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55 >
우진이 손을 뻗었다.
무수한 의지의 검날이 적을 향했다.
— 콰지지직!
파티장.
천변의 루이스의 몸에서 백색 강기가 나와 방어를 펼쳤다.
정신 집중으로 펼치는 기예.
파티장의 상징과도 같은 절대 방어 능력.
천변과는 다른 비장의 수다.
‘나왔군. 부동의 흰 원.’
팔괘선의에 끌렸던 이유.
또한 백색 악마를 자신의 방어 장비로 삼았던 이유는 저 백색을 동경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자신의 몸은 흑색.
죽은 자의 검푸른 피부만이 전신을 감싸고 있다.
상관없다.
‘이게 진짜 나다.’
무형지기가 막힌 것도 상관 없다.
지금부터 신살(神殺)의 의지는 마치 공기처럼 놈의 곁에 있을 테니까.
숨통을 옥죄는 형벌처럼 말이다.
백색 강기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영원히 무형지기를 막을 순 없을 터였다.
또한.
“아직 보여줄 게 많아.”
우진의 손에서 가볍게 번개가 뻗어나갔다.
뱀장어의 술이었다.
그러자 자신의 능력으로 모방한 번개를 맞대응하듯 펼치는 루이스.
— 파지지직!
두 줄의 번개가 허공에서 만나 사라졌다.
그때.
“무한(無限). 극뢰(極雷).”
우진의 손이 순간 수백 개로 늘어났다.
“천수뇌인(千手雷印).”
무수한 번개가 대기를 찢으며 날아갔다.
그리고 루이스의 백색 강기를 조여 들어갔다.
“네 고유 스킬이 아무리 대단해도 신수의 힘을 모방할 순 없지.”
공세를 버텨내던 놈이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결국 울분을 토해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능력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힘.
그것에 일그러진 놈의 얼굴이 보기 좋았다.
“천변의 루이스. 이름은 좋구나. 허나 넌 모방할 뿐이지. 난 모두가 내 진짜 힘이다.”
궁지에 몰린 루이스.
놈에게 다음 공격이 선언되었다.
우진이 손을 들며 말했다.
“제법 잘 버티는군. 그렇다면 한 번에 스킬 세 가지는 어떨까.”
— 콰르르릉!
초열대선풍진(超熱大僊風陣).
그 어마어마한 화력이 놈을 덮쳤다.
“크아아악!”
발악하는 놈에게 우진이 저벅저벅 다가갔다.
“영혼 약탈, 환각통, 얼어붙는 한기, 망자의 공포, 천공의 음성, 지독한 원념. 이 스킬들의 공통점을 아느냐?”
우진이 여유롭게 불길 속을 걸어가며 말했다.
“이 모두가 네 정신을 노리는 공격이라는 점이지.”
그가 자신이 말한 모든 능력을 발동했다.
천공의 음성이 마치 신의 목소리처럼 울렸다.
“네 모방 능력은 정신을 열고 남의 힘을 받아들이는 것.”
루이스의 얼굴에 공포가 어렸다.
자신의 은밀한 비밀까지 알고 있는 낯선 괴물!
그 괴물이 다시 말했다.
“그렇기에 넌 정신 방어 능력을 가질 수 없다. 네가 날 원했던 이유이기도 하지.”
우진이 힘을 집중해 공격의 강도를 높였다.
“끄아아악...!”
무릎을 꿇고 사지를 벌벌 떨며 침을 흘리는 놈.
같은 능력을 사용해 반격하려 했지만 절대적인 정신 방어 능력을 가진 우진에겐 소용 없는 일이었다.
“컥... 커걱....”
놈이 흰자위가 보일 때였다.
— 꽈르르릉!
우진이 모든 힘을 끌어올렸다.
“무한(無限) 질풍참!”
진짜 무한에 닿을 듯한 힘으로 쏟아낸 기술.
“이게 내가 죽음으로 얻어낸 힘이다.”
거대한 참격에 절망하는 놈.
“으... 으... 으아아아!”
비명을 내뱉다 최후의 도주기를 사용했다.
비상 탈출 수단인 아이템 ‘마지막 기회’로 도망을 택한 것이다.
폭발하듯 빛이 번쩍이고 놈의 기운이 사라졌다.
보이지 않는 파티장.
사방이 고요하다.
주변엔 오직 여섯 놈의 시체 뿐이었다.
“그래... 그래야 네놈답지.”
모든 기감 능력으로 추적을 시작한 우진.
이조차도 완벽한 사냥을 위한 계획의 일부였기에.
“절망해라. 의문을 품어라. 왜 죽는 것인지 혼란 속에서 기억을 더듬어라.”
자신이 죽어갈 때와 똑같은 고통을 주고 싶었다.
“멀리 가지도 못했군.”
— 투쾅!
우진의 신형이 어딘가에 나타났다.
그건 동굴 앞이었다.
루이스를 기어코 찾아낸 우진.
동굴로 들어선 그의 눈이 붉게 번쩍였다.
혼이 빠져나간 듯 하얗게 질린 파티장.
루이스가 이제야 공포를 드러내며 물었다.
“너... 넌 도대체 무엇이냐.”
“나?”
수없이 많은 설명이 가능하다.
수없이 많은 이름도 가능하다.
잠시 고민하던 우진이 자신의 검푸른 주먹을 움켜쥐며 웃었다.
“SSS급 언데드.”
그의 전신에서 차가운 분노가 터져나왔다.
“내가 SSS급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우진이 상대를 동굴의 깊은 곳으로 몰고 갔다.
— 채채채챙!
여유롭게 도신을 움직이며 놈을 몰아 붙이는 공세.
“난 이미 너를 수천 번, 수만 번 죽여왔다. 내 상상 속에서.”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막다른 곳에 이르렀다.
“이제야 여기 네가 현실이 되어 내 앞에 섰구나.”
그때 파티장이 절규하듯 물었다.
“이러는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니냐?”
놈은 정말 궁금하다는 얼굴이었다.
우진도 바라던 바였다.
놈에게는 반드시 알려주고 싶었다.
“복수다.”
잠시 흔들린 놈의 눈.
“그래... 아주 지독한 복수심으로 날 쫓은 것 같은데. 그 정도 복수심을 갖게 된 이유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알고 싶지도 않아.”
이미 사정을 알겠다는 눈치였다.
지금껏 피해를 끼쳐온 자가, 배신을 해왔던 자가, 욕망으로 짓밟았던 자가 너무나 많기에 이 낯선 얼굴을 보고도 사연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다만 뱀 같은 눈동자로 주위를 살피며 살 길을 찾고 있을 뿐.
하지만 없다.
도망칠 방법은 없다.
놈이 혀를 날름거려 입술을 핥았다.
“보아하니 내가 이길 방법이 없군.”
루이스가 단검을 빼들었다.
“그렇다고 네가 원하는 걸 내어주고 싶지도 않은데.”
순간 우진의 눈이 커졌다.
“뭐라고...?”
놈이 갑자기 씩 웃었다.
그리고 웃으며 자신의 목에 칼을 꽂았다.
망설임도 없는 깊숙한 공격.
— 푸콱...!
순간 엄청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생명의 증거인 대량의 혈액이 왈칵왈칵 흘러 바닥을 적셨다.
‘저런 개...새끼가...!’
풀썩 쓰러진 루이스.
우진이 서둘러 놈의 목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이미 죽었다.
정말로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이럴 수가....’
전지의 감각을 지니고 있는 우진.
그의 앞에서 위장 따위는 불가능하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놈은 이 정도로 판단력과 실행력이 좋았단 말인가?
자신의 목숨을 버려서 남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할 정도로?
허무한 감정이 찾아왔다.
그러나.
그때 우진의 얼굴에 섬뜩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니, 넌 도망 못 친다.”
우진이 찢듯이 자신의 상의를 걷어내고 하나의 아이템을 손에 쥐었다.
지키는 자의 목걸이.
페인텔에서 수호의 위업을 달성하고 받았던 지고의 보물.
“이걸 네게 써주마.”
목걸이의 첫째 능력은 ‘전능의 가호’.
이치를 초월한 방어막이다.
그 두번째 능력은 목걸이의 파괴로 이루어지는 일회성 기적.
‘소생’의 권능.
시간을 거스르는 힘이었다.
“내가 죽음에서 돌아왔듯이. 너 또한 그리될 것이다.”
우진이 손을 움켜쥐었다.
지키는 자의 목걸이가 파괴되었다.
전능의 가호보다 단단한 마기의 보호가 있기에.
또한 목걸이의 가치보다 더 강력한 의지가 있기에.
파괴된 목걸이의 능력이 발동하고, 거대한 빛이 터져 나왔다.
‘소생.’
빛이 루이스를 감싸고 시간을 역전시켰다.
상처가 회복되고 정신을 차린 놈이 눈을 떴다.
“으으윽....”
다시 살아난 것이다.
어리둥절한 얼굴의 놈.
생과 사의 기억이 섞여 혼란스러워 보였다.
놈에게 우진이 싸늘하게 말했다.
“넌 죽음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흉안, 지령, 암시 등으로 공포심을 주는 모든 능력을 발동한 우진.
지독한 공포 속에서 뒤로 기어가는 놈에게 말했다.
“싸우다 죽는 것이 명예라고 하지. 하지만 넌 그것조차 실패했다.”
“실패... 무슨...?”
아직도 상황 파악을 하고 있는 루이스.
그에게 우진의 서늘한 사형 선고가 떨어졌다.
“도망치다 죽는 비참한 최후. 그게 네 마지막이 될 것이다.”
죽음에서 돌아온 자가, 죽음으로 도망치려던 자에게 말했다.
“사필귀정, 인과응보.”
우진의 눈에 뜨거운 기운이 어렸다.
“결자해지.”
무형지기.
차가운 복수의 의지가 놈의 사지를 가르고 팔다리를 잘라냈다.
워낙 엄청난 예기.
놈이 고통조차 못 느끼고 있는 그 순간.
— 콰드드득...!
검푸르게 변한 우진의 손이 놈에게 향했다.
언데드의 팔이 콰직하고 가슴을 뚫었다.
놈의 심장에 손가락이 닿았다.
— 두근... 두근....
박동하는 신체.
이제야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깨달은 녀석의 눈이 커졌다.
그 눈동자에 담긴 것은 공포.
“아... 아... 아... 안....”
만족한 우진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돼.”
— 콰지직...!
생을 빼앗겼기에, 생을 앗아와야 한다.
그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자 끝이니까.
— 뿌득...!
그대로 심장을 뽑아냈다.
비산하는 핏물.
그게 얼굴에 끼얹어졌을 때.
우진은 웃고 있었다.
— 콰드드득....
터지는 심장.
절망 속에 죽어가는 놈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고 짜릿했다.
“이제야 모든 게 끝났다.”
바로 자신이 죽어갈 때와 정확히 같았으니까.
*
[’천변(千變)’을 계승했습니다.]
스킬을 계승한 우진이 잠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누가 복수가 후련하냐, 후회되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믿을 수 없을만큼 후련하다고.
그의 사정을 알고 있는 르쉬가 물었다.
“이제... 어떻게....”
그의 가장 큰 목표였던 복수가 달성된 순간이었다.
그러니 이제부터의 행보를 묻는 것이다.
우진이 얼굴의 피를 훔쳐내며 씩 웃었다.
“끝을 봐야지.”
여기까지 왔는데 월드의 끝을 보지 않을 순 없다.
월드의 최강자라 할 수 있는 자들을 동시에 상대해서 다 죽였다.
이들이 막혀 있던 그 마지막 시험이란 것.
자신이 뚫어버릴 생각이었다.
우진이 수하를 보며 각오를 다졌다.
“르쉬, 지금부터는 나 혼자만의 여정이 될 것 같다.”
그건 일종의 직감이었다.
그러나.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르쉬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겠습니다!”
수하의 어깨를 다독여준 우진.
“좋다.”
그가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 콰콰콰쾅!
대지를 넘어 빠르게 날아가는 검푸른 육체.
‘여기까지 온 이상, 단숨에 모든 걸 끝낸다.’
이놈들이 막혀서 뚫지 못했던 ‘최후의 시험’을 향해 나아갔다.
공간마저도 지배하는 힘.
한계가 없는 스태미너.
그리고 더 이상 숫자는 의미가 없을 정도인 마나.
폭발적인 기세의 우진에겐 그 무엇도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단숨에 모든 장애물과 마물을 통과했다.
“날 막을 순 없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시야에 중심부의 끝이 들어왔다.
그건 문이었다.
거대한 황금의 문.
마지막 시험의 장소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곳이....’
그 앞에 서자 알림이 떠올랐다.
[왕의 자격을 보이십시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왕격으로 증명해야 한다.
‘이거였군. 이래서 흡혈귀 왕을 사냥하려 한 거였어.’
놈들이 왕격을 찾던 이유.
마지막 시험의 자격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왕이 될 자격이 없었던 놈들.
입장하는 것마저 불가능했으리라.
우진이 자신 고유의 왕격을 드러내 더욱 강렬한 왕의 기운을 뿜어냈다.
— 쿠구구궁....
그러자 열리는 황금의 문.
[충분한 자격이 증명되었습니다.]
그 너머에는 무한한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일종의 심상 세계였다.
우진이 미소 지었다.
‘네가 내 마지막 상대로군.’
아득한 ‘월드’의 의지가 느껴졌다.
이건 세계 그 자체와의 전투였다.
정점에 도달할 자격이 있느냐에 대한 증명.
세상 모든 존재의 의문을 일축시킬 힘을 보여야 하는 시험장.
— 휘오오오....
이내 정신과 육체를 모두 짓이겨버릴 듯한 힘의 폭풍이 불어왔다.
우진이 깨달았다.
‘이건 한계의 시험이다.’
정점에 가기 위해선 무한의 힘.
즉 한계가 없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혼백이 뽑혀도 투지를 발휘해야만 하는 시험.
— 저벅....
우진이 당당하게 그 시험장에 섰다.
그리고 힘을 끌어올렸다.
— 쿠구구구....
‘한계를 넘는 것이 아니다. 한계는 없다.’
무한은 정말 무한한 어떤 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기에.
한계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설령 죽을지라도...!
— 쾅!
그가 자신의 모든 힘을 발휘했다.
그리고.
‘한 번 더...!’
— 콰아아앙!
우진의 몸에서 엄청난 투기가 뿜어져 나왔다.
몸을 짓누르는 모든 압력을 이겨내고.
그가 죽음을 넘어 깨달은 의지의 극한을 선보였다.
‘끝까지......!’
— 콰아아아아앙!
‘죽은 자를 다시 죽일 순 없는 법이다...!’
그리고.
흩날리는 힘의 폭발 속에서 우진이 무사히 걸어나왔다.
마침내 황금빛 알림이 떠올랐다.
[세계의 마지막 시험을 통과하였습니다.]
<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5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