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부터 레벨업-8화 (8/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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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성

“어서오세요.”

자주 오는 손님들이었다. 와서 뭘 살지 고르는 게 아니라 자기가 필요한 물건을 정해놓고 들어와서 물건만 사 가는 손님들이라서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고 편했다.

지우는 빠진 물건들을 채워 넣고 TV를 켰다.

-유대(紐帶). 유대라는 말은 끈과 띠라는 뜻으로, 둘 이상을 서로 연결하거나 결합하게 하는 것 또는 그런 관계를 의미합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그렇게 나오죠. 우리가 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유대관계라는 말은,

TV에서는 노교수가 특강을 하고 있었다.

지우는 채널을 돌렸다.

-사흘 전에 인천 주안동에서 묻지마 폭행 사건으로 직장인 서른 세 살 김 모씨가 온몸에 관통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는데요. 김씨는 오늘 오후 끝내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묻지자 폭행 사건은 인천 전역에서,

“인천? 주안동?”

지우는 그 지명이 왜 자기한테 낯익게 들리는지 생각해 보려고 했다.

“아!”

천기정이 그쪽으로 이사했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을 떠올리면서 지우는 TV의 볼륨을 높였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김 모씨가 흉기에 찔린 채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고,

집중을 하며 뉴스를 보고 있는데 손님들이 들어왔다. 지우는 재빨리 TV를 끄면서 손님들을 맞았다. 손님들이 돌아가고 다시 TV를 켜자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나와서 다른 주제로 떠들어대고 있었다.

‘들어가면서 천대리님한테 전화나 드려봐야겠네. 요즘 세상이 왜 이렇게 흉흉해?’

마침 다음날이면 월급날이었다. 이번 달부터는 천기정에게 250만원씩 갚아 나가기로 했다. 천기정이 대출까지 받아서 돈을 빌려준 덕에 지우는, 림스에 결제해야 했던 대금을 한 번에 끝내버릴 수가 있었다. 림스에 분할 상환을 하느니 대출을 받아서 일시불로 갚아버리면 그 이자가 훨씬 싸다는 말에 지우는 천기정에게서 다시 돈을 빌려 일시불로 갚아버렸다.

천기정이 대출까지 받아서 돈을 빌려준 것 때문에 지우는 천기정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지만 천기정은 태평했다. 이자까지 갚으면 되는 거지 뭘 불필요하게 미안해하는 거냐고 했던 것이다.

내일은 그동안 미뤄오기만 했던 식사대접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지우는 일을 정리했다. 교대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지우는 천기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신호가 몇 번이 가도록 천기정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지우는 일, 이 분 정도 간격을 두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처음에는 천 대리님이 전화기를 집에 두고 잠깐 담배를 피러 나갔거나 화장실에 간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네 번째 통화시도까지 무산되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분 정도를 기다렸다가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 마침내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기정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여보세요? 혹시 천기정 대리님 전화 아닌가요?”

지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천기정 대리님요? 그건 모르겠고요. 지금 사람이 쓰러졌거든요.

저쪽에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여자들이 놀라서 떠드는 소리, 정신 차려 보라는 소리, 어떻게 하냐는 소리들이 마구 섞여 전해졌다.

“여보세요? 천 대리님은 어디 계신가요? 왜 천 대리님 전화기를…….”

지우가 다급하게 물었다.

-잘은 모르겠는데 폭행을 당했나봐요. 지금 구급차가 도착했고요. 전화기는 바닥에 떨어져 있더라고요. 전화가 와서 내가 전화를 받은 거고요. 이게 천기정 대리라는 사람 핸드폰이면 저 사람이 천기정 대린가 본데.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겨?

“여보세요? 거기가 어디예요?”

지우가 다급하게 물었다.

-잠깐만요. 내가 물어볼게요. 여기요. 지금 이 사람한테 전화가 왔는데. 지금 병원으로 갈 거죠? 어느 병원으로 갈 거예요?

그가 구급대원들에게 대신 물어 주었다.

-P병원으로 갈 거래요.

곧 그의 답변이 돌아왔다.

“네, 고맙습니다.”

지우는 그가 전해주는 병원 이름을 들으면서 길가로 달려나갔다. 지우는 다가오는 택시를 향해서 마구 손짓을 했다. 멈춰선 택시에 타면서 지우는 계속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지금 구급차가 떠나려고 하거든요. 이 전화기는 구급대원한테 전해줄 테니까 이제 그 사람이랑 통화해요.

전화 받은 남자가 상황을 설명해 주며 말했다.

“네.”

지우는 구급대원이 전화를 건네 받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통화는 그렇게 끊겼다.

“아저씨. P병원요. 인천 P병원으로 가 주세요!”

지우가 말하자 택시가 빠른 속도로 출발했다. 기사도 지우의 표정을 보고 심각한 일이 생겼다는 것을 눈치챈 것 같았다. 지우는 다시 전화를 걸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구급대원들이 응급처치를 해야 할 거라는 생각에 간신히 자신의 욕구를 참았다.

‘말도 안 돼. 묻지마 폭행이라니? 천 대리님한테 왜 그런 일이 생겨!’

-유대(紐帶). 유대라는 말은 끈과 띠라는 뜻으로, 둘 이상을 서로 연결하거나 결합하게 하는 것 또는 그런 관계를 의미합니다.

노교수가 했던 말이 갑자기 선명하게 떠올랐다.

천기정은 사회로부터 배신당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실패하고 붕 떠오르던 지우를 다시 세상에 잡아준 사람이었다.

천기정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 수 없는 그 순간, 지우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뜨거운 용암이 분출하는 것 같은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

응급실로 가자마자 지우는 천기정 환자가 어디에 있냐고 물으면서 뛰어다녔다. 하지만 천기정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폭행을 당하고 쓰러져서 구급차를 타고 옮겨진 사람이 있을 텐데요?”

지우가 그렇게 다시 묻자, ‘아아.’ 하고 의료진 한 명이 다가왔다.

“그 사람이 천기정씨예요? 지갑도 없고 신원을 알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거든요.”

의사가 말했다.

“그 분은 지금 어디계세요?”

“수술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상태가 너무 안 좋아요. 그 분이랑 어떤 관계십니까? 보호자 되세요? 법정대리인이 와야 하는데.”

“아뇨. 법정대리인은 아니고. 그 분은 제가 전에 다니던 회사 사수셨어요.”

“그럼. 아, 그 분 법정대리인이랑 연락할 방법은 없습니까?”

“그런 건 모르는데요? 천 대리님 전화기가 있잖아요. 거기에 연락처 없던가요?”

“암호가 걸려있더래요. 환자 상태가 지금 시급을 요해서 기다릴 시간이 없습니다.”

“그럼. 제가 보증을 하는 방법으로 하면 안 될까요?”

지우가 말했다. 그러자 의사가 지우를 바라보았다.

“이건 설명을 해야 될 것 같은데.”

그는 어떻게 설명을 해야 될지 난감하다는 듯이 지우를 바라보았다.

“그냥 간단한 수술은 아닐 겁니다. 이건. 이런 말을 하는 건 신중해야 되겠지만. 차크라 운용능력을 가진 헌터가 한 짓이 아닐까 할 정도로 내부 손상이 심해요. 개복 수술이 필요한데 일단 열고 나면 어디까지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예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웬만하면 이렇게 긴급을 요하는 응급환자가 실려오면 의료진이 보증을 하고 수술을 진행하는데 이 경우에는 예측이 안 되는 거죠. 비용이 얼마나 발생하게 될지. 산다는 보장도 없고 머리도 다쳤고.”

“해 주세요. 그냥 해 주세요. 제가 보증할게요. 당장 수술 시작해주세요.”

지우가 다급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의사는 알았다고 말을 하고 다른 스탭에게 다가갔다. 간호사 한 명이 지우에게 서류를 가지고 다가왔다.

“잘 읽어 보시고 여기에 서명을 해 주세요.”

치료비용에 대해서 보증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갑자기 현실적인 걱정이 지우의 어깨를 짓눌렀다. 비용이 얼마나 발생하게 될지 예측이 안 된다는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지우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간호사를 바라보았다.

“만약에 조금 더 기다려보면……. 보호자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 어떻게 될까요?”

“두 시간 안에 사망할 거라고 하셨어요.”

간호사가 말했다. 지우에게는 더 이상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지우가 서류에 서명을 했다.

“수술은 얼마나 걸릴까요?”

지우가 물었다.

“앞으로 여덟 시간에서 아홉시간은 족히 걸릴 거예요. 열어서 상태를 보고 진행을 하게 될 거라서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고요.”

그러면서 간호사는 시계를 보았다.

“지금 하실 수 있는 일은 없을 거예요. 쉴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쉬어 두는 게 좋아요. 병원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준비해 오시거나요.”

“네. 고맙습니다.”

거기까지 와서 천기정의 얼굴을 보지도 못했다. 돌아서려다가 지우가 간호사에게 걸어갔다.

“제가 천기정 대리님 근무하시는 곳을 알거든요. 거기로 연락을 하시면 보호자 연락처를 알 수 있을 지도 몰라요. 가족들도 걱정을 하실 텐데.”

“그렇군요.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지우는 간호사가 안내해 준 곳으로 가서 업무과 직원에게 자기가 알고 있는 것들을 알려주었다.

그래도 바쁠 때가 좋았다. 그후로는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

지우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시간에 운행하는 버스가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너무 많은 돈을 썼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슬슬 부담감이 밀려온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집에 도착하자 지우는 두 손으로 연신 얼굴을 감싸며 심호흡을 했다. 지우는 천기정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실감나지 않았다. 먹은 것도 없이 정신없이 뛰어다니다가 갑자기 긴장이 풀린 탓인지 몸에서 한기가 돌았다. 지우는 소파에 주저앉아서 생각을 정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누적된 수면 부족 때문에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었다.

주중에는 하루에 세 시간을 빼고는 편의점에서 계속 일을 했다. 그러다보니 하루에 자는 시간이 고작 두 시간도 되지 않았다. 주말에도 저녁 타임은 지우가 맡아서 했다. 그렇게 누적된 피로를 풀 시간이 없다보니 머리가 어딘가에 닿기만 하면 잠이 들었다.

정신없이 자다가 지우는 깜짝 놀라면서 잠에서 깼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지우는 자기가 시간에 늦었다고 생각하고 소파에서 튀어오르듯 일어섰다.

“어떡해! 얼마나 잔 거야?”

하지만 시계를 봤을 때는 겨우 이십 분이 지나 있었다.

“큰일날 뻔했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천기정의 가족들이 곧 올 거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세면도구나 컵 같은 걸 챙겨다 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반 병실로 옮기실 수 있겠지? 수술은 잘 끝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욕실로 향하다가 코 밑이 뜨끈해서 손등으로 훔쳐보니 코피가 나고 있었다. 지우는 휴지를 말아서 코를 틀어막았다. 제가 생각해도 너무 무리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지우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편의점으로 전화를 걸었다. 지우와 교대로 일을 하는 성민이 전화를 받았다.

“성민이 형. 저, 지운데요. 오늘 혹시 두 시간만 더 봐 주실 수 있어요?”

-두 시간? 왜? 무슨 일 있어?

성민이 물었다. 지우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지우를 함부로 대하는 일이 없었다. 지우가 그런 부탁을 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기에 많은 것을 묻지도 않았다.

“몸이 많이 안 좋아서요.”

-그래? 알았어. 오늘은 나도 별 일 없으니까. 근데 아직까지 안 자고 있었어?

“네. 사정이 좀 있었어요.”

-그래. 얼른 눈 붙여.

“고마워요, 형.”

일단 두 시간은 벌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지금부터 두 시간만 자자고 생각을 하면서 지우는 코를 틀어막은 휴지를 뺐다. 코피는 쉽게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고 쏟아지는 양도 많았다. 휴지를 갈아 끼우는 사이에 옷에 코피가 쏟아질 정도였다. 잠을 못 잤더니 반응 속도가 한없이 느렸다. 피묻은 옷을 빨래통에 가져다 둘 생각도 못하고 지우는 소파로 돌아가 잠을 잤다. 하지만 꿈은 지우에게 쉼터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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