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41 >
바람이 불어왔다.
이내 폭풍이 되었다.
눈보라를 이겨내는 거대한 광풍.
우진의 마력으로 발현된 대선풍이었다.
그것에 신의 불꽃인 초열이 합쳐졌다.
마침내 진법의 형태가 되어 휘몰아쳤다.
초열과 대선풍, 그리고 화염진과 결합하여 만들어 낸 새로운 기술.
초열대선풍진(超熱大僊風陣).
바람을 따라 몰아치는 초열이 불길의 믹서기처럼 세상을 갈아버렸다.
우진이 자신이 만들어 낸 엄청난 광경에 스스로 감탄했다.
“대단하군.”
마력이 강해진 것이 체감되었다.
과거엔 상상하지 못한 정도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순식간에 정리된 모든 마물.
그리고 알림이 떠올랐다.
[레벨업!]
어느 순간 신경 쓰지 않게 된 레벨업 알림이 갑자기 색다르게 들렸다.
상태창을 부른 우진이 미소를 지었다.
어딘가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 했더니 이유가 있었다.
이제 무려 400이 넘어버린 레벨.
[LV : 412]
괴물을 넘어 반신을 향해 접근하는 숫자의 레벨.
“내가 정말 왕괴물이 되어버렸군.”
솔직히 이제 레벨은 거의 의미가 없지만...
그래도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던 고렙이 되는 건 가슴이 뛰는 일이었다.
‘100렙 정도만 더 올리면 아주 깔끔하겠군.’
500레벨은 이미 레벨만으로도 반신이라 할 수 있는 숫자.
전생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수치였다.
그게 끝이 아니다.
[체력 : 7150]
[근력 : 8792]
[민첩 : 8748]
3대 스탯만으로도 초월적인 수준이 되었다.
이 정도라면 계급장 떼고 한 판 붙자는 얘기가 반갑게 들릴 지경이다.
모든 장비를 훌훌 벗어 던지고 스킬과 온갖 특수 능력을 봉인해도 된다.
여유롭게 말하는 우진.
<덤벼.>
그럼에도 불구하고 뻗어 나오는 강대한 힘.
알아볼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적이든 꼬리를 말고 도망칠 것이다.
심지어 언데드 폼과 어둠 능력도 필요 없다.
물론 가장 경이로운 것은 마나였다.
[마나 : 23464]
아득할 정도의 힘.
자신은 단순해서 그런가 눈으로 확인하니 더욱 힘이 솟아났다.
그가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설옥이란 이름의 오만한 대지.
“이번 생의 시작도 지하의 감옥이었지.”
정말로 짐승처럼 창살 속에서 보냈던 나날들.
“근데 난 감옥에 오래 있는 스타일이 아니다.”
설옥도 느긋하게 지나갈 생각은 없다.
오로지 초속으로 돌파할 뿐.
“흐아아아압!”
그가 괴성을 내질렀다.
대요괴의 울음소리에 드래곤 피어가 합쳐진 함성.
그건 단순한 기합이 아니라 세상을 얼게 만드는 야수의 포효였다.
“간다!”
다시 무수한 괴물들을 죽이며 설옥을 돌파하는 우진.
— 콰드드득...!
언데드 폼으로 변신하자 이제야 자유로워진 기분이었다.
네 발로 달려나가는 그의 강대한 육신에 푸른 뇌전이 어렸다.
“백호지세(白虎之勢). 대뢰만라(大雷萬羅).”
세상을 향해 만 갈래로 뻗어 나가는 극뢰의 푸른 기운.
주변의 모든 마물들이 전기의 그물 속에 찢겨 나갔다.
— 크아아악...!
— 끼에에엑...!
그러나 설옥은 과연 넓고 지독했다.
저 멀리 다시 새로운 마물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 콰앙!
다음 순간 검푸른 야수가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가 붉은 날개를 펼치고 불타는 동공으로 미소를 지었다.
새로운 신수의 힘이 빙의되고 그가 세계가 변화할 것을 명령했다.
“주작지세(朱雀之勢). 초열세계(超熱世界).”
— 후우웅!
순간 무서운 기운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원형의 불길 속에 녹아가던 모든 마물들.
— 콰콰콰쾅!
후폭풍 속에 터져나갔다.
다시 지상에서 달려나가는 우진.
그는 백호였고 또한 주작이었다.
설령 백호와 주작 자신들이 오더라도 이 정도의 기세를 뿜어낼 순 없으리라.
그는 또한 우진이었다.
“으아아아아!”
열 개의 손톱이 설원 속에서 번쩍였다.
“나를 막지 마라!”
순식간에 갈려나가는 거인들.
그리고 다시 대뢰와 초열이 대지를 휩쓸었다.
힘이 부족할 때면 천지에 널린 것이 회복 수단이었다.
“융합!”
다시 완벽한 상태가 된 우진이 다시 설원을 터트리며 달려나갔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끝이 없게 느껴지는 설원도 반 이상을 통과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탑 5층의 대설원보다 면적이 넓었지만 힘의 제약이 없으니 더욱 빠르게 주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났을 때.
다시 새로운 알림이 떠올랐다.
[충분한 양의 ‘망령의 원한’을 섭취했습니다.]
[충분한 양의 ‘거인의 뼈’를 섭취했습니다.]
‘음...?’
[지금부터 어둠에서 불러내는 그림자와 망령들이 대폭 강화됩니다.]
[지금부터 어둠에서 불러내는 본 골렘들이 대폭 강화됩니다.]
[본 드래곤이 고룡급으로 성장합니다.]
우진이 감탄했다.
‘어둠의 생물들이 성장하다니...!’
주변과 뒤를 바라보는 우진.
정말 많이 죽이긴 했다.
‘게다가 전부 먹어치웠지.’
융합으로 모조리 빨아 먹었으니 엄청난 양의 사체를 먹긴 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의 전력 상승이 찾아올 줄이야.
고마운 일이었다.
“나와라.”
그가 시험 삼아 새로 태어난 어둠의 생물들을 불러 보았다.
— 쿠구구구.....
든든하게 대지를 딛고 일어서는 본 골렘들.
또한 천공을 지배하는 그림자와 원혼들.
더욱 강해진 것이 느껴졌다.
이제 이 녀석들과 함께 설옥을 더욱 빠르게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난 혼자가 아니다. 난 군단 그 자체다.’
— 쿠웅! 쿵! 쿠우웅!
주변의 본 골렘들이 전투를 준비했다.
— 낄낄낄낄!
하늘의 망령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돌격!”
자신의 군대와 함께 달려나가는 우진.
“흐아압!”
흑색 투의를 입은 흡혈귀가 붉은 레이저 쿠크리를 들고 돌진했다.
자신의 가장 든든한 전력, 르쉬였다.
그녀가 붉은 화살처럼 설원을 가로질렀다.
“이야아아!”
번쩍이는 돌풍을 따라 강화된 본 골렘들이 적을 휩쓸었다.
하늘에선 어둠의 생물들이 눈의 망령을 가르며 전진했다.
그렇게 설옥이 우진의 발 아래 정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저 멀리 유적터가 보였다.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
— 휘오오오....
전투를 끝낸 우진.
이곳에 도달하자 모든 마물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물러났다.
대전투 끝에 도달할 수 있었던 이 장소.
이것이 금지(禁地)가 숨겨둔 유적이었다.
“드디어 도착했군.”
유적의 전경을 보는 우진.
정말 대단한 규모였다.
수많은 조각상들이 있었다.
각기 다른 짐승과 조류, 그리고 인간의 형상.
언제 만들었을지도 가늠이 되지 않는 오래된 신비.
정말 압도적인 장관이었다.
그 초입이라 할 만한 위치에 거대한 비석이 있었다.
<충분한 얼음의 힘이 없다면 통과할 수 없다.>
다소 의미가 불분명했지만 우진은 알 수 있었다.
‘힘을 보이라는 거군.’
지신의 축복 덕분에 아주 명확하게 해결책이 떠올랐다.
드워프 유적에 갈 때 했던 것과 비슷한 과제다.
용머리에 고열의 화염을 불어넣었던 시험.
그걸 더 강하게, 더 넓은 범위에 하면 되는 것이다.
빙결이란 속성으로 말이다.
우진이 피식 웃었다.
‘이 정도는 스스로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다 잠시 의문을 품는 우진.
정말 스스로 생각할 수 있었을까...?
그가 이내 고개를 저어 상념을 털어냈다.
‘됐다. 내 특기는 머리쓰기가 아니라 힘쓰기니까.’
방법을 알면 그만이다.
그건 바로 강대한 빙결의 힘을 저 수많은 조각상에 불어 넣는 것.
그런데 그게 하나가 아니라 마치 어떤 도시의 모든 생명체를 모아 놓은 것처럼 수가 많다.
“상관없다. 얼음을 원하면 이 세상 전체를 얼려주지.”
— 쿠구구구...!
유적과 거리를 벌린 우진.
사막벌을 먹고 마나를 회복했다.
조각상의 개수는 초대량.
범위는 상당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광범위.
달성 조건은 ‘모두 동시에’.
그걸 만족시키기 위한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
“폭설룡 강신.”
— 쿠구구궁...!
실체화의 힘으로 세상에 다시 나타난 5층의 수문장.
폭설룡.
놈이 거대한 입을 벌리고 무언가를 준비했다.
그리고 떨어진 우진의 명령.
“얼려라.”
— 고오오오오오...!
강대한 마력이 집중되어 세상으로 뻗어 나갔다.
고룡의 ‘블리자드 브레스’로 모든 조각상이 얼어붙고 있었다.
거대한 머리를 움직이며 정말 세상 전체를 얼려버릴 것처럼 포효하는 스노우 드래곤.
흑염제가 굳이 용 형태로 자신의 능력을 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미지가 선명하니 구현하는 것이 훨씬 수월했다.
또한 멋졌다.
우진이 껄껄 웃었다.
“시원하구만.”
그렇게 모든 조각상이 얼어붙고 충분한 냉기가 스며들자 알림이 떠올랐다.
[시험에 통과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조각상들이 하나의 방향을 향했다.
그 중간에 거대한 길이 생겨났다.
바다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무형벽이 뚫렸군.’
우진이 당당하게 그 길을 가로질렀다.
그런데 바다에 도착했을 때였다.
[금지(禁地)로 가는 도전]
[추가적인 시험이 필요합니다.]
평소와는 다른 적색 알림이 떠올랐다.
이것은 대화가 가능한 형태였다.
전에도 아주 위험한 장소에서 본 적이 있었다.
우진이 물었다.
“시험의 이름이 뭐지?”
놀랍게도 알림의 대답이 돌아왔다.
[시험의 이름은 ‘빙결 미로’입니다.]
[도전자는 계속 변화하는 얼음의 미로를 통과해야 합니다.]
“내게는 탐지 능력이 있다. 혹시 그것의 사용이 제한되는가?”
[스킬 사용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빙결 미로는 시공간마저도 뒤틀리는 공간.]
[생존과 실패, 둘 중 하나만이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못 나오면 죽는다는 얘기군.’
우진이 무서운 미소를 지었다.
“하겠다.”
순간 시험이 시작되었다.
[시험 개시]
그의 곁에서 빠른 속도로 거대한 얼음의 벽이 생성되었다.
말 그대로 빙결 미로였다.
단순한 미로도 아니고 전후좌우상하의 6방향으로 길을 선택해야 하는 입체적인 형태였다.
그 길을 몇 번 왔다갔다 해보니 시스템이 경고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옆으로 가면 아래서 빠져나오고, 전방으로 가면 뒤에서 나타나게 된다.
그것도 규칙이 없이 이동할 때마다 다른 방향으로 보내진다.
심지어 결과가 원인이 되어 지금 내딛은 발걸음이 과거의 정렬을 뒤틀고 있었다.
공간이 아니라 ‘시공간’이라고 말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과연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군.”
전지의 감각이 없으면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도 몰랐으리라.
단순히 얼음 속을 탐험하는 모험가의 마음마저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지신의 축복을 발동한다.”
그의 몸에 백색 광채가 어렸다.
모든 답을 알려주는 극상의 조언자.
“정답을 알려다오.”
— 치리링...!
아름다운 소리와 함께 전방으로 쏘아져나가는 빛.
다음 순간 백색 빛이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난 이런 곳에서 죽을 생각이 없다.”
모든 길이 선명하게 보인다.
어디로 가야할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얼마를 걷다 보니 알 수 있었다.
이건 길을 알아도 돌파하기 힘든 난관.
즉, 초거대 미로다.
우진이 간단히 감상을 표현했다.
“상당히 길군.”
그가 자세를 잡았다.
초속 주파를 위해서였다.
“르쉬, 잘 따라와라.”
“예!”
— 스슷!
우진이 순간 세상에서 사라졌다.
공간이 뒤틀린 미로.
여기저기 번쩍이는 일행의 모습.
시공을 뛰어넘어 돌파하는 도전자들.
백색의 광채가 그들을 인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 쿠쿵....
마침내 미로의 끝에 두 존재가 다시 나타났다.
[시험을 통과하였습니다.]
— 쿠구구구....
거대한 빙결의 미로가 바다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무너지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오히려 그 어마어마한 규모가 체감되었다.
저길 정상적으로 통과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걸렸을까.
축복으로 답을 알고 있어도 이 지경이었는데 아마도 영원히 헤맸으리라.
우진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내가 비정상적일 정도로 강해서 다행이군.’
그때 다시 적색 알림이 떠올랐다.
[월드 최초로 금지의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봉인된 신수를 만날 권한을 획득했습니다.]
[주의!]
[지금부터 도전자의 결정은 월드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습니다.]
그가 경고를 무시하고 걸어나갔다.
“위험에 빠지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신수가 될 것이다.”
그리고 얼마를 걸어갔을 때.
마침내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빙하 속에 잠든 대지의 신수.
거대하고 장엄한 모습이었다.
얼마나 강대하기에 봉인이 된 것일까.
마지막으로 살아 움직이는 ‘놈’을 본 것이 누구일까.
아마도 까마득한 고대의 존재들이 아닐까.
눈을 감고 얼어있는 것만으로도 그 힘이 짐작되는 반신(半神).
이제 자신의 힘이 될 차례다.
“눈을 떠라. 현무여.”
우진이 투기를 드러낸 순간.
신수가 안광을 번쩍였다.
<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4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