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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체 운반 헌터
그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당장 써전의 타투부터 확인했다. 모두가 C등급이었지만 차크라 등급에서 써전을 앞지르는 사람이 없었다. 네 명의 치안대원들 입에서 거의 동시에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자기들을 그 자리에 부른 공대장과 오재헌에 대한 깊은 분노였다.
“써전님.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괴수 사체 해부를 시작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가장 먼저 나와있던 치안대원이 공손하게 말하자 써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이제부터 슬슬 시작해봐야겠군요. 그럼 여기 일은 잘 부탁합니다. '잘'요.”
“예. '잘' 매듭짓도록 하겠습니다.”
네 사람의 치안대원은 멀어지는 서규태에게 경의를 표했다.
상급 헌터에 대한 예우이기도 했고 레이드에서 부상을 당하면서 괴수의 위협으로부터 국가의 안전을 지킨 그의 공로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표시이기도 했다.
남아있던 공대장과 오재헌은 그날의 나쁜 운이 다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태인은 차로 가서 지우와 강현을 데리고 나왔다. 이태인은 써전이 타투 하나로 상황을 끝냈다고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건 차에서도 다 보였다. 강현은 몇 번이나 자기 말이 맞았지 않냐고 말하면서 뻐겼다.
써전과 하급 헌터 세 사람은 기세좋게 늪으로 들어갔다. 모두들 할 말이 아주 많았다. 확실히 팀의 돈독한 동료애를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써전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마웠고 특히 지우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형. 대단했어요.”
지우가 이태인의 팔을 살짝 만지면서 말하자 이태인의 얼굴이 성냥개비처럼 붉어졌다.
“나는 아무 것도 못 했는데…….”
“형은 곧 레이더가 될 거잖아요. 그런 사람이 레이더한테 대항하기가 쉽지 않았겠죠. 그래도 형은 모른 척 하지 않았잖아요.”
지우의 말에 이태인은 울컥해져 버렸다.
자기는 몸을 전부 다 내놓은 사람이, 손가락 하나를 내밀어 힘을 보탠 사람한테 대단하다고 치켜 세우는데 그게 빈 말이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 자기한테는 손가락 하나를 내미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것을 전부 이해하고 해 주는 말이라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나도 고마웠습니다.”
써전까지 나서서 그렇게 말해주었다. 강현은 이히힉, 하고 웃으면서 태인의 등을 한 번 만지고 괴수 사체에게 다가갔다. 태인은 그런 말들을 들었다고 해서 다음에 같은 일을 당할 때 몸을 전부 내놓고 뛰어들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팔을 내밀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 용기가 자라고 자라다보면 언젠가는 자기도 몸을 내놓고 동료들을 지키려는 마음이 생길 것 같았다. 태인은 코를 훌쩍이고 자기도 괴수에게 다가갔다.
괴수는 지우가 전에 본 적이 없던 새로운 개체였다.
직립 보행을 하는 개체인지 허리가 곧게 세워져 있었고 네 발이 아니라 두 팔과 두 다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건 처음 보네요."
강현조차 그렇게 말했다.
"빅풋이라고 불리는 괴수예요."
써전이 말했다.
자세한 설명이 나올 것 같았는데 써전의 설명은 거기에서 멈췄다.
써전의 눈이 심상치 않게 빛났다. 써전은 방금 전까지 사람 좋게 웃던 표정을 거두고 예리한 시선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무언가 잘못 됐다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어서 헌터들도 웃음을 거두고 바짝 긴장을 했다.
"뭐가 잘못 됐어요, 써전님?"
강현이 먼저 물었다.
써전은 자기가 발견한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보여주었다. 헌터들은 써전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상처들을 따라갔다. 그것은 신기하게도, 언젠가 써전이 설명해 준 적이 있던 상처와 똑같았다.
요코의 무릎과 턱을 깔끔하게 해치운 상처. 길이가 짧은 칼로 바짝 다가가서 괴수를 공격했을 거라고 써전이 추측했던 바로 그 상처들과 비슷했다.
그때 헌터들은 그 팀의 탱커가 대단한 사람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늪으로 들어오면서 봤던 탱커는 그들이 상상했던 사람과 완전히 거리가 멀었다. 심지어 사용하는 무기도 완전히 달랐다.
써전은 길이가 짧은, 절삭력이 좋은 칼일 거라고 추측했었지만 이 괴수를 해치운 공대장이 들고 있던 것은 흔한 어그로 장비였다. 무기를 여러 개 가지고 있을 수는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공대장은 그들이 상상했던 탱커와 달랐다.
써전이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지우에게 다가와 보라고 말했다.
"괴수가 아직 서 있다고 생각하고 안지우씨가 이 앞에 서 보세요. 선 자세에서 자연스런 위치를 만들어봐요. 팔을 뻗어 보기도 하고 내려보기도 하고. 괴수의 급소하고 상관없이 손에 쉽게 닿는 곳을 벤다고 생각했을 때 상처가 어디쯤에 생기게 되겠는지 보자고요. 그럼 그 헌터의 체격을 유추해 볼 수 있겠죠. 나는 지우씨랑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지우는 써전의 말을 알아듣고 팔을 휘휘 돌리며 원을 만들었다. 괴수의 몸에 난 상처는 지우가 만든 원보다 조금씩 위쪽에 위치했다.
"저보다 훨씬 큰 사람인 것 같아요."
그것을 보고 있던 태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죠. 괴수가 서 있었다면 발바닥이 땅에 닿아 있었겠죠. 그러니까 이런 상처를 괴수 몸에 냈던 사람은 지우씨랑 비슷할 거예요."
괴수의 발은 50센티 정도의 길이였다. 누워있는 괴수의 사체에서는 그것이 전부 괴수의 신장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괴수가 서 있을 때는 발바닥을 땅에 댄 채 서 있을 테니 그보다 작았을 거라는 게 태인의 이야기였다.
"지우씨 키가 얼마예요?”
태인이 물었다.
"182센티요."
지우가 말했다.
“그렇겠군요. 이태인씨 말이 맞는 것 같네. 일단 이 추리는 다음에 더 이어가도록 하고 우선은 일을 하죠. 사진만 먼저 몇 장을 찍어놓고.”
써전의 말에 세 사람이 동시에 스마트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었다. 써전은 사진을 찍어야 할 상처들을 일일이 손가락으로 짚으로 알려주었다.
“이 팀의 레이드가 오늘 안에 끝날 수 있었던 건 이 사람 때문이었던 것 같군요. 다른 건 괜히 눈만 버리니까 보지 말고 기억에도 남기지 말고 이 상처만 집중해서 봐요. 이 무기를 가지고 있던 사람은 괴수의 움직임을 단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었습니다.”
써전은 대단한 열의로 괴수의 몸에 난 상처들을 분석했다. 그리고 몇 번이나 고개를 저었다. 감탄과 경의의 표현이었다.
“아……. 그게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이 헌터는 괴수의 급소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급소는 피했어요. 레이드가 어려웠던 건 이 헌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이 헌터가 괴수를 미쳐 날뛰게 만든 거예요. 일부러 괴수를 도발하고…….”
“왜요?”
강현이 물었다.
“로데오를 해 본 적 있습니까?”
써전이 물었다. 그걸 물은 후에 써전은 조용히 해부를 시작했다.
“누군가 일부러 괴수를 자극하고 레이드를 했다고요?”
강현이 물었지만 써전은 대답을 아꼈다. 사체 운반이 전부 끝나고 늪에서 빠져나갈 때까지 써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 늪으로 이동할 때 써전은 지우에게 운전을 부탁하고 자기는 바디 펌에 전화를 걸었다. 자기들이 막 처리를 끝낸 늪에서 어떤 헌터들이 레이드를 했는지 정보를 알고 싶다는 그의 요구는 간단하게 거절당했다.
“아까 있었던 그 일 때문에 묻는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예요.”
전화를 끊으면서 써전이 말했다.
“그 사람이 누군지 알면 오픈일이 다가오는 위험한 늪에 그 사람을 투입하면 좋겠네요.”
강현이 말했다.
써전도 고개를 끄덕였다.
“도전을 좋아하고 두려움이 없고 자신감이 가득한 헌터인 것 같으니까 그런 일이 주어지면 뒤로 빼지는 않을 겁니다. 레이드를 하는 동안에는 즐겁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기 기준에 맞는 괴수를 만났을 때의 얘기일 거예요. 기준에 맞는 괴수를 만나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면 그걸 어디로든 표출을 해야 할 텐데 그 사람이 출구를 제대로 못 찾을까봐 걱정이 되긴 하네요.”
“그게 무슨 뜻이예요?”
강현이 물었지만 써전은 고개를 저었다.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남은 늪에서는 빨리 빨리 움직여야 되겠어요. 치안대가 출동하는 일로 사체 운반 일정을 못 맞추면 패널티가 엄청 세거든요. 아까 시간을 너무 많이 지체했어요.”
써전은 자기가 다른데 한눈을 팔다가 일이 그렇게 됐다고 자책을 했다. 써전이 걱정을 할 정도면 패널티가 꽤 큰 것 같다는 생각이 헌터들의 머릿속에 저절로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치안대를 출동하게 하는 것은 바디 펌으로서도 달가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사전에 계약으로 그런 사항을 미리 규제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치안대 때문에 시간이 지체돼서 일정을 마치지 못하면 그 책임을 써전과 사체 운반 헌터들에게 묻고 패널티를 부과하는 것으로 정해놓으면, 웬만하면 하급 헌터들이 레이더들의 횡포를 참고 넘어갈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태인은 잠자코 시간을 계산했다.
남은 늪이 세 개였고 이동거리와 이동 시간을 계산했을 때 한 군데의 늪에서 30분이 넘게 걸려서는 안 된다는 계산이 나왔다.
“세 곳이 전부 5급 늪이라서 괴수 사체는 5미터 이내이긴 할 텐데 써전님이 괴수 사체를 절단 하자마자 바로 나른다고 해도 해부에서 운반까지 다 하려면 한 곳에서 40분은 넘게 걸릴 거예요. 해부시간을 단축할 수는 없잖아요. 아무리 속도를 내신다고 해도 15분은 걸릴 텐데.”
태인이 말했다.
태인을 만난 이후에 태인이 그렇게 많은 말을 한 것은 처음 듣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강현이 넋을 놓고 있는 동안에 지우가 써전을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어떻게든 해 봐야 되는 거잖아요.”
“그렇죠. 패널티가 나한테만 주어진다면 패널티를 받고 말겠는데. 여러분한테도 주어져요.”
써전이 말했다.
“에에? 그런 내용을 왜 애초에 설명도 안 하는 건데요, 바디 펌은?”
강현이 충격을 받은 듯이 물었다.
“계약서랑 같이 준 4백 몇 페이지짜리 약관집에 나와있긴 해요.”
써전이 말했다.
“그 패널티가, 대체 어떤 내용인데요?”
묻는 것조차 겁이 나는지 도중에 침을 한 번 삼켜 가면서 태인이 물었다.
“경험치 50을 강제 차감하는 방식으로 승급을 유예 시킨다는 내용이예요.”
“네에? 그런 게 어딨어요? 타투에는 그런 게 적용 안 되잖아요.”
강현이 발끈해서 물었다.
“괴수의 체력이 거의 바닥나고 레이드가 끝나갈 즈음에 늪에서 강제 퇴장을 시키는 겁니다. 50회에 걸쳐서요. 그러면 경험치를 분배받지 못하고 그 경험치는 남은 파티원들한테 돌아가겠죠.”
써전이 묵묵히 설명했다.
“미친 새끼들이네. 이거 완전히 똘아이 새끼들이네. 바디 펌 새끼들, 이거 진짜 완전!”
태인은 자기가 살면서 배워온 욕을 전부 다 쏟아부을 생각이었다.
써전이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그게 승급의 각 단계에서 적용이 될 거라고 말을 했다가는 폭동이 일어날 것 같았다.
헌터들에게는 치명적인 내용이었지만 바디 펌이 괴수의 사체를 가공하고 운반하는 독점 업체라서 저항할 방법이 없었다. 러프 스톤만 회수하고 괴수 사체 처리는 포기하면 되는 것 아니냐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바디 펌의 손은 멀리까지 닿아있어서 바디 펌이 마음을 먹기만 하면 헌터가 괴수 사체를 이용한 무기와 장비를 구입하는 것까지 막아버릴 수도 있었다. 원래 큰 힘을 가진 사람이 더 치사하고 유치하고 지독하게 굴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