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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체 운반 헌터
“아……. 네.”
도와주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임정이 말을 조금만 순화해서 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태인은 혼자서 얼마나 하는지 몰랐다.
“일단 자기 무기가 정해지면 다른 사람을 부러워 할 필요는 전혀 없는 거예요. 손도끼의 1인자가 되면 되죠. 말 나온 김에 손도끼로 5급 괴수를 레이드하는 걸 보여드릴까요?”
임정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모두들 반신반의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동영상 같은 걸 보여준다는 말인 건가 했다. 하지만 임정은 세 사람을 재촉해서 자신의 지바겐에 태우고 곧바로 5급 늪을 찾아갔다.
대형 쇼핑몰 주차장에 생겨난 늪이었는데 생긴지 이제 3주가 되어가고 있었다. 역시나 리드로 덮여 있었다.
“괴수가 서식하고 있는 늪에 들어가면 정보창이 보여요. 여러분은 아마 그걸 보지 못했을 거예요. 여러분이 들어간 늪은 공략이 끝난 상태였을 테니까요. 오늘은 저도 장비를 가져오지 않았으니까 정보창만 보고 나와야겠네요. 내일 다시 와서 공략을 해 보는 걸로 하죠.”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에 세 사람은 할 말을 잃었다.
“리드는요? 리드가 움직이면 헌터 협회에서 바로 알아차리잖아요.”
태인이 말했다.
“제가 미리 연락을 해 놓으면 되죠. 이 늪을 공략할 거라고요. 그러면 리드가 움직여도 누군가 리드를 훔쳐가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겠죠. 제가 치안대라는 걸 자꾸 잊으시는 것 같은데.”
“그런 용도로 리드를 움직여도 되는 거예요? 정보창을 보러 내려간다는 이유로?”
강현이 물었다.
“늪을 처리하는 건데 뭐가 문제죠? 늪은 많아요. 괴수도 많고요. 단지 효율적으로,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는 것부터 먼저 처리하게 하려고 헌터 협회가 오픈일에 가까운 것부터 먼저 배정을 해 주는 거고요.”
“제 말이 그 말이예요. 헌터 협회에서 지정해주지 않은 걸 허락도 없이 우리가 먼저 임의로 공략해도 되냐는 거죠.”
강현은 꽤 끈질기게 물었다. 대충 넘어갔다가 나중에 헌터 협회로부터 불이익을 받게 되지 않을지 살짝 걱정이 됐던 것이다.
“제가 말해서 안 되는 일은 거의 없어요. 그러겠다는데 뭘 어쩌겠어요? 일반적인 경우를 묻는 거라면 당연히 안 되는 거고요.”
하급 헌터들은 강적을 만났다는 듯이 임정을 바라보았다.
“자라나는 새싹한테 이런 것까지 말해주면 안 되는 거지만. 이유는 얼마든지 댈 수 있잖아요. 늪이 특이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거나.”
강현은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면서 존경을 가득 담아 임정을 바라보았다.
“우리 강현이가 그냥 새싹이기만 한 건 아니예요. 야동계의 본좌를 너무 무시하는 발언은 삼가 주세요.”
지우가 말하자 강현의 얼굴이 빨개졌다. 붉어진 제 얼굴이 명백히 증언을 하는 바람에 임정의 앞에서 변명을 하지도 못하고 있다가 강현은 갑자기 임정에게 물었다.
“저는 만 20세가 안 됐는데 그건 어떻게 될까요? 괜찮을까요?”
강현이 물었다.
“아. 그거. 전에 잠깐 생각을 하기는 했는데 바빠서 잊어버리고 있었네요. 강현씨가 정확히 몇 살이예요?”
임정이 강현에게 물었다.
“열 아홉 살요.”
“그러면 만18세로 바꾸면 되나? 한 번에 2년을 당기면 너무 급진적이라고 하려나? 만 18세 몇 개월이예요?”
“8개월요.”
“그럼 '만 18세 8개월 이하의 자는 레이드를 할 수 없다'고 개정하라고 할까? 그렇게 하면 법이 너무 지저분해지나? 좀 지저분해지면 어때.”
“그렇다고 저 때문에 법까지 막 바꿔요?”
“아! 그냥 특례조항을 하나 넣으면 되겠다.”
“누나. 헌터 협회에서 법 개정도 하는 거예요?”
‘누나?!’
지우와 태인이 동시에 강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강현은 꿋꿋했다. 임정이 가진 권력의 실체를 깨닫게 될수록 임정이 너무 친근하게 느껴졌다.
지우와 태인이 강현을 바라본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너무나도 임정을 누나라고 부르고 싶었다.
‘젠장. 나는 왜 한 것도 없이 나이만 먹어가지고!’
지우와 태인은 그런 생각을 비슷하게 하고 있었다.
“세부 시행규칙은 헌터 협회에서 정하죠. 긴급한 사안이면 협회장이랑 치안대장의 협의로 바로 통과가 되기도 하고.”
“그런데 치안대장 말이예요. 누나는 치안대장을 본 적 있어요?”
강현이 물었다.
“그럼 치안대원인데 당연히 보셨겠지.”
태인이 강현에게 머퉁이를 주었다.
“치안대원들도 치안대장을 못 봤다고 해서요.”
강현이 항변을 하자 임정이 웃으면서 강현의 편을 들어주었다.
“치안대장을 본 사람은 없어요. 선대 치안대장을 본 사람은 있겠지만 지금 치안대장은 얼굴이 밝혀지지 않았어요. 중요한 회의를 할 때도 치안대장은 화상 회의로 참여를 하고요. 그건 헌터 협회에서 정한 방침이예요. 치안대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 기관의 장인데 외부 세력의 타겟이 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치안대장이 누구라는 건 철저히 비밀이 지켜지고 있어요.”
“정말이예요?”
태인이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헌터 집단의 힘이 한 나라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시대잖아요. 치안대장의 신원이 밝혀진다면 다른 나라의 정보기관에서 치안대장을 암살하려고 특수요원들을 보낼 수도 있죠. 신원이 밝혀지기만 하면 방심하는 순간을 노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테니까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을 거고요.”
“굉장하네요. 그럼 누나는 화상 회의할 때 치안대장 얼굴을 본 적이 있는 거예요?”
강현이 묻자 지우가 웃으면서 강현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신원을 감추자는 건데 화상으로 얼굴을 보여주겠냐?”
“그러면 그 사람이 치안대장이라는 건 어떻게 알아요?”
“협회장의 인증요. 협회장만이 치안대장을 알아요. 그 사람이 치안대장이라는 걸 협회장이 인증해 주고 그 후에 모든 회의가 시작되죠.”
임정이 말했다.
“협회장은 치안대장만큼 중요하지 않아요?”
태인이 물었다.
“협회장이 죽거나 사고를 당하면 순차적으로 다음 순위의 권한 대행자가 빈 자리를 채우면 되니까 죽어도 상관은 없을 걸요?”
임정이 말했다.
“그럴 때는 죽어도 상관은 없을 거라는 말보다 다른 말로 표현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지우가 웃으며 말하자 임정이 지우를 바라보았다.
“내일이네요?”
“뭐가요?”
“경험치 1을 올릴 날요.”
“아? 그때 한 말 농담 아니었어요?”
“농담인줄 알았어요? 나는 태어나서 농담이라곤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그러고는 지우의 타투에 새겨진 경험치 자리에 1이라고 손가락으로 그렸다.
“스킨십을 너무 노골적으로 즐기시네.”
지우의 말에 임정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뭐라고 지우한테 그런 말을 들으면 그렇게 좋은지, 무슨 신종 불치병에 걸린 것 같았다.
“그럼 준비들 하시고. 들어가보죠.”
임정이 말하자 세 사람의 하급 헌터는 갑자기 긴장이 돼서 팔을 휘휘 돌리기도 하고 다리를 탁탁 털어내기도 하면서 몸을 풀었다.
“우리가 들어간다고 괴수가 바로 움직이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적이 없었다고 해서 그런 일이 생기지 말란 법은 없는 거니까 조심하세요. 제가 가장 먼저 들어갈 거예요. 장비는 없어도 세 분이 피할 시간은 만들어 드릴 수 있을 테니까 믿어도 돼요. 가서 정보창을 보는 거예요. 그러면 괴수의 체력이 나올 거예요. 타이머도 작동이 되겠지만 그건 우리한테 의미가 없어요. 오늘은 레이드를 하는 게 아니니까요.”
“내일 와서도 괴수를 완전히 공략하는 건 아니죠? 우리로는 어림도 없잖아요.”
태인이 말했다.
“하는데까지 해 본다고 생각해도 상관없어요. 우리 넷이서 공략할 수 있다고 생각해도 상관없고요. 괴수 체력은 내려가서 봐야 알겠지만 300만 정도라고 하면 못 할 것도 없지 않겠어요? 나같이 훌륭한 탱커를 두고서.”
임정은 자아도취도 아니고 그냥 객관적인 사실을 말하는 건데 그런 말은 남의 입을 통해서 나와야지 본인의 입에서 나오다보니 효과가 반감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너무 긴장할 것 없어요. 여러분들이랑 똑같은 F등급 딜러들도 레이드를 해요. 여러분은 차크라 등급이라도 올랐고 차크라 숙련도라도 높지만 그런 것도 없는 사람들도 레이드를 하니까 너무 기 죽을 것 없어요.”
마침내 임정의 독려에 힘을 받아 모두들 입장을 준비했다. 임정이 가장 먼저 늪 아래로 들어갔다. 이제 늪에 입장을 하는 걸로 겁을 먹는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괴수가 살아있는 늪에 처음 들어가는데 쉽게 긴장을 풀 수는 없었다. 세 명의 하급 헌터는 혹시나 자기들이 내는 숨소리에 괴수가 깰까봐 조심스러워서 잔뜩 조심했다.
임정은 세 사람이 내려오자 정보창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맵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을 했고 괴수를 발견하고 괴수에 대한 설명까지 하려고 했다. 그러나 강현이 임정의 손을 덥석 잡았다.
“누나. 그런 얘기는 올라가서 해도 되잖아요. 여기가 카페도 아니고.”
그리고 임정이 다른 의견을 내지 못하게 곧바로 임정을 데리고 늪 밖으로 끌고 나가버렸다. 임정은 세 명의 하급 헌터가 완전히 얼어있는 것을 보았다. 괴수한테 쫓겨서 몇 킬로미터를 도망쳐온 것 같은 모습들이었다.
“운이 정말 좋네요. 내가 지금껏 봐 왔던 것중에 가장 낮은 체력이예요. 체력이 몇인지는 봤죠?”
임정이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게 정보창이다 라고 해서 대충 고개만 그쪽으로 돌렸을 뿐, 대부분의 시간 동안 시선은 괴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저 아까 괴수하고 눈이 마주친 것 같아요. 괴수가 나를 봤다고요. 미칠 것 같아요. 아니, 그보다 전에. 토할 것 같아요. 괴수가 저를 기억하면 어떡하죠?”
태인이 말했다.
태인의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면서 다리 안쪽끼리 서로 맞닿았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누구나 다 그래요. 그런데 자기 타투에 경험치가 1로 올라가는 걸 보면 그때부터는 달라져요.”
임정이 태인에게 말했다. 확실히 동기부여가 되기는 했다. 다른 것에 대한 동기부여가 아니라, 무기가 필요하다는 것에 대한 동기부여였다. 다행히 다음 날은 쉬는 날이었고 세 사람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익스트림 헌터’에 가기로 뜻을 모았다.
***
결과를 먼저 말하자면.
그들은 ‘익스트림 헌터’에 가지 못했다.
갑자기 임정이 지우에게 전화를 걸어서, 필요한 무기들은 자기가 가져올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항상 만나던 피자 가게에서 만나자고 했다. 서규태 써전이 없는 동안에는 그 피자 가게에 갈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이제 임정이 하급 헌터들을 소집했다.
왜 이런 날에도 피자 가게에서 만나야 하는 거냐고 강현이 툴툴 거리면서 들어오자 임정이 몰랐냐는 표정을 지었다.
“이 피자 가게 사장님의 돌아가신 형님이 딜러였잖아요. 레이드를 하다가 부상을 당하셨는데 병원으로 옮겨진 후에 숨을 거두셨죠. 내가 알기로는 서규태 써전님이 다리를 다친 그 레이드였어요.”
임정의 말에 모두가 놀란 채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알고 있었냐고 서로에게 묻는 표정이었지만 임정을 제외하고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앞으로도 부지런히 와야되겠네. 그런 인연이 있는 줄도 모르고.”
태인이 말하자 다른 하급 헌터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이, 헌터의 유족이 운영하는 곳이라서 좋은 점은 꼭 식사를 하러 오는 게 아니어도 얼마든지 자리를 넓게 쓸 수 있다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