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부터 레벨업-20화 (2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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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성

강현에게 전화를 해 보니 강현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보너스를 줄 때도 있거든요. 월등하게 많이 나르면.”

강현은 별 게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57만원어치를 나른 폐해는 바로 나타났다. 다음 날 이태인은 아예 나오지 못했고 강현은 저녁이 다 되어서야 나왔다. 결과적으로 나오나 마나 도움은 거의 되지 않았다.

하급 헌터가 펑크를 내는 건 보통 문제가 아니었고, 하급 헌터가 제 시간에 나오지 않아서 일정에 차질이 생기면 바디 펌이 공대장에게 위약금을 물어야 했다. 그것은 금전적인 손해의 문제만이 아니라 바디 펌이라는 기업의 신뢰와도 직결되는 문제였다. 그 책임을 최종적으로 지는 것은 바디 펌이 되겠지만 서규태처럼 팀을 데리고 다니면서 일을 하는 써전에게는 패널티가 더 컸다. 하급 헌터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라는 이유를 대고 바디 펌은 자기들이 공대장에게 물어야 할 위약금을 써전에게 청구했다.

위약금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자존심 문제였다. 하지만 서규태는 그 사태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새였다.

“위약금 그거 뭐. 내면 되지. 신용? 애초에 신용 따위는 있었던 적도 없었고요.”

걱정하는 지우에게 간단히 그렇게 말해버렸던 것이다.

“지금이라도 사람을 구해보지 그러세요?”

오히려 지우가 더 급해져서 말했지만 서규태는 오히려 지우를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정말로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 가장 이상하게 굴고 있는 사람은 지우였다. 이태인과 김강현이 책임감 없게 굴고 있는 게 아니었다.

김강현은 그나마 아침에 전화를 해서 오늘 제 시간에 나가지 못할 것 같다고 얘기라도 했지만 이태인은 그마저도 하지 못했다. 지금쯤 이태인은, ‘아, 아침이다. 일어나야 되는데. 근데 너무 졸려. 조금만 더 자야지.’라는 고민조차도 없이 내리 자고 있을 것이다. 자기가 잠든지 두어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서규태가 노린 바이기도 했다. 그는 지우의 차크라 양을 알아보고 싶었다. 그런데 지우만 몰아붙일 수는 없어서 셋을 똑같이 몰아붙였다.

괴수의 사체를 운반 하는데도 차크라가 사용된다. 레이드를 하는 헌터들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차크라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하급 헌터들에게는 그게 그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지지를 받을 수 없을 뿐이지, 사체 운반에 차크라가 더 많이 쓰인다고 우길 하급 헌터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어쨌든 서규태는 지우의 차크라 양을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전 날, 지우와 다른 하급 헌터들이 나르는 바디팩의 중량을 일부러 다르게 맞추었다. 원래는 하나의 중량을 100킬로그램씩으로 맞추지만 전 날은 120킬로그램으로 맞추었던 것이다.

세 명의 하급 헌터 모두 처음에는 바디 팩이 무겁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이내 거기에 적응이 되었는지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바디 팩을 날랐다. 가장 먼저 신호가 나타난 것은 이태인이었다. 그래도 이태인은 대단한 근성으로 버텼다. 남보다 잘 하고 싶다는 마음도 없지만 남보다 뒤처지는 것도 싫어하는 성격 때문에 이를 악물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버렸을 것이다. 그렇게 하룻동안 몸을 불사른 덕에 지금은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는 것도 모르고 계속 자고 있는 것이겠지만.

김강현은 차크라 운용 스킬을 꽤 터득한 상태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잘 버티고 애초의 한계를 넘는 중량의 바디 팩을 날랐다. 그래서 서규태가 일당에 임의로 7만원씩을 더 채워줬지만 그날의 여파로 두 사람이 하루를 공친 걸 생각하면 더 넣어줬어야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우는 왜 다른 사람들이 나오지 않았는지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그런 얼굴로 써전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가 하는 데까지 해 보겠다고 말하고 나섰고, 서규태와 단 둘이 늪에 들어간 후에는 서규태가 딴 짓을 하지 못하게 하면서 바로 해부를 시작하게 했다. 그러고는 옆에 딱 붙어 선 채로 서규태가 괴수 사체를 절단해서 바디 팩에 넣는 족족 늪 밖으로 날랐다.

다른 때와 거의 비슷한 시간이 걸렸지만 지우가 혼자서 세 사람 몫의 일을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었다.

“하나는 늦지 않게 끝냈네요. 강현이라도 얼른 나오면 좋겠는데요.”

땀을 닦으면서 지우가 말했다.

서규태는 이 상황을 정확하게 해석하지 못한채 고개만 끄덕였다.

차를 타고 다른 늪으로 이동하는 동안 서규태가 운전을 하는 사이에 지우는 정신없이 곯아떨어졌다. 하지만 레이드가 끝난 늪에 도착해서 흔들어 깨우면 발딱 일어서서 멀쩡하게 돌아다니며 바디 팩을 날랐다.

그 날의 마감 때는 희한한 풍경이 연출되었다. 서규태의 차 안에는 좀비 같은 모습을 한 강현과, 목이 뒤로 꺾어지는 것도 모르는 채 잠든 지우가 있었다.

서규태가 바디 펌에 패널티를 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태인에게서는 연락도 없었다. 이태인은 저녁에 한 번 잠에서 깨고 놀라기는 했지만 곧 다시 잠이 들었다.

이태인이 놀란 이유는 간단했다. 꽤 오래 잤는 줄 알았는데 아직 저녁이라서 놀란 것 뿐이었다. 그래서 조금 더 잘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이불을 목까지 끌어 덮었다. 그랬으니 다음 날 피자 가게에서 사람들을 다시 만났을 때 미안한 표정을 지을 이유가 없었다. 한동안 이태인은 자기가 하루를 통으로 날려버렸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지냈다.

써전과 지우의 합의에 따라, 두 사람이 나오지 못한 날은 다른 하급 헌터를 급하게 고용해서 일을 시킨 것으로 말을 해놓았다. 지우가 가진 이상한 차크라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알게 해서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우를 향한 써전의 의문은 점점 커져가기만 했다.

***

지우는 이제 노트 하나를 준비해서 자기가 만나게 되는 괴수에 대한 정보를 기록했다.

처음에는 같은 괴수가 나오면 그냥 넘어갔는데 이제는 같은 괴수라고 하더라도 어떤 공격을 받고 죽었는지 그런 것들을 살펴보게 되었다.

“가시 삵은 많이 봤을 겁니다. 그런데 이번 사체는 좀 특이할 거예요. 레이드 시간이 굉장히 짧았거든요. 보통 5급 괴수들에 대한 레이드가 여덟 시간 정도 걸리는데 이번 레이드는 세 시간이 걸렸어요.”

써전은 이번에도 서두르는 기색이 없이 하급 헌터들에게 괴수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똑같은 가시 삵의 사체라고 하더라도 전혀 다르게 보였다.

“그동안 가시 삵의 사체를 여러 차례 봐 왔을 겁니다. 헌터들은 사체 운반 하는 일을 허드렛일이라고 여기면서 시간이나 떼우고 돈이나 받겠다는 생각으로 버티곤하죠.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도 엄청나게 많아요.”

써전이 말했다.

유독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 하지만 사실은 그와 반대였다. 통증이 유달리 심해지는 바람에 약을 먹었더니 기분이 묘하게 붕 뜨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래서 써전은 다른 날보다 말이 많아졌다. 지우에게 과하게 친절하게 굴기도 했다. 지우로서는 더할 나위없이 고마운 상황이었다.

써전은 가시 삵의 급소가 어딘지, 직접 공격 받은 곳들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에이스라면 처음부터 여기를 노릴 겁니다. 그러면 그 후에 공격을 하는 것도 쉽고. 처음에 어떻게 풀어 가느냐 하는 게 아주 중요하죠. 급소를 알아놓는 건 가장 중요해요. 하지만 헌터가 무지막지하게 강해진다면 상대의 급소를 알아낼 필요도 없죠.”

써전의 말에 지우는 호기심을 느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상대를 확실하게 죽여버리면 되는 거니까요.”

“상대를 확실하게 죽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강현이 물었다.

“목을 잘라내버리면 되죠. 심장을 정확하게 겨냥해서 찌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심장은 개체마다 조금씩 다른 곳에 위치할 수도 있거든요. 사람이라고 해도 그렇죠. 어떤 사람의 심장은 왼쪽에, 어떤 사람은 오른쪽에 위치해 있어요. 어정쩡하게 가운데에 위치하는 일도 있고요.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런 경우가 존재하기도 하거든요. 그러니까 애초에 심장을 겨누는 것보다 목을 잘라버리는 게 좋습니다.”

“으윽.”

강현이 얼굴을 찡그렸다.

"괴수는 공격을 받아도 무서운 회복력으로 곧 상처를 회복합니다. 칼로 베고 나도 몇 초도 안 돼서 그 자리가 곧 아물죠. 하지만 급소를 공격받고 치명상을 입으면 제아무리 괴수라고 하더라도 회복을 하는 데 몇 분 정도가 소요됩니다. 그때, 괴수가 무방비한 틈을 타서 근딜과 원딜 모두 집중 공격을 할 수가 있게 되는 거죠."

써전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모두들, 언젠가 레이드를 할 거라는 생각으로 이 시간을 버텨나가고 있을 텐데. 차크라를 사용하는 훈련을 하다가 한계에 부딪치는 때가 올 겁니다. 무기 없이 하면 당연히 그 과정이 와요. 자기한테 맞는 무기를 사용해서 무기에 차크라를 흘려넣어서 괴수를 찌르는 연습을 하면 도움이 될 겁니다.”

써전이 말해 주었다.

혹시 그건 사체 절단을 일일이 혼자 다 하는 게 귀찮아서 훈련을 가장해서 일을 시키려는 게 아니냐고 묻고 싶었지만 지우는 입을 다물었다. 설사 그런 이유라고 하더라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대단한 무기를 구하라는 건 아닙니다. 익스트림 헌터에서 무기를 사오라는 뜻도 아니예요. 차크라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냥 단순한 무기를 가지고도 차크라의 힘으로 그걸 진짜 무기로 만들 수 있어야 하는 거거든요.”

처음에는 그 말이 별로 와 닿지 않았다. 대단한 게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헌터는 일반인에 비해서 체력이 월등해지고 일반인이 할 수 없었던 일을 손쉽게 해내기도 한다. 그것이 헌터 치안대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헌터가 작정을 하고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치기로 마음을 먹는다면 일반인은 헌터를 잡을 수 없다. 그런 헌터를 잡기 위해서 헌터로 구성된 치안대라는 조직이 필요했다. 헌터가 아니면 헌터를 잡을 수도, 제압할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헌터가 되고 나서 칼을 들고 거기에 차크라까지 흘려 넣은 채로 누군가를 찔러본 적은 없었지만 지우는 막연히 그게 쉽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써전의 표정은, 그게 아무 것도 아닐 것 같지? 라고 묻는 것 같았다.

“이 늪에서도 시간이 꽤나 남을 것 같으니까 한 번 해 보는 것도 괜찮겠네요. 이태인씨부터 해 보겠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써전은 자신의 칼을 선뜻 이태인에게 빌려 주었다.

“차크라를 칼에 흘려 넣는 겁니다.”

이태인이 칼을 받아들자 써전이 말했다.

그렇게 말로 하는 것은 쉬웠다. 하지만 이태인은 괴수의 사체를 찌르지 못했다.

“잘라내지는 못해도 흔적이라도 남겨본다는 생각으로 해 보세요.”

써전이 아무리 격려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태인은 자기가 괴수의 사체에 칼자국조차 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완전히 충격에 빠진 얼굴이었다. 자신의 실력이 어떤지도 모르고 그동안 레이드를 하겠다고 깝치고 다녔던 게 새삼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 다음에는 누가 해 볼 거죠? 김강현씬가요?”

써전이 물었다.

강현은 뒤로 빠지고 싶었지만 별 수 없이 칼을 받았다. 강현은 지금까지 항상, 자기에게 아직 시간이 많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내오고 있었다. 지금은 레이드를 하고 싶어도 나이 제한에 걸려서 할 수 없는 거라고 자위하면서, 자기가 레이드를 하지 않는 건 순전히 그 제약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실전에 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차크라 훈련은 그동안 꾸준히 해 왔고 무기에 차크라를 흘려 넣는 연습도 해 왔다.

레이드를 할 수 없는데 누군가를 찌르거나 베 볼 경험은 당연히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게 이렇게까지 탁 막힐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강현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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