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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4화 (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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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성

김인아는 멈추지도 않았고 대답을 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부르잖아, 김인아!”

인내심이 한계에 달해서 지우는 한 번 더 소리를 질렀다.

“불만이 있으면 뭐가 불만인지 말해.”

김인아를 붙잡고 돌려세우며 지우가 말했다.

“불만 없어.”

“거짓말이잖아.”

“없다고!”

“하아, 시발. 별 같잖은 게 속을 다 뒤집어 놓네. 야. 할부로 사는 게 쪽팔려서 그래?"

"누가 그렇대?"

"그럼 뭔데? 왜 처음에는 좋아 죽다가 갑자기 그 지랄이냐고!"

"그런 거 아니라고 했지."

김인아가 지우를 쏘아보며 말했다.

"아니다. 말을 말자. 내가 병신이다. 내가 병신.”

그래놓고 지우는 점원에게로 돌아갔다.

“이거 안 살 거니까요. 그냥 환불해 주시죠.”

점원은 카드 승인을 취소해 주었다.

“내가 병신이지, 아우, 씨발! 그래. 내가 병신이다!”

지우는 화를 참지 못하고 다시 한 번 소리를 질렀고 카드 승인이 취소됐다는 안내 문자를 스마트폰으로 확인하고 걸음을 옮겼다.

김인아는 먼저 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못박은 듯이 서 있었다. 지우가 여간해서는 화를 내지도 않고 자기 기분을 맞춰주려고 노력을 하지만 한 번 제대로 열 받아버리면 그때부터는 감당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김인아도 알고 있었다. 김인아가 지우에게 눈을 흘기고 입술을 움직이는 순간 지우가 입을 열었다.

“주둥이 확 닫아라, 그냥.”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병신아. 나 회사에서 잘렸어. 어? 관심 없겠지만. 이번 달에 나올 돈도 못 받고 짤렸다고. 근데 병신같이 네 신발에 89만원을 질러주려고 했다. 근데 이 지랄을 떨어? 하. 고맙네. 정신 차리게 해 줘서.”

“오빠가 나한테 어떻게 이래?”

“너는 네가 뭐 대단한 앤줄 알아? 너도 아니라는 거 이미 알고 있는 거 아닌가? 네가 내 옆에 있는 게 내가 좋아서 그런 거야? 너같은 년한테 눈이 삔 놈이 안 생기니까 그런 거지.”

김인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그렇다고 지우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풀렸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지우는 말을 말자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김인아는 창피해서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쪽으로 달려가 버렸고 지우는 혼자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아우, 씨발! 저 좆같은 년을! 내가 병신이지. 내가 병신이야.”

지우는 화가 쉽게 가라앉질 않아 혼자서 소리를 질렀다. 1층에서 멈춘 채 오지 않는 엘리베이터를 한참이나 기다리고 서 있는데 매장에서 봤던 헌터가 두 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걸어왔다.  지우가 온갖 생쇼를 하는 동안 전부 지켜본 사람이라는 생각에 괜히 머쓱해져서 딴청을 부리는데 헌터가 큼큼 거리더니 지우를 바라보았다. 아주 모르는 사이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려서 지우도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게 인사냐고 따지면 할 말은 없었다.

헌터는 지우에게 몇 살이냐고 물었다.

“저요?”

초면에 묻는 질문치고는 이상하다는 생각에 지우가 손가락으로 저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네. 내 막내동생이 생각나서요.”

“스물 여섯요.”

“아, 내 동생이랑 나이가 같네.”

“…….”

“내 동생도 아직 취직이 안 돼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더라고요. 요즘은 다 어려운 것 같아요.”

“헌터는 잘 나가잖아요.”

“그건 그렇죠.”

할 말은 금세 떨어졌고 두 사람은 멀뚱히 엘리베이터만 기다렸다.

“저, 그런데. 헌터가 되면. 어때요?”

지우가 물었다.

역시 둘 중에 질문이 많이 생길 쪽은 지우였다.

“여기도 따지고 보면 계급사회죠. 겉에서 보기에는 화려해보이겠지만 안에서는 서로 나름대로 또 치열하고.”

“그래도 그레이드가 다르잖아요.”

“그렇긴 하죠.”

“…….”

“기운 내요. 좋은 곳에 꼭 취직되면 좋겠네요.”

“고맙습니다.”

헌터인 남자가 씩 웃어주었다.

잘 생긴 얼굴은 아닌데 패션의 완성이 헌터 타투인 것처럼, 헌터라는 아우라 때문에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그리고. 내 동생 같아서 하는 말인데. 여자는 진짜 넘치고 넘쳤어요. 지금은 그런 문제가 굉장히 크게 느껴지겠지만 오히려 잘 된 걸 수도 있으니까 내 말을 믿어봐요. 나가다가 근사한 여자랑 마주칠 수도 있잖아요.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고 문이 열렸는데 진짜 환상적인 여자가 있을 수도 있고. 지금은 자유로운 몸이니까 얼마든지 대시를 할 수도 있잖아요.”

“제가 지금 그럴 처지도 아니고. 그리고 제가 대시한다고 먹히지도 않을 것 같지만. 어쨌든 말씀은 감사합니다.”

“남자는 자신감을 가져야 되는 거거든. 나를 봐요. 솔직히 얼굴이 잘 생긴 건 아니잖아.”

“네.”

“아니. 이 사람이. 그럴 때 또 ‘네.’라고 용기있게 말하면 안 되는 거지. ‘아니, 잘 생기셨는데 왜 그러세요?’ 라고 해야지.”

“아, 그러네요. 다시 할까요?”

지우가 농담을 하자 헌터도 웃었다.

“아니. 그럴 것까진 없고. 내 팔에 타투가 생긴 이후로 사람들은 나를 완전히 다르게 보기 시작하더라고요. 정작 변한 건 아무 것도 없는데도 나를 다르게 대하고.”

“당연히 그렇겠죠.”

지우는 정말로 그의 삶이 부러워서 심장에서 생생한 통증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헌터가 되면. 어떻게 돼요?”

지우가 물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지만 헌터는 엘리베이터에 타지 않았다. 그냥 의자에 앉아서 지우와 얘기를 더 하겠다는 생각인 것 같아서 고마웠다. 헌터가 근처의 의자에 먼저 앉으면서 얘기를 시작했다.

“헌터가 되면. 타투가 생기죠. 타투가 생기면 헌터가 되는 건가?”

헌터가 웃었다.

그러면서 자기 팔을 보여주었다.

헌터 등급 - E/딜러

경험치 : 0/600

공격력 : 400(+40)

방어력 : 100(+10)

차크라 등급 - 5

차크라 숙련도 : 3%

능력치 증폭률 : 10%

멋스러운 필체의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E등급 딜러시네요?”

귀족의 문장 같은 타투를 보면서 지우가 말했다.

“네.”

“등급은 어떻게 올라가요?”

“경험치가 올라가야죠. 경험치를 올리려면 레이드를 성공해야 돼요. 5급 늪의 괴수 경험치가 10인데 늪에 열 명의 헌터가 들어가서 레이드를 하면 각 헌터가 1의 경험치를 얻게 돼요. 혼자 공략할 수 있으면 혼자서 10의 경험치를 갖게 되고요.”

“아아. 예? 혼자 공략을 한다고요? 그것도 가능한가요?”

지우에게는 신세계였다.

“A급 헌터가 되면 가능할 수도 있겠죠. A급 딜러는 공격력이 1200이니까. 거기에 공격 증폭률 300%인 장비를 착용한다고 하면 공격력이 3600이 되잖아요. 5급 늪 정도라면 혼자서도 공략이 가능할 거예요.”

헌터가 하는 얘기를 듣는 동안 지우의 입이 점점 벌어졌다.

“우리 나라에도 A급 헌터가 있어요?”

“아니요. 아직요. 전 세계적으로 3명이 있다고 하는데.”

“A급 헌터면. 진짜 대단하겠네요.”

“되면 좋겠죠. 그러면 우리나라 최초의 A급 헌터가 되는 거겠죠?”

“우와, 진짜 굉장하네요.”

“계속해서 레이드를 하면서 경험치를 부지런히 쌓으면 아래등급 헌터들의 승급은 그렇게 어렵기만 한 것도 아니에요. 위로 올라갈수록 쌓아야 하는 경험치도 높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헌터는 막 떠들어대다가 자기만 너무 혼자 떠드나 싶어서 지우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지우는 거의 침을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입을 벌린 채 헌터의 말을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뭐. 지금 실상은 그냥 E급 쩌리지만요.”

헌터가 말했다.

“세상에. 제가 요즘에 들었던 말 중에 제일 황당한 말이네요. F급도 아닌 E급이 쩌리라뇨. F급도 저한테는 신이랑 친구 먹을 존재들처럼 느껴지는데.”

“에이. 무슨. 그 정도는 아니예요.”

두런두런 얘기를 하는 동안 다시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두 사람은 동시에 일어서서 엘리베이터를 향해 다가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문이 열렸지만 그 안에 환상적인 여자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동시에 웃었다.

백화점에 온 목적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오히려 돈은 굳고 빈대도 확실히 떨어뜨리고 헌터까지 알게 됐다. 그런 생각에 지우는 하마터면 김인아에게 고맙다는 생각마저 가지게 될 뻔 했다.

***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려다가 지우는 아파트 단지 내의 상가로 들어갔다. 매장 안은 저녁 찬거리를 사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지우는 우리 나라의 유명한 탱커가 광고하는 에너지 음료를 골라 계산을 하고 나왔다. 이제 헌터는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이 높은 직군이다.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혹시 부장 소식을 들었다는 사람이 있을까 해서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봤지만 속시원한 소식이 없었다. 몇 사람이 지우를 충동하기도 했다. 부장이 사는 곳을 안다면서, 거기라도 가서 얼굴을 보고 따져서 돈을 받아야 되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지우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부장의 집 주소를 문자로 알려주기도 했다.

왜 자기들이 나서지 않고 지우에게 그러는 건지 지우도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돈을 받을 수 있다면 좋은 거지만 일이 다른 방향으로 튀기가 쉬웠다. 길을 가다가 자기한테 돈을 빌려간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 몸을 뒤져서 돈을 챙겨도 죄가 된다. 원래 받아야 할 돈보다 더 많은 돈을 합의금으로 무는 일이 생길 수도 있는 거다.  그런 법이 어디 있냐고 하면 그런 법이 어디에 있는지 조문과 판례를 찾아서 알려주겠다고 나올 수도 있는 거다.

그러니까 자칫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에 자기들이 나서는 것보다는 지우를 내보내고 자기들은 그 뒤에 있다가 돈을 돌려받을 수 있게되면 돌려받자 라는 심산인 것이다.

'내가 만만하다 이건가?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하나같이 나를 호구로 보네.'

어이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지우는 부장의 주소가 적힌 문자를 지우지는 않았다.

현실의 문제는 언제나 까다로웠다. 일이 저절로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지우는 원래 술을 즐기는 타입이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자꾸 술을 마시게 되었다. 중독을 염려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몽롱한 정신으로 쓰러지게 만들어준다는 생각에 자꾸 찾게 되었다.

집으로 가던 지우는 집에 술이 떨어졌다는 게 생각나서 가게로 돌아갔다. 매장 안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북적거리더니 지금은 제법 한가로웠다.

캐셔가 TV를 보고 있을 정도였다. TV에서는 지우가 용하랑 커피숍에서 보던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었다. 김인아와의 약속 때문에 나오느라고 보지 못했던 뒷부분이 궁금했었기에 지우는 거기에 시선을 주었다.

"부럽죠? 아휴. 나한테도 헌터 타투가 생겼어야 되는 거였는데."

젊은 캐셔가 TV를 보면서 말했다. 지우는 조용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극한직업’인가 하는 그 프로죠?"

지우가 물었다.

"네. 괴수 사체 운반 헌터에 대해서 알려준대요."

사체 운반 헌터라는 말에 지우의 호기심이 동했다. 리포터가 말을 하는 동안 캐셔가 볼륨을 키웠다.

-이번에 소개해 드릴 직업은 헌터, 그 중에서도 괴수의 사체 운반을 맡게 되는 하급 헌터들입니다. 늪에 대한 공략이 끝나면 공격대를 꾸렸던 탱커들은 일정 금액을 받고 괴수의 사체를 ‘바디 펌(Body firm)’에 넘깁니다.

바디 펌은 괴수의 사체 매입과 가공을 담당하는 업체다. 공격대장인 탱커로부터 괴수의 사체를 사들여, 바디 펌에 고용된 헌터들을 이용해 괴수의 사체를 절단해 운반하고 가공하는 일까지 총체적으로 맡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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