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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16화 (16/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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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성

일당제이기는 하지만 괴수 사체를 많이 처리한 팀에는 보너스가 나왔다. 그렇지 않다면 대충 시간만 채우려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다.

해부가 끝나면 써전은 사체를 균일한 중량으로 절단해서 바디 팩에 담아 하급 헌터들이 늪 밖으로 나를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했다. 경험이 부족한 써전들은 괴수 사체를 절단하고 일일이 저울에 재서 바디 팩에 옮겨 담았지만 숙련된 써전들은 눈대중과 감으로 매번 정확하게 중량을 맞추었다. 귀신같은 솜씨였다. 어떻게 하는 건지는 써전 자신도 알지 못했다. 이 정도로 잘라야겠다고 생각해서 자르고 나면 정확한 중량이 나왔다.

서규태는 수많은 써전들 중에서도 에이스였다. 원래는 서규태에게도 정해진 팀이 있었다. 매번 함께 일하던 세 명의 하급 헌터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그 팀에 문제가 생겨 팀이 와홰되고 말았다. 서규태의 팀에 있던 세 명의 하급 헌터 중 한 사람이 여자였다. 셋이라는 숫자는 갈등을 부르는 수라고 하지 않았던가. 결국 뻔한 이유로 팀이 깨졌다. 커플이 생성됐다가 소멸되면서 팀까지 와해된 것이다.

중년의 서규태는 정작 로맨스에는 껴보지도 못하고 팀원들을 잃었다. 지우에게는 천우신조였다.

서규태의 팀이 때맞춰서 깨지지 않았다면 지우는 어리버리한 써전과 일을 하면서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른 헌터들은 실컷 일자리를 구해놓고도 써전의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공치게 되는 일도 있었는데 성실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서규태와 함께라면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지우는 자신과 함께 사체 운반을 맡게 된 하급 헌터 허무영, 김강현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허무영은 처음부터 지우에게 적대적이었다. 지우보다는 두 살이 어렸고 일에 좀처럼 의욕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허무영은 노골적으로 지우의 타투를 바라보고 대놓고 비웃었다.

김강현과 써전도 지우의 타투를 신기해하기는 했지만 두 사람은 슬금 슬금 곁눈질로 훔쳐봤지 대놓고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허무영은 달랐다. 애초에 허무영은 남의 기분을 살필 줄 아는 사람이 아니었고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었다.

“허. 거 참.”

허무영은 지우의 타투를 보면서 별 일을 다 본다는 식으로 몇 번이나 그런 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불편한 표정을 짓는 사람은 김강현 뿐이었고 써전은 허무영을 제지하지 않았다.

지우는 앞으로 분위기가 어떨 거라는 게 대충 상상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크게 괴롭지는 않았다. 이런 거야 거저 먹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어느 조직에 가든 싫어하는 사람, 시기하는 사람, 무시하는 사람은 수도 없이 생겨났다. 그때마다 그런 사람들의 반응 때문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지우는 그저 자기 일만 묵묵히 해 나갈 생각이었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써전이 약을 과하게 먹지 않아줬으면 한다는 것 정도였다.

간단히 이름과 나이를 말하는 것으로 소개를 마치고 네 사람은 늪으로 들어갔다. 써전과 김강현이 먼저 들어갔고 그 다음이 지우의 차례였다. 지우는 처음으로 늪에 들어간다는 사실 때문에 저도 모르게 긴장을 했다.

“안지우씨. 기본 스텟이 텐 텐인데 안으로 들어가다가 허리에서 갑자기 딱 멈추는 건 아니예요? 그런 채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나가지도 못하게 되는 거 아닌가?”

허무영이 이죽거렸다. 지우는 자기가 그런 부류의 사람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삶을 나아지게 하려는데는 전혀 흥미가 없고 그저 만만한 상대를 골라서 괴롭히는데에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은 마치 도로 위에서 함부로 달리는 자동차와 같아서 그런 사람을 만나면, 확실하게 밟아줄 힘을 갖게 될 때까지는 조용히 무시하고 피해버리는 게 상책인 거라고 지우는 마음을 정했다.

허무영은 원래 자기 차례가 아니었지만 지우를 밀어내고 자기가 먼저 늪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지우는 그렇지 않아도 긴장이 된데다가 혼자만 남겨지니 부담감이 더 해졌다. 그래서 입을 꽉 다물고 숨을 참으면서 서둘러 늪 안으로 들어갔다.

늪 아래는 완전히 다른, 전혀 새로운 세상이었다. 초보들은 늪 아래에도 물이 가득 차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지우가 그랬던 것처럼 숨을 가득 들이마시고 호흡을 참는다.

지우는 써전과 김강현이 자연스럽게 호흡하는 것을 보았다. 먼저 들어갔던 허무영이 지우를 따라다니면서 몇 번 더 도발을 했지만 지우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재미없다는 듯이 휘적휘적 걸어가버렸다.

가만 보니 아무도 허무영을 상대해 주지 않았다. 써전도 마찬가지였다. 운이 좋다면 다음부터 서규태의 팀에서 허무영을 보는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늪에 들어와 본 건 이번이 처음인 거죠?”

김강현이 물었다.

열 아홉 살의 어린 녀석이었지만 그래도 지우보다는 경험이 많다고 지우를 챙겨주려고 했다.

“네.”

지우는 어린 선배가 귀여웠지만 일단은 말을 높였다.

“아이구. 말 놓으세요. 저보다 한참 형이신데.”

“그래도 선밴데 그럴 순 없죠.”

지우는 늪 아래의 환경에 슬슬 적응을 하면서 말했다.

“그러면 불편해서 안 돼요. 계속 그러시면 말 안 할 거예요.”

“그래? 그렇다면. 알았어.”

지우가 말하자 김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 들어온 늪이 얌전한 곳이라서 다행이예요. 운이 좋으시네요. 괴수가 죽은 후에는 모든 늪들이 거의 이렇게 얌전하지만 이상한 곳도 있거든요. 늪 아래의 세상이 다 이렇지는 않아요. 용암지대도 있고 사막지대도 있고 산악지대도 있어요. 저는 본 적이 없는데 빙하지대도 있대요. 상상을 초월하는 곳들이 많은 모양이더라고요.”

“그래?”

김강현의 말을 듣고 보니 운이 좋긴 좋은 것 같았다. 지우가 들어간 늪 아래의 공간은 초가을의 시골 풍경을 하고 있었다.

“써전님이 해부를 하시는 동안에는 우리는 특별히 할 일이 없어요. 해부를 하시는데 30분 정도가 걸릴 거예요.”

김강현이 차근차근 설명을 해 줘서 지우는 크게 도움을 받았다.

지우는 김강현을 따라서 괴수의 사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괴수를 실제로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괴수는, 죽어있기는 했지만 그 풍모가 대단했다. 살아서 날 뛸 때는 얼마나 더 대단했을지를 생각하자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사체의 길이는 5미터 정도로 보였다. 늪의 등급에 따라서 늪에 서식하는 괴수의 크기도 다르다. 5급 늪에 사는 것은 대략 5미터 이하였고 4급 늪에서 발견되는 괴수는 5미터와 10미터 사이였다. 그런 식으로 늪의 등급이 올라갈수록 그곳에 사는 괴수의 크기도 달라졌다. 15미터 이하, 20미터 이하, 25미터 이하라는 식이었다.

1급 늪의 괴수를 공략하는데 성공한 적은 없었지만 안에 들어가서 괴수와 겨루고 나온 헌터들은 있었기에 1급 괴수들의 정보가 어느 정도는 공개가 되어있었다. 그런 정보를 접할 때마다 지우는 그게 다른 세상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런 것들이 전부 실전에 필요한 정보가 되었다.

써전이 전기톱을 들었다.

지우가 아무리 생각해도 써전이라는 말보다는 도축자나, 하다못해 해부학자 같은 말을 써야 할 것 같았는데 왜 써전이라는 호칭이 붙은 건지 알 길이 없었다.

‘써전이라니.’

괴수를 살려내려고 메스를 드는 것도 아닐 거면서 말이다.

써전이 허무영을 불러서 옆에 대기시켰다. 그리고 해부를 시작했다.

써전은 먼저 괴수의 사체를 거칠게 발라냈다. 괴수의 몸을 보호하고 있던 거친 표면이 벗겨지자 이내 발그스름한 표피가 드러났다. 써전은 커다란 메스를 집어들었다. 푸르고 누르스름한 기운이 각각의 영역을 서로 다투며 메스의 주위를 감돌았다.

‘대단한 차크라다!’

지우는 감탄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써전의 차크라 운용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정교할지, 이제 그 광경이 지우의 눈 앞에 펼쳐질 터였다. 허무영조차도 제법 경건한 표정을 짓고 얌전히 서 있었다.

써전은 메스를 괴수의 귀 밑에 대고 턱선을 따라 움직이더니 그대로 다른 쪽 귀 아래까지 그었다. 써전의 손짓에 허무영이 움직였다.

허무영은 괴수의 가죽을 위로 벗겨냈다.

“으윽.”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법 생명체로서의 얼굴을 갖추고 있던 것이 이제는 정육점의 고깃덩어리와 다를 것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갑작스런 탈피에 지우가 얼굴을 찡그렸다. 김강현은 한 술 더 떴다. 이런 광경을 본 경험이, 지우보다는 많았을 텐데도 김강현의 가슴이 크게 꿀렁거렸다.

“우우우우욱!”

그래도 구토를 하지는 않았다.

‘헌터라고 해도 애는 애다.’

지우는 그런 생각을 했다.

써전은 괴수에게서 얼굴 가죽을 먼저 벗겨낸 후에 메스를 다른 식으로 잡아 쥐었다. 그러자 허무영이 커다란 은색 용기를 가지고 다가가 대기했다.

“이제부터 내장을 적출할 거거든요. 그 전에 장기를 덮고 보호하고 있는 뼈들을 수거할 거고요.”

지우의 옆에 서 있던 김강현이 말했다. 열 아홉 살짜리가 보기에는 끔찍한 광경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김강현은 눈 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조금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듯 써전의 움직임에만 집중했다.

지우도 마찬가지였다.

써전은 자신의 뒤를 돌아보았다. 미리 길을 보아두는 것이다. 지금부터는 뒷걸음질로 뒤를 보지 않은 채 걸어야 할 텐데 그때 발에 걸릴 게 없는지 미리 보아두는 것이다. 그러고나서 써전은 두 손으로 메스를 붙잡고 괴수의 턱 아래에서부터 몸 중앙을 따라 괴수의 복부까지 한 번에 갈랐다. 그 길이가 상당한지라 서 있는 채로 한 번에 가르지는 못하고 뒷걸음질을 치면서 복부를 갈랐다. 그런데도 칼이 들어간 깊이는 균일했다. 피부의 틈새에서 쿨렁거리면서 점성 강한 액체와 물컹한 덩어리 같은 것이 쏟아져 나왔다.

“노랗게 덩어리진 건 지방이에요.”

김강현이 다시 말해주었다. 소리가 훨씬 가까이에서 들렸다. 이 녀석도 겁을 먹은 것이다. 그래서 신입에게 알려주는 척 하면서 은근히 가까이 붙어서 두려움을 달래고 있는 거였다.

“저 정도로 메스를 다루려면 차크라 운용이 얼마나 능숙해야 할까?”

지우가 물었다.

김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강현도 몰랐다. 강현은 기습적으로 받은 질문이 어려워서 당황했다.

써전은 이제 펜치를 들고 늑골을 부쉈다. 부숴진 늑골은 늑골대로 따로 모아졌다. 허무영은 고분고분하게 써전이 처리하는 장기와 뼈들을 수거했다. 대책없이 성질만 부리는 인간은 아닌가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언제 하는 거야?”

지우가 김강현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저건 정밀한 작업이예요. 써전님이 내장을 전부 다 적출한 다음에 사체를 부위별로 절단해서 바디 팩에 넣어주시면 우리는 그걸 나르면 되는 거예요. 바디 팩요.”

“괴수 사체 운반이라고 해도 그냥 단순한 일만은 아니구나.”

“네. 특히 해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서규태 써전님은 C등급이예요.”

“C등급? 그러면 레이드를 하는 게 더 좋지 않은가? 돈은 그쪽이 훨씬 잘 벌잖아.”

“원래는 레이드를 뛰셨는데 레이드 도중에 다리를 다치셨거든요.”

김강현의 눈짓을 따라 써전의 다리를 바라보았지만 겉으로 크게 표시가 나는 것은 없었다.

‘아, 그럼 그 약병은…….’

지우는 자기가 써전을 오해했다고 생각하면서 괜히 미안해했다.

“써전을 잘못 만나면 골치 아파요. 내장 적출하는데만 시간이 삼십 분 넘게 걸리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힘들어지죠."

강현이 심각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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