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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체 운반 헌터
“수준은 당연히 되죠. 써전님은 써전 중에 에이스시잖아요.”
지우가 말했다.
“그 얘기를 하는 게 아니예요. 3급, 2급 늪에서 나타나는 괴수는 크기가 15미터, 20미터짜리까지 있어요. 늪 하나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 거고 이동하는 번거로움은 피할 수 있겠지만 휴식 없이 차크라를 계속 써야 돼요.”
세 명의 헌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기로 정하신 게 혹시 저희들 때문인가요? 써전님은 괴수랑 공략 방법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잖아요. 그런데 요즘에는 계속 괴수들이 겹치고 공략 방법도 거기서 거기고. 저희들이 나중에는 높은 급의 늪을 공략해야 한다고 생각하셔서 방향을 전환하시는 건가요?”
태인이 물었다.
“아, 그거였어요?”
강현이 뒤늦게 깨달은 듯이 써전을 바라보았다.
“그렇기도 하고. 내 개인적인 욕심도 있죠. 나는 성과급을 받는 써전이잖아요.”
써전이 활짝 웃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바로 2급 늪을 한다거나 하시지는 않을 거죠?”
지우가 물었다.
“신경 쓰이는 거라도 있습니까? 바로 그렇게 올릴 생각은 아니지만.”
써전이 물었다.
“아뇨. 아뇨. 그냥. 마음의 준비는 필요할 것 같아서요.”
“그렇죠. 마음의 준비는 정말로 필요할 겁니다. 4급 늪만 돼도 아주 다를 거거든요.”
왠지 그렇게 말하는 써전의 얼굴이 의욕에 넘쳐 보였다.
“사실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5급 늪에서 우리한테 할당되는 괴수들을 보면 좀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괴수가 창피하다는 게 아니라 괴수를 공략한 레이더들의 수준이 창피한 거죠. 효과적으로 공격한 공격대의 결과물을 보면 나도 흐뭇한데 점점 그런 것들이 적어지는 것 같아요. 나도 레이더였는데. 4급 늪 정도가 되면 어중이 떠중이들이 레이드를 한답시고 달려들지는 않을 거니까 사체를 놓고 레이드 공부를 하는 것도 좀 수준이 올라가겠죠. 4급 늪 공략이다, 라고 하면 아무나 들어가지는 못할 테니까요.”
“아, 그런 뜻이 있었군요!”
강현은 이제 써전의 말이라면 덮어놓고 감탄을 하려는 버릇이 생겼다. 치안대원을 타투 하나로 해결하는 것을 본 이후로 존경심이 무럭무럭 자라난 것 같았다.
“자, 그럼. 가보죠.”
써전의 차를 타고 잠깐 졸다가 눈을 뜨면 순간 이동을 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이 처음 간 늪에는 8.4미터의 거대 아나콘다가 있었다. 물론 사냥이 끝나고 죽은 사체였다. 그래도 그 위압감이 대단했다. 그동안 봐 왔던 것들은 피규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지우는 이번에도 자기가 절단 작업에 곧바로 투입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거대 아나콘다의 껍질은 특별히 비싼 가격에 거래가 되고 절단면 없이 면적이 크게 나올수록 그 값어치가 상상을 초월하게 되기 때문에 감히 지우 따위가 함부로 나설 수가 없었다.
배를 갈라서 펼쳐놓은 채로 껍질 한 장을 만들어 넘기게 되는 것이다.
“이런 걸 왜 집에 두고 싶어하는지, 저는 그런 사람들 심리가 이해가 안 가요.”
강현이 말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알지 못하는 존재를 두려워하죠.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알려고 힘쓰고요. 아는 것에서 더 나가서 그 사체의 일부를 소유하고 장식물로 쓸 수 있게 된다면 그걸 정복했다는 느낌이 들겠죠. 과시하려는 욕구 아래에는 불안과 공포가 숨어있는 걸 겁니다.”
써전이 말했다.
“이건 얼마 정도에 팔려요?”
강현이 묻자 써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요. 잘은 모르겠네요. 확실한 건, 특이한 괴수의 사체 중에는 러프 스톤보다 더 비싸게 팔리는 것도 있다는 거예요.”
그 말에 모두들 할 말을 잃었다.
“사실 이런 괴수 사체가 걸리면 사체 운반 헌터들한테는 좋은 거예요. 이런 건 사체를 나르는 게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써전이 말했다.
“그럼 저희들은 뭘 하면 돼요? 그냥 옆에서 써전님이 껍질 벗기시는 걸 보기만 하면 돼요?”
강현은 그렇게 물으면서도 그렇다는 대답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에 써전이 정말 그렇게만 하면 된다고 말했을 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일을 할 때는 차크라 조절이 필요해요. 실력 없는 써전도 이 일을 할 수는 있죠. 하지만 어떤 차이가 있냐면.”
써전은 적당한 비유를 떠올리려고 잠시 말을 멈추었다.
“아. 모르겠다. 좋은 비유가 생각이 안 나네. 그냥 상상을 하면 돼요. 하늘하늘한 얇은 커튼을 태양이 뚫고 들어오는 장면 같은 거요. 얇게 포를 뜰수록 껍질에 광선이 통과되면서 신비롭고 아름답게 보이거든요. 그런데 얇게 뜨지 못하면 광선이 제대로 통과되지 못하죠. 일정하게, 얇게 발라내는 게 중요해요. 악어가죽이랑 뱀가죽 제품을 생각하면 안 돼요. 그런 건 비늘 한 올 한 올의 감촉이랑 화려한 패턴을 보면서 즐기는 거지만 이 거대 아나콘다는 조금 다르죠. 실제로 이건 침실 커튼으로 많이 나가요. 그러면 값이 어마어마해지죠. 커튼 하나에 13억에서 15억까지 해요. 악어가죽 버킨백이 1억 넘는 것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새삼 놀라워할 것도 아니지만요. 내 자랑 같지만 서규태 써전의 작품이라고 하면 프리미엄이 붙어서 거래되죠.”
써전의 말에 지우가 웃었다. 그 비슷한 얘기는 전에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지우는 자기도 그런 써전이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이 괴수한테는 다리가 여섯 개가 있는데 다리는 쓸 수가 없어요. 만약에 안지우씨가 거대 아나콘다 괴수의 껍질을 발라내는 연습을 해 보고 싶다면 다리는 줄 수가 있습니다.”
“네?”
살다가 이런 호의를 받는 일이 생기게 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원하면 거대 아나콘다 괴수의 다리를 줄 테니 연습을 해 보라니.
“저야 물론 감사하죠.”
써전은 지우의 대답이 나오자마자 아나콘다의 다리를 떼서 지우에게 건네주었다. 이태인은 써전의 곁에 달라붙었고 강현은 지우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써전은 그때부터 초집중을 하기 시작했고 얘기도 하지 않았다. 써전이 워낙 집중을 했기에 다른 사람들도 말을 하지 못했다.
지우는 나름대로 열심히 아나콘다의 껍질을 발라냈다. 그러자 태인과 강현은 하이애나처럼 그것을 기다리고 있다가 고깃덩어리를 가지고 자기들이 연습을 해 보면 안 되겠냐고 말했다.
안 될 게 뭐가 있겠냐면서 지우는 흔쾌히 고깃덩어리를 넘겼다.
늪에 적막감이 감돌았다.
모두의 이마에서 구슬땀이 흘러내렸다. 수없이 많은 늪을 돌아다녔고 바쁘게 늪 안팎을 오고 갔다. 그러다보니 이런 날도 다 생긴다 싶었다.
“이러고 있어도 일당은 나오는 거죠?”
지우가 써전에게 묻자 써전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런 일은 그냥 대충 해서 줘도 되는 것 아니예요? 바디 펌한테만 좋은 일 시키는 것 같아요.”
강현이 말하자 써전이 웃었다.
“박피처럼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작업은 다른 방식으로 비용이 책정돼요. 양이 아니라 품질에 따라서 가격이 달라지니까 써전이 판매대금의 일정 부분을 받게 되죠. 그렇지 않으면 나라도 그냥 대충해서 넘겨버리지 누가 이런 걸 일일이 공들여서 하겠어요?”
“일정 부분이라면 얼마나요?”
지우가 관심을 보였다.
“전에 이보다 작은 거대 아나콘다를 작업해서 넘긴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받은 돈이 삼천 이백만원인가 됐었을 겁니다.”
“네? 시간은 얼마나 걸렸는데요?”
“두 시간 정도 걸렸겠죠.”
“써전님. 써전이란 직업이야말로 꿀이네요.”
지우의 말에 써전이 웃었다.
“나처럼 잘 할 수 있다면 꿀이죠.”
거대 아나콘다의 다리 세 개는 거의 망친 것 같았다. 그러나 네 개째부터는 감이 왔다.
강현은 지우가 손에 잡은 칼날에 깃든 차크라의 색깔이 변하는 것을 발견했다. 강현이 조용히 태인의 팔을 흔들자 태인도 지우를 바라보았다. 써전까지도 주위의 분위기가 조용히 바뀌는 것을 깨닫고 하던 일을 멈추었을 정도였다.
호흡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끝까지 한 호흡에 간다는 자세로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우를 본 써전은 칼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지우는 입을 반쯤 벌린 채 눈도 깜빡거리지 못한 채로 괴수의 껍질에서 살을 발라냈다. 잡고 있는 칼 끝의 방향 자체가 처음에 잡았던 것과 반대로 뒤집어져 있었다. 거대 아나콘다의 껍질을 걷어내는 느낌으로 칼을 집어 넣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벗겨낸 껍질은 한지보다도 더 얇았다.
써전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지우에 대해서 경계하는 마음이 생긴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써전은 그 후로, 일을 전부 마칠 때까지 별 말이 없었다. 헌터들은 그가 박피 작업 때문에 차크라를 많이 소모해서 피곤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써전은 헌터들과 헤어지고 나서 얼마 후에 지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우는 써전이 자기와 헤어진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간에 전화를 건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둘이서만 만나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써전이 말했다.
심각한 얘기인 것 같아서 지우는 두 말도 하지 않고 당장 써전에게 달려갔다. 써전은 한강이 보이는 공원에서 지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써전님.”
지우가 달려가자 써전은 지우에게 맥주 캔 하나를 내밀었다. 지우는 그것을 받아들기는 했지만 써전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걱정이 돼서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안지우씨.”
“예.”
“김강현씨랑 이태인씨는 정말 좋은 사람들입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내가 하려는 말은.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들 같지 않을 거라는 말이예요.”
“무슨 말씀이신지…….”
“나는 박피에 관해서, 그리고 차크라 운용능력에 관해서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어요.”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러실만 하고요. 써전님만큼 차크라를 섬세하게 다루시는 분은 못 봤어요.”
“안지우씨는 그렇게 하지요.”
“네?”
“안지우씨는 나보다 더 뛰어나게 그걸 다룹니다. 차크라요.”
“말도 안 돼요, 써전님.”
“아뇨. 그게 사실입니다. 우리가 박피한 걸 비교해 봤어요. 안지우씨가 한 것의 네 배가 넘더군요. 내가 발라낸 표피 두께가.”
“그건…….”
“다른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나는 안지우씨가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거라는 얘기를 해 주고 싶었어요.”
“예?”
“다른 사람들은 시기할 겁니다. 질투하고 미워할 거예요. 김강현씨랑 이태인씨가 안지우씨를 좋게 생각하는 건 안지우씨가 자기들보다 아직 뒤에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걸 거예요. 낮은 스텟. 그게 지금 안지우씨를 지켜주고 있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지우는 그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건.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봉인? 봉인 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 그게 풀리고 나면 안지우씨는 폭발적으로 성장할 겁니다. 그때는 아무도 안지우씨 편에 서려고 하지 않을 거예요.”
“써전님.”
“내가 충고를 해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죠, 써전님. 무슨 말씀이라도 하셔도 돼요.”
“숨기세요. 안지우씨.”
“네? 어떤… 걸요?”
“안지우씨가 기쁘게 발견하는 것들. 안지우씨의 재능. 새롭게 할 수 있게 되는 것들. 깨닫게 되는 것들.”
“…….”
“헌터말고 다른 일반인 친구들도 많이 만나고요. 안지우씨의 진면목을 숨기는 연습을 미리부터 해야 될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을 잃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지우의 말에 써전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