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53 >
우진이 흡혈귀 왕이 될 존재에게 말했다.
“몇 년 후 넌 왕격을 획득하게 된다. 상상할 수 없는 힘을 얻어 명실상부 5구역 최강의 마물이 되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있는 것은 미청년이었다.
또한 귀족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아무래도 거대한 힘을 견디지 못하고 ‘불완전한 진화’를 하기 전에는 이런 모습이었던 모양이다.
그가 떨리는 눈으로 물었다.
“내, 내가 말이오...? 내가 정말 왕이 된다는 것이오?”
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넌 흡혈귀들 중 최강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흡혈귀 왕은 생각보다 상황을 잘 받아들이고 있었다.
스스로가 세계의 이치를 초월한 ‘왕’의 자리를 꿈꾸고 있었기에 이런 ‘예지’와도 같은 말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물며 그것이 초월적인 강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일진대, 어찌 의심할 수 있을까.
그때 우진이 말을 이었다.
“또한 널 죽여서 자신들의 벽을 뚫어 보려는 자들이 생긴다. 그리하여... 넌 결국 월드 최강의 파티에게 토벌당한다.”
토벌.
자신의 죽음을 말하자 흡혈귀의 눈에 당황이 떠올랐다.
“와, 왕이 되었는데 말이오?”
“괴물 같은 놈들이 떼거지로 오거든. 그리고 네가 절대 예측할 수 없는 변수도 있고.”
그건 바로 자기 자신, 우진이다.
물론 이번 생에는 없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우진은 다른 방식으로 그에게 영향을 끼칠 생각이었다.
놈은 어쨌든 흡혈귀.
어느 정도 힘을 모은 후에는 5구역까지 도달한 모험가들을 잡아먹게 된다.
자신은 그런 마물을 계속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가 미래의 흡혈귀 왕에게 해결책을 주었다.
“바깥 고리로 떠나라. 그곳이 안전하다.”
흡혈귀 왕이 순간 오싹함을 느꼈다.
방금 그 말은 중의적이었다.
자신을 토벌할 파티는 부차적인 문제.
지금 당장 눈앞의 존재, 우진의 말을 듣지 않으면 위험해진다는 뜻이었다.
“악인을 먹어라. 바깥 고리의 모든 악인을 먹고 나면 왕격을 획득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우진이 확신을 담아 말했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다.
자신은 세상 누구보다 흡혈귀 왕의 잠재력을 잘 알고 있다.
그 장본인이 되어 느꼈던 감각이니까.
그는 정말로 ‘왕’이 될 자격이 있다.
“그리고 언젠가 왕격을 획득하거든 다시 찾아와라. 네가 나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든, 내가 그것을 감당하겠다.”
갑자기 나타나 거처를 떠나라고 했으니 아무런 저항감을 느끼지 않을 리 없었다.
그건 복수심이 될 수도 있다.
우진은 그걸 피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 흡혈귀 왕에게 그런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고, 고맙소.”
흡혈귀 왕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영원한 도주를 꿈꾸고 있었다.
다시 돌아올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저런 존재와 다시 마주하라고...?’
심지어 왕이 되고자 하는 꿈조차 흐려졌다.
아득한 강자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걸 알아차린 우진의 목소리가 그의 귀를 파고들었다.
“아니. 절대 포기하지 마라. 넌 할 수 있다.”
흡혈귀 왕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우진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알고 있다.
상대가 정말로 자신의 목표를 이뤄냈다는 사실을.
그러니 이번 생에도 정말 엄청난 존재가 되어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흡혈귀 왕의 격을 쉽게 먹기 위해서?
아니다.
다만...
자신 때문에 저 녀석이 스스로의 목표를 포기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몇 년 후 이 흡혈귀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가 된다.
그 안에 담겼을 어마어마한 노력을 자신 때문에 포기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가라! 가서 최선을 다해라! 넌 할 수 있고, 해냈다.”
“아, 알겠소!”
주섬주섬 물건을 챙겨 떠날 준비를 하는 흡혈귀 왕.
그의 귀에 우진의 마지막 말이 들려왔다.
“그리고... 고마웠다.”
흡혈귀 왕이 멈칫했다.
무엇이 고맙단 말인가?
“네 덕에 내가 여기 있거든.”
미소 짓는 우진.
상대로서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일 것이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흡혈귀 청년이 꾸벅 고개를 숙이고 먼 곳으로 사라졌다.
훨훨 날듯이 공동을 벗어나는 마물.
‘역시 보통 모험가는 상대하기 힘든 존재다.’
지금도 충분히 강하지만...
그는 더 강해질 것이다.
보통 의지력이 아니니 언젠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안 나타나면 자신이 찾아갈 생각이고.
그 관계가 꼭 적대적이 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뭐, 부하도 좋고.”
그러자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르쉬가 흠칫 놀라서 경계했다.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피는 수하.
자신의 자리를 위협 받을 수도 있다는 본능이 발동한 것이다.
다시 미소를 지은 우진이 주변을 살폈다.
이것으로 ‘은혜’는 갚았다.
‘내가 흡혈귀 왕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존재가 되다니.’
이 깊은 곳의 공동.
전생엔 강대한 마물과 싸우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찾아와 실제로 죽었다.
웃음을 터트릴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변화였다.
그러나.
“이제 진정한 변화를 만들 시간이다.”
복수는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다가왔다.
남은 것은, 결행 뿐.
우진이 공간전이술로 밖을 향했다.
다시 5구역의 드넓은 대지가 펼쳐졌다.
“시간이 됐다.”
이번 생에 우진은 이 장소에 아주 빨리 도착했다.
그 시간차는 대략 6, 7년 가량.
흡혈귀 왕이 있는 최종 구역.
5구역.
여기 자신의 복수 상대들이 있다.
놈들은 여기서 대략 6년이란 세월을 머물며 힘을 키우고, 공략을 연구했다.
말하자면 이곳이 그들의 ‘벽’이었던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하지. 남들은 중심부에 넘어오자마자 만나기도 하는 벽을 이 끝까지 와서야 마주친 것이니까.’
그들은 끈질기고 치밀하게 힘을 키웠다.
그 목표는 ‘왕의 자격’을 얻는 것.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왕격을 획득하려 노력했다.
따라서 놈들의 앞으로 몇 년의 행보는 스스로 왕의 자격을 획득하거나 왕격을 지닌 마물을 사냥하는 과정이 된다.
그러나 일곱 명 중 단 하나도 왕이 되지 못했고, 왕격을 지닌 마물을 발견하지도 못했다.
초조해진 파티장이 서서히 본색을 드러낸 이유이기도 했다.
그리고 몇 년 후 왕격을 획득한 흡혈귀 왕.
6년만에 등장한 그 존재를 죽여 왕위를 계승한다는 작전을 짜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진을 데려다 ‘그날의 전투’를 벌였던 것이다.
‘비겁하기 짝이 없는 행태지.’
왕격을 얻어보니 알게 되었다.
왕격은 결코 그런 식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후우우웅!
그때 우진이 마침내 ‘선두’라 불릴만한 특정 지역에 진입했다.
자신의 힘이 아닌 누군가의 도움으로 겨우 닿았던 이 장소.
이번엔 자신의 힘으로 도착했다.
놈들의 근거지 근처에 도달하자 익숙한 지형이 보였다.
우진의 눈에 불꽃이 들어왔다.
‘놈들이 여기 있다...!’
당연한 사실이었으나, 실제로 놈들의 존재를 느끼고나니 무서울 정도의 감정이 치솟았다.
그건 ‘설레임’에 가까웠다.
무자비하게 뿜어진 기감이 적들을 추적했다.
카이스, 가이저헤드, 레이카....
진광, 아젤리아, 테리온....
그리고 파티장.
놈들의 지긋지긋할 정도로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우진의 얼굴에 섬뜩한 미소가 떠올랐다.
“찾았다.”
저 멀리 명백한 강자들의 힘이 감각을 파고 들었다.
— 콰아아앙!
폭발음을 남기고 날아가는 우진.
그의 눈에 수백 미터 밖의 놈들이 포착되었다.
처음 봤을 때보다 몇 년은 어려보이는 파티장의 얼굴.
그걸 보자 욕설이 치밀어 올랐다.
놈은 더욱 젊고, 더욱 생기 있었으며, 자신의 악심(惡心)을 감추는 일에 거리낌이 없어 더욱 가증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금발 아래 청년의 앳된 얼굴.
‘저게 바로 가면을 쓰기 전의 놈의 본모습이군.’
자신이 기억하던 대형 파티는 아니었다.
하지만 핵심 멤버는 다 있다.
파티장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자신의 원수들...!
저들은 ‘놈’의 진면목을 알면서도 끝까지 함께 한 동료들이다.
“오로지 너희를 죽이기 위해. 내가 시간을 거슬러 여기 돌아왔다.”
자신을 죽인 것은 저 괴물들이 자라나 생길 거대한 나무(木).
자신이 죽일 것은 그 흉측한 거목의 씨앗!
그때 우진이 뭔가를 발견했다.
흥분 때문에 눈치채지 못했지만 주위에 어마어마한 양의 시체들이 있었다.
‘저건...?’
자신의 기억보다 몇 년은 어린 파티원들.
그들이 엄청나게 많은 시체 위에 무덤덤하게 서 있었다.
‘설마...?’
그때 가이저헤드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사람을 많이 죽인다고 마왕(魔王)이 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자신이 기억하는 그 겸연쩍은 미소를 띄는 혼혈 전사.
그러나 그 순간 우진의 머리에 번쩍이는 섬광이 튀었다.
‘설마 저런 짓까지 해서 왕격을 얻으려고...!’
그때 가이저헤드가 시체 한 구의 목을 쳤다.
분명 그저 재미로 한 행동이었다.
한때는 놈을 친절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건 자신이 놈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항상 그와 끝까지 술을 마셔주고, 항상 그의 심부름을 대신 해주었으니까.
그뿐이었다.
그 외에 놈은 그저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괴물.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의 목숨을 대량으로 취한 뒤에도 웃을 수 있는 지독한 인간.
코를 막고 피냄새에 손바닥이나 휘젓고 있는....
악인(惡人)이다.
정말로 화가 나자 전신의 모든 힘이 몇 배가 되는 기분이었다.
인륜을 저버린 뭔가를 보자 눈이 돌아갔다.
파티원과 파티장의 개짓거리.
자신처럼 희생되는 누군가를 목격하고 말았다.
그건 수백 명의 우진이었다.
파티장 뿐 아니라 다른 자들도 다 동참하고 있었다.
조금이나마 믿었던 진광과 레이카까지.
시체들을 쿡쿡 찌르며 ‘왕의 자격’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진의 눈이 완전히 뒤집혀버렸다.
그가 전력으로 지형을 뚫고 접근했다.
— 쾅! 콰아앙! 콰과과광!
솔직히 걱정했다.
놈들은 이번 생의 자신과 연관이 없으니까.
그러나 저 웃는 낯짝들을 보자마자 복수심이 차올랐다.
그리고 저런 개짓거리를 하고 있는 걸 보니 그 감정은 더더욱 불타올랐다.
오길 잘했다.
복수를 결심하길 잘했다.
여기까지 오길 정말 잘했다.
뛰지도 않는 심장이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야이 개애새끼들아아아아아아—————!!!!!”
후련함과 함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순간 이쪽을 향하는 일곱 명의 시선.
“그래, 이 새끼들아 내가 돌아왔다.”
아무리 고상한 척을 하려고 해도 자신은 우진이다.
그리고 자신에겐 이쪽이 어울렸다.
우진이 적진을 향했다.
이판사판으로 목숨을 내놓고 다니던 과거처럼.
아무런 망설임 없이 적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파티장을 중심으로 파티원들이 본능적으로 방어 태세를 갖추며 전투를 준비했다.
“왕격을 원한다고? 너희가 이긴다면, 너희의 목표가 이루어지겠지.”
그리고 우진의 눈에 거대한 열망이 떠올랐다.
“내가 이긴다면, 내 목표가 이루어질 거다.”
마침내 놈들과 근접한 복수자.
창공의 우진이 말했다.
“우선 너희에게 첫 번째 기회를 주마. 여기서 내게 항복하고 중심부를 떠나라. 그러면 너희의 파티장을 죽이는 것으로 넘어가 주마. 그러나 내게 대적한다면, 너희 모두는 반드시 죽는다.”
무시무시한 선언.
그러나 놈들은 겁을 먹지 않았다.
그저 태연히 우진을 살피는 파티원들.
“인간인가? 기운이 좀 특이한데.”
그때 파티장의 냉랭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저건 인간이 아냐. 마물이다.”
전생 마지막 순간 들었던 것과 같은 말이었다.
우진이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렇군. 그럼 너희는 여기서 모두 마물에게 죽는다.”
그리고 파티장의 지시가 떨어졌다.
“저 정도면 진광으로 충분하겠군.”
파티장의 시선이 한 명의 파티원을 향했다.
“또 나인가.”
진광이 귀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날아올랐다.
기이한 붉은 피부를 가진 남자.
외공만으로 신화경의 경지에 도달한 자.
투신이라 불린 존재!
우진이 시간을 넘어 진광과 마주쳤다.
그의 힘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천외천(天外天)의 전투 능력.
붉은 피부의 전신으로 뿜어내는 신기한 호흡.
그 숨결 하나하나에 사람을 죽일 힘이 담겨 있다.
그때 진광이 호승심을 드러냈다.
“너... 강하구나...?”
평소엔 멍하고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지만, 싸울 때는 광기 어린 괴물이 되는 존재.
그가 청룡언월도를 들고 자세를 잡았다.
‘이 시기의 진광은 무기를 사용했군.’
우진의 시선을 알아차린 진광이 멍하니 손을 놨다.
“누가 어울린다고 귀한 무기를 선물해줬는데... 너무 무겁기도 하고.”
— 쿵...!
거창이 바닥에 떨어졌다.
“난 역시 맨몸이 제일 편해.”
순간 진광이 사라졌다.
그리고 엄청나게 빨라졌다.
과연 투신(鬪神)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남자.
— 콰과과광!
그 공격을 모두 막아낸 우진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나에게 너와 같은 천재성은 없다. 그러나 나에겐 나만의 재능이 있지. 그건 바로 한번 죽어봤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근육에는 억제하는 성질이 있다.
영구적인 손실을 막기 위해 총력의 일부만을 사용한다.
그것은 신체의 다른 영역, 인간의 뇌에도 적용된다.
인간은 억제한다.
죽지 않기 위해서.
하지만 우진은 이미 자신의 모든 힘을 폭발시키는 일에 익숙했다.
죽음을 초월한 존재기에.
죽음을 경험한 존재기에.
죽음을 극복한 존재기에!
— 콰아아앙!
우진의 전신에서 투기가 터져 나왔다.
그건 세상을 향한 그의 포효와도 같았다.
진광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마치 영혼까지 다 태워버릴 듯한... 저 정도로 힘을 내는 것이 두렵지도 않단 말인가....’
그가 무언가를 깨달았다.
‘저것이... 전력(全力)...!’
살면서 느껴본 적 없는 거대한 투지에 압도당하는 느낌.
폭발하듯 투기를 뿜어내는 우진의 눈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금부터 시작될 것은 복수니. 그걸 절대로 잊지 마라.”
그가 전생의 모든 것을 되짚으며 기억했다.
수만 갈래로 찢겨졌던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자신 앞의 일곱 존재에게 외쳤다.
“참회해라.”
순간 우진의 신형이 사라졌다.
<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5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