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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체 운반 헌터
써전이 일어나서 지우에게 다가왔다. 지우의 어깨에 써전의 손이 얹어지자 지우가 써전을 돌아보았다.
“저는 괜찮아요, 써전님.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몇 대 친 것 뿐인데 왜 이런 표정을 지으세요. 자꾸 그렇게 보시면 제가 사형장으로 걸어가야 할 것 같잖아요.”
지우가 웃자 써전도 웃어보려고 애를 썼다.
“이 미친 새끼들아! 내가 가만 있을 줄 알아? 너도 병신 만들어 줄 테니까 기대하고 있어, 이 개새끼야. 너 밤길 조심해라. 이 씨발놈!”
오재헌이 바닥에 앉은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마침 지우는 강현에게서 풀려나 있는 상태였는데 오재헌도 참 지지리 운이 없었다. 지우는 그대로 날아가서, 앉아있는 오재헌의 얼굴을 무릎으로 찍어버렸다.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면서 안면이 함몰됐다는 건 구태여 설명을 할 필요도 없었다.
강현은 낮게 신음을 하면서 이를 악물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는데도 두터운 차크라 기운이 지우의 무릎을 감싸고 있었다.
오재헌은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에 나뒹굴었다. 아무도 오재헌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건 동료의식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일부러 문제를 만들고 사고만 일으키는 녀석이 자기들 팀이라는 사실에 슬슬 짜증이 일기 시작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
“가요, 형. 저쪽으로 가서 기다려요. 써전님 차에 타고 있던가. 아예 하나를 죽이려고 작정한 거예요?”
강현은 단단히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누구는 할 줄 몰라서 가만 있는 줄 알아요? 누구는 사람 팰 줄 몰라서 가만히 있는 건 줄 아느냐고요!”
강현이 화를 내는데 지우는, ‘어, 할 줄 몰라서 가만 있는 거잖아.’라는 드립을 치고 싶어서 입이 간질거렸다.
지우가 강현에게 강제로 연행되다시피 차로 끌려가는 것을 공대장은 멍청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도 그것이 전부 보였다. 낯선 하급 헌터의 몸을 두른 차크라. 그의 의지를 떠나서 그 남자보다 먼저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 같은 차크라. 그것은 꼭 극성스러운 엄마 같았다. 앞 뒤 가리지 않고 몸이 먼저 나가는 아이를 위해서 조바심 내면서 대기하고 있다가 차크라가 그의 몸을 보호하는 것 같았다.
공대장은 그런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D급 탱커였다. 운명이 잔인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차크라 운용에 소질이 없었고 차크라 숙련도는 지금까지 3%에 차크라 등급은 6등급이었다. 차크라 운용에 대한 깨달음을 얻지도 못하고 그가 D급까지 올라온 것은 근성 때문이었다.
레이드 한 번으로 경험치 1을 얻고 2를 얻고 그렇게 죽도록 하다보니 쌓아놓은 경험치가 어디로 도망가지는 않고 그의 등급을 올려주었다. 재능 없는 모든 사람의 눈에 재능 있는 사람이 가진 천부적인 소질이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재능이 없으면서도 재능을 죽을만큼 열망해 온 사람에게는 그것이 단번에 보인다. 공대장의 눈에는 그것이 보였다.
‘지우가 가진’, 아니, 이 경우에는 ‘지우에게 주어진’ 거라고 해야 옳았다. 하급 헌터에게 내재된 엄청난 양의 차크라. 그리고 그 차크라의 주도적인 보호.
공대장이 목도한 것들이 그를 괴롭혔다. 무관심한 표정으로라도 좋으니 나를 한 번만이라도 바라봐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게 만들던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 정신없이 빠져있는 걸 알게 되면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공대장은 조용히 헌터 협회의 번호를 눌렀다. 헌터가 부상을 당했으니 구급차를 보내달라는 사소한 보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마음 속에 오재헌은 자리잡고 있지 않았다. 오재헌이 죽는다고 하더라도 크게 슬픔이 느껴질 것 같지도 않았다.
마침내 치안대가 도착했다.
써전은 이제 완전히 평정심을 되찾은 후였다. 써전과 하급 헌터들은 써전의 차로 돌아가서 대기하고 있었다.
“안지우씨는 우선 여기에 있어요. 내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니까.”
서규태는 그렇게 말하고 김강현에게 안지우를 꽉 붙잡고 있으라고 말했다. 강현은 맡겨만 달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태인이 써전을 따라나갔다. 지우는 저런 사람이 용기를 내기 위해서는 보통의 담력을 가진 사람보다 몇 백 배나 더 큰 다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태인이 고마웠다.
헌터 치안대는 그야말로 막강한 기관인데 헌터 협회 소속이고 정부 산하에 편재돼 있으면서도 거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치안대는 차크라 운용능력을 가진 헌터들이 민간인을 상대로 범죄행위를 하거나 괴수 사체와 러프 스톤을 밀거래하는 걸 적발하는 일을 맡았다.
이번처럼 헌터간의 다툼에도 개입한다.
치안대가 무서운 건 즉결심판으로 헌터를 처벌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때문에 헌터들의 반발이 엄청났지만 차크라를 사용할 수 있는 헌터를 붙잡는 게 쉽지 않다는 이유로 관행은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
그런 제도상의 허점을 이용해서 헌터가 치안대를 이용해 다른 헌터를 음해할 수도 있다는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제기 되었다. 그러나 치안대장이 꽤 유능하고 강직한 사람이라서 지금까지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 일은 없었다.
“치안대장한테 걸리면 그냥 혀를 끊고 자살하는 게 낫대요. 그런데 치안대장을 만났다는 사람이 없어서 그게 사실인지 어쩐지는 몰라요.”
밖의 동태를 살피면서 강현이 말했다.
“살벌하네.”
“그냥 말로만 그러는 건지도 몰라요. 헌터들이 가진 능력이 대단하니까 민간인이 느끼는 위험이 커져서 강력한 법규의 제정이 필요해진 거겠죠. ‘너희들은 치안대에 의해서 보호받고 있다.’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던 걸 수도 있고요.”
그러는 사이에 치안대원들이 타고 온 벤츠 지바겐에서 치안대원 한 사람이 내렸다. 안에는 세 사람의 치안대원이 더 타고 있었지만 같이 내리지는 않았다. 얘기가 잘 통하지 않으면 그때나 내리겠다는 심산이었다.
치안대원이 나오자 곧 오재헌과 공대장이 그에게 다가갔다. 서규태도 치안대원에게 다가갔다.
갤러리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켰다. 바디 펌의 트럭 기사와 인부들은 재미있는 구경을 하게 된 상황이 만족스러운 듯했다.
써전과 하급 헌터들이 안됐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애초에 그들이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 사람들은 그저 인간 병풍의 구실밖에 하지 못하고 있었다.
“써전님 말이야. 괜찮으실까? 내가 나가야 하는 거 아니야?”
지우가 묻자 강현이 정말 형은 아무 것도 모르냐는 듯이 지우를 바라보았다.
“왜?”
오히려 지우가 다시 물었다.
“우리 써전님은 레이드로 부상을 당해서 오신 분이잖아요. 똑같은 C급 헌터라고 해도 훨씬 더한 존경과 대우를 받죠. 저 새끼들 우리 써전님이 누군줄 알면 아마 오줌지릴 걸요? 제가 봤는데 저기는 공대장이 D급이던데. 개새끼들. 다 죽었어!”
강현이 분해 죽겠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
“네. 내가 써전님이었으면 바로 타투 보여주고 내 밑으로 다 꿇으라고 했을 텐데 써전님은 저것들이 레이드 죽쑤고 나온 거 보고 불쌍해서 봐주신 건데. 개새끼들, 다 죽었어, 이제!”
강현은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럼 내가 불필요하게 나선 거였나보다.”
지우가 말하자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예요. 그런 놈들은 가만 놔두면 안 되죠.”
“정말 내가 나가보지 않아도 괜찮으려나?”
지우는 조바심을 내며 물었다.
“네. 필요하면 치안대원이 부르겠죠. 그때까지는 그냥 여기에 있어요.”
치안대원은 상황을 이해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을 겪었다. 사체 운반 헌터들과 레이더들 간에 싸움이 생겼다고 했을 때 치안대원은 이미 어떤 결론을 내릴지 미리 정하고 현장으로 출발을 했다. 그런 일이야 비일비재했다. 찌질한 레이더들이 레이드를 망치고 무능한 하급 헌터를 괴롭힌다. 하급 헌터들이 구타를 당하고 그 피해가 너무 심해지면 치안대에 신고를 한다. 치안대는 출동을 해서 하급 헌터들에게 따끔하게 충고를 한다. 무능한 주제에 헌터로서의 삶을 유지하려면 이런 것까지 감수하는 것이 도리라고 교훈을 주고 돌아간다.
그게 정해진 매뉴얼이었다. 고작 하급 헌터 때문에 레이더들에게 불편을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무능하고 찌질한 레이더라고 하더라도 늪과 괴수의 처리를 위해서 그들은 꼭 필요한 존재였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나와보니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이 이상했다. 얻어터진 채로 찌그러져 있다가 하소연을 하러 오는 게 레이더였다. 공대장은 D급이었고 얻어맞은 레이더는 F급이었다. 치안대원은 치안대에서도 헌터 등급으로 꿇릴 일이 별로 없는 C급 헌터였다. 치안대에 B급 헌터는 다섯 명이 전부였고 그 중 한 사람이 치안대장이었다.
나머지는 C급과 D급인데 D급으로 치안대원이 된 사람들은 차크라 운용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치안대원들이 상급 헌터로 구성된 것은 상급 헌터라는 이유만으로 벌써 헌터들이 권위를 인정해주는 게 있어서였다.
치안대원은 오재헌의 얼굴을 보고 곧바로 얼굴을 찡그렸다. 엄청난 고통을 느끼고 있을 텐데 정신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더 안쓰러울 정도였다. 빨리 구급차에 실어 보내야 할 것 같았다.
누가 됐든 이 남자를 공격한 사람은 차크라를 실어서 공격을 한 게 틀림없었다.
그의 놀라움이 컸던 것은, 이 정도로 사람을 엉망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도대체 얼마나 정교하고 엄청난 차크라가 나와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공대장과 오재헌은 구구절절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정작 사건의 재구성에 필요한 진실은 그들의 입에서 나오지 않을 게 확실했다.
공대장이 D급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에 치안대원의 표정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나잇살이나 먹은 사람이 제 앞가림도 못해서 이런 일에 사람을 오라가라 한다는 귀찮은 표정이 역력해졌다.
그런 치안대원에게 서규태가 다가왔다. 서규태는 이태인에게 기다리라고 말을 하고 혼자서 걸어왔다.
서규태가 먼저 치안대원에게 악수를 청했다. 악수는 아랫사람이 먼저 청하는 것이 아니다. 연장자라고 하더라도 헌터의 계급 사회에서는 나이만으로 서열이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써전이 모를리는 없을 터였다.
치안대원은 허리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엉겁결에 손을 내밀었다. 써전의 타투가 눈에 들어왔다.
C등급이었다.
차크라 등급 1등급에 차크라 숙련도는 100퍼센트였다. 차크라 운용에 있어서는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단계까지 오른 것이다. 그것은 써전이 모든 C등급 중에 가장 우위라는 의미였다.
치안대원은 저도 모르게 써전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몸이 저절로 숙여졌다.
“무슨 일이십니까.”
치안대원은 그제야 일이 어떻게 진행된 건지 감을 잡을 수가 있었다.
써전 중에는 간혹 이런 써전들이 있었다. 레이드를 하면서 등급을 올려가던 중에 부상을 당해서 레이드에 부적합하게 되면 사체 운반 영역으로 돌아와서 차크라 운용능력을 이용해 사체 해부와 절단을 하는 것이다.
그 수가 많지는 않아서 아직 그런 사람을 실제로 만나본 적은 없었다. 이 사람이라면 눈 앞에 좀비처럼 서 있는 레이더를 이 꼴로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진실의 실체를 알아내는 것은 처음부터 치안대의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재헌과 써전에게 그 사실을 일일이 묻지는 않았다.
치안대원이 지바겐에 신호를 보내자 상황을 모르던 세 사람이 안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