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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성
꿈 속에서 지우는 천기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천기정의 가족들은 나타나지 않았고 지우는 원무과에서 호출을 받았다. 원무과에 내려가자 수술비용 3400만원과 각종 비용까지 합쳐서 3760만원을 내라는 청구서가 주어졌다.
이건 꿈일 거라고 하고 있는데 정말로 꿈이었다. 알람이 울렸다. 두 시간을 더 벌어놨지만 알람을 해제하지 않아서 여전히 같은 시간에 알람이 울렸다. 꿈이 얼마나 생생했는지 지우의 몸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일어서는데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제 몸이 제 몸 같지 않다는 생각만 계속해서 들었다.
아무래도 두 시간을 벌어 놓는 것으로 될 것 같지가 않아서 지우는 성민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조금 더 봐줄 수 있겠냐는 말에 성민은 난색을 표했다.
-더는 힘든데. 미안하다.
성민이 말했다.
“아니에요. 갑자기 이런 부탁을 하는 제 잘못이죠.”
전화를 끊고 지우는 잠시 멍하니 앉아있었다.
“조금이라도 자자.”
지우는 일어나서 거실 불을 끄고 침실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침대에 누워서 제대로 잘 참이었다. 하지만 천기정의 수술비 걱정에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후회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수술비가 3천만원이 나오든 4천만원이 나오든, 천기정이 사경을 헤매는데 그를 돕기로 결정한 것은 잘 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별개로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누워있어봤자 잠이 오지도 않아서 지우는 일어나 앉았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에. 만약에. 보호자랑 연락이 안 닿으면 돈을 어떻게 구하지? 나는 대출받기도 힘든데. 수술비는 얼마나 나오려나? 머리도 다치셨다고 했는데. 뇌수술도 같이 하는 건가? 나를 못 알아보시는 일은 안 생기겠지?’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 때문에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지우는 창백해진 얼굴로 일어섰다. 물을 마실 생각이었다.
거실로 나갔을 때 정수기 불빛으로도 충분히 밝아서 지우는 거실 불을 켜지 않았다. 지우는 정수기 불빛에 의지해서 물을 마시고 컵을 싱크대에 두러 걸어갔다. 그러다가 지우는 갑자기 발이 밑으로 푹 꺼져들어가는 기분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허억! 이게 뭐야!”
그것은 그냥 기분탓이 아니었다. 정말로 발이 밑으로 푹, 빠져 들어간 것이다. 지우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치고 손을 버둥거려 식탁 모서리를 잡고 몸을 가누었다. 지우는 단단한 바닥을 딛고 있는 다리에 힘을 주고, 푹 빠져들어갔던 다리를 뺐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당황해서 저절로 호흡이 거칠어졌다. 지우는 천천히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지우의 눈은 제 앞에 나타난 광경을 보고도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점점 커졌다.
늪…이었다. 그곳에 늪이 나타나 있었다. 실내에는 늪이 생기지 않는다. 지우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지우의 눈 앞에 있는 늪은 테두리가 빛나고 있었다.
지우는 자기가 천기정 때문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헛것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그것은 엄연히 늪이었다.
“늪이 실내에 나타났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지우는 늪을 더 자세히 보려고 거실 불을 켰다. 불빛 아래에서 늪은 위용을 드러냈다. 그것은 지우가 알고 있던 늪들과 달랐다. 지우가 알기로는 테두리가 이렇게 불꽃처럼 빛나는 늪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 늪의 테두리는 노란 빛과 파란 빛이 꼬리를 물고 일렁이는 것처럼 보였다.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 같은 모습이었다.
지우는 한참이나 늪을 바라보았다. 테두리 안쪽은 고요했다. 점성이 강한 액체가 파동도 없이 고여 있었다.
“이게 정말 늪이라면, 이 안에……. 괴수가 있다는 거잖아.”
지우는 갑자기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지금 그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실내에 나타난 늪이라서 드론이 발견할 수도 없을 터였다.
지우는 재빨리 헌터 협회에 전화를 걸었다.
-헌터 협회입니다.
상담원이 전화를 받았다.
“늪이 나타나서 신고를 하려고 합니다.”
-네, 선생님. 지역이 어디인가요?
지우는 느리고 분명한 어조로 지역을 알려 주었다.
-그런데 선생님. 드론이 순찰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 지역에서는 늪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나오는데요. 늪이 언제 나타났나요?
“예.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건 실내에 생긴 늪이거든요. 저희 집 거실에 나타났어요. 그러니까 드론이 발견하지 못했을 거예요. 드론은 실외만 순찰하잖아요.”
상담원은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여보세요?”
전화가 끊긴 건가 하면서 지우가 상담원을 불렀다.
-선생님. 선생님이 이렇게 장난을 하시는 동안에 정작 제 도움이 꼭 필요한 분들이 저와 통화를 하지 못해서 불편을 겪으실 겁니다. 다시 확인하신 후에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상담원이 타이르는 어조로 말했다.
“제 말을 믿기 힘들 거라는 건 이해합니다. 그런데 사실이거든요. 나와서 확인을 해 보시면 되잖아요.”
-전화 끊겠습니다. 선생님. 이런 식으로 업무를 방해하시면 처벌을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헌터 협회의 업무를 방해하는 일은 중하게 다스려진다는 걸 명심하시면 좋겠군요.
그렇게 전화가 끊겼다.
지우는 식탁 의자를 잡아 빼고 의자에 앉았다. 안 믿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녹화를 해서 영상 파일을 보내줘야겠다. 그러면 믿겠지.’
지우는 스마트폰으로 늪의 모습을 녹화하려고 일어섰다. 그러는 중에, 손 안에 쥐기도 벅찰 정도로 큰 스마트폰이 지우의 손에서 미끄러졌다.
‘헉!’
깜짝 놀란 지우는 스마트폰을 잡으려고 손을 움직였지만 역부족이었다. 지우의 손을 떠난 스마트폰은 얄궂게도 늪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아, 안 돼.”
퐁.
당.
“으으윽!”
방수폰이기는 했지만 액정이 깨지지는 않았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 스마트폰에까지 돈을 쓸 여유는 없었다. 지우는 스마트폰이 더 깊이 들어가기 전에 잡아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늪에 손을 담갔다는 사실에 꺼림칙한 기분을 느낄 새도 없었다.
‘잡았다.’
지우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스마트폰을 꺼냈다. 다행히 스마트폰은 멀쩡했다. 지우는 물기를 닦고 버튼을 눌러서 스마트폰이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것을 확인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큰일 날 뻔 했네.”
지우는 다시는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스마트폰을 두 손으로 단단하게 붙잡고 녹화를 시작했다. 지우가 녹화를 하는 동안에도 늪은 고요하기만 했다. 지우는 숨소리까지 죽인 채 늪을 찍었다.
그런데 무언가, 지우의 시선을 자꾸만 잡아 끄는 것이 있었다. 지우는 녹화 버튼을 눌러 놓고 스마트폰을 든 채로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서 제 팔을 바라보았다.
거무튀튀한 것이 보였다. 아까 스마트폰을 꺼낸다고 늪에 손을 담갔을 때 뭔가가 묻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충분히 찍었다고 판단이 됐을 때 지우는 멈춤 버튼을 누르고 영상을 저장했다. 지우는 영상 파일을 확인하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 이걸 보내면 그쪽에서도 내 말을 믿겠지. 그런데 팔에 뭐가 묻은 거지?’
지우는 헌터 협회에 신고를 먼저 할까 하다가 팔에 묻은 것이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 그것을 씻어내러 싱크대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물을 틀어놓고 그 앞에 팔을 내밀었다.
“…….”
물줄기를 세게 틀었지만 그것은 흘러내려가지 않았다. 지우의 눈이 점점 크게 떠졌다.
“이게……. 뭐야. 헌터…타투?”
지우는 물을 끄고 제 팔을 눈 앞으로 바짝 들어 올렸다. 손목 위의 팔뚝에 분명히 헌터 타투가 나타나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스마트폰을 꺼낸다고 늪에 팔을 담갔을 때 생긴 것 같았다. 지우는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믿을 수가 없어서 타투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헌터들의 팔에서 봤던 바로 그 타투였다.
‘뭐야. 그럼. 내가 헌터라고? 내가 이제 헌터라고?’
지우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타투를 바라보다가 우선 헌터 협회에 이 사실들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자신이 가진 지식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우는 이번에도 그냥 전화를 하면 자기 말을 믿어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영상파일을 먼저 헌터 협회에 보냈다. 그리고 시간을 뒀다가 다시 전화를 하자 조금 전에 통화를 했던 사람이 다시 전화를 받았다.
지우는 자기가 늪을 찍은 영상을 방금 파일로 보냈다고 설명을 했다. 헌터 협회의 상담원은 영상을 확인하고 다시 전화를 하겠다고 말했다. 1분도 지나지 않아서 전화가 걸려왔다. 영상을 봐서였는지, 이번에는 상담원도 지우의 말을 무시하지 않았다. 전화를 받는 목소리도 훨씬 고분고분해진 느낌이었다.
-화질이 안 좋아서 그런지 늪의 테두리 색깔이 선명하게 보이질 않는데 테두리 색깔이 어떤 색입니까?
상대가 물었다.
“믿기지 않을 거라는 건 이해합니다. 나도 이게 믿기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이렇게 전화로 물을 시간에 나와 주셔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지우가 말하자 상담원이 조심스럽게 지우의 말을 끊었다.
-아, 선생님. 이미 사람들이 현장으로 출동을 했습니다. 기다리고 계시면 헌터 협회에서 사람들이 곧 도착을 할 겁니다. 저는 그동안에 선생님께 먼저 질문을 해서 정보를 취합하려고 하는 겁니다. 제가 몇 가지 질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네.”
-늪 테두리 색깔이 어떻게 보이나요?
“그게요……. 그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색깔이 아니에요. 화질이 선명하지 않아서 색이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라 진짜 그 색이예요. 노란 색과 파란 색이 어우러져 있어요.”
-흐음…….
상담원은 영상을 보고 있는지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저도 물어볼 게 있는데요.”
지우는 만 18세의 헌터 테스트 때 타투가 생기지 않았던 사람에게 나중에 헌터 타투가 생기는 일도 있는지 물었다.
-그건……. 왜 물으십니까?
“제 팔에. 타투가 나타났거든요.”
-늪에 팔을 담그셨습니까?
“네.”
-그랬더니 팔에 타투가 나타났다는 거죠? 선생님. 실례지만 지금 연세가.
“스물 여섯입니다. 만18세가 될 때 헌터 테스트를 받았지만 그때는 타투가 나타나지 않았어요.
이제 겨우 스물 여섯인데 '연세'라고 말하니 웃겼지만 지우는 성실하게 대답을 해 주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다시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왜 그러시는데요?”
-지금 출동한 인원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그 방면으로 도움을 드릴 수 있는 전문 인력에게 추가로 출동 지시를 내려놓고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예…….”
뭔가 일이 자꾸 커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이건 충분히 큰 사건이지. 지금까지 이런 일이 일어난 적이 없잖아. 이런 일이 일어났었으면 뉴스에도 나왔을 거고 나도 한 번쯤은 그런 얘기를 들어봤겠지.’
지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늪을 바라보았다.
‘온다고 하고 왜 안 와?’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시계를 보면 겨우 몇 분이 지나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지우는 자신의 팔에 나타난 타투를 보았다. 헌터 타투는 여러 차례 봤기에 헌터 타투가 어떻게 생겼다는 것은 지우도 잘 알고 있었다. 제 타투를 유심히 들여다보던 지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상한 일의 연속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나 이상했다.
헌터 타투에 나타난 등급 옆에, 원래는 딜러나 탱커라는 직종이 나타나 있어야 했다. 그런데 지우의 타투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이상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타투에 나타난 기본 스텟이 현저하게 낮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