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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38화 (38/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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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체 운반 헌터

“2급 괴수를 공략하는 건 실패 확률이 높잖아요. 4, 5급 늪이었다면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요. 그리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매번 공대 구성에 신중을 기했어요. 지역도 겹치지 않게 했고. 사기 치는 것도 나름대로 힘들더라고요.”

써전은 절레절레 고개를 젓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나한테 왜 이런 얘기를 다 해 주는 겁니까?”

써전이 물었다.

“먼저 물어보셨잖아요.”

“만약에 안지우씨가 물었더라도 전부 다 대답해 줄 거였나요?”

“아뇨.”

“그러면 다시 물어야 겠네요. 왜 나한테 이런 얘기를 다 해 주는 겁니까?”

“……. 긴장감이 없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네요.”

“긴장감요? 어떤 긴장감요?”

“이 사람이랑 잘 되고 싶다는 긴장감요.”

“네? 하!”

써전은 완전히 방심하고 있다가 한 대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하니 있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한 가지만 더 물어도 되겠습니까? 기왕 이렇게 된 거. 나한테는 전부 다 사실대로 말을 해 주기로 마음을 정한 것 같아서 묻는 건데요. 안지우씨를 좋아합니까?”

“관심이 있죠.”

“호감?”

“확실히 호감을 갖고 있죠.”

“왜 그렇습니까? 안지우씨의 어떤 부분이 좋은 겁니까? 탱커님을 보면, 탱커님 주위에 어떤 사람들이 포진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사실 안지우씨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일 텐데 말입니다.”

“써전님은 사람이 왜 불행해진다고 생각하세요?”

“글쎄요? 잘못된 만남 때문에? 만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을 만나서?”

“저는.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결정을 제때 내리지 못한 것도 한 몫 하는 것 같은데 그것도 선택의 문제에 들어가는 것 같고. 그런데 제가 제 동료한테 공격을 당한 건 제 선택이 아니었어요. 저를 오랫동안 괴롭혔던 문제는 그게 아니었을까 싶더라고요.”

“…….”

아무래도 임정은 자신이 불시에 공격받아서 죽음에 이를 뻔 했던 그 순간의 트라우마를 쉽게 떨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써전은 안쓰러운 눈으로 임정을 바라보았다.

“안지우씨한테 제가 해 줄 수 있는 걸로 후원을 해 줄 수 있겠죠. 만약에 안지우씨가 제가 기대했던 사람이랑 다르다는 게 밝혀지더라도 안지우씨를 선택한 건 저니까, 그 결과는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임정의 말에 써전은 고개를 저었다.

“남녀간의 감정은 그렇게 딱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선택이니 결정이니 그런 말을 쓰면서 설명하고 이해하려고 해 봐야 다 헛짓거리예요. 내가 아닌 한 사람이 좋아지는 건. 그건 어느 정도는 운명이겠죠.”

“……. 도와주세요, 써전님.”

임정이 말했다.

“안지우씨랑 잘 되도록요?”

“네.”

“이런 얘기를 안지우씨한테 직접 해 보는 건 어떻겠어요?”

“안돼요. 그건.”

“왜요?”

“저는 보호본능을 자극하고 보호받는 것에 로망을 갖고 있단 말이예요. 저는 치안대의 B급 탱커예요. 어쭙잖게 갑질하는 사람들을 누르고 다니는 걸 소소한 재미로 여기는 사람이고요.”

“그런데 안지우씨가 탱커님의 실체를 제대로 알게 되면 안지우씨가 탱커님한테 의지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아니면 돈 많은 과부 정도로 여기거나?”

“정말 그럴까요?”

“저야 모르죠.”

써전은 임정이 희한한 걱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다른 이유도 있는데. 헌터 협회 사람들끼리 내기를 했거든요.”

임정은 지우가 연구소를 떠날 때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써전의 눈은 얘기를 듣는 동안 점점 커지더니 나중에는 믿을 수가 없다는 듯,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헉 소리만 냈다.

“그래서. 3년 안에 지우씨가 D급으로 올라가지 못하면 저는 개털이 돼요.”

“거짓말이잖아요. 러프 스톤만 60개 정도 갖고 있는 것 아니예요? 그것도 2급 괴수의 러프 스톤을.”

“팔 수가 없잖아요.”

“암시장이 있잖아요.”

“팔아주시게요?”

“그건 별로 내키지 않네요.”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지우씨가 빨리 D급이 돼야 되는 거예요. 그리고 저는 지우씨한테 너무 많은 게 기대돼요. 타투가 계속해서 지우씨의 뒷통수를 치지는 않겠죠. 뭔가 있을 거예요.”

“계속해서 뒷통수를 칠 수도 있겠죠.”

“왜요?”

“안지우씨의 행운은 좋은 사람을 만나는 데에 전부 다 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 말씀……. 정말 감동적이네요. 그렇게 따뜻한 말을 들어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어요. 감사해요, 써전님.”

“……. 왜요?”

“방금 저를 두고 말씀하신…….”

“아. 그렇게 생각하셨구나. 어느 정도는 뭐. 네. 탱커님을 만난 것도 행운이죠.”

“그럼 혹시……. 써전님을 만나서 운이 좋다는 얘길… 하셨던 거예요?”

“뭐, 이러나 저러나. 어쨌든 안지우씨가 운이 좋다는 건 확실하잖아요.”

써전은, 안지우의 곁에는 왜 이렇게 자기애가 충만한 사람들만 모여드는 건가 하고 생각했지만 곧바로 강현과 태인의 축 늘어진 어깨가 떠오르면서 그 생각이 싹 날아가버렸다.

“아, 저 말이예요. 당분간 어딘가에 좀 가 있으려고 해요.”

써전이 말했다.

“갑자기 왜요? 그리고 그 말씀을 왜 저한테 하세요?”

임정이 시큰둥하게 물었다.

“갑자기 다리가 나은 걸 설명할 방법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일단 제가 생각한 건 이래요. 괴수 장기를 이용해서 신약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 신약을 이용한 치료법을 개발한 나라에 가서 수술을 받아보려고 한다. 그러고 얼마동안 사라졌다가 돌아오는 거죠.”

“돌아왔을 때는 계속 아픈 척을 하실 필요도 없겠네요?”

“그렇죠. 그리고 아마. 레이드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때는.”

써전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말했다.

“써전님. 굉장하네요! 전설의 C급 딜러가 그 명성 그대로 돌아오는 거네요? 근데. 그러면 그때는 이 사체 운반팀도 해체되는 건가요?”

“가끔 심심풀이로 하는 건 상관없겠죠. 2급 괴수를 최단기간에 절단하고 운반하는 기록도 세워보고 싶고. 괴수 사체를 보면서 좋은 헌터들을 알아뒀다가 스카웃 할 수도 있고요.”

“단검을 쓰는 헌터를 뒤쫓는 일을 끝내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니고요?”

임정이 의미심장하게 써전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아. 그건 미처 생각을 못 하고 있었는데. 그게 진짜 이유였는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잘 됐네요. 정말 축하드려요, 써전님.”

“고맙습니다. 다시 레이드를 할 수 있게 됐다는 건, 나한테 인생이 다시 주어진 거나 마찬가지예요.”

써전은 그렇게 말을 해 놓고 쑥스럽다는 듯이 웃어버렸다.

“돌아오시면 바로 같이 손발을 맞출 수 있도록 제가 세 사람을 확실히 훈련시켜 놓을게요.”

임정이 의욕을 보이며 말했다.

“그런데 우리 팀이 같이 공격대에 들어가는 건 아무래도 어렵겠죠?”

써전이 말했다.

“안 될 게 뭐가 있는데요?”

“안 될 이유야 많죠. 강현씨는 나이가 안 되고 우리를 전부 써 줄 공대장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을 거고.”

“제가 탱커라는 걸 자주 잊으시는 것 같네요.”

“하지만 치안대잖아요.”

“치안대죠. 헌터 협회장의 주목을 받는 치안대원이고요. 리드에 덮여서 관리되고 있는 늪 한 두 개는 임의로 처리할 수 있다고요.”

“정말입니까?”

“어떤 부분이 이해가 안 돼서 물으시는지 모르겠는데요.”

“뭐가 그렇게 간단합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은 밤을 새우면서 끙끙거릴 문젠데.”

써전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일이 그렇게 간단히 풀릴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허탈해지기까지 했다.

***

써전은 엄청난 추진력을 드러냈다.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시킨 것이다.

수술을 받고 오겠다면서 떠날 때 써전이 얼마나 기대에 차 있었는지, 하급 헌터들은 오히려 긴장이 되었다. 저렇게 잔뜩 기대를 하고 가시는데 혹시라도 수술이 잘 안 되면 그때는 얼마나 실망하실까, 하는 생각에 밤잠을 제대로 못 이루는 날도 많았다.

써전이 갑자기 떠나버리자 상황이 급변했다. 지우는 자기가 그동안 팀에 속해 있어서 얼마나 편하게 살아왔는지를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매번 다른 장소로 나가서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서 일을 하는 것은 만만치가 않았다. 강현은 지우와 같이 일을 하고 싶어서 같은 팀에 동시에 지원을 하기도 했지만 같이 일을 하게 되는 경우는 자주 생기지 않았다.

세 사람은 하루종일 사체 운반을 하고 나서도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특히 이태인에 대한 임정의 집중 훈련이 시작됐다. 임정은 태인과의 약속대로 태인의 훈련을 봐 주었는데 30분쯤 태인을 관찰한 결과, 첫 레이드는 한 달쯤 뒤로 미루는 게 좋겠다고 진지하게 충고를 해 주었다.

“이러다가는 정말, 이태인씨 때문에 다른 레이더들이 다치는 일이 생길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동선은 파악을 하고 피해줘야 하는데 지금 이 상태로 투입되면 레이더들은 아홉명이 싸우는 거고, 괴수는 동료 한 명을 얻어서 싸우는 거랑 마찬가지가 될 거예요. 괴수의 동료는 말할 것도 없이 이태인씨고요.”

그 말에 반박할 말이 없어서 태인은 레이드를 취소했다. 공대장은, 받은 돈은 돌려줄 수 없다고 말하며 태인의 소식을 반겼다.

“안 되겠네요. 제대로 훈련하셔야겠어요. 지금까지 그냥 너무 대충들 한 것 같아요.”

임정의 말에 모두들 바짝 긴장을 했다. 이제부터는 실전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임정이 너무 호되게 몰아붙일 때는 치안대가 출동해야 할 일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픈일이 코 앞으로 다가온 늪중에 공략되지 않은 늪이 나타나서 임정이 슬슬 자기들한테서 관심을 떼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만큼 임정의 훈련은 강도가 셌다.

임정은 세 사람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피면서 어떤 훈련이 필요하겠는지 체크했다.

“가장 중요한 건 무기에 차크라를 흘려 넣는 연습을 하는 건데 그건 잘들 돼 있네요. 다른 헌터들은 그게 안 돼서 오랫동안 애를 먹는데 써전님이 그 부분은 효과적으로 훈련을 시켜 놓으신 것 같아요. 그리고 계속, 힘든 사체 운반 일을 해와서 모두들 근력도 상당해요. 지구력도 좋고. 손들을 보니까 칼자루를 아무리 휘둘러도 물집이 잡히지는 않을 것 같네요.”

손바닥에 박힌 굳은 살을 체크한다고 만져볼 때도 지우의 손을 만질 때 유독 사심이 담기는 것 같아서 지우는 웃음을 터뜨렸다.

“써전님이 사체 운반을 강조하신 게 무슨 의민지 알겠어요. 여러분은 여러분이 레이드도 못하고 사체 운반이나 한다고 생각하면서 제자리에 멈춰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겠지만 이미 한참 앞서나간 거나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괴수를 잡으려면 그보다 더 앞으로 나가야 하니까. 열심히 해 보자고요.”

세 사람은 하루 종일 사체 운반 일을 하고 쉬지도 못하고 바로 훈련을 하느라 몸이 고되었지만 열심히 훈련 과정을 따라갔다.

“무기를 미리 보는 게 자극이 될 수도 있으니까 ‘익스트림 헌터’에서 무기를 구경하는 것도 추천할만 해요. 자기한테 딱맞는 무기를 정하면 거기에 맞는 훈련을 할 수도 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그게 더 효율적일 수도 있어요. 특히 이태인씨한테는 손도끼를 추천해요.”

임정이 말하자 이태인의 얼굴이 활짝 폈다.

“저한테 재능이 있나요?”

“아뇨. 없어서 그런 건데요? 이태인씨가 신경 써서 움직일 수 있는,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곳이 오른쪽 팔뿐이라서 그쪽으로 특화시키자는 것 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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