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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성
공격력과 방어력이 모두 10이었다. F등급의 딜러라면 공격력 200과 방어력 50이라는 스텟이 나오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런데 지우는 공격력과 방어력이 모두 10이었다.
헌터가 됐다고 좋아하던 마음은 이제 불안으로 바뀌었다. 이걸로도 헌터라고 할 수 있는 건지 걱정이 됐던 것이다.
지우는 자기가 불량품 같다고 느꼈다.
‘이걸로도 헌터라고 인정을 해 주나? 스텟이 너무 낮다고 헌터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손으로 문질러 봐도 타투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정황에 미루어 보면 이게 확실히 헌터 타투가 맞는 건데 왜 이런 돌연변이 같은 것이 생겨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뭐야, 이거? 좋아해도 되는 거야? 괜히 좋아했다가 나중에 아니라고 하면 그때는 더 화가 나겠는데?’
지우는 고등수학 문제를 받아든 유치원생처럼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타투를 바라보았다.
헌터 등급 - F
경험치 : 0/300
공격력 : 10
방어력 : 10
차크라 등급 - 6
차크라 숙련도 : 0%
능력치 증폭률 : 0%
의문 투성이의 타투가 지우의 팔 위에 편안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경험치가 0/300이라는 것은, 경험치 300을 얻어야 E등급으로 올라갈 수 있는데 지금까지 얻은 경험치가 0이라는 것이고, 차크라 등급이 6등급이라는 것은 차크라 등급이 최하 등급이어서 차크라 증폭률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백화점에서 만났던 헌터의 타투에는 공격력 : 400(+40)/ 방어력 : 100(+10)/ 차크라 등급 - 5/ 차크라 숙련도 : 3%/ 능력치 증폭률 : 10%라고 나와 있었다. 차크라 등급이 5등급이 되면서 능력치가 10%증폭해 공격력과 벙어력이 10%씩 오른 것이다.
'기본 스텟이 10씩이라.'
어쨌거나 그런 것들도 헌터 협회에서 사람들이 나오면 의혹이 해결될 거라고 믿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도착했다. 처음에는 세 명이 오더니 몇 분이 지나고 두 명이 더 오고 그 후에 한 명이 더 왔다. 지우는 도착한 사람들이 어떤 순서로 온 건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지우의 생각이 맞다면 두 번째 도착한 사람이 조금 더 전문적인 인력들일 것이고 세 번째 온 사람은 헌터에 관한 일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일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헌터 협회 늪관리과의 이재형 계장입니다.”
두 번째로 도착한 그룹에서 연장자로 보이는 사람이 자신을 소개했다. 이재형이 현장의 책임자인 것 같았다.
“어서 오세요. 이런 시간에 나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별 말씀을요. 원래는 제가 현장에 직접 나오지는 않지만 이번 일은 사안이 사안인만큼 직접 나와 봤습니다.”
“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지우는 늪이 있는 곳으로 사람들을 안내했다.
“지금은 리드를 덮는 게 중요한 게 아니겠는데? 통행에 문제가 생길 것도 아니고. 테두리 색깔도 특이하네.”
헌터 협회에서 나온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은 새벽 네 시를 지나고 있었다. 지우의 집에 온 사람들은 팀을 나눠서 늪과 집안을 살폈다. 그들은 림스의 가전제품들이 박스에서 개봉도 되지 않은 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걸 이상하게 여겼다.
마침내 이재형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을 때 지우는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을 했다.
“지점이 갑자기 폐쇄될 때까지 저는 림스의 영업사원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겠다는 듯이 몇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중에 결정권을 가진 걸로 보이는 사람들 몇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했다. 자주 들리는 말은 ‘연구가치’라는 말이었다.
그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하는 동안, 헌터협회의 인턴일까 싶을 정도로 젊은 여자가 지우에게 다가왔다.
귀여운 외모에 조용해 보이고 이미지가 좋아서 지우의 스타일에 가까웠지만 김인아한테 학을 뗀 후라 지금은 여자라는 종자에 크게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조금만 신경을 쓰고 봤다면 그 여자가 광고계의 포식자, 임정이라는 사실을 알아챌 수도 있었겠지만 지우는 그 새벽에 자신의 집에 찾아온 사람이 임정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 여자는 세 번째에 혼자 들어왔었다.
‘다른 사람들이 늪관리과에서 나왔으니까 이 사람은 헌터관리과에서 나왔으려나?’
지우가 혼자 추리를 하고 있는데 여자가 지우에게 자신의 오른팔을 보여주었다. 타투에는 B급 탱커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헌터 타투가 나타났다고 해서 나왔습니다. 늪도 그동안 발견됐던 늪이랑은 아주 달라서 관심이 많이 가네요.”
그 말인즉슨, 이 사람은 나오자마자 지우의 타투를 조사했어야 했는데 늪이 신기해서 농땡이를 부렸다는 뜻이었다.
“헌터 치안대의 임 정이라고 합니다.”
“안지웁니다.”
임정이라는 말을 듣고도 지우는 그 이름을 광고계의 여왕 임정과 연결시키지 못했다. 지우의 머릿속에는 말로만 듣던 치안대를 직접 보게 됐다는 생각이 가득찼다.
“이런 일로 나와본 건 처음이네요. 어쨌든 반가워요. 그럼 이제. 타투를 좀 볼 수 있을까요?”
지우는 쭈뼛거리면서 팔을 보여주었다. 임 정은 지우의 팔에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댔다.
“엄청. 신기하네요.”
임 정이 말했다.
“네. 스텟이. 이상하죠.”
지우는 자신의 타투가 괜히 창피해져서 자신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 같아서는 각각의 수치 옆에 0을 하나씩 그려넣고 싶었다.
“제가 결정을 내리는 건 어렵지 않겠네요.”
임 정은 그렇게 말을 하고 지우를 바라보았다.
“이재형 계장님이랑 다른 사람들은 여기에서 발견된 늪을 연구하기 위해서 이 집을 수용할지 여부를 검토중이예요. 저는, 뒤늦게 각성된 헌터에 대한 연구에 관해서 전권을 위임받았고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두 가지를 결정하기 위해서 오늘 여기에 온 거라고요. ‘늪이 나타난 집’과 ‘뒤늦게 헌터 타투가 나타난 안지우씨’. 연구가치가 있다고 판단이 되면 조치를 취할 거예요. 그리고 저는 지금, 안지우씨가 연구가치를 가졌다고 판단했다는 뜻이고요. 이런 경우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거든요. 물론 괴수가 나타나기 시작한 초기에는 나이든 사람들 중에도 헌터로 각성된 사람들이 있었지만요.”
“그 후로는 그런 일이 전혀 없다가 내가 최초라고요?”
지우가 물었다.
“그런 셈이죠.”
“그럼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우리는 안지우씨를 상대로 몇 가지 실험을 해 보고 싶어요. 물론 안지우씨가 동의를 한다는 조건하에요.”
“그 실험이라는 게 위험하거나 인체에 해가 있는 건 아닌가요?”
“그런 건 아니예요. 차크라 운용도와 신체능력 등을 테스트해 보려고 하는 거예요. 어떤 조건에서 각성이 된 건지 알 수 있다면 만 18세가 지난 사람들에 대해서 다시 헌터 테스트를 실시해 볼 가치가 있을 테니까요.”
“그럼. 제 일이랑 생활은요?”
지우가 물었다.
현실적인 걱정이었다.
“그건 적절하게 보상할 거예요. 타투의 특이성 때문에 몇 가지 절차를 거쳐야 하기는 하겠지만 이변이 없는 한 이제부터 안지우씨의 신분은 헌터예요. 헌터의 신분에 맞는 대우를 해 줄 겁니다. 신변정리는 제가 전부 도와드릴 거고요. 바로 실험을 해 보고 싶어서 아주 의욕이 넘치거든요.”
“헌터로서 적절한 보상이라고 하면……. 그럼 저한테 레이드를 하고 받는 비용을 쳐주나요? 거기에 상응하는 대가가 저한테 주어지는 거…예요?”
지우가 야무진 꿈을 안고 물었다.
“아뇨. 그러면 좋겠지만. 안지우씨가 헌터가 됐다고 해서 곧바로 레이드를 뛸 수 있는 건 아니죠. 우리는 안지우씨가 F급 딜러로서, 아니, 탱커였던가? 뭐였죠?”
임 정이 지우의 팔을 바라보았다.
“…없네요?”
등급이 표시된 옆 자리의 공백을 보면서 임 정이 말했다.
“네.”
“위작을 한 건 아니죠?”
“네.”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일단은 절차대로 해야 나중에 뒷말이 안 나오니까요.”
임 정은 구석에 두었던 가방에서 특이하게 생긴 스캐너를 가지고 왔다. 스캐너를 지우의 타투 위에 대자 스캐너는 빛을 내면서 삐빅 소리를 냈는데 그것으로 통과가 된 건지 임 정은 스캐너를 다시 가방에 집어넣었다.
“여러 모로 특이하네요. 그럼, 방금 전에 하던 얘기를 계속 할게요. 안지우씨는 F급 딜러, 아니, 어, 헌터로서 활동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을 얻게 될 겁니다. 안지우씨 같은 F급 헌터는 사체 운반 일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 경우에 일당 50만원을 받게 되죠.”
“네.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계산을 해서 드릴 거예요.”
“……. 천… 오백만원을요? 한 달에요?”
“네. 그런데 우리 쪽의 필요에 의해서 도움을 부탁하는 거니까 딱 그것만 드리고 매정하게 굴 수는 없겠죠. 제 재량으로 이천만원 정도는 더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천만원을 더 준다고요? 매달요?”
“아뇨. 매달은 아니겠죠. 연구가 한 달 이상 지속될 것 같지는 않거든요. 하지만 한 달이 되기 전에 끝나도 삼천 오백만원을 받으시게 되는 겁니다.”
두 사람의 얘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을 때 이재형이 다가왔다.
“집도 수용을 해야 될 것 같군. 이 늪은 연구 가치가 상당해.”
이재형이 임 정에게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요. 약게 굴지 말고 제대로 쳐 줘요.”
임 정이 말하자 이재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저게 문제네. 림스 제품들. 저것들은 필요가 없는데.”
“혹시 모르죠. 늪이 생기는데 저것들이 영향을 끼쳤는지. 그러니까 저것까지 포함해서 비용을 책정해요. 이 집 내부에 있는 물건 중에 어떤 게 늪의 생성에 영향을 미친 건지 모르니까 전부 값을 치러야죠.”
임정이 말했다.
“그렇게 해야 되겠지?”
이재형이 말하자 임 정이 지우를 보고 윙크를 했다.
“저걸……. 사신다고요?”
지우가 놀란 얼굴로 묻자 이재형이 웃음을 보였다.
“내가 돈을 내는 것도 아닌데 나한테 고마워할 건 없습니다.”
“세상에! 저것 때문에 그동안 피가 말랐던 걸 생각하면…….”
지우는 자기를 누르고 있던 문제가 너무나 손쉽게 해결되는 것을 보면서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벗어나보려고 그렇게 애를 써도 안 되던 일이 이렇게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저것 때문에 피가 말라서 갑자기 헌터 타투가 생긴 건가?”
임 정이 말했다.
웃자고 한 말 같았지만 정말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을 정도였다.
“헌터 협회에서 안지우씨가 임시로 거주할 오피스텔을 얻어줄 거예요. 늪에 대한 조사가 끝나면 헌터들을 투입해서 늪을 소멸시킬 겁니다."
이재형이 말했다.
"늪을 소멸시킨다고요?"
"괴수를 공략하면 늪이 소멸되겠죠. 늪을 놔둘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늪이 자라고 괴수가 그 안에서 튀어나올 텐데요."
"아. 그런 거군요."
"일단. 그 과정을 전부 마치면 안지우씨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안지우씨가 선택할 사항이고. 여기로 돌아오는 게 찝찝하다고 생각되면 이사를 가도 상관없어요.”
"알겠습니다. 그건 더 생각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우가 신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럼 우리는 먼저 가도록 하죠. 연구소로 바로 가는데 다른 문제는 없는 거죠? 다니고 있던 직장에는 저희가 설명을 할 겁니다. 갑자기 안지우씨가 일하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한 보상도 헌터 협회에서 할 거고요.”
임 정이 말했다.
“아. 잠깐만요. 일단 연구소에 들어가면 자유롭게 나오지 못하는 거죠?”
지우는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는 듯이 임 정에게 물었다.
“그렇죠. 여러 가지 실험을 해야 하니까 저희의 일정에 따라 주셔야 하는 거죠.”
“그럼 그 전에 들러야 할 곳이 있어요.”
지우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