 그때부터는 손가락으로 해보고요. 손가락으로 찌를 때는 차크라를 가늘고 빠르게, 깊게 밀어 넣어서 장기에 관통상을 준다는 생각으로 해 봐요.”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어요?”
지우가 물었다.
“당연하죠. 상급 헌터들은 다 그렇게 해요.”
지우는 감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임정이 과도한 자신감을 보인다는 것은 그 말이 거짓말이라는 반증이었다. 그 사실을 지우가 아직 깨닫지 못한 것 뿐이었다.
“차크라를 미는 거예요. 그 연습을 하는 거예요. 주먹의 직접적인 타격을 노리라는 게 아니라.”
“네. 알았어요.”
차크라를 두른 주먹은 거대한 해머의 위력과도 비슷했다. 그렇게 휘둘러댔으면 자신의 손도 아직이 나는 게 맞을 텐데 지우의 손등은 어떤 타격도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반복되는 연습으로 지우가 뭔가 감을 잡아가고 있을 때 임정은 여전히 헤매고 있는 태인과 강현을 각각 상대해 주었다. 그러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고 그 얼굴로 가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을 때 나온 말은, 뭘로 하면 좋을지 알겠다는 말이었다.
세 사람은 임정이 그동안 내내 지우의 주무기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렇다고 그게 뭔지 말을 해 준 것은 아니었다. 그 후로도 임정의 주문은 끝도 없었다.
차크라를 이용해 도약을 해 보라고 해서 도약을 했더니 그 두 배가 되지 않은 것을 아쉬워했다. 애초에 정해놓은 높이라는 것도 없었다. 여간해서 만족하지 못하는 선생을 두었다는 것은 정말로 피곤한 일이었다.
임정은 날고 기는 사람들의 레이드를 숱하게 봐 왔기 때문에 누가 뭘 잘 한다고 해서 대단하다고 느끼지도 않았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하급 헌터들은 임정의 눈치를 살피기에 바빴다. 중요한 약속이 생겨서 레이드하기로 한 일을 잊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임정은 무기가 대충 각자의 손에 익었다고 판단이 되었을 때 하급 헌터들을 인솔했다.
가는 길은 익숙했다. 네 사람은 십 분도 안 돼서 늪이 있는 쇼핑몰 주차장에 도착했다. 하급 헌터들은 훈련을 하던 곳과 쇼핑몰이 그렇게 가까운 줄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채 마음의 준비도 다 마치지 못하고 차에서 내려야 했다.
“어렵게 생각할 건 전혀 없어요.”
임정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임정의 말 중에는 틀린 게 없었다. 설사 세 사람 중 누군가 하나가 거의 죽을 지경이 된다고 하더라도 임정은 자기가 살려낼 자신이 있었다. 그 사실을 밝힐 수 없을 뿐이었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세 명의 하급 헌터들은 죽으러 가는 사람들처럼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부터는 진짜 괴수를 상대하러 간다고 생각하니, 무기를 잡는 손의 모양마저 달라지는 느낌이었다. 세 사람이 준비를 하는 동안 임정도 제대로 준비를 갖췄다. 갑옷을 입고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어그로 장비와 자신이 즐겨쓰는 무기를 전부 챙겼다.
이제부터 세 사람의 목숨은 임정에게 달려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첫 레이드의 경험이 앞으로 이들의 미래를 완전히 바꿀 거라는 것을 임정은 알고 있었다.
임정은 삼각붕대같이 생긴 넓은 조각을 꺼내 태인의 손을 도끼 자루와 함께 묶어주었다.
“해 보는 거예요. 다른 건 필요 없고, 늪에서 나오는 것. 그것만 신경써요. 늦지 않게 늪에서 나오는 것. 알겠죠?”
임정의 말에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것, 이제와서 물릴 수도 없다고 생각하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오늘 경험치를 얻지 못하더라도 오늘의 레이드는 여러분의 실력을 높이는데 분명히 도움이 될 거니까요. 일단은 나를 믿어봐요.”
임정은 마지막으로 그들을 북돋웠다. 그리고 마침내 리드의 앞으로 다가갔다.
임정은 십 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통화를 마치고 돌아보다가 임정은 세 사람이 자기를 빤히 바라보는 것을 보고 설명을 해 주었다.
“지금부터 늪에 입장할 거니까 다른 헌터들이 입장하지 못하게 통제해 달라고 말했어요. 우리가 거의 공략에 성공해가는데 다른 헌터가 입장해서 괴수 체력이 리셋된다고 생각해 봐요. 끔찍하잖아요.”
임정이 말했지만 아무도 그 말에 공감하지 못했다. 정말로 그 네 명의 멤버로 괴수를 공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임정의 정신세계가 궁금할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각 사람과 한 번씩 눈을 맞추고 임정이 먼저 늪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지우가 따랐고 그 후에는 태인과 강현의 순서로 들어갔다.
맵은 특별할 것 없는 초원이었다.
사체 처리를 하러 다니면서 흔하게 봤던 맵이어서 특별히 괴리감이 들지는 않았다. 그러고보니 사전답사를 위해 왔을 때는 맵이 어떻게 생겼는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그때는, 살아있는 괴수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에 눌려서 빨리 늪을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안에는 정보창이 보였다. 세 명의 하급 헌터는 헤매지 않고 정보창을 찾아서 괴수의 체력과 타이머를 확인했다.
12h(hour:시간)로 표기되었던 숫자가 그들이 보고 있는 동안 바로 11h:59m:58s로 바뀌었다. 이제야말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급 헌터들은 무기를 제대로 쥐어들었다. 정보창에 나타난 체력은 270만이었다. 270만짜리 체력을 가진 괴수를 만난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괴수는 제 영역에 들어온 레이더들을 향해 무거운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스컨데르예요. 어려운 상대는 아니예요. 내가 탱킹을 할 테니까 기회를 봐서 공격해줘요.”
임정은 그렇게 말하고 방패와 검을 들었다.
스컨데르라는 괴수는 기존에 지구상에 존재했던 생명체 중 어떤 것에 비유해서 설명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특이한 외관을 갖고 있었다. 네 발 짐승의 기본 골격에, 입은 새의 주둥이 모양이었고 발에는 갈퀴가 있었다.
“3미터 70센티 정도 되겠다.”
태인이 말했다.
오랫동안 서규태 써전이 사체를 절단하는 것을 옆에서 봐 온 덕에 모두들 그런 부분에 대한 이해는 빨랐다.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괴수보다는 덜 위협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젖은 상태로 몸에 달라붙어 있던 날개가 펴지는 것을 봤을 때는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날개를 펴면 5미터 40센티 정도 되겠지만 별 것 아니야.”
태인이 말했다.
스스로를 위로하려는 목적이 큰 말이었다.
“높이 날지는 못해요. 날개는 거의 퇴화됐어요.”
임정은 스컨데르를 유인하며 달렸다. 스컨데르는 박쥐같은 날개를 퍼덕이면서 임정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차크라를 사용해 달리는 임정의 속도는 스컨데르를 농락하기에 충분했다.
“틈이 보이면 공격해요. 각자 위치를 점해요!”
임정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세 명의 하급 헌터는, 처음에는 겁에 눌렸지만 점차 그 감정을 떨쳐냈다. 자기들이 조금이라도 거들지 않으면 아무리 B급 탱커라고 하더라도 임정이 혼자서 감당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에 저절로 발걸음이 옮겨졌다.
처음에 스컨데르를 공격한 사람은 태인이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바였지만, 실전 준비를 가장 오랫동안 해 왔던 사람이라 다르긴 달랐다. 하급 헌터들은 이리 저리 뛰어다니면서 피하기도 하고 공격을 하기도 하다가, 이 늪에 스컨데르가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스컨데르는 여러모로 열등한 괴수였다. 체력도, 크기도 작았고 움직임은 느렸다. 날개를 펼치고 날면 그 모습이 자뭇 위압적으로 보이기는 했지만 두 세 번 계속 보다보면 그런 느낌도 사라졌다. 그러다보니 모두의 머릿속에 임정이 떠올랐다. 순찰이라는 명목으로 늪들을 돌아다니면서 임정이 가장 쉬운 괴수를 찾아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스컨데르의 패턴이 완전히 하급 헌터들에게 파악되었다.
태인은 차크라를 실은 도끼로 스컨데르를 공격하고 정보창을 바라보았다가 임정에게 야단을 맞았다. 그도 그럴 것이, 도끼에 맞아 화가 난 스컨데르가 곧바로 날뛰며 태인에게 달려들려고 했던 것이다. 임정이 곧바로 어그로를 끌지 않았다면 태인이 어떻게 됐을지 장담하기가 어려웠다.
임정은 이태인이 미친 게 아닌가 생각했을 정도로 화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