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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체 운반 헌터
대단한 늪도 아니었고 5급 늪이었다. 5급 늪에 열 명을 꽉 채워서 들어갔는데 아홉 시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었다. 늪에 입장할 수 있는 헌터의 수가 열 명으로 제한되어 있지만 않았다면 벌써 들어가보고 싶을 정도로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오래 걸린다는 건 누군가 부상을 당했다는 걸 텐데.”
써전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바디 펌의 트럭 기사와 인부들도 같이 대기 상태에 들어갔다. 트럭 기사는 몇 번이나 트럭에서 내려서 써전에게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물었다.
“이러다가 여기 때문에 공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다른 데를 먼저 갔다가 오는 건 어떨까요?”
조심스럽게 그렇게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렇게 할 수도 있었지만 써전은 레이더들이 걱정 돼서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봅시다. 나올 때가 됐어요.”
써전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 트럭 기사와 인부들을 다독거렸다. 한참만에 늪에서 레이더들이 나왔을 때 써전과 하급 헌터들은 안도감으로 한숨을 쉬었다.
바디 펌의 트럭 기사와 인부들도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할 준비를 했다. 일반인이라고는 해도 상황 파악은 할 수 있었다. 항상 늪을 쫓아다니면서 일을 하는데 모르는 게 더 이상할 것이다. 레이드가 이렇게 길어졌다는 게 무슨 뜻인지는 뻔한 것이다. 이제야 늪에서 나오는 레이더들이라면 실력이 어떻다는 게 파악이 되었고,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를 무시하는 눈빛이 되어버렸다.
레이더들은 괴수의 체액과 피를 뒤집어 쓰고 있었지만 직접 부상을 입은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몇 사람은 갑옷과 무기까지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 괴수는 특별하지 않았다. 허구헌날 나타나는 5급 늪의 단골손님이었던 것이다. 돌발상황을 예측하는 것이 더 힘들 정도로 난이도가 쉬운 레이드였을 텐데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늪에서 나온 레이더들은 눈 앞에 너무 많은 갤러리가 있는 것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예선에서 탈락하고 돌아오는 국가대표팀이 공항에서 저런 눈빛을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인부들은 노골적으로 무시를 했다.
“무기도 가지고 있었네. 저건 블랙 후크 같은데 블랙 후크면 공격증폭률이 300퍼센트인 무긴데.”
강현이 말했다.
저런 것까지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레이드를 이렇게까지 망칠 수 있냐는 의문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말은 그냥 머릿속에만 담아두고 말았어야 했다. 레이드를 죽쑤고 열패감에 빠져있는 헌터들의 귀에까지 들리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고 몇 몇 헌터가 강현의 말을 들었다.
괴수의 끈적한 체액을 가슴에 흠뻑 뒤집어 쓴 남자가 강현에게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그 움직임을 가장 먼저 알아챈 사람은 써전이었다. 써전은 깜짝 놀라면서 강현의 앞을 막아섰다. 써전이 서두르는 통에, 그의 불편한 걸음걸이가 튀어나왔다.
“뭐야. 이건 웬 병신 새끼야?”
거친 언사가 쏟아져 나왔다.
“그만 해라. 오재헌.”
뒤에서 나른한 목소리가 나왔다. 들고 있는 어그로 장비로 봐서 그가 그 팀의 탱커이자 공대장인 듯 보였다. 그러나 그 팀의 공대장은 이 싸움을 적극적으로 말릴 의지를 갖고 있지 않았다.
레이드를 이렇게 망친 데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 탱킹에서도 실수가 잦았고 딜러들도 괴수에게 효과적으로 데미지를 입히지 못했다. 딜러들은 괴수의 빈틈을 노리기가 힘들었고 그러는 동안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조급해했다. 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팀의 위기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 팀은 레이드가 있을 때마다 딜러들을 모집하는 공격대가 아니라 일정 시간 동안 나름대로 호흡을 맞춰온 팀이었다. 그런 곳에서 분열이 생긴다는 것은 이 열악한 팀의 전력이 한층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공대장으로서는 이 하급 헌터들이 때마침 나타나 준 것이 한편으로 고맙기까지 했다. 하급 헌터들이 화가 난 레이더들의 화풀이 대상이 돼 준다면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었다. 이 불운한 하급 헌터들을 상대로 해서 레이더들이 감정을 좀 풀어낼 수 있다면 자신들의 화합을 다지는데는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었다.
오재헌은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헌터였다. 아무리 봐도 서규태보다는 나이가 어려보였다. 하지만 그런 것은 그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했다. 오재헌은 공대장의 제지가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힘을 얻었다. 공대장이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해도 누군가에게 화풀이를 하기는 해야 했다. 만약 그랬다면 그 상대는 팀의 일원이 될 거였고, 공대장은 일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아서 이 하급 헌터들과 써전을 오재헌의 먹이로 내 준 것이다.
“비켜. 병신아. 너한테는 할 말 없으니까.”
오재헌이 서규태의 어깨를 거칠게 밀었다. 지우가 나서려고 하자 서규태가 지우를 향해 손을 저었다.
“나서지 마세요. 안지우씨가 나설 일이 아닙니다.”
지우는 순식간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서규태를 노려보았다. 강현은 처음 당하는 일에 놀라서 겁을 먹은 채로 벌벌 떨고만 있었고 이태인은 사태를 관망했다. 그것이 이태인의 본심은 아니었다. 이태인은 강현처럼 대놓고 떨고 있지만 않다 뿐이지 겁을 먹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에게도 써전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써전을 제외하고는 자기가 그 팀에서 가장 연장자였고, 몸이 불편한 써전이 수모를 당했을 때 나서야 하는 사람은 자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서웠다. 물리적인 공격을 당할까봐 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더 중요했던 것은 다른 문제였다. 앞으로 레이드를 하게 될 때 어떤 식으로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인데 그런 레이더들에게 찍히고 싶지가 않았다.
서규태는 두 손으로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오재헌의 손이 다시 서규태를 미는 동안 서규태는 소극적으로 저항을 했다.
“써전님!”
지우가 서규태에게 나아가려 하자 서규태는 다시 한 번 손을 저었다. 단호한 동작이었다.
오재헌은 성가시다는 듯이 서규태의 멱살을 잡아 흔들고 서규태를 내동댕이쳐버렸다. 지우가 잡지 않았다면 서규태는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그때 서규태의 약병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써전을 부축하고 있던 지우는 그가 패닉에 빠져들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써전의 호흡이 눈에 띄게 빨라졌던 것이다.
써전은 무릎을 꿇은 채 약병을 주우려고 했다. 그러나 약병은 오재헌의 발 밑으로 들어가 버렸다. 오재헌은 발을 건들거리면서 비열하게 웃었다.
“이 새끼. 병신인 줄 알았더니 약쟁이였어?”
오재헌은 몸을 굽혀 약병을 줍더니 뚜껑을 열고 약을 쏟아냈다. 조그만 알약들이 써전의 앞으로 굴러왔다. 써전의 호흡은 걷잡을 수 없이 가빠지고 있었다. 그거라도 줍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뻗는 써전의 손을 오재헌이 짓이겨 밟았다.
오재헌은 써전의 손을 발로 차고 알약을 하나씩 다 으깨고 있었다. 지우의 주먹이 쳐올려진 것은 그때였다. 저도 모르게 차크라가 실려버렸다. 차크라가 실리지 않았더라도 오재헌의 얼굴을 부숴버리는데는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을 터였다.
오재헌의 몸이 부웅 떠서 저만치 나가 떨어졌다. 강현은 지우의 팔 전체에 살기 등등한 차크라가 고이는 것을 보았다. 강현이 재빠르게 써전을 부축해 일으키는 동안 태인은 무릎을 꿇은 채, 아직 살아남은 알약을 약병에 담고 가루까지 쓸어 모았다. 그걸 사용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는지 같이 약병에 담지는 못하고 손에 쥔 채 태인은 미안하고 걱정스런 눈으로 지우를 바라보았다.
강현은 태인에게서 약병을 받아 써전의 손에 쥐어 주었다. 써전은 십 몇 년이나 참고 있었던 서러운 오열을 쏟아냈다.
“안지우씨. 제발 그만해요!”
하지만 써전의 절절한 호소가 지우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지우의 손이 오재헌의 얼굴을 잡아 쥐었다. 오재헌은 제 발이 허공에 떠오른 것을 느꼈다.
“내려줘. 내려놔! 이거 놓으라고!”
오재헌이 소리를 질렀지만 폭주한 지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흐으으읍!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살려!”
오재헌의 말은 다 나오지 않았다. 강현이 뒤에서 지우의 팔을 전력으로 잡아당기지 않았다면 오재헌은 지우의 악력을 절감하면서 그대로 죽었을 것이다.
“형. 그만해요! 써전님은 이제 괜찮아요.”
강현이 지우의 팔을 뒤에서 포박하듯 잡은 채로 지우에게 소리질렀다. 지우의 팔에서 천천히 차크라가 사라졌다.
그때까지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던 공대장은 지우와 오재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건. 그냥 용인할 수는 없는 문제같군요. 치안대에 연락하겠습니다.”
공대장이 말했다.
써전은 한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자기 때문에 일이 이렇게까지 돼버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헌터가 관여된 일이니 치안대로 넘어가는 것은 당연했다. 다만 치안대에서 일이 공정하게 처리될지 그게 걱정이었다.
괴수의 사체 운반을 하는 하급 헌터와 레이드를 뛰는 헌터 중에 누구의 편을 들어주는 게 유리할지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누가 더 유용한가를 먼저 판단한 후에 시비를 가리는 게 그 시대의 정의였다. 시비를 가리는 잣대는 유연했다.
지우는 저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렸다. 그대로 화면이 정지된 것처럼 느껴졌다. 누구도 섣부르게 그 자리에서 움직이질 못했다. 강현은 아직도 지우의 팔을 잡고 있었고 태인은 써전을 부축한 채 써전의 곁을 지켰다.
지우는 자기가 일을 망친 건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았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거라고 생각했다.
지우는 써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기는 괜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써전은 그런 지우를 끝까지 바라보지 못한 채 고개를 돌려버렸다.
저런 쓰레기를 쥐어팬 걸로 사형을 당하지는 않을 거고 기껏해야 치안대 유치장에 며칠 갇혀있는 걸로 끝날 것이다. 레이드를 하는 건 어렵게 될지 몰라도 그거야 이미 꿈을 접고 있었으니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괴로워할 일도 아니었다. 써전과 함께 사체 운반 일이나 계속하면서 괴수를 부검하는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공대장의 뒤에 서 있던 남자 하나가 갑자기 킬킬거리면서 웃었다.
“거지같은 것들이 별 생쑈를 다하네. 딱 지들 수준에 맞게 질질거리네. 아오, 쪽팔려서 더 이상은 같이 못 있겠다. 저기요. 저 얘네랑 같은 편 아니예요. 오해는 안 해 주시면 좋겠네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지우와 써전을 향해서 엄지를 척 들어보였다. 그 사람이 거지같다고 말한 건 아무래도 레이드를 마치고 나온 헌터무리였던 듯했다.
“아우, 구제불능 새끼들. 그냥 괴수한테 처먹히게 놔둘 걸.”
남자는 자기 몸에 더러운 냄새가 뱄을까봐 걱정된다는 듯 옷을 툭툭 털어냈다.
몇 등급인지 타투가 정확히 보이지는 않았다.
"괴수한테나 그러지. 괴수 앞에서는 오금이 딱 붙어서 안 떨어지는 것 같더니 주둥이만 가지고 헌터 타투를 받은 놈들이었어?"
남자는 제 동료들을 비웃었다. 지우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남자의 장난스럽던 눈빛이 한 번 바뀌는 듯했다. 하지만 남자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먼저 떠나 버렸다.
공대장은 그런 모욕을 당하면서도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고, 그런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치안대에게 신고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