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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체 운반 헌터
지우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생각에 잠겼다. 써전의 말을 듣고 좋아해야 하는 건지 나빠해야 하는 건지도 알 수가 없었다. 써전이 자기를 놀리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생각을 해 보면 지우도 알 수 있었다. 이상한 것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일이 너무 연거푸 일어나고 그 후에 또다른 일이 너무 빨리 일어나버려서 지우는 자기한테 일어난 일들의 의미를 되새겨볼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것들은 정말 이상했다.
거실에 늪이 생긴 것도 그렇고, 늪이 생기기 전부터 그 자리에서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어지러워하고 쓰러질 뻔 했던 것도 그랬다. 팔에 헌터 타투가 생긴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임 정의 도움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차크라를 그렇게 빨리 끌어낼 수 있었던 것도 이상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강현은 지우가 봤을 때도 재능이 있는 헌터였다. 아직 만 20세가 되지 못해서 레이드를 하지 못하는 것 뿐이지 강현이 레이드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지우는 강현이 영리한 레이드를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강현이 차크라 운용과 레이드에 남다른 센스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지우가 알게 된 것은 순전히 태인 때문이었다. 태인은 본의 아니게 남의 재능을 빛내주는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태인을 보다가 강현을 보면, 아, 저런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거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곤 했다. 그런데 그런 강현조차도 지우보다는 뭔가가 많이 부족했다. 강현은 절대로 근성이 없는 녀석이 아니었다. 할 수만 있다면 강현은 죽을 각오를 하고 지우를 따라 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매번 강현은 어느 지점에서 포기를 했다. 그것은 강현의 의지 문제가 아니었다.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서 내리는 결정이었다.
지우의 머릿속에서 폭풍이 이는 동안 써전은 지우를 바라보았다. 지우가 낙심하기를 바라고 한 말이 아니었다. 써전은 걱정하고 있었다. 지우가 이대로 레이더가 되었다가는 예상치 못한 공격을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들어서 한 말이었다.
“떠도는 얘기가 있었어요. 내가 아직 현역으로 있었을 때. 탱커 중에, 자기가 가진 재생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적용시키는 능력을 가진 탱커가 있다는 말이 돌았죠."
"재생 능력요?"
"탱커 중에는 재생 능력을 가진 탱커가 있어요. 모든 탱커한테 재생 능력이 있는 건 아니예요. 그건 일부한테만 나타나는 능력이거든요. 재생 능력을 가진 탱커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죠. 그런데 자기가 가진 재생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거예요."
"그건 정말 굉장한 거네요?"
"그럴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사람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면 그건 경외가 아니라 기피의 대상이 돼 버려요. 부정하고 배척하게 되는 거죠."
써전의 말을 들으면서 지우는 소문의 당사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지 궁금해졌다.
"그게 그냥 단순한 소문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그런 얘기가 돌면서 분위기가 좀 이상해졌었어요. 내 삶의 수준은 전혀 변한 게 없는데 갑자기 만족도가 떨어진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내가 다리를 다치게 된 그 레이드에서 만약에 우리 공대장이 그런 능력을 가진 탱커였다면 나는 지금 이런 모습으로 있지 않아도 되는 거겠죠. 소문으로 듣던 그런 탱커가 정말로 존재하고 그런 공대장이 있다면 나도 실력을 키워서 그 공대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렇겠죠.”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까 내가 열등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내가 제대로 했으면, 내가 진짜 실력을 갖췄으면 그런 공대로 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 때문에 불만족 상황이 자꾸 쌓여갔고.”
“그런 탱커가 정말 있었나요?”
“몰라요. 정말로 있었는지는. 그런데 공식적으로 사라졌죠. 있었는지는 불분명한데 사라진 건 분명해진 거예요.”
“사라졌다는 게 무슨 말씀이예요?”
“레이드 도중에 사망했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일반 뉴스에 나온 건 아니고 헌터 협회 홈페이지에 그 사실이 공지로 떴었죠.”
“이상하네요. 헌터 협회에서 갑자기 그런 얘기를 공지로 띄운다는 게.”
“헌터 협회에서 레이더들의 분위기를 감지한 건지도 모르고.”
“써전님은 다르게 생각하세요?”
“나는, 그게 사실이라면 그 탱커는 괴수가 아니라 다른 헌터에 의해서 살해됐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클 거라고 생각했어요. 재생 능력을 가진 탱커였단 말입니다. 그런 탱커가 죽는 게 쉬웠을까요? 괴수한테 맞아도 재생능력을 쓰면 되는 건데.”
“차크라가 부족했던 건 아닐까요?”
“늪에 입장을 하면 괴수의 체력이 정보창에 뜨잖아요. 혼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요. 그걸 보고 예측이 가능했을 거고 어떤 레이드를 하겠다는 판단이 섰을 겁니다.”
“웬만해서는 레이드에서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신 거군요.”
“게다가 그 탱커는 B급이었으니까요.”
“…….”
“안지우씨. 나는. 그냥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만약에 그 탱커가 그런 특별한 능력을 지니지 않았다거나, 자기가 가진 능력을 잘 숨길 수만 있었다면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직접 겪은 일은 아니지만 그게 나한테 트라우마로 남았는지, 나는 그 후로 재능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두려움이 앞서더라고요. 그 사람이 그냥 사라질까봐서요.”
“솔직히 써전님. 죄송하지만 지금 저한테는, 써전님이 저한테 장난을 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차크라를 유지하는 시간이 다른 사람보다 긴 것 같긴 해요. 그렇지만 제가 그걸로 뭘 할 수가 있겠어요?”
써전은 조용히 지우를 바라보았다. 답은 이미 당신도 알고 있다고 말하려는 눈빛이었다. 지우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꼭 남들이 그걸 알아줘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안 그런가요?”
써전이 지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말했다.
“그런 건 아니예요. 그냥 좀 당황스럽네요. 몇 년 동안 계속 저 스스로 제가 바보같다고 느껴왔는데 지금 막, 네가 천재라는 걸 으스대고 다니지 말라는 충고를 들은 것 같아서요.”
지우의 말에 써전이 웃음을 지었다.
“잘 생각해보도록 해요. 안지우씨는 현명한 사람이니까 방법을 찾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쉬어야 할 텐데 내가 시간을 너무 많이 뺏었네요."
"당치 않은 말씀이세요. 써전님한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실 거예요."
"그럼 주말에 잘 쉬고 월요일에 또 보도록 합시다.”
그렇게 말하면서 써전이 먼저 일어섰다. 지우도 따라 일어서는데 문자 알림음이 들렸다. 바디 펌으로부터 돈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56만원이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0이 하나가 더 붙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히 보자 정말로 560만원이었다.
“써전님. 바디 펌에서 돈이 들어왔는데요.”
지우가 놀란 얼굴로 말하자 써전이 고개를 끄덕였다.
“획기적인 사건이었죠. 거대 아나콘다 괴수 다리 껍질이 그렇게 비싼 값에 팔려나간 건 유례가 없는 일이었어요. 다리 하나가 말이예요. 세 개를 망친 게 너무 아깝더라고요. 안지우씨는 당연히 받을 돈을 받은 겁니다. 비율 정산을 해서 그만큼이 책정된 거예요.”
“예? 그게 벌써 팔렸다고요?”
“바디 펌에서도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겠죠. 그런 경우에는 시장에 공개적으로 선을 보이기 전에 VVIP들에게 먼저 사진을 보내고 경매를 유도해요. 바디 펌에서 최고가를 먼저 제시했는데 그걸 문 사람이 나타난 거예요.”
바디 펌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죽을 때까지 그 세계의 일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써전을 위해서 택시를 잡아주다가 갑자기 지우가 물었다.
“써전님. 혹시 써전님이 말씀하신 탱커가 여자는 아니죠?”
“여자라고 했어요. 나이도 꽤 어렸고. 그래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컸죠. 사람들은 말로만 들었던 탱커가 정말로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었고 몇 사람은 끝까지 의심했죠. 그런 탱커는 없었을 거라고 하면서요. 그냥 헌터 협회가 지어낸 말이라고 생각한 거죠.”
“헌터 협회가 왜요?”
“우리나라에는 A급 헌터도 없고 헌터 대국으로 부상하려고 엄청나게 노력을 하는데도 이슈가 될만한 게 없었으니까요.”
“…….”
지우는 왜 자기 머릿속에 자꾸 임정이 떠오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
주말의 단잠을 깨운 것은 전화벨 소리였다. 하긴 헌터 협회에서 마련해준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고 있는데 사람 목소리를 들으면서 일어날 일은 없었다.
지우는 눈을 뜨지도 않은 채 주변을 더듬어서 스마트폰을 끌어다가 귀 위에 올리고 죽어가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아아. 지우지? 맞지?”
대뜸 그런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들어본 목소리인 것 같기는 한데 누군지 얼른 기억이 나질 않았다.
“여보세요?”
지우가 다시 부르자 상대는 이제 살았다는 듯이 밝은 목소리로 지우를 불렀다.
“지우야. 형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하긴. 시간상으로는 그렇게 오래 지난 게 아니니까 너는 형을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거거든.”
“누구신데요?”
“형이야. 편의점에서 같이 일했잖아.”
편의점에서 같이 일했던 성민이었다.
“아아아. 형! 별 일 없으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고요?”
지우는 벌떡 일어날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그래도 꽤 반가워서 인사를 건넸다.
“응. 잘 지내고 있는데. 지우야. 혹시 오늘 바쁘냐?”
“오늘요? 아뇨. 쉬는데요. 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
“이런 걸 부탁하는 게 미안하긴 한데. 혹시 오늘 네 시간만 봐 줄 수 있을까?”
“편의점요?”
“응. 아무래도 헌터한테 이런 부탁을 하는 건 좀 그렇지?”
“아니예요. 상관없을 것 같아요. 제가 형한테 꾸고 못 갚은 게 두 시간 있잖아요.”
“아, 그랬나? 그것 때문에 그런 건 아니고. 급한 일이 있는데 사장님한테 말 안 하고 갔다 오고 싶어서. 요새 한 놈이 꾸준히 편의점에 들락거리면서 여기 알바 자리를 탐내고 있거든. 이 근처에 산대. 그러면서 24시간 대기할 수 있다면서 사장님한테 자꾸 어필을 하는 거야. 그러는 판에 내가 빵구를 내봐라. 그러면 사장님은 그 놈을 써 보려고 하시겠지? 그랬다가 그 놈이 일을 잘 해 봐라. 그러면 내가 아주 짤릴 수도 있다고. 그 놈이 확 치고 들어와버리면 어떻게 해? 그런데 갑자기 지우 네가 생각난 거지. 지우 너라면 내 자리를 욕심내지도 않을 거고.”
듣고 보니 엄청나게 설득력이 있었다.
“형. 거기가 꿀이긴 해요. 폐기도 잘 나오고 딱 몇 타임만 몰아서 바쁘고 다른 시간은 한가해서 일하기 괜찮거든요. 사장님도 빡빡하지 않고.”
“나도 알지. 그래서 부탁하는 거야.”
“그럴게요. 그럼 준비하고 나갈게요.”
“너는 진짜 대단하다. 나는 내가 헌터가 됐는데 내가 알던 놈이 갑자기 전화해서 이런 부탁 하면 상대도 안 해 줄 것 같은데. 전화 잘못 걸었다고 하고.”
지우는 그 말을 들으면서 웃었다. 간만에 나가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써전에게서 들은 얘기도 있고 간밤에 오재헌의 꿈을 꾸면서 느낀 것도 있었다. 화가 나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자기가 오재헌에게 휘두른 폭력을 뒤늦게 생각해보니 그게 정상적인 반응인가 싶었다.
지금은 조용히 톤을 다운시킬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자기가 일하던 편의점에서 네 시간 동안 일을 하는 거라면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