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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체 운반 헌터
“같은 무기를 쓰는 딜러는 많으니까요. 딜러들의 대부분이 '익스트림 헌터'에서 무기를 살 거고요."
임 정은 약간 회의적으로 말했다.
“네. 같은 무기를 쓰는 딜러는 많죠. 하지만 차크라의 양, 분출되는 차크라의 섬세한 정도, 칼을 넣는 깊이와 각도까지 같은 사람은 드물겠죠.”
써전이 말했다.
“아, 써전님이 하신 말씀에 이의를 제기하려고 한 건 아니예요.”
임 정이 당혹스러운 듯이 말하자 써전도 웃음을 지었다.
“그러려고 한 게 아니라는 건 잘 압니다. 다만 저는 탱커님이 여기까지 와 주셨으니까 이걸 보고 무기를 같이 추측해 주셨으면 하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임 정은 써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써전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스마트폰의 사진으로는 제대로 나오지 않았던 상처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사진으로 봤던 것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사진에서 본 거랑은 다른 것 같은데요?”
임 정이 조심스럽게 말을 하자 써전도 인정을 했다.
“아. 이건 좀 다른 것 같군요. 내가 착각한 것 같아요.”
써전이 말하면서 하급 헌터들의 의견을 구했다. 하급 헌터들은 괴수에게 다가가서 상처에 손가락을 집어 넣고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같은 무기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칼 폭이 이게 좀 더 넓어요. 칼 길이도 좀 더 긴 것 같고요.”
지우가 말하자 써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네요. 탱커님이 오셨을 때 보여드리고 싶어서 내가 조급하게 굴었나 봅니다.”
“언제든 불러주세요. 웬만하면 올 수 있거든요. 늪이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괴수가 먼저 튀어나오는 것도 아니니까 일정은 조정할 수가 있어요.”
임 정의 말에 써전은 다행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써전님이 괴수 부검까지 하시는 줄은 몰랐어요. 재미있네요.”
“그냥 심심풀이죠.”
임 정은 누구와도 잘 어울렸다. 지우가 연구소에서 봤을 때와는 완전히 딴 판이었다. 연구소에서의 임 정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임 정에게 다가가고 임정과 얘기를 하고 싶어했지만 임 정은 필요한 선에서 사람들을 끊어내기에 바빴던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의 임 정은 오랜만에 외가에 가서 친한 친척들이랑 허물없이 어울리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지우가 따로 낄 필요도 없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탱커님. 탱커님한테도 재생능력이 있습니까?”
써전이 물었다.
임 정은 흠칫 놀라는 것 같더니 그 말을 못 들은 척 하고 싶은 것처럼 잠깐 머뭇거렸다.
“사체를 절단하면서 보니까 탱킹이 굉장히 대담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탱커님이 재생능력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아까도 보셨겠지만 제 추측은 자주 빗나가죠.”
써전이 웃으며 말하자 임 정은 자신의 능력이 별 것 아니라는 듯이, 그냥 아주 미미한 정도로만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후로 임 정은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바디 팩을 날랐고 하급 헌터들은 임 정이 바디 팩을 나르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임 정이 가만히 서서 놀고 있는 것을 보면 바디 팩을 손수 안겨주기까지 했다. 탱커님은 사체 운반 일을 얼마 정도 했었냐고 강현이 묻자 임 정은 기억을 해 보려고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잘 기억이 안 나네요. 아마 일 이 주도 안 됐을 걸요? 나는 차크라 숙련도가 빨리 오르고 차크라 등급도 빨리 올라서 아마 바로 공대에 들어갔던 것 같아요. 공대에 들어가려고 공대장들한테 얼굴 도장을 찍어가면서 인사를 하고 다니고, 그러면서 내가 차크라를 잘 다룬다는 걸 인식시키려고 노력했죠. 처음 경험이 중요한 거고, 레이드 1회, 레이드 2회, 그런 식으로 경력이 생기고 타투에 경험치가 기록되니까 나중에는 사람들도 인정해 줬고요. 뭐든지 처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탱커는 처음에는 오히려 자리 구하기가 힘들 것 같은데 안 그랬어요? 공격력은 겨우 50이었던 거잖아요.”
태인이 물었다.
“그렇긴 해도. 그러게요. 그렇게 물으니까 저도 잘 모르겠네요. 사람들이 뭘 보고 저한테 기회를 줬는지 말이예요. 아. 무기는 처음부터 엄청 빵빵한 걸 가지고 시작했어요.”
웃으면서 얘길 하다 보니 써전의 움직임이 뭔가 부자연스럽다는 것이 느껴졌다. 지우는 써전을 바라보았고 써전이 왠지 자꾸 주춤거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무슨 일인가 하면서도 별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금 후에 써전의 부자연스러운 몸짓이 반복되었다. 지우가 태인을 바라보자 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필 그때 반갑지 않은 통증이 써전을 찾아온 것 같았다.
써전은 임 정의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게 분명해 보였다. 그래서 다른 하급 헌터들도 애써 모르는 척, 자신들의 일에만 열중했다.
써전이 뭔가에 맞기라도 한 것처럼 급작스럽게 바닥에 쓰러진 것은 운반 작업이 한창 진행되던 때였다. 써전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있었다. 써전은 당혹스러워하면서 약병을 꺼냈다.
상황을 알아챈 태인이 재빨리 물병을 가져다 주자 써전은 알약을 하나 꺼내서 입안에 털어넣었다. 하지만 통증이 쉽게 그를 놔주지 않는 것 같았다. 써전은 알약을 하나 더 꺼내서 입 안에 넣고 태인의 팔을 밀었다.
“이제 괜찮아질 테니까 가 보세요.”
써전의 숨소리가 눈에 띄게 거칠어져서 하급 헌터들은 그 자리에 못 박은 듯이 서서 써전이 괜찮아지기를 기다렸다.
“괜찮아질 겁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써전은 자기 때문에 시간이 지연되는 것이 싫었다. 써전의 마음을 알고 모두가 움직였다. 다행히, 바디 팩을 하나씩 날라놓고 늪으로 돌아왔을 때 써전은 다시 평정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자신의 부상과 통증에 대해서 농담을 하면서 웃을 정도로 괜찮아 보였다.
태인은 자기가 곧 레이드를 하게 된다는 얘기를 임 정에게 해 주었다. 임 정은 축하한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눈을 빛냈다.
“그러면 이 팀에 자리가 하나 남게 되네요? 제가 여기로 들어올까요?”
임 정이 하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서 다른 사람들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디 치안대원이 할 일이 없어서 사체 운반을 한단 말인가.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모욕감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였다.
“그럼 저희 팀은 어떻게 돼요? 태인이 형이 레이드를 하러 떠나면 다른 사람을 새로 구하실 거예요, 써전님?”
지우는 마침 말이 나온 김에 그 문제를 짚고 넘어가고 싶어서 물었다.
“태인씨를 대신할 사람은 그때 그때 구해서 쓰죠, 뭐.”
써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고정해서 팀으로 구성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내 생각에는 이태인씨가 곧 다시 돌아올 것 같아서요.”
써전이 하는 말이 장난인지 진담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워서 지우는 써전과 태인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사실 나도 그럴 것 같긴 해. 경험치를 쌓아보려고 내가 공대장한테 계속 돈을 쓰기는 했거든. 그렇게 해서 원딜 자리가 하나 난 거긴 한데 아마 거기에서도 돈은 못 받고 계속 공대장한테 뺏기게 될 것 같고. 내 실력으로 들어간 게 아닌데 그렇게 경험치를 모아서 승급을 하는 게 과연 나한테 의미가 있을지 그런 걱정도 들고.”
태인이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경험치를 그렇게 쌓아가다 보면 승급도 할 거고 공격력도 높아질 거고.”
지우는 태인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태인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전투 센스도 없고 차크라 숙련도도 낮고. 애초에 헌터로서 자질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레이드는 지우씨가 뛰어야 되는 건데.”
태인이 말했다.
“제가 이 스텟으로 어느 세월에 하겠어요.”
지우는 제 타투를 보면서 말했다.
차크라 숙련도는 부지런히 변하고 있는데 공격력과 방어력은 부동의 10이었다.
“저요. 써전님한테 여쭤보고 싶은 게 있었어요. 저번에 바디 펌 패널티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잠깐 하셨잖아요. 경험치 50을 차감시키고 승급을 강제로 유예시킨다는 말씀요.”
강현이 말했다.
“그랬죠.”
써전이 생각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드가 끝나기 직전에 퇴장을 시키면 그 사람은 경험치 분배를 못 받는다는 거죠?”
“그렇죠. 레이더가 교체 되면 괴수의 체력이 리셋되죠. 하지만 레이더가 퇴장하는 건 상관이 없어요. 그럴 때는 괴수의 체력이 리셋되지 않죠. 그 사람을 대신해서 다른 사람이 들어가지만 않으면. 새로운 레이더가 다시 들어가는 순간 괴수의 체력이 리셋되는 거니까요.”
“그러면요. 써전님. 그런 방식이라면. 우리가 지우 형한테 경험치를 몰아줄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강현이 물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강현을 바라보았다.
“그렇잖아요. 현실적으로 가능하긴 한 얘기잖아요. 5급 늪을 공략하면 경험치 10이 주어지잖아요. 열 명이 레이드를 하면 각 사람이 1씩 분배를 받고요. 그런데 열 사람이 레이드를 하다가 괴수 체력이 2천 정도 남았을 때 지우 형만 빼고 다 나오는 거예요. 그리고 지우 형이 괴수 공략을 끝내면 형이 경험치를 혼자 가질 수 있을 거예요. 솔직히 지우 형한테 그런 건 문제도 안 되는 거고요.”
강현이 열변을 토했다.
“나는 공격력이 10이야.”
“아, 그럼 괴수를 좀 더 때려주고 나와야 되겠구나.”
지우는 강현의 말을 들으면서도 전혀 현실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자기들 경험치를 채우기도 바쁜 판국에 누가 그런 짓을 하겠는가. 부지런히 자신들의 경험치를 쌓고 등급을 올려야 할 판에 남의 경험치를 쌓아주겠다니.
“말도 안 돼. 누가 그러겠어?”
지우가 말했다.
“저요.”
강현이 말했다.
“미친 거구나?”
지우는 별 것 아닌 듯이 받아치려고 했다.
“저기. 나도.”
태인이 자신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나도 하고 싶어. 뭐, 지금으로서는 내 코가 석자지만. 레이드 경험도 없는 F급 딜러에 차크라 등급이랑 차크라 숙련도는 내가 더 낮으니까 믿음이 안 가기는 하겠지. 그래도 어쨌거나 마음은 그렇다고. 할 수 있으면 나도 그렇게 해 주고 싶어. 내가 능력이 된다면.”
“왜요? 대체 왜요?”
지우는 얼떨떨해져서 물었다.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는 일이었다. 지우와 강현, 태인이 공격대에 들어서 레이드를 하고 강현과 태인이 막판에 나온다면 그들에게 돌아갈 아까운 경험치가 남은 여덟 명에게 고르게 분배될 뿐이었다.
왜 그런 짓을 한다는 건가. 희생하는 사람은 많은 것을 포기 하는데 정작 받는 사람에게는 그게 온전히 전달되지도 못하는데.
지우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려고 했다. 그러나 써전의 말이 조금 더 빨리 나왔다.
“내가 다리를 다치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솔직히, 안지우씨를 만나고 수도 없이 했습니다. 내가 아직 레이드를 할 수 있다면 나도 내 경험치를 안지우씨한테 주고 싶네요. 그렇다고 레이드를 할 수는 없고. 그냥 내 마음이 그렇다는 것만 알아주고 마음만 받아요.”
써전이 씨익 웃었다. 지우는 갑자기 울컥해졌다. 눈 앞의 풍경이 일시에 부웅 뜨듯이 부풀어 올랐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 방울이 툼벙툼벙 떨어졌다.
지우는 억지로 웃음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진짜 희한하신 분들이네. 되지도 않을 말씀들을 하시면서 왜 사람을 울리세요? 왜 아무 것도 안 주시고 빚진 마음이 들게 만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