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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27화 (27/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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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체 운반 헌터

이동 시간을 최대한 단축을 하고 늪으로 들어갔지만 시간을 더 이상 단축할 방법이 없었다. 아무래도 무리라고 생각하는 순간 지우가 써전을 바라보았다.

“사체 절단요. 저도 같이 해 보면 안 될까요?”

지우가 말했다.

써전이 지우를 바라보았다. 강현과 태인의 얼굴이 굳었다.  지금 지우가 무슨 말을 하는 건가 하는 표정이 나중에는 의혹으로 바뀌었다.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하기는 했다. 강현과 태인은 틈만 나면 괴수의 사체에 칼을 찔러 보았는데 지우는 그러지 않았던 것이다. 두 사람이 끝없이 좌절을 맛보는 동안 지우가 유독 조용하기는 했다. 그렇다고 정말 그걸 해 냈다는 말인 건가 하면서 강현과 태인 두 사람은 미리 말이라도 나눈 것처럼 지우의 타투를 바라보았다.

차크라 등급-6

차크라 숙련도: 89%

“헉!”

태인은 사기를 당한 것처럼 충격을 받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써전은 말없이 칼을 내밀었다.

“좋아요. 시간이 없으니까 바로 시작합시다. 장기 적출에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고 아래쪽부터 먼저 절단하도록 하세요. 나는 위에서부터 해부를 하고 장기를 적출할 테니까.”

써전이 말했다.

태인과 강현은 바디 팩을 준비했다. 그래도 강현은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어서 슬쩍 사체 절단을 다시 시도해보기는 했지만 여전히 안 되었다. 괴수의 사체는 단단하게 강현의 칼을 거부했다. 마치 이유식을 절대로 받아먹지 않겠다고 입을 꽉 다물고 버티는 어린 아이 같았다.

“안 한다. 안 해! 나도 안 해!”

강현은 괜히 괴수 사체에 화를 냈다. 태인은 아예 꿈조차 꾸지 않았다. 강현이 안 되는데 자기가 될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타투에 새겨진 차크라 숙련도의 수치가 공인을 해 주고 있는데 쓸데없이 시도를 했다가 심장에 데미지를 입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태인씨는 저울을 준비해주고. 안지우씨. 처음부터 정확한 중량을 맞추기는 어려울 테니까 100킬로그램보다 조금 모자라다는 생각으로 잘라요. 모자라는 만큼은 내가 채워 줄 테니까.”

써전은 각자에게 지시를 내렸다.

“네.”

처음에는 지우가 괴수 사체를 제대로 절단할 수 있을지 긴장을 하면서 바라보던 강현과 태인은 이내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자기들이 못 이루어낸 것을 지우만 해 냈다고 시기를 할 틈도 없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지우를 응원했다. 경험치 50을 뺏기는 상황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지우는 점점 능숙해져갔다. 하지만 사체를 절단하는데는 성공한 지우라도, 중량에 대한 감을 잡는데는 오래 걸렸다. 순식간에 해부를 마친 써전이, 지우가 절단해 바디팩에 넣어 놓은 것에서 모자란 부분만큼을 척척 잘라 중량을 채워 주었다. 100 킬로그램을 절단해 내는 일에 비하면 일 이십 킬로그램의 고깃덩어리를 잘라서 보충하는 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지우는 팔십 몇 킬로그램, 구십 몇 킬로그램 하는 식으로 중구난방으로 사체를 절단해놓고 창피했는지 바디 팩을 들고 줄행랑을 치다시피 도망쳐버렸다. 그래봤자 새로운 바디 팩을 가지러 금세 다시 돌아와야 하는 신세이기는 했지만.

절단을 끝내 놓은 써전은 자기도 마냥 놀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조금씩 도우려고 했지만 모두가 그를 뜯어말렸다.

“해 보는데까지 해 보고 안 되면 패널티를 받으면 되는 거죠. 써전님이 고생하시는 것보다는 그게 나아요.”

이태인이 의젓하게 말을 하자 지우와 강현이 격하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써전의 마음에는 하급 헌터들을 향한 마음의 빚이 차곡 차곡 쌓여만 가고 있었다.

마지막 바디 팩을 옮기면서 써전과 하급 헌터들은 다음 늪을 향해서 출발했다.

인부들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하면서도 서규태 써전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절단을 할 수도 있을 거라고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지우는 구제불능이 아니었다. 똑같은 일을 계속 반복하는데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지우가 절단한 괴수 사체도 중량의 오차범위가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나중에는 예닐곱개 중에 하나 정도씩은 딱 맞는 100킬로그램짜리가 나오기도 했다. 써전이 장기를 적출하고 본격적으로 괴수 사체를 절단하려고 뒤를 돌아 보았을 때는 이미 상당 부분이 해체되어 있었다. 이 괴수가 원래 이렇게 작은 놈이었나 하고 헷갈릴 정도였다.

강현과 태인은 서로가 경쟁적으로 바디 팩을 날랐다. 절단을 마치고는 지우도 가세를 해서 바디 팩을 들고 날아다녔다. 경험치 50을 날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그들에게 초인적인 힘을 내게 만들었다. 써전은 저들이야말로 괴물들 같다고 생각하면서 혀를 내둘렀다.

“이제 늪 하나 남은 거죠?”

다음 늪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이태인이 물었다. 이태인이 먼저 나서서 뭔가를 묻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 아니었다. 원래 그 팀의 질문 담당은 강현이었는데 강현은 과도하게 차크라를 쓰고 거의 유체이탈 상태가 되어 있었다.

써전은 이제 마지막이라면서 헌터들을 북돋웠다. 강한 압박감이 느껴지는 동시에 성취에 대한 갈망과 승부욕까지 더해져서 세 명의 헌터의 몸에서는 차크라가 과도하게 분비되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부수고 가야 할 장벽이 그 순간에 무너지는 중이었다. 마지막 늪에서 마주친 괴수가 3.8미터짜리라는 것을 알고는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작아. 작아. 앗싸아.”

태인은 아예 그 말을 무한반복으로 흥얼거리면서 바디 팩들을 주르르 열고 대기를 했다. 담아주기만 하면 들고 나를 만반의 준비를 끝낸 것이다.

써전이 둘이 되다보니 태인과 강현은 두 배로 바빠졌다. 지우가 절단해내는 사체의 중량이 점점 정확하게 나와서 나중에는 강현과 태인도 그것이 지우의 작품인지 써전의 작품인지 헷갈릴 정도가 되었다.

“나 토할 것 같아.”

태인은 몇 번이나 그 말을 했고, 걸어다니면서도 혀를 주욱 빼고 움직였다. 처음에는 그런 태인을 보고 웃었던 강현도 곧 태인과 똑같아졌다. 이러다 정말로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다행히 지우가 절단을 마치고 두 사람을 도와주었다.

마지막 늪에서는 시간이 정말로 아슬아슬했다. 네 사람이 늪에서 빠져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늪이 사라졌다. 늪이 사라지는 것을 눈 앞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늪을 빠져 나온 네 사람은 써전의 차에 탔다. 온전히 두 발로만 걷지도 못하고 손까지 써 가면서 비척거려야 했다.

삐링삐링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

일당이 들어왔다는 문자였지만 기쁨을 누릴 여유도 없었다. 경험치 50을 사수했다는 감격에 비하자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경험치 50을 사수했다는 감격조차 누릴 힘이 없었다.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었다.

써전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 엄청난 긴장감을 생각하면 구토가 나올 것 같았다. 한동안 네 사람은 죽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축 늘어져서 움직이지도 못했다. 모두가 의자를 뒤로 젖히고 퍼져버렸다.

네 사람의 포즈가 거의 그렇게 비슷했다.

“패널티는 면했다.”

강현의 목소리가, 강현이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을 대변해 주었다.

“그 규정 진짜 골때린다. 세상에. 경험치 50을 뺏는다니. 그럼 레이드를 350번을 해야 E급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거잖아. 아효. 레이드 50번의 경험치를 안 준다니. 날강도네. 날강도.”

태인이 말하자 서규태는 그들의 오해를 풀어줄 기회는 지금이라는 생각에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여러분이 사소한 부분에서 오해를 한 것 같은데. 매 승급 과정에서 50회예요. E급으로 올라갈 때만 그런 게 아니고.”

사람이 극도로 화가 나면 제대로 화를 내지 못하게 된다는 말이 딱 맞았다. 세 사람이 딱 그런 상황이었다.

“일단 다 피하고 난 다음에 여러분이 뭘 피한 건지 알게 된 거니까 잘 된 거잖아요.”

써전은 헌터들의 놀란 가슴을 달래주느라 애를 먹었다. 지우는 입을 움직일 힘도 없어서 그 얘기들을 다 듣고만 있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제 팔을 들어 보았다.

“어……!”

지우의 작은 비명에 세 사람이 모두 지우를 돌아보았다.

“저. 차크라등급 올라갔어요.”

옆에 앉아있던 강현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지우의 팔을 확 낚아챘다.

차크라 등급-5

차크라 숙련도: 16%

“으아. 이건 너무 급작스런 승급이네. 부럽잖아요, 형!”

강현이 지우의 타투를 오래오래 바라보면서 말했다.

태인도 고개를 한껏 돌리고 지우의 타투를 바라보며 신기해했다.

“지우씨 대단하네.”

“고마워요, 형.”

“참. 써전님. 저, 무기는 어떤 걸로 하는 게 좋을까요? 슬슬 다음 주말부터 공격대에 들어올 준비를 하라고 하던데요.”

태인이 말했지만 써전은 대답이 없었다. 태인은 드디어 레이드를 뛰게 된 걸 축하받으려고 타이밍을 노렸다가 말을 한 거였지만 그것이야말로 최악의 타이밍이었다. 강현은 지우의 팔을 잡은 채로 입을 벌리고 잠들어 있었고 써전은 머리를 옆으로 기댄 채 자고 있었다.

방금까지 고맙다고 말을 하던 지우도 마찬가지였다. 태인은 그 상황에 서운해질 뻔했지만 서운해질 뻔한 채로 그대로 잠이 들었다. 차크라를 그렇게 몰아 쓰고서 바로 기절하지 않은 게 용할 정도였다.

그들이 칼을 들 정신만 있었다면, 그리고 그것으로 괴수의 사체를 잘라볼 정신만 있었다면 강현과 태인은 자기들도 마침내 괴수의 사체를 절단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몸이 견뎌주지 못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그냥 닥치고 자는 것 뿐이었다.

***

피자 가게에 나오는 이태인의 자세가 이상했다. 오른쪽 팔을 주욱 늘어뜨린 채 들어왔던 것이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세 사람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오 분 전에 김강현이 하던 짓이랑 완전히 똑같았던 것이다.

주말 사이에 차크라 숙련도가 3이나 늘어나서 갑자기 타투가 무거워진 것 같다며 김강현이 5분 전에 팔을 늘어뜨리고 들어왔는데 둘이 하는 짓이 애나 어른이나 똑같았다.

“써전님.”

태인이 써전을 불렀다.

“괴수 사체 절단을 다시 해 볼게요.”

“저, 괴수 사체 절단 다시 해 볼게요.”

“이제 괴수 사체 절단해 보면 될 것 같아요.”

태인이 말을 하는 동안 써전과 지우가 똑같이 그 말을 했다.

그래놓고는 자갈자갈 웃어댔다.

“강현이랑 완전 똑같애.”

지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강현과 태인을 놀렸다.

“아, 지우씨. 누나가 말 좀 전해달래요. 자기는 지우씨를 기다려줄 의향이 있대요.”

태인이 깜빡 잊을 뻔 했다는 듯이 급히 말했다. 이태인의 누나도 대단한 의지를 가진 것만큼은 틀림없었다.

“…….”

지우는 어떻게 거절을 해야 할까 해서 잠시 아무 말을 못했다.

“지우씨가 여자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은 적이 있는 모양인데 자기는 세상의 모든 여자가 다 그렇지는 않다는 걸 가르쳐줄 자신이 있대요.”

“일단은 알았다고 전해주세요.”

지우가 말했다.

“네. 그 정도면 됐어요.”

못 본지 한참 된 사람들인 것도 아닌데 다시 만난 자리가 꽤나 즐거웠다. 그러다가 갑자기 침묵이 감돌았다. 써전이 돌연 심각한 얼굴이 되는 바람에 세 사람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오늘 여러분이랑 중요한 문제로 상의할 게 있어요.”

써전이 말했다.

“네, 말씀하세요.”

강현이 먼저 말했다.

“그동안 우리는 5급 늪의 사체 운반을 주로 담당해 왔는데 나는 이제 우리가 좀 더 높은 급의 늪을 처리할 수준이 됐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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