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45 >
— 휘오오오!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는 어두운 평야.
과거 우진은 이곳에서 수많은 고난을 겪으며 겨우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그가 자신의 수하 르쉬와 함께 빠르게 평야를 돌파했다.
— 스팟!
그건 일반적인 이동이 아니었다.
공간을 타고 넘어 달리는 극상의 이동술.
일종의 연속 점멸이었다.
— 펑! 퍼펑!
계속해서 주변의 공간을 느끼며 이동하는 우진.
청룡에게서 얻은 공간전이술의 숙련도를 올리는 중이었다.
‘아직 장거리는 부족하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연습한다는 느낌으로 달려나가는 대지.
원래도 이동 속도가 워낙 빨랐기에 큰 변화는 없었다.
르쉬도 블러드 드라이브와 경신술을 펼쳐 빠르게 쫓고 있었다.
‘일단 이 방식에 익숙해지는 게 중요하다.’
전투에 활용하면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다보면 장거리도 충분히 가능해지리라.
그때였다.
어디선가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주의! 4구역의 평야의 지배자와 조우했습니다.]
어두운 대지 저 멀리에서 무언가 거대한 놈이 날아오고 있었다.
폭풍 아귀와 조우한 것이다.
등에 붉은 눈알들이 있는 괴물로 길이가 수백 미터에 달했다.
우진이 르쉬에게 수신호를 준 후 멈춰섰다.
그건 놈에게 위협을 느껴서가 아니다.
오히려 반가워서였다.
그의 입가에 무시무시한 미소가 피어 올랐다.
“드디어 만나게 되었군.”
4구역 평야의 지배자.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대한 괴물.
폭풍 아귀!
지느러미 사이로 폭풍이 몰아치는 4구역의 폭군이다.
모험가들은 자연재해라고 생각하여 도망다니기 바빴다.
그걸 증명하듯 다시 떠오르는 붉은 알림.
— 띠링!
[주의! 상대는 재해형 마물입니다. 공격보다는 우회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여기까지 왔으면 상당한 수준의 모험가들.
월드로서도 인재를 지키고 싶은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경고 알림을 띄워 허망한 죽음을 막는다.
하지만 우진은 지체없이 진 흑참도를 꺼내들었다.
“내가 정말 궁금한 게 있었다.”
전생에 품었던 위험한 호기심.
이 괴물을 잡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도망만 다녀야 하는 적을 잡으면 자신은 얼마나 강해질 수 있을까.
일반적인 방법으론 죽일 수 없는 초강적이지만...
‘공간’의 힘이라면 쉽게 잡을 수 있으리라.
“확인해주마!”
— 타타타탓!
우진이 놈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존재하던 공간이 일순 깨끗하게 비워졌다.
다음 순간 청룡을 닮은 파괴의 형태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창룡섬(蒼龍閃)!”
허공을 가로지르는 우진.
그리고 그를 따라 공간의 힘이 모조리 아귀를 향했다.
— 쿠구구궁!
깨끗하게 갈라진 폭풍 아귀의 몸뚱아리.
그 검로를 따라 극뢰의 번개가 몰아쳤다.
— 콰르르릉!
청룡과 백호.
두 신수의 힘을 조합한 절세의 검격.
— 쿵......!
폭풍 아귀가 두 조각이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 콰아아앙...!
그저 바닥에 떨어지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충격음을 내는 거체.
착지한 우진이 만족스럽게 뒤를 돌아보았다.
월드의 긴 역사에서도 놈이 추락한 것을 본 자는 없었다.
자신이 최초였다.
그렇기에 떠오르는 찬란한 알림.
[월드 최초로 폭풍 아귀를 사냥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절대적 위업 달성!]
[원하는 스탯 +1000]
과연 엄청난 보상이 주어졌다.
“마나에 스탯을 추가하겠다.”
[마나 : 47929]
이제 5만을 향해 더욱 가까워진 마나.
그 기운을 느낀 우진이 거대한 폭풍 아귀의 몸체를 바라보았다.
그가 흐뭇하게 웃었다.
“너도 죽이면 죽는구나.”
시험 삼아 죽여보았는데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도망만 치던 과거의 기억을 모두 날려버리는 시원한 승리.
그게 끝이 아니다.
놈의 스킬도 얻을 수 있었다.
[’멸망의 바람’을 계승했습니다.]
놈의 주된 공격 방식은 바람.
그렇기에 우진에게도 그 힘이 계승되었다.
— 후우웅!
잠시 주변에 돌풍을 일으켜본 우진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바람이 아니군. 부식 효과가 있는 공포스러운 능력이다.’
그야말로 멸망의 바람!
녀석이 등장만으로 일대를 마비시키는 공포의 존재가 된 이유가 있었다.
‘이제 그 힘이 내 것이 되었다.’
이제부터 우진의 모든 풍(風) 속성 공격에는 추가 효과가 생긴다.
바람 속성이 대폭 강화된 것이다.
‘4구역 평야 지배자 정도면 최강급 속성이라 해도 되겠지.’
흐뭇하게 힘을 갈무리한 우진.
놈을 죽이고 얻은 것이 하나 더 있었다.
— 휘오오오!
주변의 음습한 기운이 서서히 물러나고 있었다.
폭풍 아귀가 몰고 다니던 거대한 파멸의 기운이 사라지는 것이다.
자신이 만든 변화였다.
‘이번 구역도 시작이 좋군.’
평야의 초입.
여기서 지배자를 만난 것은 사실 운이 없는 일이다.
넓은 영역을 배회하는 지배자와 동선이 겹치는 바람에 초반부터 강적을 만난 셈이니까.
그러나 우진에게는 큰 행운이 되었다.
그는 그걸 모두 기회로 만들 힘이 있었으니까.
‘이제 완전히 내 힘이 되어라.’
— 휘리리릭!
우진이 융합으로 놈의 거대한 사체를 먹어치웠다.
손바닥에 빨려드는 폭풍 아귀의 몸뚱아리.
마력이 강해지니 융합의 속도마저도 상승했다.
손쉽게 흡수한 초대형 마물.
‘종족 경험치를 제법 주는군.’
핏빛 구슬이 아름다운 소리와 함께 찰랑이며 차올랐다.
언데드가 아닌데도 5%의 종족 경험치가 올랐다.
마지막으로 진화한 후 지금까지 핏빛 구슬이 차오른 속도를 생각하면 5%도 고마운 수치였다.
‘하긴 이렇게 큰 놈을 다 먹은 건데. 배가 부를 만도 하지.’
녀석이 지배자 격이기 때문이다.
우진이 다시 핏빛 구슬을 확인했다.
아직 채워야 할 양은 많이 남았다.
‘그래도 괜찮다. 앞으로 먹을 게 많이 남았으니까.’
저 멀리 아득하게 보이는 악마적인 외양의 성.
그곳엔 강한 언데드가 가득하다.
그가 기감을 집중해 주변을 살폈다.
‘평야를 지나려면 아직 한참 가야하는군.’
지배자를 잡았다고 끝난 건 아니다.
이것은 평범한 평야가 아니다.
거대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대평야다.
죽음의 땅 전반부는 그리 호락호락한 구역이 아닌 것이다.
주변으로 기감을 확장한 우진이 주변 상황을 확인했다.
— 스스스슷!
그에겐 이제 일대를 정밀 스캔할 정도의 능력이 있었다.
‘확실히 강한 모험가들이 많군.’
벌써 3개의 구역을 뚫고 지나온 강자들.
좋은 실력을 지닌 최상급 파티들도 느껴졌다.
그때 수준 이상의 기운들이 밀집된 구역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걸 모두 압도하는 하나의 초강력한 기운이 있었다.
‘음...?’
그리고 계속 줄어드는 강한 기운들.
누군가 근처의 놈들을 마구 죽이고 있는 것이다.
아주 먼 곳이었다.
“확인할 필요가 있겠군.”
그 이유는 하나.
모두 인간의 기운이었다.
즉 인간이 인간을 죽이고 있는 것.
4구역에서 인간끼리 죽이는 일은 드물다.
이쯤 오면 서로 힘을 합치는 일에 더욱 익숙해진다.
3구역인 협력의 땅에서 느낀 점이 있기 때문이다.
“르쉬!”
“예!”
이제 자세히 말을 하지 않아도 자신의 마음을 읽어내는 수하.
그녀와 함께 창공을 가로질렀다.
초속의 이동이었다.
— 스슷!
어두운 하늘에서 목적지에 도달한 일행.
웬 주술사 복장의 사내가 피에 젖어서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이고 있었다.
“내게 더욱 큰 공포를 보여줘라. 그게 내 힘이 될 지어니!”
— 콰아아앙!
그의 외침에 따라 주변에서 작은 소환수들이 생겨났다.
물론 다른 마물에 비해서 작다는 거지 인간보다는 컸다.
대략 2m 정도 되는 놈들이 주변의 모험가들을 도륙내고 있었다.
— 피이이잉!
대지에 깔린 피의 주술진에서 기이한 소리가 났다.
그 범위에 있는 소환물들은 모두 강화 효과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단신으로 저런 엄청난 전투력을 낼 수 있는 것이다.
보아하니 놈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사신이군.”
우진이 놈의 기억을 떠올렸다.
이 유난스러운 별명은 남이 붙여준 것이 아니다.
사신 본인이 자랑스럽게 자칭한 것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자신을 더 무서워한다는 이유였다.
“잘 만났다.”
자신이 4구역에 빨리 오긴 했다.
5구역에서 은근히 이름을 떨치던 놈이 아직도 평야 구역에 있을 줄이야.
전생에도 만난 적이 있었다.
깊은 원한은 아니었으나 파티에서 짐꾼처럼 후미를 따르던 우진에게 귓속말을 하고 지나갔다.
<넌 뒤쳐질 것 같은데. 그럼 바로 잡아먹힐 거다. 바로 이 사신에게.>
피에 젖은 입술로 그런 말을 했던 놈.
“지금도 같은 생각인지 알아보지.”
우진이 순식간에 바닥에 착지했다.
강림 효과로 얼어붙은 소환수들을 해치우고 일대에 바람을 일으켜 놈을 밀어냈다.
— 펑!
“크어어억!”
그리고 상황을 확인한 우진.
제법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지만 이미 여러 사람들이 죽었다.
그가 주변의 시체를 보며 생각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다니. 놈도 4구역을 뚫는다고 고생 좀 했군.’
처참한 광경에 현혹될 필요는 없다.
사신이란 별명과 놈이 공포를 먹는다는 말에도 휘둘릴 필요 없다.
놈이 아무리 광인 흉내를 내고 있어도 결국 이러는 이유는 하나.
힘을 키우기 위해서.
놈이 진짜 인간의 공포를 먹고 성장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 게 가능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모험가를 죽이면 경험치와 장비, 그리고 돈을 벌 수 있다.
4구역의 모험가라면 어지간한 마물을 잡는 것보다 쏠쏠할 것이다.
‘물론 놈이 이런 짓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는 게 중요하겠지.’
죽음의 땅까지 찾아온 모험가들을 단신으로 이렇게 몰살시킬 힘이 있다는 뜻.
그렇기에 우진도 너무 방심하지 않기로 했다.
그때 순식간에 자신의 소환수를 모두 제압당한 놈이 얼이 나간 얼굴로 말했다.
“이봐, 넌 누구냐...?”
아무래도 상상할 수 없는 힘에 당황한 것 같았다.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난 우진이다. 4구역을 통과하려는 모험가지. 이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진의 주변의 모험가들을 뒤로 물러나게 하며 전장을 형성했다.
그 중심에서 사신이 입가에 피를 슥 닦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래? 그럼 너도 죽어라. 이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넌 아직 힘이 부족해. 어차피 이래봐야 몇 년 더 걸렸을 거다. 내가 그 고생을 끝내주지.”
그제야 자세를 잡고 다시 싸울 준비를 하는 사신.
“누가... 누굴 끝내겠다고......?”
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가볍게 펀치를 날리는 우진.
— 피이잉!
놈이 피로 주술을 써서 막았다.
그러면서 한쪽으로는 다른 술수를 펼치고 있었다.
우진이 그걸 저지하려 할 때 핏빛 벌레들이 마구 날아왔다.
“대선풍!”
빠르게 벌레를 걷어내자 놈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급하게 자신의 가슴을 그었다.
거기서 흘러내리는 대량의 피.
주변의 모험가들이 당황하여 외쳤다.
“위험합니다! 저게 놈의 진짜 힘입니다!”
우진도 알고 있었다.
사신이라 불리는 존재.
놈의 스킬명은 [사타닉 서먼].
지옥에나 있을 존재들을 불러내는 소환술이다.
“크크큭... 그래, 이게 내 진짜 힘이지. 처음엔 작은 임프에 불과했지만... 이제 내 마력과 숙련도는 지고의 존재를 불러낼 정도로 강해졌다.”
— 쿠궁....
놈의 말대로 거대한 소환수가 나타났다.
“바포메트. 놈을 죽여라.”
그것은 머리에 뿔이 달린 거대한 마수.
‘소환수라고 부르기 미안할 정도로 강한 놈을 불러냈군.’
거의 보스급 마물이다.
5구역에서도 강자 소리를 듣던 녀석이라 과연 대단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내 상대가 되기엔 한참 멀었다.’
우진이 가볍게 신형을 날렸다.
— 쩌저저정!
번쩍이며 움직이는 우진.
공간이 갈라지고 분리되며 바포메트의 모든 공격을 차단했다.
악마의 휘장이 발휘한 공간 결계 능력에 자신의 공간 간섭 능력을 더한 기예.
‘결계를 풀었다가 다시 발동하면 절대 추적할 수 없지.’
그렇게 세상과 격리된 공간 속에서 이동한 우진.
놈의 머리 위에서 나타났다.
“아니...!”
이건 기척 감지로도 알아차릴 수 없다.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것이니까.
“어, 어떻게 바포메트의 공격을 모두 피할 수 있는 거지...?”
“내가 더 빠르거든.”
접근한 우진이 미소와 함께 0거리 1식을 발사했다.
— 후웅!
“크으으윽!”
빠르게 방어의 주술을 펼치는 놈.
놀랍게도 거대한 화살의 공격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그러나.
1식은 당연하게도 미끼였다.
‘이상한 주술을 많이 쓰는 녀석이라 유인이 필요했거든.’
다시 공간을 뛰어넘어 이동한 우진이 진 흑참도를 뿌렸다.
“창룡섬(蒼龍閃)!”
세상을 가르는 용의 일격.
그것이 공간을 뛰어넘어 놈의 후방에서 날아들었다.
회피가 불가능한 절대적인 사각.
“크아아악!”
상황을 알아차린 놈이 최후의 술수를 준비했다.
그러나.
“멈춰라.”
무언가에 목을 잡혀 들어올려진 사신.
놈의 눈에 보인 것은 ‘진짜 악마’의 얼굴이었다.
<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4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