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부터 레벨업-5화 (5/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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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성

괴수의 가죽과 뼈를 이용해 제품을 만드는 모든 업체는 바디 펌을 통해서 재료를 공급받는다.

-탱커는 4백만원을 받고 괴수 사체를 바디 펌에 넘깁니다. 4급 사체의 경우에는 1200만원, 3급은 3천만원, 2급 괴수 사체는 1억을 받고 넘기게 되죠.

역시나 1급 괴수의 사체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리포터의 설명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지루할 수도 있었지만 지우처럼 헌터의 세계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듣게 되었다.

'바디 펌'이라는 회사는 지우에게도 익숙한 곳이었다. 바디 펌의 로고가 박힌 커다란 탑차를 보는 것은 특이한 일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약 0.2퍼센트가 헌터고 레이드를 위해 공격대를 이루어 늪에 입장하는 인원을 열 명으로 잡으면 하루 평균 거의 만 여 건의 레이드가 이루어진다고 보면 된다. 그럴 때마다 괴수 사체가 나오고, 그때마다 하급 헌터들이 늪에서 괴수의 사체를 꺼내오면 바디 펌의 트럭들은 부지런히 괴수의 사체를 나른다. 그래도 그곳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었다.

-'바디 펌’에는 전문적으로 괴수 사체를 해부하고 절단하는 헌터가 고용되어 있습니다. 이런 역할을 맡는 헌터들을 써전(surgeon)이라고 부르죠. 사체 운반을 하기 위해서는 한 명의 써전과 세 명의 하급 헌터가 한 조를 이루어서 늪에 들어가게 됩니다.

숙련된 써전이 5미터의 괴수를 해부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30여분이지만 기량의 차이가 큰 영역이기도 했다.

-사체 운반을 하는 하급 헌터들은 매번 임시로 고용이 됩니다. '바디 펌’에 임시 고용된 하급 헌터는 레이드가 끝난 늪을 돌아다니면서 사체를 운반하고 하루에 50만원을 받게 됩니다. 늪에서 사체 운반이 끝나면 다른 늪으로 재빠르게 이동을 해야 하죠. 공략이 이루어지는 늪은 많고 사체 운반을 하려는 헌터들의 수는 적어서 괴수의 사체를 전부 꺼내지 못한 채 늪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레이드를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기만 하면 레이드를 하지, 계속해서 사체 운반을 고집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 원거리 딜러만 해도 사체 운반 일과는 비교가 안 되는 돈을 받는데 다른 헌터들에게 무시나 받는 사체 운반 일을 계속 해 나갈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리포터는 준비된 멘트를 하려다가 하급 헌터들이 도착하는 것을 발견했다.

-말씀드린 순간 괴수의 사체 운반을 맡은 헌터들이 오고 있는데요.

리포터와 카메라가 하급 헌터들에게 다가갔다. 사체 운반을 맡은 하급 헌터는 괴수를 상대로 레이드를 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복장도 일반인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평범했다.

-안녕하세요. 잠깐 인터뷰 할 수 있을까요?

리포터가 물었다.

-죄송하지만 지금은 조금 곤란합니다. 오늘 처리해야 할 곳이 많아서 바쁘게 움직여야 해요.

하급헌터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최대한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잠깐만요. 짧게 말씀해 주셔도 되거든요. 헌터로서 긍지를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정말 죄송합니다. 지금부터는 서둘러야 합니다.

리포터에게 걸리지 않은 다른 사람들은 이미 늪으로 사라진 후였다. 하급헌터가 늪에 발을 디디자 헌터의 몸이 유연하게 늪으로 사라졌다. 다시 코 앞에서 먹이를 놓친 리포터가 카메라를 보았다. 리포터의 시선이 정면을 향하지 않고 약간 옆으로 돌아갔다. 아마도 카메라맨으로부터, 뭐라도 해 보라는 신호를 받은 것 같았다.

리포터는 '이제 뭘하지?' 하는 표정을 짓더니 늪으로 다가가 수면에 발을 올렸다.

-보다시피 이곳은 괴수가 서식하고 있던 늪입니다. 지금은 헌터들이 괴수를 처리했기 때문에 더이상 위험한 곳이 아닙니다. 이 늪은 정상적으로 오픈되기까지 아직 십 오일 정도를 앞두고 있었는데요. 헌터들의 출동으로 괴수가 처리되었고 이제 곧 늪도 사라질 운명입니다. 헌터가 아닌, 저와 같은 일반인이 수면에 발을 대면.

리포터는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카메라맨의 격려를 받았는지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발을 늪 아래로 밀어넣었다. 리포터의 발목이 늪으로 빠져들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서 보는데도 괜히 긴장이 됐다. 몰입감 하나는 최고였다.

리포터의 발목이 늪에 잠겼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더이상은 안 들어가지네요. 하지만 차크라 운용 능력을 가진 헌터들은 아까 보신 것과 마찬가지로 늪의 아래에 있는 공간으로 들어가죠. 저도 여러분께 그 공간을 보여드리고 싶지만 저도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정말 아깝게 됐죠?

떠들어대던 리포터의 옆으로 하급 헌터들이 솟구쳐 올라왔다. 그들의 어깨에는 절단된 괴수 사체가 들어있는 바디 팩이 묵직하게 얹어져 있었다.

-헌터들이 괴수의 사체를 꺼내오고 있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일반인들은 늪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헌터들이 늪에서 사체를 운반해주어야 합니다. 헌터들이 늪 밖으로 괴수의 사체를 꺼내주면 그 후의 운반 작업은 일반인들이 맡아서 하게 됩니다. 이 모든 일들이 괴수가 죽은 후부터 열 두 시간 안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열 두 시간이 지나면 늪은 생명을 다 하고 사라지게 됩니다.

리포터가 말했다.

그 후에는 편집을 거친 화면이 나왔다. 리포터의 옆에 있던 늪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리포터는 자기가 말한대로 되었다는 듯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생성된지 약 여섯달만에 늪이 사라졌습니다.

리포터가 말했다.

리포터의 설명대로, 헌터들이 늪에 들어가 괴수를 공략하고 나오면 괴수가 죽은지 12시간 만에 늪이 사라진다. 하지만 늪이 사라지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새로운 늪이 생성되었다. 언제 어느 곳에 새로운 늪이 생성될지 몰라서 언제나 드론이 공중을 날면서 늪의 출현을 감시했다. 그렇게 늪이 발견되면 헌터 협회에서는 드론이 보낸 정보로 늪이 오픈될 때까지의 시간을 계산했다. 늪이 생기는 곳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실내에 생긴 일은 없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사람들은 어느덧 그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리포터는 카메라를 보고, 헌터가 이 시대에 가장 각광받는 직종이라는 사실을 설명했다.

-헌터 테스트에 통과하고 헌터로 승인된 사람들이 처음에 편입되는 단계는 F등급입니다. F등급 헌터들은 낮은 공격력과 방어력으로 인해서 실전에 투입되는 것은 어렵고 이처럼 괴수의 사체 처리 업무를 주로 담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일을 도맡아 하는 F등급의 헌터라고 해도 그 수입은 직장인 평균 수입을 훨씬 웃도는 수준입니다.

“좋겠네요. 쟤들은. 완전히 팔자 폈네. 저러다가 등급 올라가면 레이드도 뛸 수 있을 거고요. 흐유.”

조용하던 캐셔가 말했다.

“곧 5월 20일이죠? 이번에는 헌터들이 얼마나 나올지 모르겠네요.”

지우가 말했다.

“헌터 테스트 받을 때 제 앞에 있던 사람 팔에 헌터 타투가 나타났는데 진짜 신기하더라고요. 늪에 수억개의 공이 있는데 그 중에서 딱 필요한 공을 추첨해내는 것 같은 모습이었어요. 팔을 빼내는데 기묘하게 빛나는 검은 색 타투가 새겨져서 나왔는데. 걔는 진짜 운이 좋은 거죠.”

“앞에 있던 사람이요?”

“네. ‘F등급 딜러’그 다음에는 공격력 방어력 차크라 뭐 어쩌고 저쩌고 하는 글씨들이 꼭, 새싹이 땅에서 움트고 돋아나는 것처럼 새겨지더라고요. 아무 것도 없던 팔에 그 글씨랑 수치들이 돋아났어요.”

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백화점에서 만났던 헌터의 타투가 떠올랐다.

'진짜 타투이스트를 찾아가서 타투를 새겨버릴까? 하는 김에 공격력, 방어력 모두 1200으로. 그걸로 사기나 치고 다닐까?'

야무진 생각을 했지만 오래 품지는 않았다. 그 일이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저라고 모르지는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녀석이 지우뿐은 아니었고, 생각한 것을 실행에 옮기는 녀석들까지 생겨나서 헌터 협회의 치안대가 그렇게 바쁜 것이다. 그런 짓을 하다가 치안대에 걸려 들어가면 오히려 지금 시절이 그리워질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지우는 생각을 꼬깃꼬깃 접어버렸다.

어느덧 프로그램은 끝나가고 있었고 리포터는 새 늪의 출현에 대해서 잠깐 언급을 했다.

하지만 그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곁에는 우리가 안심하고 잘 수 있도록 지켜주는 헌터들이 있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꺼낸 말에 불과했다.

***

술병이 담긴 봉지를 들고 현관 문을 열자 집안 곳곳을 차지하고 있는 림스의 전자제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게 문제였다. 잠시 자신의 문제를 잊고 싶어도 그 덩치 큰 물건들이 늘 집을 차지하고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TV를 보면서 잠시 깔깔 거리고 웃다가도 고개를 돌리면 그것들이 보였다. 포장을 풀었다가 다시 박스에 담아놓은 세탁기, 벽걸이 TV, 냉장고, 오븐, 스탠드형 에어컨.

지우는 한숨을 쉬고 집을 치우기 시작했다. 청소를 해도 한계가 있었다. 넓지도 않은 집에 여유가 더 없어졌다. 지우는 박스들을 최대한 한쪽으로 붙여놓고 공간을 살려보려고 애를 썼다.

순식간에 땀이 흘렀고, 지우는 물을 마시러 정수기 앞으로 다가갔다. 그 순간 지우는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느꼈다. 그 느낌이 정수기로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강해졌기에 물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조차 사라질 정도였다.

‘공기가 탁해서 그런가?’

지우는 베란다로 나가 문을 전부 열고 돌아왔다. 답답한 기운이 사라졌다. 그래서 지우는 그게 탁한 공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정수기 쪽으로 다가갔을 때 갑자기 현기증이 나서 저도 모르게 비틀거렸다. 그 자리에서 쓰러질 뻔 했지만 몇 걸음을 옮겨서 욕실 앞의 벽을 짚고 겨우 버틸 수가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욕실로 가자 어지럼증이 갑자기 사라졌다. 지우는 무슨 일인가 하면서도 이유를 찾지 못하고 침실로 들어갔다. 피곤했던 모양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누워있는데 정신은 말똥말똥하고 잠이 오지 않았다.

지우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다시 거실로 나왔다.

냉장고 옆에 있는 정수기.

지우는 그곳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참을 수 없던 어지럼증이 느껴진 곳이 그곳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도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날까 하면서 지우는 조심스럽게 정수기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꽤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증상이 없었다.

“아닌가보네. 그냥 내가 이상했던 거지.”

그렇게 말하면서 지우는 나온 김에 물이나 마시자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구토가 날 것처럼 심한 어지럼증이 느껴졌고 주위의 사물이 흔들렸다.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느껴졌다. 지우는 소파를 향해 비척거리며 걸었는데 소파에 앉았을 때는 또 아무렇지도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빈혈인가? 아니면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 건가?’

어쨌거나 그 증상은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고 몇 초 후에는 까마득하게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신경이 둔한 지우라도 나중에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정수기 옆의 한 부분을 지날 때 유독 어지럼증과 두통이 극심해진다는 사실. 그 사실을 깨닫고 지우는 그곳을 피해서 걸었는데 희한하게도 그 후로는 그런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

자기가 생각한 게 맞는지 확인을 해 보려고 가까이 가 봤을 때는 소름끼칠 정도의 통증 때문에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쓰러질 뻔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하면서도 아무런 해답도 찾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침울해져서 지우는 혼자서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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