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부터 레벨업-2화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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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성

"안지우씨. 안지우씨가 집중적으로 당한 것 같은데. 떠안은 게 얼마나 돼?"

지우의 동료가 물었다.

"천, 천 육 백 만원. 내 수당으로 나오는 걸 빼면 그게."

"아니지. 수당을 빼면 안 되는 거야. 본사에서 책임져 줄 것 같아? 본사는 벌써 선 긋기에 나서고 있다고."

"수당이 안 나올 거라고?"

지우가 물었다.

"올초에 바뀐 계약서에 독소조항이 들어갔어."

옆에서 설명을 하는 동안, 지우는 그 말에 제대로 집중을 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도 2,3백만원을 물렸지만 지우를 보면서 위안을 얻는 것 같았다.

"구제받을 방법이 있겠지. 단체소송 같은 걸 해 볼까?"

지우가 물었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 그래서 그렇게 한 것 같아. 부장 새끼. 이 삼 백만원이야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사는 돈이니까. 대충 그 정도 선으로 맞춰놓으면 우리가 그냥 쉽게 포기해 버릴 거라고 생각한 거겠지."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사는 돈? 아니다. 아니었다. 지우에게는 그 돈이,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살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게다가 지우에게 날아온 짱돌은 남들에게 날아간 것보다 유난히 더 컸다.

'이 시발 새끼!'

지우는 절대로 부장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

“커피 마실 거지? 아메리카노?”

신용하가 물었다. 용하는 지우와 오래된 친구였다. 따지고 보면 용하와 공유하는 기억은 별로 없다. 용하는 자기가 지우와 중학교 동창이라고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지우가 대학에 다닐 때 만난 친구가 용하와 친했는데 어느 날 어쩌다가 셋이서 같이 만났다. 그리고 그 후로 용하와 지우가 더 잘 어울려 다녔다. 그러니 용하와 지우는 중학교 동창도 아니고 대학 동창도 아닌데 지우와 용하는 안이하게 기억을 왜곡해 보관하는 중인 것이다.

“응, 아니, 밀크티.”

용하는 말없이 주문을 하러갔다.

지우가 회사에서 잘리고, 아니, 회사가 먹튀를 해 버린 상황이니 잘렸다고 할 수는 없는 거지만, 어쨌거나 엿 같은 상황에 처한 후로 두문불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지우를 억지로 불러낸 용하는 지우에게 거하게 밥을 샀다.

“기운 차려야지 언제까지 그러고 있으려고? 찾아보면 일 자리는 얼마든지 있을 거야.”

자리로 돌아온 용하가 제법 그럴듯한 소리를 했다. 위로를 해 주고 싶어하는 거라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의욕이 생긴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지우는 그냥 그 자리가 불편했다. 불편하기는 용하도 마찬가지였다.

작은 커피숍에는 두 사람 말고 손님이 없었다.

“TV 켜도 되나요?”

어색한 침묵을 참다못한 용하가 사장에게 물었다.

“네, 그러세요.”

사장은 전혀 상관없다는 제스츄어를 해 보였다.

TV에서는 늪 앞에서 리포터가 중계를 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극한직업 ‘헌터의 세계’다."

용하가 아는 척을 했다.

"생방송인가?"

지우가 물었다.

"아냐. 저 방송은 생방송으로 안 해."

나름대로 그 프로그램을 자주 챙겨보는 열혈 시청자였는지, 용하는 제법 정보를 꿰고 있었다.

리포터가 카메라를 바라보며, 늪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이 늪은 5급 늪입니다. 괴수를 공략하기 위해 열 명의 레이더가 늪에 들어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헌터의 수입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계실 텐데요. 오늘 제가 그 궁금증을 전부 해결해 드립니다.

“오오. 저거 재밌겠다.”

용하가 의자를 돌려 TV쪽으로 향해 앉으면서 호기심을 보였다.

-레이드에 참가한 헌터는 탱커와 근접 딜러, 원거리 딜러로 나뉘게 되고 세금을 떼기 전에 괴수를 사냥해 1억을 받는다고 했을 때 탱커가 3천만원, 근접 딜러가 천만원, 그리고 원거리 딜러가 약 700만원씩을 분배받게 되는 거죠. 40퍼센트의 세금을 뗀다고 하더라도 적은 금액이 아닙니다.

“우와, 원거리 딜러가 7백만원이나 받는대.”

용하가 부럽다는 얼굴로 말했다.

“세금 떼기 전에 그렇다고. 세금 떼면 420만원 정도 되겠다.”

지우가 말했다. 계산은 제대로 하고 넘어가자는 말투였다.

“그래도. 레이드 한 번에 저렇게 번다는 거잖아. 5급 늪을 공략했을 때. 한 달에 주말 빼고는 거의 매일 뛸 텐데. 그럼 얼마냐?”

“계산하고 싶지 않아.”

“해봐. 5급 늪만 공략해서 25일만 레이드 뛴다고 해도 세금 떼고 1억 5백만원 아냐?”

“남의 수입 따위 계산하고 싶지 않아.”

지우는 여전히 시큰둥하게 말할 뿐이었다.

“원거리 딜러가 버는 게 한 달에 1억이라니.”

용하는 현실감조차 느껴지지 않는 액수에 새삼스럽게 감탄했다.

"한 달에 25일? 돈에 미친 것도 아니고. 쉬지도 않고 그렇게 항상 레이드를 하겠어?"

지우가 말했다.

"벌 수 있을 때 바짝 벌어야지 놀면 뭐하냐? 내가 헌터라면 하루도 안 쉬고 레이드를 할 텐데. 연중무휴 헌터! 하루에도 여러 탕씩 뛰고. 돈 벌면 슈퍼 카를 다 사 모을 거야. 아. 그러려면 차고가 있는 집을 먼저 사야 되겠구나. 단순히 차고가 있는 집 정도로는 안 되고 차고가 엄청 커야 되겠네. 그런 집이면 얼마냐? 뭐, 말하는데 돈 드는 것도 아니고. 하는 김에 해수욕장까지 딸린 집으로 사야지. 레이드 쉬는 날에는 여자들 거기에다 띄워놓고 놀고."

"안 쉬고 레이드만 한다며?"

"아. 그럼 안 되겠네. 쉬긴 해야겠다."

현실성도 없는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고 생각하면서 용하가 즉각 계획을 변경했다.

"쉬엄쉬엄해서 언제 슈퍼카를 다 사 모아?"

"그러네. 아! 탱커가 되면 되지."

"그래. 그러면 되겠네."

"아아. 진짜 아깝다. 나는 왜 헌터가 못 됐을까."

용하는 못내 아쉽다는 얼굴이었다.

지우도 마찬가지였다.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둘이서 헛소리를 지껄이는 사이 레이드를 마친 헌터들이 늪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리포터가 탱커로 보이는 헌터에게 마이크를 들이밀고 있었다. 헌터의 장비가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팔과 정강이에는 괴수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보호 장구가 둘러져 있었고 긴 장갑이 팔꿈치까지 감고 있었다. 투구는 그물로 덮여 있었고 특수한 소재로 직조된 갑옷 아래에 사슬 셔츠를 입고 있었다. 늪에서 나온 사람들은 그때까지 갑갑하게 쓰고 있던 투구를 벗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들이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다. 레이드가 얼마나 격렬했을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었다.

헌터들은 한 눈에 봐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괴수가 센 놈이었나?"

용하가 말했다.

“나한테 물은 건 아니지?”

지우가 별 바보 같은 질문을 다 듣겠다는 듯이 말하고 웃었다.

-공격대장님이시죠? 지금 늪에서 레이드를 마치고 나오시는 길인가요?

리포터가 헌터에게 다가가 물었다.

카메라는 공격대장이 입은 갑옷을 포착해 들어갔다.

"저것도 괴수 가죽으로 만든 거겠지?"

용하가 물었다.

"그렇겠지?"

저절로 화면에 집중이 되었다.

공격대장의 뒤로, 그와 같이 레이드를 한 공격대원들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저런 옷 한 벌에 1억이 그냥 넘어간대."

용하가 말했다.

"무기까지 제대로 갖추려면 몇 십억은 우습게 들어간다는 것 같던데."

지우도 자기가 아는 지식을 덧붙였다.

"많이 벌면 뭐하냐? 돈 쓸 일이 저렇게 많이 생기는데."

용하의 말에 지우도 부지런히 고개를 끄덕였다.

장비와 무기를 만들 때 러프 스톤을 함께 사용해 만들면 제품의 성능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러프 스톤을 같이 넣어서 만든 관련 상품이 개발되었고 헌터의 장비와 무기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오늘 레이드는 어땠나요? 레이드가 생각보다 오래 걸린 것 아닌가요?

리포터가 질문을 하자 공격대장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합니다만 레이드 도중에 헌터가 부상을 당했습니다. 경미한 상처기는 하지만 병원에 옮겨 치료를 받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지 못해 죄송합니다.

공격대장의 말에 리포터의 얼굴에도 긴장하는 빛이 감돌았다. 다쳤다는 사람을 붙잡고 있을 수는 없어서 리포터는 서둘러 길을 내 주었다. 카메라는 레이드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떠나는 공격대의 모습을 뒤에서 담아내고 있었다. 리포터는 잠깐 당황한 모습이었지만 카메라를 한 번 보더니 싱긋 웃었다.

-5급 괴수의 경우 사체에서 발견되는 러프 스톤의 가격만 1억입니다. 그 외에 부수적으로 얻게 되는 괴수의 사체 가격이 천만원이죠.

리포터의 말에 다시 용하의 입에서 탄성이 쏟아졌다. 이어지는 설명은 더 구체적이었다.

4급 괴수의 사체 가격은 3천만원, 3급은 1억, 그리고 2급은 3억으로 책정되어 있는데 1급 괴수의 경우 지금까지 공략에 성공을 한 적이 없어 가격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그럼 헌터가 버는 게 1억이 전부가 아니네? 한 번의 레이드로 1억을 번다고 했을 때 나눠 갖는 게 그 정도라는 거잖아. 러프 스톤 가격만 1억이고 사체 가격까지 하면 더 되겠는데?”

용하가 말했다. 적잖이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헌터가 많이 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격차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알게 되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건 그냥 미미한 수준 아니겠어? 열 명이 나눠가지면. 원거리 딜러한테 떨어지는 건 별로 되지도 않겠다.”

대충 계산을 하면서 지우가 말했다.

“그래도 한 달에 스물 다섯 번이면 사체를 팔아서 나눠 갖는 것만으로도 웬만한 직장인 연봉보다 훨씬 많이 나오겠다.”

용하는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암산을 하면서 말했다.

둘 다 음료수 한 잔을 오래오래 나눠마시는 스타일은 아니어서 단숨에 들이마셔 버리고는 멀뚱히 TV를 보고 있었다. 용하는 자기가 헌터만큼 벌면 집을 어떻게 해 놓고 살지, 추가적으로 생각나는 것을 그때마다 말했다.

그때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지우의 스마트폰이 징징징거리면서 요란을 떨었다.

“아, 인아다.”

지우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우의 여자친구인 인아가 며칠동안 연락이 없더니 갑자기 전화를 해 온 것이다. 얼결에 직장을 잃은 후에는 지우도 거의 연락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아직 사귀는 사이가 맞는 건가 하고 고개가 갸웃거려질 정도로 요즘에는 관계가 많이 소원해진 상태였다.

“얼른 받아봐.”

용하가 말했다.

지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용하가 웃음을 지었다. 굉장히 애매한 웃음이었다. 네 인생도 참 복잡하다, 라면서 안타까워하는 표정 같았다.

"어, 인아야."

지우는 제법 반가운 목소리를 가장해 전화를 받았다.

-어디야? 지금 잠깐 볼까?

인아의 목소리가 제법 쾌활하게 들려왔다.

"어? 나 지금……."

친구랑 있다고 말을 하려는데 용하가 손을 저으며 일어났다.

“아냐. 아냐. 시커먼 남자들끼리 앉아 있어서 뭐해. 나는 네 얼굴 충분히 봤으니까 이제 여친 만나러 가. 나도 들어가서 좀 쉬어야 내일부터 또 회사 나가지.”

“그래? 그럼 그럴래?”

지우는 용하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괜찮아. 괜찮아. 신경 쓰지 말고. 같이 일어나자.”

용하가 먼저 서둘러주었다.

"여보세요? 어. 그럼 어디에서 볼까? 백화점? 으응."

몇 마디를 더 하고 지우는 전화를 끊었다. 그 표정이 꽤나 불편해 보여서 용하가 지우를 바라보았다.

“왜?”

“이틀 있으면 우리 사귄지 150일이 된대. 근데 그 날은 자기가 가족들이랑 여행을 간다고 오늘 미리 만나재.”

“그런 게 어딨어? 기념일에 못 만나면 그냥 지나가는 거지. 미리 당겨서 선물을 챙기겠다는 거래?”

용하가 물었다.

“그 얘기인 건가?”

“아니다. 내가 한 말은 취소할란다. 잘 만나고 있는 사람들한테 이런 소리 해서 괜히 싸우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안지우님. 저는 이만 가 볼 테니까 이쁜 사랑하세요.”

용하는 인아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직접 뭐라고 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전형적인 김치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꾸준히 벌이가 있었을 때야 상관이 없었는데 그날은 지우도 인아의 태도가 신경쓰였다.

“같이 가. 어차피 같은 방향인데.”

“어. 밖에서 담배 좀 피우고 있을게. 천천히 나와.”

용하가 먼저 나갔다. 지우가 계산을 하려고 카운터로 가자 주문하면서 이미 계산을 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용하의 사소한 마음씀씀이가 고마웠다. 나오면서 돌아보니 TV에서는 괴수의 사체를 운반하기 위해서 또다른 헌터들이 늪을 향해 들어서고 있었다.

'저 사람들 하는 일도 궁금했는데. 아쉽게 됐네.'

지우는 아쉬움을 느끼면서 커피숍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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