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42 >
현무(玄武).
사신수 중 북방(北方)을 점한 거대한 영물.
어마어마한 빙하 속에 봉인된 존재.
우진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곳이 설옥이라 불리는 세 번째 이유를 깨달았다.
‘현무가 갇혀 있는 장소라서 그렇군.’
세상의 숨겨진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는 것 같았다.
“나와 함께 가자. 널 자유롭게 해주마.”
그가 빙하 앞의 봉인석에 손을 올렸다.
마력이 퍼져나가고 빙하로 흘러들어갔다.
거대한 얼음이 깨지며 초월적인 사족 생물이 현실로 풀려났다.
거북을 닮았으나 그리 부르기엔 너무나 흉폭한 생김새였다.
흑색의 육체.
기이한 무늬를 지닌 등갑각.
그리고 악마와도 같은 머리.
놈이 눈을 뜨고 안광을 번쩍였다.
일렁이는 검은 눈동자가 우진을 관통하듯 직시했다.
공격은 순식간이었다.
거대한 육체가 빙하에서 풀려나자마자 순식간에 움직였다.
그건 돌진이었다.
우진이 봉인석을 통해 빌려준 마나 덕분에 빠르게 자신의 힘을 복구한 것이다.
“내가 널 깨워줬는데, 은혜를 모르는 거북이군.”
돌진을 피해 하늘로 날아오른 우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때 다시 새로운 공격이 덮쳐왔다.
— 촤차차착!
등에서 뻗어나온 촉수.
그리고 대지 능력이 동시에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
우진이 빠르게 뒤로 몸을 피했다.
모든 것을 감시하는 심안.
그 덕분에 회피가 더욱 수월했다.
바닥에 착지한 그가 손을 털었다.
“사태 파악도 없고, 대화도 없다. 좋아.”
문답무용이 행동원리인 신수.
맘에 든다.
그런데 잠깐이나마 놈의 공세를 받아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다.
단순히 과묵하고 공격적인 게 아니다.
그 이상의 무언가가 느껴졌다.
‘아예 자아가 없다.’
지금까지의 신수들과 다르게 이지(理智)가 없는 듯 했다.
아무래도 봉인된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건 자신을 막을 이유가 되지 못한다.
뭐가 됐든 복속시켜 자신의 힘으로 만들면 그만이다.
우진이 거리를 벌리고 현무를 향해 선포했다.
“난 이미 너와 같은 존재를 둘이나 내 힘으로 만들었다.”
그가 진 흑참도와 대흑검을 꺼내들었다.
“사유종시(事有終始).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기 마련이니.”
— 훙! 훙! 훙! 훙! 훙! 훙!
대흑검이 6단계의 증폭을 발현하고.
— 파지지직!
양쪽에 각기 극뢰와 초열의 푸르고 붉은 기운이 어렸다.
“이제 네 차례가 되었을 뿐이다.”
신의 힘을 담은 두 개의 무기를 들고, 우진이 거대한 신수를 향해 날아올랐다.
“부담 없이 죽어라.”
다음 순간 내리 꽂힌 것은 붉은 번개였다.
“적뢰(赤雷).”
극뢰와 초열을 합친 필살기.
하늘에서부터 지상까지 가로지르며 적을 찍어내렸다.
— 콰콰콰콰쾅!
엄청난 위력의 붉은 낙뢰.
순간 움찔하며 물러나는 거대한 신수.
언뜻 현무에게 치명상을 입힌 것 같았다.
두 신수의 힘을 담았으니 상격(上格)의 존재라해도 무사하지는 못할 터.
그러나 역시 세 번째 신수의 힘은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 구오오오오오!
거대한 괴성과 함께 다시 일어서는 현무.
적뢰를 기합 한 번으로 털어낸 것이다.
‘아니, 뭔가 더 중요한 게....’
그때 우진이 무언가를 깨달았다.
‘회복. 초속의 회복이다.’
아무래도 적의 능력 중에는 회복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이건 아주 중요하다.
전략 자체를 바꿔야 할 수도 있으니까.
그때 다시 덮쳐오는 촉수들.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군.’
그래도 좋다.
자신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싸우는 타입이니까.
다시 전투가 이어졌다.
현무의 힘은 과연 강했다.
— 쿠콰콰콰콰!
날아드는 수많은 채찍.
촉수를 베며 날아다니는 우진.
그 모습은 마치 어둠을 상대로 싸우는 용사.
두 개의 검을 들고 싸우는 신화 속의 존재 같았다.
우진이 잠시 착지하여 자세를 고치는 그 순간.
새로운 형식의 공격이 시작됐다.
— 쿠구궁!
헤엄치는 상어처럼 자신을 덮쳐오는 대지의 공격.
마치 대량의 수생 마물이 덤벼오는 것 같았다.
스산한 미소를 지은 우진.
“난 이미 상어 수십 마리를 일격에 벤 적이 있지.”
그가 하늘로 날아올라 두 개의 무기를 뒤로 한껏 끌어당겼다.
그리고 마치 원반을 던지듯 내뿜은 강대한 힘.
“청광질풍참!”
오른손의 진 흑참도에서는 푸른 뇌기가 날아갔다.
그리고 다시.
“적광질풍참!”
왼손의 대흑검에서는 붉은 초열의 기운이 격발되었다.
그렇게 양손의 무기를 떠난 막대한 힘.
뻗어오는 대지의 공격을 가르며 날아가는 두 개의 참격.
순간 둘이 공명하듯 힘을 합쳤다.
— 콰과과과과!
그것이 모든 공세를 가르며 무효화시켰다.
수십의 상어를 베어 의지를 관철시켰던 시험의 바다.
그 경험이 상위의 기적이 되어 여기 북극에 재현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 끝난 건 아니다.
우진이 빠르게 놈의 힘을 파악했다.
“얼음을 쓰는군.”
놈의 주된 속성은 대지.
하지만 북극에서는 땅마저도 모두 얼어붙은 동토이다.
즉, 빙토(氷土)의 공격이 되는 것.
자신이 대지이자 얼음의 화신을 상대한다는 것을 유념해야 했다.
하지만.
그건 반가운 소식이기도 했다.
“잘 됐군. 내가 최근 신기한 능력을 얻었거든.”
그때 우진의 주변에서 막대한 힘이 느껴졌다.
— 훙! 훙! 훙! 훙!
사방에서 등장한 얼음의 대형 화살.
모두가 자신의 1식만큼이나 거대하다.
보통의 모험가라면 이것 중 단 하나로 파티가 전멸할 정도의 위력이었다.
하지만.
“빙결 흡수.”
절대적인 속성 방어 능력이 발동하고.
쇄도하는 신의 공격.
우진이 그것을 자신의 힘으로 빨아들였다.
— 쿠구구궁...!
놀랍게도 모두 완벽히 사라진 얼음 화살들.
다음 순간.
우진이 그가 받은 충격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피어나라. 요루화(妖淚花).”
— 쿠구구궁!
대지에서 뻗어나온 얼음의 창이 현무를 관통했다.
그것은 탑과도 같은 크기의 거대한 창.
요괴의 눈물에는 신을 죽이는 힘이 있다고 한다.
그 이름을 빌린 공격이 현무를 꿰뚫었다.
다음 순간.
창이 마치 꽃처럼 활짝 벌어졌다.
몸 속에서 부풀어 더 큰 피해를 주는 공격 방식.
현무의 공세를 모두 흡수한 우진.
그렇기에 요루화의 위력은 우진의 힘과 더해져 현무를 압도했다.
— 까드드득...!
꽃이 벌어지며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
8조각으로 나뉘어진 현무의 거체.
“성공이군.”
만족스럽게 바닥에 착지한 우진이 놈을 마무리할 준비를 했다.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 쿠구구구....
완벽히 복구되는 현무의 몸.
놈의 신체는 토양(土壤) 그 자체.
그렇기에 대지의 힘으로 다시 제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우진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드디어 녀석의 비밀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역시 회복 능력이 있었군. 그렇다면 좋은 방법이 있지.”
이미 저런 괴물과 상대해 본 경험이 있다.
도저히 죽일 방법이 없는 것 같은 초강적들의 능력.
완전 재생.
도전자의 의지를 꺾는다.
하지만 자신은 다르다.
방법이 없으면 만들어 내면 된다.
다시 전투를 이어가는 우진.
— 스슷!
순식간에 신형을 움직이며 모든 공격을 회피했다.
— 콰콰콰쾅!
사방에서 날아드는 촉수는 절망적일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빗나가도 살이 터지는 고통이 찾아왔으니까.
전지의 감각과 심안이 없었다면 모두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비밀 수련장.
거기서 수십 마리의 날개 원숭이와 싸웠던 경험이 아니면 결코 이 감각을 몸에 익힐 수 없었으리라.
공중에서 자세를 바꾼 우진이 다가오는 얼음의 공격을 모두 흡수했다.
촉수를 제외한 공세를 모두 흡수할 수 있었던 것도 매우 도움이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피해야 할 공격이 몇 배로 늘어났을 테니까.
과연 신의 이름을 가질 만한 존재.
신의 짐승.
신수(神獸)!
하지만.
자신은 반드시 저 녀석을 복속시킬 것이다.
“자, 이제 죽을 시간이다!”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접근하는 우진.
상대를 천 갈래로 찢기 위해 빠르게 쇄도했다.
그때 현무가 무언가를 알아챈 것인지 낮은 울음소리를 냈다.
— 구오오오.......
갑자기 몸이 무거워지고 느려졌다.
아마도 언령의 힘이리라.
놈도 예상보다 강한 적을 상대로 고전 중이었다.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그 와중에 언령을 사용했다는 건 의미가 있다.
위험을 감수하고 힘을 분산시킨 것이다.
‘그 말은 이것만 이겨내면 기회가 온다는 뜻이다!’
언령의 효과를 벗어나려는 우진.
지금까지 겪어봤던 그 어떤 능력보다도 진득하고 지독했다.
계속해서 짓누르는 신수의 힘.
마치 세상 전체가 느려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흐아아아압!”
그가 자신의 기합으로 놈의 ‘명령’을 상쇄했다.
우진의 목소리에는 모두 네 개의 효과가 담긴다.
괴성, 대요괴의 울음소리, 그리고 용언과 언령.
반신의 힘을 상쇄할 만한 충분한 능력이 있는 것이다.
원래의 속도를 되찾은 우진.
[강화된 언령의 힘이 상대의 언령을 상쇄합니다.]
우진이 다시 한 번 사자후를 터트렸다.
“내게 명령하지 마라!”
빠르게 접근한 그가 대흑검으로 현무를 산산조각 냈다.
그건 마치 1초에 수십 번을 오가는 절단기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막대한 힘을 부은 언령의 반동.
기세를 가다듬던 놈이 순식간에 분쇄되었다.
바닥에 떨어진 현무의 조각들.
우진이 이제야 자신의 계획을 실행했다.
“가둬라.”
— 쿠구궁!
우진의 뜻에 따라 솟아난 얼음들.
현무의 신체를 각자 얼음의 감옥에 가뒀다.
— 투두두둣...!
서로를 향해 맹렬히 날아가려는 조각들.
회복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내 힘을 잃고 모두 추락했다.
그리고 숨겨져 있던 핵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건 바로 유일하게 번쩍이는 하나의 조각이었다.
“거기 숨어 있었군.”
현무가 지닌 힘의 정수!
빛나는 조각이 상황을 깨달은 듯 발악했지만 운명을 피할 순 없었다.
“신살(神殺).”
보이지 않는 수천의 검격.
우진의 무형지기에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걸 기점으로 시작된 것은...
신수의 죽음이었다.
— 펑! 퍼펑!
하나씩 사라지는 조각들.
— 펑!
그렇게 반 정도가 사라졌을 때 엄청난 소리가 들려왔다.
—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팔음과 함께 모든 조각이 일시에 소멸했다.
그리고 떠오른 찬란한 금빛 알림.
[봉인된 신수, 현무를 제압하였습니다.]
세상을 구성하던 무언가가 흩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모조리 자신에게 빨려들었다.
“컥......!”
탄성을 토하는 우진.
지금까지 흡수한 신수들과는 또다른 느낌이었다.
능력의 우열이라기보다는 품고 있는 진기 자체가 월등히 강했다.
그리고 막대한 성장이 시작되었다.
[현무의 힘을 계승합니다.]
[반신(半神)의 격을 흡수해 왕격이 강화됩니다.]
[모든 스탯의 효율이 대폭 상승합니다.]
[보유한 스킬의 위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아찔한 고양감과 함께 우진의 몸에서 영광스러운 광채가 터져나왔다.
강화된 왕의 기운이었다.
또한.
[중급 언령의 힘이 강화됩니다.]
[상급 언령의 힘을 획득했습니다.]
언령이 더욱 강해졌다.
마력 또한 더 소모되겠지만 그건 상관없다.
자신도 더 강해지면 되니까.
신의 힘을 더 잘 다룰 수 있다는 건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적.
[신수를 복속시켜 그 힘을 이어받습니다.]
[’현무의 굉암(宏巖)’을 계승했습니다.]
사신수에게만 허락된 세계유일급 속성 능력.
그게 자신의 힘이 되었다.
우진이 기운을 끌어올려 처음으로 사용해 보았다.
“현무지세(玄武之勢). 굉룡승천(宏龍昇天).”
— 콰콰콰쾅!
대지에서 거대한 용이 치솟아 하늘로 향했다.
지금까지 쓰던 것과는 격이 달랐다.
이제 땅만 있으면 무엇보다 강력한 승천류를 쓸 수 있다.
최강의 대지 속성을 획득한 것이다.
이로써 세 마리의 신수를 자신의 힘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음...?”
성장의 고양감을 만끽하던 우진.
그가 무언가를 느꼈다.
그건 아주 기묘한 감각이었다.
“하늘이.......”
어디선가 이상한 기류가 발생했다.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독특한 힘의 움직임이었다.
고개를 든 우진의 눈에 무언가가 비쳤다.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정순한 백색으로 물든 천공.
이 극지, 북극에서도 보기 힘든 기묘한 현상이었다.
소용돌이치는 힘의 기류.
그리고 하늘이 열렸다.
— 쿠구구궁.......
그것은 어떤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반으로 갈라진 하늘이었다.
거기서 등장한 것은 한 명의 인간.
흰 로브를 얼굴이 덮힐 정도로 푹 눌러쓴 묘령의 존재.
남자인지도 여자인지도.
실제론 종족조차 알 수 없는 백색 의복의 초월자.
그의 이름은...
백의사자(白衣使者).
다른 말로.
월드의 관리자였다.
<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4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