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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체 운반 헌터
"어쨌거나 그렇게 해서 같이 간 동료들한테, 우리가 괴수를 공략할 수 없다고 믿게 했어요. 당장 탈출하지 않으면 괴수한테 죽을 거라는 생각을 갖게 하고 늪에서 퇴장하게 한 거예요.”
임정이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했다는 겁니까? 사람들이 그 말을 믿었다고요?”
“저는 탱커잖아요. 제가 무너지면 딜러들은 순식간에 전멸할 수도 있어요. 저는 저한테 재생 능력이 있다는 것도 말하지 않았어요. 딜러들 앞에서는 재생 능력을 쓰지 않았고요. 딜러들은 제가 다치거나 죽으면 그 싸움은 승산이 없다는 것을 이미 스스로 받아들이고 있었어요. 그런 딜러들한테 제가 다치는 걸 보게 하고 퇴장을 명령했죠.”
임정이 말을 하는 동안 써전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딜러들이 한 사람씩 늪을 빠져나가고 마지막 딜러까지 퇴장을 하면 저는 차크라로 제 몸을 회복시키고 괴수를 공격해서 괴수의 남은 체력을 떨어뜨렸어요.”
“믿을 수가 없네요.”
태어나서 그렇게 충격적인 얘기를 듣는 건 처음이었다. 기본 스텟이 10이라는 지우를 처음 만났을 때도 이만큼 놀랐었을까 싶었다.
“타이밍이 중요했죠. 제가 혼자서 끝낼 수 있을 정도로 괴수의 체력을 떨어뜨린 다음에, 딜러들이 가망 없다고 생각할만한 부상을 당해야 하는 거였거든요. 딜러들이 제 말을 믿고 다 빠져 나간다고 해도 괴수를 해치울 수 없으면 안 되는 거였어요. 아시다시피 저는 탱커라서 공격력은 그냥 하급 딜러 수준이잖아요. 타이밍. 그게 정말 중요했죠. 그리고 빠른 공격. 딜러들이 나가고 몇 십초만에 끝내야 되는 거였어요. 길어도 오 분 안에요.”
“만약에 탱커님이 빨리 나오지 않는 걸 걱정하고 딜러들이 다시 돌아오면요? 그러면 괴수의 체력이 리셋되는 거잖습니까. 퇴장했던 레이더가 재입장을 하거나 다른 레이더가 새로 입장하면 체력이 리셋되니까요. 그런 걱정은 안 하셨어요? 그러면 경험치도 날아가고 러프 스톤도……. 혹시 애초에 러프스톤이 목적이었나요? 러프 스톤을 혼자 챙기려고 그런 거였어요?”
정말 그런 거라면 그거야말로 악질적인 행동이었다고 생각하면서 써전이 물었다.
“사기 캐릭터라는 게 원래 그런 의미는 아니잖아요.”
써전이 말했다.
“그렇죠. 저는 사기 캐릭터가 아니예요.”
“아뇨. 맞는 것 같은데요.”
2급 늪의 러프 스톤이라면 50억이다. 40퍼센트의 세금을 뗀다고 해도 30억인 것이다. 임정에게서 얘기를 듣기 전에는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30억이라는 소득을 한 번에 올릴 수 있다면 탱커들이 그 점을 악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이해를 해 보려고 해도 의문점은 끝까지 남았다. 너무 큰 도박인 것이다. 만약에 먼저 나간 딜러가 임정을 걱정해서 다시 돌아오기라도 한다면. 그러면 괴수의 체력은 그 순간에 리셋되는 것이다. 그러면 세전 50억짜리인 러프 스톤도, 혼자 차지하려고 했던 경험치 600도 모두 날아가 버린다.
2급 늪의 괴수를 상대로 그때부터 다시 싸워 공략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레이더들이 입장한 순간부터 12시간이 경과하면 괴수의 체력이 리셋되는데 이미 한 번의 전투를 치른 사람들이 다시 공략에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건 무리다.
써전은 자신을 괴롭히는 의문들을 임정이 해결해 주기를 바라면서 물었다.
“저를 걱정해서, 저랑 같이 싸웠던 동료가 돌아올 게 걱정되지 않았냐고 물으시는 거라면. 그럴 경우에 제가 잃는 게 뭔데요? 경험치요? 러프 스톤요? 저한테 그게 정말로 중요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임정은 조용하고 차분한 소리로 되물었다.
“…….”
“저는 제가 실패하기를 바라면서 계속 그 일을 반복했던 것 같아요. 사실은. 어쩌면. 경험치를 올리는 게 목적이 아니라 실패하고 싶어서. 그게 목적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사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무서웠던 건 아닌지……. 나를 걱정하고 딜러들이 다시 돌아와주기를 바라면서, 그래서 괴수의 체력이 리셋되기를 바라면서.”
“그런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써전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물었다.
“네. 한 번도요.”
“러프 스톤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암시장을 통해서 매각할까 했는데 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처분도 못하고 그냥 가지고 있어요. 그렇다고 딜러들한테 줄 수도 없었고요. 실패한 레이드로 뭘 벌었다고 주는 건지 의심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본의 아니게 제가 챙겼어요.”
“전부요?”
“전부요.”
돈으로 바꿨다면 상상하기도 어려운 금액이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상상도 가능하고 계산도 나오는 금액이긴 하다. 2급 늪을 60번 공략했으니 50억짜리 러프 스톤 60개를 주웠을 것이다. 세전 3천억 어치의 러프 스톤 60개가 어딘가에 얌전히 들어가 있다는 말이었다.
써전은 벌어진 입을 한동안 다물지 못했다.
“늪은요? 괴수를 죽였으면 늪이 사라졌을 텐데. 늪이 사라진 걸 보고 의심하는 딜러들은 없던가요?”
“의심했다고 해도 제가 누군지 찾아낼 수 없었을 거예요. 그 때의 저는 아무 신분도 없는 상태였으니까요. 나중에 새 얼굴에 맞게 신분도 바꿀 거였고요. 그리고 그때 저는 얼굴에 붕대를 감고 항상 투구를 쓴 채 레이드를 뛰었거든요. 성형 수술 직후라서 그렇다고 하기는 했지만 회복 속도야 일반인에 비할 바가 아니었죠. 회복이야 수술 끝나고 바로 다 됐고. 헌터가 편한 건, 제 신분을 드러내지 않아도 헌터 타투로 신분이 보증된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한 일에는 허점이 많았어요. 그러면서 생각하는 건, 그때 나는 들키고 싶어서 그렇게 느슨하게 일처리를 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나를 멈춰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늪이 사라진 걸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써전은 태생적으로, 궁금증을 남긴 채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은 관심도 갖지 않는 괴수 부검을 하면서 단도로 괴수를 공격하는 헌터에게 집착하는 것이다. 임정도 그쯤 됐을 때는 써전의 성격을 어느 정도 이해했기에 자신의 비밀 주머니를 조금 더 열어 주었다.
“공략되지 않은 늪은 리드(lid)로 덮여 있잖아요. 다시 리드로 덮어 놓으면 그 아래에 늪이 있는지 없는지, 리드를 들춰보지 않는 이상 모르죠.”
임정의 말이 맞았다.
평상시의 늪은 드론에 의해 발견된 이후부터 리드에 덮여진 채로 관리된다.
늪은 무작위로 나타난다. 늪이 나타나는데 어떤 규칙이 존재하는지도 모르지만 현재까지 사람들에게는 ‘무작위’라고 여겨졌다. 늪은 도로의 한복판에 나타나기도 했고 광장에 나타나기도 했고 유치원 아이들이 현장 체험을 하려고 나온 고궁 주위에 나타나기도 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늪은 사람들의 통행에 지장을 주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헌터 협회에서는 늪을 덮을 수 있는 리드를 특수 개발해냈다. 리드는 늪으로 인해 움푹하게 패인 곳을 메우면서 그 위를 지나가는 사람이나 차량의 하중도 견딜 정도로 견고해야 했다. 초기에는 재질을 잘못 선정해서 리드가 부서지는 일들이 잦았지만 나중에는 괴수의 가죽으로 리드를 만드는 방법을 찾아냈다. 괴수의 가죽으로 만든 리드는 그 위로 몇 톤짜리 트럭이 지나가도 끄떡없이 버텨냈다.
한 가지 문제라면 리드가 괴수의 가죽으로 만들어졌다는 점 때문에 가격이 비싸다는 점이었고 리드를 팔아서 이득을 챙기려는 사람들에 의해 도난이 빈번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이었다. 리드를 훔친 사람은 즉결 심판에 넘겨져 20년형에 처해졌다. 리드에는 GPS가 부착되어 있고 애초에 감시 카메라의 사각지대라는 것을 찾아보기가 힘든 시대였기에 범인을 특정하는 것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감형도, 사면도 없었다. 시스템의 붕괴를 초래할 수도 있는 이기적인 행위에 법의 심판은 냉혹했다.
리드에 부착된 GPS는 헌터 협회에 지속적으로 늪에 관한 정보를 보내주었다. 헌터 협회는 그것을 통해 정보를 파악하면서 괴수가 튀어나오기 전에 헌터들을 보내서 괴수를 처리하는 것이다.
임정의 설명으로 하나의 의문이 풀리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의문이 생겼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속일 수는 있겠지만 헌터 협회라면 그걸 알았을 것 같은데요? 늪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헌터 협회가 모를 수가 없잖아요.”
써전이 물었다.
정말 이 사람의 궁금증은 끝이 없구나, 하고 생각을 하면서도 임정은 답을 해 주었다.
“그 말씀이 맞아요. 하지만 헌터 협회가 관리하는 늪의 정보를 바꿔놓기만 하면 간단하게 해결되는 일이기도 해요. ‘공략을 요함’으로 표시된 걸, ‘공략되었음’으로 바꾸고 관리를 끝내면 되는 거거든요.”
“아무나 시스템에 접근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네. 그래도 헌터 협회장한테는 어려운 일이 아니죠.”
“헌터 협회장요?”
임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써전은 자기가 너무 집요하게 물어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입을 다물었다. 설명하고 싶은 생각이 있으면 임정이 스스로 말을 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임정은 이 지루한 면담이 이제 드디어 끝나가나보다고 생각했기에 기대감을 가지고 입을 다물었다.
잠시 조용히 있는 동안, 써전의 머릿속에서 흩어져 있던 정보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써전은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뭔지 알 것 같네요. 임정이라는 신분은 새 얼굴에 맞춰서 새로 만든 신분이군요. 헌터 협회가 관여한 일인가요?”
임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사람이 알아서는 안 됐을 텐데.”
“네. 협회장만 알아요. 제가 린치를 당했을 때 치안대로부터 그 사건을 보고 받고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한 거죠. 협회장은 계산이 빠른 사람이예요. 제가 병원으로 옮겨진지 얼마 안 됐을 때 협회장이 찾아왔더라고요."
“늦은 감이 들긴 하네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걸 예상하고 탱커님을 미리 보호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써전이 말했다.
“협회장은 헌터 협회와 대한민국 정부가, 치유능력을 가진 우리나라 유일의 탱커를 잃을 수는 없다고 했어요.”
“탱커님한테 치안대로 들어오라고 제안한 사람도 협회장인가요?”
“치안대로 들어올 수도 있을 거라고 알려주더라고요. 들어오라고 말한 건 아니고. 들어오면 제 자신한테 도움이 될 거라고 했어요. 그 말이 맞을 거라는 건 알았죠. 그래서 들어간 거예요.”
“탱커님의 능력을 알고 있으니까 협회장이 먼저 뭔가를 제안했을 것 같은데요. 1급 늪이 언제까지 잠잠할지도 모르는 거고 언젠가 1급 늪에서도 괴수가 나온다면 그때는 탱커님이 꼭 필요할 테니까 말입니다.”
“한 가지를 얻어내긴 했죠. 제가 왜 그걸 요구한 건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잘못 말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써전은 임정이 그것에 대해서 말을 해 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임정은 거기에서 말을 멈췄다.
써전은 사망이 공표된 탱커의 이름을 떠올렸다. 서이진. 그 이름이 사촌 이름이랑 같아서, ‘이름이 같네.’라는 생각을 했던 게 기억났다. 써전은 언젠가 임정이 자신을 서이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소개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런데요. 그래도 나는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있는데. 정말 아무도 의심하지 않던가요? 나라면 의심할 것 같은데. 한 사람의 탱커가 2급 늪만 공략하고 반복적으로 부상당하고 반복적으로 공략에 실패하면.”
써전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