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부터 레벨업-22화 (2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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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성

임정처럼 천재적인 헌터라면 영리하게 레이드를 하면서 경험치를 얻고 등급을 올릴 수도 있다. 솔로 레이드를 할 수 있다면 그만큼의 경험치를 혼자 갖는다.

늪의 급이 높아질수록 경험치도 높아진다. 4급 늪의 경험치가 20, 3급 늪이 100이고 2급 늪의 괴수를 공략하면 600의 경험치를 가진다. 10인의 파티를 구성하면 각 사람이 10분의 1씩을 갖게 되지만 그런 늪을 혼자서 공략할 수 있다면 혼자서 그만큼씩의 경험치를 얻는다. 3급 늪을 혼자서 공략할 수 있는 수준의 헌터라면 세 번의 레이드로 E급으로 승급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우가 경험치를 욕심내서 솔로 레이드를 한다는 건 자살 행위와 다름이 없었다.

재능 있는 사람에게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은 언제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써전은 지금 고통을 느꼈다. 써전은 지금, 자기 자식에게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돈이 없어서 키워주지 못하는 아버지가 된 심정이었다.

지우는 써전의 고뇌를 고스란히 이해했다. 그래서 더 이상 많은 말을 하지는 않고 희미하게 웃음을 지어 보이기만 했다. 써전이 자신의 일로 안타까워 해 준 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맙다고 생각했다.

“저요. 써전은 될 수 있겠죠? 저도 성과제로 계약을 하면 돈은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써전님이 저를 가르쳐 주신 것처럼 저도 하급 헌터들을 가르쳐 주고 싶기도 하고요.”

지우가 말했다.

어쩔 수 없이 목표를 낮추는 지우를 보면서 써전은 참담한 기분을 느꼈다.

“안지우씨라면 세계 최고의 써전이 될 겁니다. 그건 내가 보증할 수 있어요.”

써전이 말했다.

지우는 그걸로 됐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웃었다. 써전이 지우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강현과 이태인이 거의 동시에 늪으로 돌아왔다.

“이제 두어번만 나르면 되겠네요.”

써전이 말하자 모두들 마지막으로 힘을 냈다.

“오늘은 우리 팀도 회식이라는 걸 좀 해 볼까요? 내일은 주말이고 헌터들도 레이드를 많이 뛰지 않을 테니까 우리가 나서지 않는다고 해도 특별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써전이 말했다.

가장 신이 난 사람은 강현이었다. 강현은 팀에 들어온 것도 기분이 좋았고 그 팀의 써전이 서규태라는 것도 좋았고 그 팀에 지우가 있는 것도 좋았다. 이태인에 대해서는 아직 좋다, 나쁘다라는 감정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이태인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좋거나 나쁘거나 이태인은 곧 레이드를 하러 갈 사람이고 여기에서 오래 같이 있을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에 별로 신경이 쓰이지도 않았다.

그들은 서규태가 잘 안다는 호프로 자리를 옮겼다. 이태인에게도 차가 있었지만 강현과 지우는 서규태의 차에 탔다.

지우가 뒷자리에 앉아서 편하게 이동을 하는 동안 용하에게서 연락이 왔다.

“여보세요?”

지우는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그거 안지우놈 핸드폰이예요?

전화를 받자마자 용하가 대뜸 물었다.

“아니요. 잘못 거신 것 같네요. 이건 안지우'님' 핸드폰이거든요.”

-아, 그래요. 제가 잘못 걸었나보네요. 저는 안지우놈 친구님이라서 안지우놈한테 전화를 건거거든요. 혹시 지 친구에 대해서는 싹 잊어버린 안지우놈을 만나게 되면, 나한테 걸리면 죽을 줄 알라고 말 좀 전해주세요.

“아. 싫은데요?”

-너는 인마. 인간이 왜 그러냐? 세상에. 어떻게 연락을 한 번도 안 하냐?

지우는 오랜만에 용하의 목소리를 듣고 기분이 좋아져서 키득거렸다.

“친구면 불러요. 같이 봐도 되는데.”

써전이 말했다.

지우는 괜히 미안해서 두 손을 마구 저었다.

“아니예요. 나중에 따로 만나면 돼요. 괜히 저 때문에 불편하게 그러실 필요 없어요.”

“친구 만나야하는데 괜히 회식 하자고 그런 건 아닌지 모르겠네.”

써전이 말했다.

‘써전님은 원래 이런 캐릭터가 아닌데. 아까 하신 말씀 때문에 내가 속상할 거라고 생각해서 이러시나?’

지우는 써전의 과잉친절에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아서 어깨를 으쓱였다.

-왜?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있어? 전화 받기 불편한 모양인데 전화 끊을게. 네가 먼저 전화 좀 해, 이 자식아!

“어. 통화하는 건 괜찮아. 지금 이동 중이거든. 그리고. 내가 보고 싶으면 네가 먼저 전화하지?”

-내가 어떻게 그러냐? 너는 이제 헌터잖아. 네가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전화를 하겠냐?

“레이드하는 헌터도 아닌데 뭘. 바디 팩 나르고 늪 앞에 가서 대기하고 있다가 또 바디 팩 나르고 그러는 게 전부니까 아무 때라도 전화해도 돼.”

-아. 그래? 그럼 막 전화해도 되냐?

“당연하지.”

-바쁜 줄은 아는데 네 민간인 친구들도 좀 챙겨줘라. 소외감 느껴진다. 너는 내 베스트 프렌드였는데 갑자기 너 혼자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 버린 것 같아.

“왜 그런 말을 하냐, 너답지 않게?”

-꼭 나만 그런 기분을 느끼는 건 아닐 것 같아서. 천 대리님인가 하는 그 분. 연락은 자주 하고 있어?

“아직. 그러게. 정말 천 대리님한테 연락이라도 했어야 됐는데 그랬다.”

-그래. 그 분은 병원에 계시니까 안부 전화라도 자주 해드려. 나야 뭐. 나한테도 해 주면 좋고.

“왜 그래? 너 기분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냐?”

천대리님은 이미 퇴원했다는 말까지 하면 말대꾸만 한다고 할 것 같아서 그 말은 하지도 않았다.

-그런 건 아닌데. 나는 내 베프가 헌터가 되면 좋을 줄 알았는데 네가 다른 세상에서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이상해. 심심하다고 찾아갈 집도 없어졌고 아무 때나 막 전화하기도 그렇고.

“뭐가 달라졌다고 그래? 비밀번호도 그대로니까 오피스텔은 언제든지 와도 되고 앞으로는 주말에 시간 낼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얼굴 자주 보고 그러자. 신경 못 써서 미안하고.”

-미안한 줄 알면 됐다. 천 대리님한테 안부나 전해드려라.

“저는 천대리님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긴 하지. 너무 떠들었나보다. 다음에 연락해. 수고하고.

“그래. 수고.”

전화를 끊으면서 지우는 자기가 그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너무 무심했다고 생각했다.

강현은 본의 아니게 통화 내용을 들었다는 듯이 씩 웃었다.

“그렇게 되더라고요. 일반인들하고는 어쩔 수 없이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 같아요. 레이드까지 하게 되면 더 그럴 것 같아요. 위험한 일을 하게 되는 건데 그런 일들을 가족들한테 미주알 고주알 다 말하기도 그렇잖아요.”

“그렇긴 하겠지.”

“헌터들끼리야 서로 얘기를 하면 그게 정보가 되고 도움이 되지만 일반인들은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갭을 느끼는 것 같거든요. 우리가 힘들다는 말을 해도 기본적으로 바탕에, ‘그래도 너는 잘 벌잖아.’ 이런 인식 같은 게 깔려있는 것 같기도 하고. 무슨 일이 생기면 헌터들한테 자꾸 바라게 되는 것 같고.”

“그런가? 나는 아직 그런 일은 안 당해봐서.”

“전화해야 되는 것 아니었어요? 저는 신경쓰지 말고 전화하세요.”

강현이 말했다.

“그래? 그럼 전화 한 통만 빨리 할게.”

지우는 다시 또 미뤘다가는 언제 기회가 생길지 몰라서 생각난 김에 천기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천기정은 집이라면서 전화를 받았다. 그는 지우에게 헌터 생활에 적응은 잘 하는지 묻고, 병원에서 받아온 약을 먹었더니 자꾸 졸려서 잠만 자게 된다는 말을 했다. 지우는 조만간 찾아가겠다고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천기정의 목소리가 건강한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전화를 끊으면서 문자가 들어와 있던 게 있어서 확인해보니 바디 펌에서 입금이 되어 있었다.

72만원이었다.

“써전님. 요즘에는 일당이 자꾸 더 들어와요.”

지우가 말하자 강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써전님이 받으셔야 하는 걸 자꾸 떼 주시는 거 아니예요?”

강현이 물었다.

“앞으로 돈 쓸 일이야 여러분이 많겠지 내가 많겠습니까? 여러분은 장비며 무기도 사야 되고 갑옷도 사야되고 돈 들어갈 일이 많을 텐데. 그리고 여러분이 받아야 할 돈을 넣은 거니까 새삼 고마워할 필요도 없어요. 나도 챙길만큼은 챙기고 있으니까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써전은 태연하게 말했다.

“다른 써전님들은 이렇게 안 하지 않나요?”

강현이 물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는 관심 없어요. 인연이 닿는 동안은 서로한테 도움 주면서 잘 이어나갔으면 좋겠다는 게 전붑니다.”

써전이 말했다.

약병을 찾아다 준 후에 벽이 허물어진 것 같다고 지우는 생각했다.

그리고 회식 자리에서 알게 된 몇 가지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써전은 약 때문에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거였고 이태인은 술을 조금만 마셔도 개가 된다는 사실이었다.

강현은 스무 살이 될 때까지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엄마에게 약속을 했다면서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네 사람 중에 술을 마신 건 이태인뿐이었고 강현은 이태인의 뒤치다꺼리를 해야했다. 이태인은 다행히 마지막에 집중력을 발휘해서 자기 누나를 불러냈다.

“누나. 나 좀 데리러 와 줘야겠어.”

이태인은 유언이라도 하듯이 장렬히 그 말을 남기고 정신을 잃었고 이십 분 정도가 지났을 때 이태인의 누나인 이태림이 도착했다.

한 눈에 봐도 이태인보다도 큰 키에 시원하게 뻗은 다리가 인상적이었다. 조그만 얼굴에 커다란 눈,코,입이 신기하게도 전부 다 들어가 있었다.

이태림은 테이블 위에 쓰러져있는 자기 동생을 발견하고 다가와서 써전과 일행들에게 인사를 했다.

“죄송합니다. 얘가 이런 앤줄 모르신 모양이예요. 다음부터는 얘랑 술 마시지 마세요. 안 그러시는 게 좋아요.”

그러더니 이태인의 스마트폰을 챙겼다. 뭘 하려는 건가 하고 보고 있었더니 연락처 목록에서 자기 번호를 삭제해 버렸다.

“술만 마시면 나한테 전화를 해서 귀찮아 죽겠어요. 술도 못 마시는게. 아휴.”

‘아. 그런 거였어?’

지우는 혼자 웃다가 이태림과 눈이 마주쳤다.

“태인이한테서 말은 많이 들었는데. 텐텐 맞죠?”

‘아, 또 그 놈의 텐텐.’

분위기를 잡아볼까 했던 마음이 쏙 들어가버렸다.

다 너 때문이라는 표정으로 타투를 노려보는데 신기하게도 차크라 숙련도가 올라가 있었다.

헌터 등급 - F

경험치 : 0/300

공격력 : 10

방어력 : 10

차크라 등급 - 6

차크라 숙련도 : 34%

능력치 증폭률 : 0%

“어?”

아무리 봐도 오르는 것도 없이 늘상 그게 그거라서 확인을 안 한지 꽤 되었는데 소리도 없이 차크라 숙련도가 올라 있었던 것이다.

지우는 강현의 팔을 잡아다가 강현의 타투를 확인했다.

헌터 등급 – F 딜러

경험치 : 0/300

공격력 : 200

방어력 : 50

차크라 등급 - 6

차크라 숙련도 : 6%

능력치 증폭률 : 0%

“왜 그래요, 형?”

강현이 물었다.

“차크라 숙련도가 처음에 얼마였어? 처음에 나랑 만났을 때.”

“네? 어? 올랐다!”

6%가 오른 거라고 했다.

지우는 34%나 올라 있었다.

지우와 만났을 때 몇 퍼센트였는지는 모르지만 어쨌건 차크라 숙련도의 상승 속도는 지우가 월등하게 빠르다는 게 확실했다.

지우는 내친 김에 이태인의 타투도 확인했다.

헌터 등급 – F 딜러

경험치 : 0/300

공격력 : 200

방어력 : 50

차크라 등급 - 6

차크라 숙련도 : 2%

능력치 증폭률 : 0%

‘2%?’

그런 이태인은 곧 레이드를 한다고 했다. 차크라 등급은 똑같이 6등급이고 차크라 숙련도가 2%인데도. 갑자기 온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지우는 다시 제 타투를 보았다.

'34%'

새롭게 생긴 숫자가 의기양양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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