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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성
차크라만 해도 그렇다. 강현은 지우와 같이 일을 하는 동안 자기가 열등한 것 같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다. 이태인이 아니었으면 몇 번이나 쓰디쓴 좌절을 맛보았을 것이다. 다행히 옆에 이태인이 있어주었기에 강현은 자기가 여전히 평균보다 웃도는 수준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우는 괴물 같았다. 헌터들에게는 저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차크라의 양이 있었다. 하지만 강현은 지우를 만나기까지 차크라의 양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헌터는 차크라 숙련도를 높여서 차크라 등급을 높인다. 그러면 그 등급에 따라서 공격력과 방어력이 높아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강현이 차크라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그 정도였다. 그는 헌터의 차크라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넘어서서 차크라의 ‘양’에 대해 이해해 보려는 시도는 해보지 않았다. 헌터가 차크라를 소진하면 그것이 다시 채워질 때까지 회복하는 기간이 필요했다. 조금 다른 의미겠지만 딜을 할 때의 재충전도 마찬가지다. 괴수에게 차크라를 사용해 공격을 할 때 재장전을 위한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헌터가 계속 싸울 수 있도록, 순간적으로 소모된 차크라를 다시 채우는데 필요한 시간이다.
레이드를 하는 F급 딜러가 차크라 등급과 무기의 공격증폭률이라는 지원을 받지 못한 채 200이라는 기본 공격력을 가지고 싸운다면 그 헌터는 한 번의 공격으로 괴수에게 200의 데미지를 줄 수가 있다.
그때 보통의 원거리 딜러들은 재충전에 20초라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면 딜러가 괴수에게 한 시간동안 공격을 해서 입힐 수 있는 데미지는 180회의 공격으로 인한 36000이 한계다. 근접 딜러는 원거리 딜러보다 세 배 정도의 데미지를 더 가하게 된다고 러프하게 계산이 된다. 재충전에 약 7초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늪에 입장할 수 있는 헌터의 수가 열 명으로 제한되기에 헌터를 무제한 투입할 수는 없다. 그렇다보니 그 열 명의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레이드 시간이 길어지기도 하고 짧아지기도 한다. 5급 늪에서는 보통 한 명의 탱커와 두 명의 근딜, 일곱 명의 원딜이 싸운다. 경우에 따라 탱커가 없이 딜러들만 들어가서 공격을 하기도 한다. 상급 헌터들이라면 가능한 일이다. 근접 딜러와 원거리 딜러는 무기를 바꾸면 포지션을 바꿔서 싸울 수 있다. 하지만 일단 포지션을 정하고 늪에 들어가면 안에서 바꾸는 일은 거의 없다. 정산시에 까다로운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5급 늪에 있는 괴수의 체력이 300만일 때 특별히 경력없는 헌터가 낀 공격대라고 해도 무리없이 괴수 사냥에 성공을 한다. 그런 헌터가 끼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뿐이지 레이드의 성패가 좌우되는 수준은 아니다.
딜러 중에 E급, D급이 끼어 있으면 시간은 더 단축될 수가 있고 차크라 숙련도와 공격증폭률의 지원까지 받으면 서너 시간만에 레이드를 끝낼 수도 있다. 하자고 들면 솔로 레이드도 불가능할 것은 없다.
강현이 생각하는 부분은 그 부분이었다.
‘지우 형에게 재장전 시간이 필요없다면.’
하지만 그런 일이 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다. A급 헌터라고 하더라도 재장전 시간은 필요하다.
‘지우 형은……. 뭘까?’
그런 궁금증은 어느새 기대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처음에는 솔직히 지우의 낮은 스텟 때문에 속으로 지우를 얕잡아 보기도 했지만 이제 그런 마음은 전혀 없었다. 솔로 레이드까지는 당연히 어렵겠지만 어떻게든 레이드에 끼기만 하면 지우가 한 사람 몫을 해 낼 거라는 것은 이제 의심하지 않았다.
강현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써전은 먼저 괴수에게 다가가서 괴수의 사체를 살폈다.
"흐음. 재미있네."
그렇게 혼잣말을 한 써전은 해부를 하기에 앞서 괴수가 입은 치명상을 보여 주었다.
“이런 사체는 잘 봐두면 공부가 많이 될 거예요. 이건 정말 기록적인 시간만에 레이드를 끝낸 케이스거든요.”
써전이 지팡이로 괴수의 무릎과 턱 아래를 짚어 보였다.
“두 곳에 난 상처가 거의 비슷하죠? 같은 무기일 겁니다. 동일한 헌터가, 이어지는 동작으로 공격을 했다고 봐도 좋을 거예요. 먼저 무릎을 공격했겠죠. 요코는 그 첫번째 공격을 받고 앞으로 쓰러졌을 겁니다. 이게 요코인 건 알죠?”
써전은 자기가 혹시 학생들의 수준을 과대평가하고 너무 많은 부분을 스킵한 건가 하면서 강현과 지우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자기는 지금 이태인을 가르치는 포지션을 취하는 중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태인을 바라보았다.
세 사람은 거의 동시에 요코라고 이름을 되뇌고 있었다.
“전에는 잘 발견되지 않았던 개첸데 요즘에 많이 발견되고 있어요. 일본 애들이 먼저 발견하고 이름을 붙여서 요코라는 이름을 계속 쓰고 있는 거고.”
써전이 설명해 주었다.
“용케 정보를 공유할 생각을 했나보네요?”
지우가 물었다.
“이런 건 어차피 시간이 늦건 빠르건 다들 알게 되는 정보니까 자기들이 학계에 공헌을 했다고 뻐기기라도 하고 싶었던 거겠죠. 실익이 없으면 절대로 정보를 공유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써전이 그렇게 설명하자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일단 무기는 절삭력이 아주 뛰어난 단도였을 겁니다. 이 괴수를 해치운 헌터가 누군지 개인적으로 궁금해지기는 하네요. 이렇게 짧은 칼을 쓰는 사람은 현실에서 대인관계를 할 때도 좀 과격한 면이 있죠. 오래 생각하지 않고 기회가 생기면 바로 노리고 달려드는 스타일이고 겁이 없어요. 이만한 칼을 들고 상대 앞에 섰다. 그러면 거리도 두지 못하고 끝까지 몰아붙여야 공격할 수 있는 거거든요. 활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이랑은 마음가짐 자체가 다르지.”
써전은 지우를 바라보다가 이태인을 보았다. 어느 순간부터 이태인은 써전이 두는 시선의 종착역쯤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내 생각에는 이런 식으로 공격을 했을 것 같은데.”
써전은 몸을 웅크리고 이태인의 무릎을 노리다가 이태인의 무릎을 치면서 이태인의 어깨를 잡아 아래로 끌어내렸다.
“무릎을 공격당하고 거의 본능적으로 요코가 몸을 구부리거나 앞으로 쓰러졌을 텐데 그때 우리의 헌터가 바로 이어지는 연속 동작으로 목을 노렸을 겁니다. 어디. 방향을 보자. 음. 거의 맞네. 무릎을 베고 칼을 바꿔잡고 바로 목을 찌른 겁니다. 요코는 엄청난 고통을 느끼면서 쓰러졌을 거고 그때 다른 딜러들이 일제히 공격을 퍼부었겠죠. 다굴. 다굴. 다른 사람들의 민첩성에도 점수를 줄 수는 있겠죠. 1점 정도씩? 나는 이 헌터가 궁금하군요. 싸우려면 이렇게 싸워야죠.”
“딜러가 아니라 탱커였을 것 같아요.”
강현이 말했다.
“나도 그쪽으로 무게가 쏠리네요. 어디보자. 1분 있다가 해부를 시작할 거니까 더 봐 둘 게 있으면 빨리들 봐 둬요.”
써전은 일정이 어긋나지 않게 하려고 하급 헌터들을 재촉했다. 지우는 괴수의 사체를 분석해서 써전이 괴수를 공격한 헌터에 대해서 추리를 하는 것을 보고서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이건 부검 수준이네요.”
“한 두 번 레이드 해 본 것도 아닌데요, 뭘. 무기도 이런 것 저런 것 많이 봐 왔고.”
써전은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말했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본의 아니게 ‘부검’까지 하는 바람에 시간을 많이 허비했지만 서규태는 더욱 집중해서 해부를 했다. 다행히 그렇게 큰 개체는 아니어서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았다.
지우는 써전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칼을 잡는 손 모양을 따라했다. 써전이 뒷걸음질을 칠 때는 자기도 가만히 뒷걸음질을 따라했다. 써전은 지우가 그러는 것을 눈치챘지만 아는 척을 하지는 않았다.
원래는 써전이 절단을 전부 끝내고 바디 팩이 전부 채워진 후에야 운반을 시작하곤 했다. 남보다 먼저 일을 시작할 필요도 없고 하루에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필요도 없어서였다. 그러나 이 팀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써전이 조금씩 그들에게 신경을 써 주는 상황이었고 써전에게서 배우는 것이 나중에 실전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세 사람은 어떻게든 써전에게 더 배우고 싶어했다. 그러려면 늪에서 사체 운반을 하는 시간을 단축해야 했다.
특히나 써전이 성과제로 보수를 받는다는 것을 들은 후에는 더욱 열심이었다.
써전이 바디팩에 괴수의 사체를 옮겨 담아 놓는 족족 하급 헌터들은 그것을 늪 밖으로 운반했다. 그렇게 해서 애초에 예정하고 있던 시간보다 시간이 많이 남으면 휴식 시간을 갖거나 보충 수업을 하기도 했다.
괴수가 사라진 늪이라고 배울 게 없는 것은 아니었다. 써전은 맵에 대해서 알려주기도 했다.
“늪마다 맵의 크기가 달라요. 늪 아래의 환경도 다르고. 요코라는 개체가 나타나는 모든 맵이 같은 환경인 것도 아니예요. 맵이 크면 당연히 레이드도 까다로워집니다. 하지만 괴수를 지치게 만들 수도 있죠. 위기는 기회예요. 헌터한테 불리한 건 괴수한테도 불리할 수가 있는 거죠."
써전이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다면 말만 번드르르하다고 생각하면서 반감을 가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서규태가 하는 말은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이미 어떤 상황이 주어졌다면 그걸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아내는 게 도움이 되죠. 이 맵의 경우에, 지형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 전략을 세울 수도 있어요.”
써전의 입에서 나오는 정보 중에는 놓칠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하급 헌터 세 사람은 서로 땀냄새를 지독하게 풍기면서도 써전의 가까이에 달라붙어서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기울였다.
“퀘렌시아라는 게 있습니다. 투우와 투우사가 싸울 때 투우가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도망치는 공간이죠. 투우의 입장에서 퀘렌시아는 재충전을 하는 중요한 공간입니다. 그곳에서의 휴식으로 투우는 다시 싸울 힘을 얻죠. 반대로 투우사의 측면에서 보자면.”
“퀘렌시아에 있는 투우를 공격하면 되겠군요. 방심하고 있을 테니까요.”
강현이 말했다.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네. 맞습니다. 일단 싸움의 상대로 붙으면 동정은 금물이죠. 맵을 익혀두면 괴수의 퀘렌시아를 찾을 수 있어요. 숨을 고르면서 괴수가 어디로 가는지, 어느 곳에서 편안함을 느끼는지 알아낼 수 있으면 그걸 이용할 수 있는 거죠.”
그렇게 말하고 써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요코의 퀘렌시아는 저기였겠네요.”
써전이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써전이 가리킨 곳에는 유달리 움푹 패인 자국이 많았다.
“멈춰있던 상태에서 도약을 시작한 흔적들이죠. 저기에 저런 게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건, 요코가 저곳에서 편안함을 느꼈다는 뜻일 거예요. 습관적으로 몸이 저곳으로 향했을 겁니다. 나한테 내가 쉴 수 있는 10초가 생긴다면 어디에 서고 싶은가. 괴수의 입장에서 자주 생각해 보는 게 좋아요. 그럼 슬슬 나가봅시다.”
써전이 먼저 퇴장을 하는 동안 하급 헌터들은 요코의 퀘렌시아를 마지막으로 한 번씩 더 살피고 늪을 떠났다.
"패인 자국을 보세요. 장난 아니예요."
강현이 말했다.
대단한 힘이 느껴졌다.
"어서 가자. 해치워야 할 늪들이 아직 많으니까."
지우가 말했다.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과외를, 돈을 받아가면서 받고 있는 시스템이었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지루해 할 틈도 없이 하루를 마쳤다. 헤어질 때는 서로가 잘 가라고 손을 들어 인사할 기력도 남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즐거웠다.
일과를 마치고 입금된 금액을 습관적으로 확인하던 지우는 57만원이 입금된 걸 알았다.
모든 보너스에는 이유가 있다.
미리 지급된 것이든, 나중에 지급된 것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