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47 >
— 훙훙훙훙!
공간이 일그러질 정도의 기운이 모였다.
우진의 무형지기가 누워있던 교주의 배를 관통했다.
“컥...!”
배와 입에서 대량의 검은 혈액을 뿜어내며 진짜로 죽은 교주.
‘피가 검은색이군. 사신이랑은 다른 방식의 주술이다.’
여기까지 온 놈들 중엔 기이한 주술을 사용하는 자들이 있다.
그건 마법과는 또다른 체계의 신비였다.
인간의 육신을 제물로 바쳐 발현되는 사악한 술법들.
배우는 과정부터 손에 수없이 피를 묻혀야 하기 때문에 이미 정신의 사고방식 자체가 달라진 놈들이다.
교주가 망설임 없이 자신의 배를 찌를 수 있었던 이유도 다시 복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르쉬. 저 녀석의 피는 먹지 말아라. 위험하다.”
“예!”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교주의 피는 먹으면 안 된다.
이미 주술의 대가로 너무 많이 오염됐다.
‘하지만 다른 놈들이라면 제법 가치가 있겠어.’
깨끗하고 강한 피를 가진 놈들.
이제 나머지 혈마교인들을 처분할 차례였다.
투항자와 망설이던 놈들을 포함하여 대략 수십 명.
차마 도망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우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옳은 판단을 내린 놈들에겐 개심할 기회를 주어야지.”
우진이 둥근 게이트를 형성했다.
그리고 선언했다.
“내게 살심을 품고 있는 놈들은 이 공간을 지나가면 모두 죽는다.”
순간 일렁이는 공포가 번져나갔다.
우진도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물론 극미량의 악심 정도야 괜찮다. 우리가 좋은 관계로 만난 것은 아니니까.”
그가 일단 수하에게 명령했다.
“르쉬. 시범을 보여줘라.”
“예!”
르쉬가 빠르게 이동했다.
별다른 설명도 없었건만 우진에 대한 완벽한 믿음으로 게이트를 통과했다.
그리고 아무 이상없이 등장했다.
보란듯이 혈마교인들을 노려보는 르쉬.
그 눈이 무시무시하게 번쩍이고 있었다.
우진이 말했다.
“너희들도 마나의 흐름 정도는 느낄 수 있겠지. 난 이제부터 여기에 아무런 조작도 가하지 않을 것이다. 조건은 단 하나. 혈마교를 해체하고 인간의 마음을 되찾겠다는 다짐. 그것만 지키면 너희는 모두 살 수 있다.”
우진이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말은 더 필요 없으니 행동으로 보이란 뜻이었다.
“으, 으으아아....”
게이트 근처에 있던 몇 명이 움직였다.
마치 근처에만 가도 악마에게 잡아먹힐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기도 했다.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반드시 죽을 테니까.
하지만.
“으으으읏!”
무사히 넘어간 놈들.
극도의 긴장 속에 살금살금 천천히 지나갔지만 그래도 통과는 통과다.
태어나서 가장 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놈들.
“사, 살았다!”
“나, 난 정말 이제부터 착하게 살 거야....”
그때 한 놈이 갈기갈기 찢겨저서 게이트에 흡수되었다.
“끄아아악!”
다시 공포가 번지고 우진의 눈이 섬뜩하게 번쩍였다.
“마나를 속일 순 없다. 딴 마음을 품고 있으면 반드시 죽는다.”
그가 가차없이 명령했다.
“다음 놈 들어가라.”
그리고 다음 놈이 무사히 나오고 다시 몇 명이 더 지나갔을 때였다.
한 놈이 우진을 향해 덤벼들었다.
“으아아아! 나, 난 이런 곳에서 죽을 수 없어...!”
“어리석군.”
우진이 자신 앞에 ‘시험대’와 같은 형태의 게이트를 만들어 놈을 받아들였다.
“끄아아악!”
마치 분쇄기에 덤벼든 것처럼 갈려나가는 놈.
그리고 공간의 흐름 속에 빨려들었다.
우진의 간접 융합이었다.
혀를 날름거리는 우진.
“역시 너희에겐 모두 어둠이 깃들어있군. 맛있는 식사였다.”
일부러 공포를 주기 위한 제스처였다.
저들의 눈에 이제 우진은 정말로 ‘사신’보다 더 무시무시한 존재로 보일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악인들에게는 사신보다 더한 존재가 되고 싶은 게 우진의 마음이었으니까.
“지금이라도 마음을 고쳐먹으면 된다. 다시 말하지만 난 이 게이트의 통과 조건을 그리 빡빡하게 잡지 않았다. 너희들이 짐승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품을 수 있으면 누구나 통과할 수 있다. 그러나 끝까지 짐승으로 살겠다고 결정했다면.... 죽어야겠지.”
우진이 손목의 디바이스를 톡톡 두드렸다.
“난 바쁜 몸이라 이제부터 3분의 시간 제한을 두겠다. 그 안에 결정을 내리지 못한 놈들은 내가 특별히 자율 판단으로 처분하마.”
“사, 살려주십시오!”
엎드려서 싹싹 비는 놈들.
그리고 다른 놈들 중 몇이 빠르게 게이트를 통과했다.
“오케이, 통과.”
이제 남은 것은 대략 십수명.
아직 시간은 충분하니 모두 통과할 수 있다.
마음만 고쳐먹을 수 있다면 말이다.
그때 놈들이 시선을 교환했다.
명백한 의도가 담긴 눈빛이었다.
우진이 피식 웃었다.
“좋다... 갱생이 안 되는 경우도 있는 법이지. 발악이라도 해 보아라.”
그리고 끝까지 버티던 놈들이 덤벼왔다.
“크아아악!”
“놈을 죽여라!”
그러나 그것은 찰나였다.
— 콰콰콰쾅!
우진이 일시에 십이단검을 뿌려 모든 적을 일시에 죽였다.
마치 죽음의 섬광이 번쩍여 모두를 지워버린 것 같았다.
이제 이 정도 잔챙이를 끝장내는 것은 쉬운 걸 넘어서 거의 아무런 힘도 들지 않았다.
“이, 이럴 수가....”
“투, 투항하길 잘 했어....”
뒤에서 생존자들의 아주 작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힘.
저것에 대항했다면 절대 살아남지 못했으리라.
우진이 뒤로 돌아 살아남은 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4구역을 떠나라. 가능하면 중심부를 떠나는 게 좋을 것이다. 다시 나와 마주치면 그때도 이렇게 자비로울지 장담할 수 없으니.”
“며... 명심하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의 인사를 한 놈들이 허겁지겁 달아났다.
“르쉬, 만찬이로구나.”
다정하게 주변의 시체들을 가리키는 우진.
이건 흡혈귀에게 정말로 특별한 식사였다.
혈마교라는 특수한 집단에 소속되어 피를 통해 힘을 증폭시키던 놈들이었기 때문이다.
“예!”
척 고개를 숙인 르쉬가 광역 흡혈을 통해 시체에서 피를 빨아들였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에게 새로운 변화가 찾아왔다.
눈이 아름다운 진홍빛으로 물들어 허공에 반쯤 떠오른 흡혈귀.
그녀의 입에서 탄성이 나오고 숨 막힐 정도로 강한 투기가 터져나왔다.
— 콰아아앙!
수천의 흡혈귀 중 단 하나의 개체가 귀족인 카운트급이 된다.
그 중 몇 개체만이 바론급으로 올라선다.
그리고 그들 중 독보적으로 강한 개체만이 최정상의 자리에 설 수 있게 된다.
듀크급.
공작위를 획득한 것이다.
그에 따라 주어지는 새로운 힘.
‘블러드 마스터리.’
그녀의 주위를 감도는 핏빛의 투기는 모두가 피의 힘.
그걸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권능이 생긴 것이다.
“제, 제가...!”
착지하여 탄성을 토해내는 르쉬.
우진이 흐뭇하게 웃었다.
“축하한다. 넌 이제 확실히 흡혈귀 중 최강일 것이다.”
흡혈귀 왕이 왕격을 획득한 것은 몇 년 후의 일이다.
현 시점의 그 존재와 비교하면 르쉬가 반드시 더 강하다.
자신이 빠르게 중심부를 돌파한 덕분에 생긴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이제 내 차례군.”
우진도 놈들의 시체에서 흘러나온 어둠을 빨아먹었다.
[상대방의 모든 어둠을 완벽하게 계승했습니다.]
[어둠 보유량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어둠의 핵에서 계속 생성되고 있던 어둠.
거기에 추가로 더 어둠이 늘어났다.
결과적으로 마지막으로 수련장에서 확인했을 때보다 총량이 굉장히 늘었다.
“강해지는 건 좋은 일이지.”
다시 성으로 향하는 일행.
4구역의 진짜 시험을 통과할 차례였다.
— 콰르릉!
성에 근접하자 하늘에서 계속 번개가 쳤다.
[마계성에 입장합니다.]
[이제부터 클리어까지의 시간과 사냥한 마물의 강함을 합산하여 점수로 환산합니다.]
[최고 기록을 경신하면 보상이 주어집니다.]
— 쿠궁...!
엄청난 기세로 서 있는 거대한 성.
이곳의 정식 명칭은 ‘마계성’.
마계의 모조품이다.
일반적인 성보다 수백 배는 넓다.
모험가는 그걸 탐험하며 비밀을 밝혀야 한다.
마침내 최후의 전당에서 구역을 통과하는 것이 목표였다.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탐험이지.’
넓고 위험한 성 내부를 돌아다녀야 하기에 굉장히 고난이도의 시험이 된다.
그러나 우진은 한가롭게 탐사나 하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일단은 별채로 간다.’
이 성 또한 자신이 필사적으로 굴렀던 곳 중 하나였기에.
지도는 이미 머릿속에 있다.
‘지름길을 사용하는 거다.’
일단 성의 입구를 열었다.
아주 무거운 문이었지만 우진에겐 쉬운 일이었다.
이 또한 하나의 시험이었다.
— 펑!
문을 열자 무언가가 나타났다.
작은 임프 형태의 ‘안내인’이었다.
“오! 어서 와라! 마계성에 온 도전자를 환영한다! 지금부터 안내를 시작하겠다!”
임프를 보며 감탄하는 르쉬.
“우와! 너 참 신기하게 생겼구나!”
“그, 그러냐...?”
작은 임프는 제법 순진하게 보였다.
그러나 우진은 놈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이 녀석의 안내는 사실 사기에 가깝지.’
계속 돈과 아이템을 요구하면서 비밀을 알려주겠다고 하다가 도전자의 진을 빼놓는 사기꾼이다.
‘사실 몇 가지 쓸모있는 정보를 주긴 하지만....’
그건 이미 자신도 아는 것이다.
“안내는 필요없다.”
신나게 설명을 하려던 임프가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으응...? 필요가... 없어...?”
“그래, 필요없다.”
그러자 다른 것을 제시하는 임프.
“아아! 그럼 이건 어떠냐? 이 성에서만 쓸 수 있는 비상 탈출 마법진의 위치를 알려.......”
“그것도 필요없다.”
“너, 너는 다른 모험가들과는 뭔가가 다르구나...?”
놈이 이를 악물더니 뻔뻔하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면 입장료라도 받아야겠다.”
“입장료?”
“그래, 마계성은 내 거니까! 너는 입장료를 내야 들어갈 수 있어.”
“아, 그렇군.”
겁도 없이 사기를 치려는 녀석.
— 콰드드득!
변신한 우진이 놈을 한 입에 집어 삼켰다.
— 콰직!
“참을 인(忍) 세 개는 모두 소모했다.”
이 작은 녀석을 굳이 죽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계속 벗겨 먹으려고 들면 봐줄 이유도 없다.
‘음...?’
그런데 놈을 씹다보니 무언가가 느껴졌다.
우진이 입에서 무언가를 뱉어냈다.
[마계성의 지도를 획득했습니다.]
약간의 허탈함을 느낀 우진.
‘이게 여기에 있었군. 안내인 임프를 죽이는 것이 획득 방법이었을 줄이야.’
이 놈을 죽이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놈이 강해서가 아니다.
마계성의 도전자에게 ‘안내’라는 행위를 제시하기 때문.
어두운 동굴 속 유일한 횃불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물론 우진에겐 해당사항이 없는 얘기였다.
[지도가 상태창에 귀속됩니다.]
이미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내용이었다.
그래도 실물로 확인할 수 있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뜻밖의 소득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가자!”
“예!”
일행이 빠르게 별채로 향했다.
— 스슷!
길을 헷갈릴 이유 따위 하나도 없었다.
거의 직진 코스로 이동하는 일행.
— 쾅!
별채의 문을 폭발시키듯 걷어차고 들어갔다.
“나와라! 문지기!”
내부에 앉아서 무언가 걸쭉한 액체를 마시고 있던 것은 귀기어린 존재들이었다.
“과격한 손님이군... 끌끌....”
앉아 있을 때는 그저 노인처럼 보였다.
일어서자 모두 키가 3m는 되는 거인들이었다.
삼원노인(三原老人).
그들이 짐짓 겁을 주듯 말했다.
“우리의 삼속성을 모두 감당할 수 있겠느냐...?”
놈들의 말처럼 이 녀석들은 세 가지의 강력한 속성 마법으로 덤벼오는 중간 보스 격이다.
원래대로라면 어려운 강적이 되었을 테지만....
“나는 이제 속성이 너무 많아서 몇 개인지 기억도 안 난다.”
우진이 모두 카운터를 치며 순식간에 적을 제압했다.
마치 속성으로 예술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았다.
“크아아악!”
세 노인이 모두 쓰러져 우진에게 빨려들었다.
“흠... 빼빼 말라서 언데드처럼 생겼지만 언데드는 아니군.”
또한 속성도 사신수의 것에 비하면 하위의 능력이었다.
그래도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좌탑과 우탑의 열쇠를 획득했습니다.]
“좋다, 열쇠를 얻었다!”
우진이 자신의 손에 들린 묵직한 금속 열쇠를 바라보았다.
원래 이 마계성은 상당히 넓은 구역을 차례차례 돌파해야 하는 구조.
외성에서 내성, 중정과 본관, 강당, 회랑, 왕의 침소까지.
장기간 공략해나가는 여정이 된다.
그러나 이 열쇠로 반 정도를 스킵할 수 있다.
“탑으로 가자.”
르쉬와 우진이 중정의 거대한 두 탑 앞으로 향했다.
이곳은 원래 성의 외채를 모두 공략해야 입장할 수 있는 장소다.
그러나 이제 열쇠로 바로 진입할 수 있다.
“르쉬, 좌탑을 부탁하마.”
“예!”
각자 2개의 탑을 하나씩 공략하기로 했다.
르쉬도 공작위에 달한 존재.
실제 전투력은 그중에서도 독보적이다.
이 구역의 어지간한 모험가 파티 1부대를 압도할 정도로 강하니 충분히 맡길 수 있다.
그리고 자신도 이 탑을 통과하면 더 강해질 수 있다.
‘여기만 클리어해도 ‘진화’할 수 있을 거다.’
이 탑은 그야말로 언데드의 종합 선물 세트 같은 곳이니까.
— 펑!
그때 탑의 안내인이 나타났다.
역시 임프 형태였으나 보다 정중했다.
일종의 숨겨진 NPC였다.
“도전할 층을 선택해주십시오.”
그의 질문에 르쉬와 우진이 동시에 외쳤다.
“10층! 꼭대기!”
임프의 미소와 함께 탑의 문이 개방되었다.
“10층.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두 도전자가 초속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흐아아압!”
— 콰콰콰쾅!
그건 등반이라기보단 파괴에 가까운, 일종의 탑 살해(殺害)였다.
<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47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