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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체 운반 헌터
회식 자리에서 임정이 홀연히 사라진 날 이후, 써전은 자신의 다리가 완전히 나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통증이 오지 않을까? 하고 귀기울이듯이 숨을 멈추고 기다려봐도 전혀, 완벽하게, 아무런 기미도 없었다. 오늘은 ‘아직’ 괜찮다 라는 상태가 아니라 이제는 그것이 자신을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써전은 제대로 감격을 누리지도 못했다. 자기가 기대할 수 있는 것보다 너무 큰 것을 얼결에 받아버려서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써전은 임정이 소문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정작 임정에게 치료를 받는 순간에는 아무 것도 자각하지 못했지만 자신의 몸에 나타난 변화를 알아챘을 때 써전은 모든 것을 한 번에 이해할 수가 있었다.
임정은 자신이 가진 재생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행사할 수 있는, 그러니까 치유 능력을 가진 탱커였다.
헌터 협회는 치유 능력을 가진 탱커의 사망을 공식적으로 발표했었다. 이제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에 치유 능력을 가진 탱커는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사라졌던 탱커가 자신의 능력을 숨긴 채 치안대로 돌아왔다.
믿기 어려운 수준의 탱킹 능력을 마냥 숨길 수는 없어서 ‘국내 최연소 공대장’, ‘국내 최연소 B급 탱커’, ‘국내 2급 늪에 대한 최단시간 공략 기록’ 등 여러 가지 타이틀은 여전히 보유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자기가 치유 능력을 가졌던 탱커라는 사실만큼은 철처히 비밀을 지키고 있었다.
그랬던 임정이 서규태를 고치는데 그 능력을 썼다. 써전은 다리를 다치기 전보다 오히려 더 건강해진 것 같다고 느꼈다. 써전은 자기 때문에 임정의 비밀이 탄로나게 될까봐 전전긍긍했다.
신경 써서 걷지 않으면 다리를 절고 그로 인해서 행동의 제약을 받으며 약병에 집착하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아무렇지 않게 걷는다면. 그리고 그 일이 임정과 어울리기 시작한 이후에 생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은 임정을 의심할 수도 있을 터였다.
써전은 그 일로 머릿속이 복잡해서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는데 그런 고민은 오로지 써전만의 몫인듯했다. 속도 모르고 깔깔거리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하급 헌터들을 보면 부러워 죽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써전은 임정이 그렇게까지 한 것이 지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지우를 보는 임정의 눈을 보면 알 수가 있었다. 임정은 써전과 그 일에 대한 얘기를 별로 하고 싶지 않았던 듯 열심히 써전을 피해 다녔지만 결국에는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써전이 아주 단호하게, 임정에게 설명을 요구했던 것이다.
‘당신이 치유능력을 가졌다가 사라진 그 탱컵니까?’ 라고 물은 것도 아니었다. 써전은 임정에게, 당신이 나한테 치유능력을 쓴 게 안지우 때문이냐고 물었다.
임정은 써전을 바라보았다. 묵비권을 행사하기로 한 것 같았지만 그것은 이미 어느 정도는 시인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
“지우씨도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써전이 묻자 임정은 고개를 저었다.
“끝까지 알리지 않을 생각이예요?”
써전이 다시 묻자 임정은 써전을 바라보았다.
“비밀을 지켜주실 거라고 믿을 게요.”
“비밀은 지킬 테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습니까?”
임정은 이미 큰 비밀을 들킨 판에 자잘한 것들을 숨길 이유가 없겠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 후의 이야기는 써전이 예상했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임정이 동료라고 생각하고 믿었던 탱커가 임정을 공격했다. 그와 같이 괴수를 공략하다가 레이드에서 부상을 당한 딜러가 자신의 동료에게 불평하는 소리를 우연히 들은 게 화근이었다. 부상당한 딜러는 자기가 부상을 당하고 고생하는 것이 자신의 공대장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책임을 돌렸다. 만약 자신의 공대장이 치유능력을 가진 탱커였다면 자기가 부상을 당해도 금방 치료받을 수 있었을 거라고 하면서 무능력한 탱커를 만나 자기가 고생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다.
다혈질적인 성격이었던 탱커가 임정을 찾아와 폭언을 쏟아냈고 임정도 그냥 당하지만은 않았다. 결국 그렇게 끝날 줄 알았지만 그 일은 불씨를 남긴 채 숨어 있었던 것 뿐이었다.
웬만하게 자기 방어를 할 수준이 되었던 임정이었지만 한 밤의 기습에 당해낼 재간은 없었다. 탱커가 동원한 딜러가 차크라를 두른 채 암기를 휘둘렀을 때 임정은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상황까지 밀렸다. 그때 치안대원 강동호가 심심풀이로 순찰을 돌지 않았다면 임정은 그 곳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재생 능력을 사용하는데는 차크라가 필요했고 자기가 가진 차크라를 전부 소모하고 나면 그것을 다시 채우는데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강동호가 도착했을 때, 임정이 가진 차크라는 거의 바닥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강동호는 임정의 생명의 은인이었다. 치안대가 나타나자 임정을 공격하던 탱커와 딜러는 같이 달아났다. 강동호는 임정을 병원으로 데려가 주었다. 애초에 임정에게 필요한 것은 병원이 아니었다. 차크라를 회복할 시간이 주어지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강동호는 재생능력을 갖지 못한 탱커였다. 그래서 자기가 알고 있는대로, 다쳤을 때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병원에 데려간 것이다.
치안대원이었던 강동호가 임정에 대해서 모를 리가 없었다. 임정이 왜 공격을 받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탱커들이 재생 능력에 치유 능력까지 지닌 임정을 부러워하고 시기해왔다는 것은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부러운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치유능력을 가진 탱커를 공격한 일은 멍청한 짓이었다. 그런 능력을 가진 탱커가 존재한다면 의료기술로 회복이 불가능한 부상을 당하더라도 임정에게 치료를 부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점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시기와 질투에 눈이 멀어서 임정을 죽이려고 했던 탱커의 행위에 강동호는 당연히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강동호의 도움으로 병원에 옮겨지기는 했지만 임정은 병원에 오래 있을 필요가 없었다. 새벽에 혼자서 병원을 떠난 임정은 차크라로 자신의 몸을 스스로 회복시켰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 자기가 동료에게 습격을 당해서 죽을 뻔 했다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임정은 사흘을 꼬박 방구석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었다. 그런 세상에 혼자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누가 친구인지, 누가 자신의 동료인지 알 수가 없었다. 동료라고 생각했던 사람의 배신으로 얻은 상처는 영영 회복이 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런 임정을 일어서게 한 것은 허기였다. 그 단순하고 원초적인 욕망이 임정을 일으켜 세웠다. 배가 고파서 견딜 수가 없어서 일어나 앉아 밥을 먹었고 물을 마셨고, 밥만 먹다보니 심심해서 TV를 켰다.
TV에서는 에니메이션이 방영되고 있었는데 집중해서 보다가 저도 모르게 어느 시점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아직 살아있고, 웃고 있다는 것이 서러워서 울었다. 아마 그때 울었던 것이 임정이 기습을 당한 이후에 나타냈던 모든 반응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솔직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살자. 일단은 살아보자. 여기에서 포기했다가 내가 놓치게 되는 행복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만날 수 있는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고 내가 웃을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놓치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일단은 그런 이유들을 조각조각 가져다 붙이고 살아볼 이유를 억지로 만들었다.
그 후에 한 일은 얼굴을 바꾸는 일이었다. 기왕 고치는 건데 일부러 이상하게 만들 필요는 없겠다 싶어서 예쁘게 뜯어 고쳤다고 임정이 담담하게 말하자 그 부분에서 써전이 웃었다.
“잘 결정했네요. 그냥 세상이 싫다고 세상에 폭탄을 던지는 마음으로 대충 주물주물 만들어 버렸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써전이 말했다.
그런 생각은 미처 못했지만 그것도 나쁜 생각은 아니었겠다는 듯이 임정은 잠시 써전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사실. 전이 더 예쁘긴 했어요. 본판이 워낙 예뻤거든요.”
임정이 얼마나 진지하게 말을 했는지, 써전은 그게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치안대로 갈 생각을 한 건, 치안대원이라면 제 신분을 감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였어요. 우연히라도 누군가 제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되기를 바라지 않았거든요.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위로 올라가야 할 것 같았어요.”
임정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비밀이 써전의 앞에서 댐 무너지듯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강동호 치안대원은 탱커님을 알아보지 못하던가요?”
써전이 물었다.
“타투 때문에 의심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헌터들은 대개 타투로 서로를 인식하잖아요. 타투에 나타난 수치로 B등급 탱커, 차크라 숙련도 몇 퍼센트의. 그런 식으로. 그래서 치안대에 가기 전에 경험치를 올리는데 주력했죠. 도저히 그렇게 짧은 기간 안에 올릴 수 있는 수치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올려야 됐어요.”
“…….”
“두 달 동안 올린 경험치가 36000이었어요. 믿어지세요?”
“그걸 어떻게 믿겠습니까? 사실이 아니잖아요. 가능한 일이 아니예요.”
써전이 말했다.
화를 낼 생각은 아니었지만 화가 나려고 했다. 이 사람이 자기를 무시하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뻔히 불가능한 사실을 가지고 대놓고 거짓말을 하려고 드는데 기분이 좋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임정은 당황하지 않았다. 실제로 자기가 이룬 일이었고 얼마든지 설명이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임정은 침착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2급 늪의 경험치는 600이잖아요. 강현씨가 얘기한대로 다른 사람이 퇴장한 후에 늪에 혼자 남아서 괴수를 해치우고 퇴장하면 마지막에 남아있던 그 사람이 경험치를 전부 갖고요. 써전님도 아실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그 많은 경험치를 양보했다는 말입니까?”
써전은 여전히 의혹이 가시지 않은 눈으로 물었다.
“자발적으로 양보한 건 아니죠. 저한테는 지우씨 같은 인복이 없는지 저를 위해서 경험치를 주겠다는 사람은 만나지 못했거든요. 혹시 있었을지도 모르죠. 물어보지 않아서 모르는 건지도 모르고. 하지만 물어봤더라도 아마 경험치를 주겠다는 사람은. 없었겠죠? 제정신인 사람 중에.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자기 경험치를 주겠다고, 아!”
임정은 그렇게 말을 했다가 황급히 두 손을 저으면서 말을 수정했다.
“아, 제 말씀은, 그러니까 제가, 써전님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건 아니예요.”
써전은 임정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면 그게 어떻게 가능했다는 겁니까? 자발적으로 양보한 게 아니라면요. 경험치를 다른 방법으로 얻는 방법도 있습니까?”
써전이 임정을 재촉하며 물었다.
“사기를 좀 쳤죠. 사기를 쳐서. 경험치를 뺏은 거나 마찬가지예요.”
“어떻게요?”
추궁하는 어조가 아니었다. 궁금해서 어서 그 다음 말을 듣고 싶은 거였다.
“공대를 꾸렸죠. 2급 늪의 괴수니까 안전하게 D급, E급 딜러를 모았고요. 공격 증폭률 200% 이상의 무기를 갖춘 딜러로요. 그렇게 해서 팀이 꾸려지는데 몇 시간도 안 걸렸어요. 거의 매일 레이드를 한 것 같아요."
임정은 묵묵히 말을 이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