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39 >
‘지신(智神)의 축복이라.’
자신도 처음 보는 보상이었다.
아주 희귀한 형태의 가호가 분명했다.
“대강 효과는 알겠는데, 가호를 내려준 쪽에서 설명을 해주면 좋겠군.”
스핑크스가 허탈하다는 듯 말했다.
<넌 이제부터 문제나 퍼즐, 비밀스런 해결책을 요구하는 과제에서 즉시 답을 알 수 있게 된다. 엄청난 축복을 받은 셈이지.>
“오...! 역시!”
자신에게 딱 맞는 능력이었다.
<이건 사실 최단 기록을 세웠다고 주는 보상은 아니다. 내게 아양을 떤 도전자들에게 기분이 좋을 때만 내려주는 것인데... 너 같은 녀석에게 주게 될 줄이야....>
자기도 자신이 변덕스러운 놈인 건 알고 있는 거 같다.
놈이 하늘을 보며 애석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까지 이걸 받은 녀석이 셋 정도 되려나.... 아무튼 넌 정말 운이 좋은 거다. 퍼즐이란 건 출제자 마음이라 일단 생각이 꼬이면 지혜가 충분해도 풀기가 어렵거든. 마치 내가 너희들을 골려 먹는 것처럼 말이지.>
놈이 킬킬 웃었다.
“너도 알긴 아는구나?”
전생에 놈이 낸 수수께끼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그래도 쉽진 않을 거다. 이제부터 네가 향하는 건 오로지 선택 받은 존재들만 ‘끝’을 향한 여정이니까. 그걸 얻었다고 우쭐거리면 곤란해!>
놈이 엄포를 놓았다.
“오냐, 고맙다.”
다시 사라지려는 놈을 우진이 붙잡아 세웠다.
“근데 말이다. 최단 기록에 대한 보상은 따로 있잖아? 그것도 내놔라.”
태연하게 손바닥을 흔드는 우진.
홀가분하게 떠나려던 스핑크스가 얼어붙었다.
<뭐, 뭐라고...?>
축복을 받고도 뭔가를 더 내놓으라니.
스핑크스 입장에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우진으로서도 진지하게 하는 말이었다.
녀석의 말대로 ‘지신의 축복’은 최단 기록에 대한 보상이 아니다.
원래 보상은 따로 있다.
일부러 모호하게 말했더니 놈이 알아서 좋은 축복을 걸어줬다.
주는 거 안 받을 이유가 없으니 받았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진짜 보상을 놓고 갈 순 없다.
‘네가 지배자라면 이걸 모른 척 할 순 없겠지.’
그때 놈의 눈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무,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만......>
“최단 기록을 달성했으니 내게는 ‘황금 사과’를 받을 권리가 있잖아. 그렇지?”
스핑크스의 얼굴에 절망이 어렸다.
<크... 크아아악...! 어떻게 그것까지...!>
“글쎄. 이번엔 찍은 게 아니란 것만 말해두지.”
우진에겐 확신이 있었다.
다름 아닌 레이카에게 들은 얘기였으니까.
그가 최단 기록을 달성하고 받은 보상에 대해 얼마나 자랑을 했던가.
‘평소엔 심각할 정도로 과묵한 놈이라 더 특이하게 느껴졌지.’
그만큼 좋은 아이템이란 뜻이었다.
그때 스핑크스가 말까지 더듬으며 항변했다.
<너, 너, 너 그게 얼마나 엄청난 가치를 지닌 물건인지 알고 말하는 것이냐?>
“물론. 복용하면 체력과 마력이 완전히 회복되지. 그리고 가장 큰 특징은 사과 자체가 ‘재생’한다는 것.”
소모품 타입이지만 24시간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지나면 사과는 원래 상태로 돌아온다.
심지어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어도 인벤토리에 고스란히 복구된다.
즉, 무한 사용이 가능한 아이템이란 것.
<그, 그런 데도 그걸 지금 뻔뻔하게 달라고 하는 거냐...?>
“어, 내놔.”
<크아아악!>
스핑크스가 거대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우진이 씩 웃었다.
“어차피 지신의 축복을 내려준 시점에서 나한테 더 확실히 호의를 표하는 게 좋지 않을까? 아니면 지배자가 규칙을 어길 셈이야?”
잠시 멍하니 있던 스핑크스가 말했다.
<그, 그건.... 이이이익! 정말 대단한 놈이군....>
스핑크스가 찬란한 광채와 함께 무언가를 불러냈다.
황금 사과가 등장한 것이다!
금빛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색을 지닌 과실이었다.
“고맙다. 잘 먹을게.”
우진이 윙크를 하며 사과를 낚아챘다.
던졌다 받았다 하는 모습을 보던 지배자가 마지막으로 한탄했다.
<으으으...! 인간을 농락해야 할 이 몸이 반대로 농락 당한 기분이야. 어쩌다 이런 지독한 인간한테 걸렸을까....>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펑! 소리와 함께 사라진 스핑크스.
그로선 마침내 평화를 찾게 된 셈이다.
“바이바이!”
“잘 가라, 큰 사자야!”
그때 감탄하며 지켜보고 있던 네 명의 조력자가 탄성을 토해냈다.
“지, 지배자와 대등한 관계에서 대화를 나누다니...!”
우진이 해맑게 웃었다.
“좀 까다로운 놈인데 일이 잘 풀렸네요.”
애쉬라인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잘 풀렸다고...? 방금 넌 지배자를 협박한 셈인데......?”
갑자기 중심부로 소환된 것보다 이게 더 놀랍다는 표정이었다.
우진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르쉬가 나서서 중심부의 대모험을 설명하려 했다.
그때였다.
“헛....”
주변의 마력의 흐름이 바뀌었다.
요동치는 공간.
세 얼간이가 자신들의 손을 바라보며 놀랐다.
손 뿐 아니라 그들의 몸 전체가 일렁이며 깜빡거리고 있었다.
작별의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역시 영체 같은 모습이 된 애쉬라인이 미소를 지었다.
“긴 얘기를 하기엔 시간이 허락해주질 않는군.”
세 얼간이가 허겁지겁 인사를 올렸다.
“저희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대장님과 총대장님도 건강하십시오!”
르쉬도 손을 흔들었다.
“오오! 알겠다! 건강해라!”
“예! 다시 뵙는 그날까지 잘 지내십시오!”
우진도 손을 흔들었다.
“고맙다 모두들! 고맙습니다 애쉬라인!”
“고맙습니다 대사부님!”
애쉬라인이 피식 웃으며 마지막으로 주위를 살폈다.
“나름 재밌는 경험이었다. 기계 부품을 얻으면 또 연락해라.”
이내 피슝! 소리와 함께 다들 사라졌다.
“정말 든든한 존재들이군.”
이렇게 갑자기 불렀는데 완벽하게 도움을 주고 갔다.
저들이 아니었다면 분신을 만들어서 억지를 부려보려고 했다.
‘아니면 진짜 지배자를 복종이라도 시켜보려고 했는데.’
정상적인 방식으로 통과한 덕분에 좋은 보상까지 얻었다.
황금 사과는 어찌 얻어냈을지 몰라도 ‘지신의 축복’은 존재하는지도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제 그 둘 모두를 얻었다!
우진이 만족스럽게 자신의 손에 들린 황금 사과를 바라보았다.
“자, 이제 이 소중한 보상을 내 소중한 부하에게 선물할 차례구만.”
“으엇...?”
뜻밖의 얘기에 기겁하는 르쉬.
황금 사과를 자신에게 주겠다는 말에 당황했다.
“저, 저, 제가, 저한테, 저 르쉬에게 말씀입니까?”
“그래. 받아다오.”
이건 원래 르쉬에게 주려고 얻어 낸 물건이다.
자신한텐 융합 스킬이 있으니까.
그가 사과를 내밀었다.
“잘 먹고 쑥쑥 자라라.”
“제, 제가 어찌 이런 귀한 걸....”
껄껄 웃던 우진이 무언가를 꺼내 먹어치웠다.
“난 이게 더 맛있다.”
그건 바로 사막벌이었다.
이 사과가 대단한 물건이긴 하다.
하지만 자신은 그것보다 더 상위의 능력을 과거부터 쭉 누려왔다.
‘융합의 완전 회복은 재사용 대기 시간도 없거든.’
그렇기에 일행의 전력을 상승시키려면 르쉬에게 주는 것이 정답이다.
“안 받으면 땅에 묻는다.”
“아, 아닙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아니 받겠습니다!”
흐뭇하게 웃는 우진.
르쉬가 애지중지 사과를 쓰다듬었다.
“사과... 내 사과야... 잘 부탁한다....”
월드의 모든 모험가들이 탐낼 신물(神物)이 붉은 머리 흡혈귀의 소유가 되었다.
잠시 교감할 시간을 준 우진이 르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이제 가보자꾸나.”
“예! 어디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총대장님!”
더욱 빠릿빠릿해진 르쉬.
일행이 스핑크스가 열어둔 게이트로 향했다.
그 앞에 서자 일렁이며 열리는 금빛 게이트.
탑 클리어는 구역 통과이기에 성대한 알림이 떠올랐다.
[3구역의 모든 층계를 완벽하게 통과했습니다.]
[충분한 점수를 획득했습니다.]
[등급 : SSS]
[점수 : 9999++/9999]
[모든 시험을 1차 시기에 통과했습니다!]
[한계 이상의 점수를 획득했습니다.]
[불가능한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특별 보상이 주어집니다.]
[VIP 통행증]
보상은 역시나 통행증이었다.
이번 중간 구역은 특별히 넓기 때문에 아주 좋은 보상이었다.
물론 우진에게는 따로 들러야 할 곳이 있었지만 말이다.
— 피슝!
게이트에 들어서자 다시 평야가 펼쳐졌다.
처음에 봤던 거대한 탑의 반대편.
그곳의 들판으로 나온 것이다.
우진이 뒤로 돌아 탑을 바라보았다.
가까이에서 보니 더욱 거대하게 느껴지는 탑.
아예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마치 하늘과 땅을 잇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과거에는 죽을 각오로 통과했으며, 이번 생에는 죽은 자가 되어 통과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갈 일이 없는 장소가 되었다.
‘중심부도 이제 2구역 남았군.’
그가 깊은 눈으로 전방을 바라보았다.
이제 도전자들의 수준도 슬슬 올라갈 것이다.
지난 구역까지는 어설픈 느낌이 남아 있다면 이제부터는 잘 단련된 강자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여기까지 오지 못 했을 테니까.’
또한 마물과 지배자, 수문장들의 수준도 한층 올라가리라.
하지만 그건 우진에게 있어 기분 좋은 일이었다.
‘더욱 강한 자들과 겨루는 건 나도 기대하고 있던 바다.’
그가 중심부의 새로운 영역을 바라보았다.
이제 후반부라고 부를 수 있는 구간이었다.
‘이곳은 중간 구역이 특히 넓지.’
지금은 평야지만 더 나아가면 새로운 지형과 기후가 맞아줄 것이다.
마치 바깥 고리처럼 다양한 모습을 지닌 장소.
그만큼 면적도 넓다.
그렇기에 길을 잃기도 쉬웠다.
‘다만 여기선 북부로 접근할 수 있다.’
우진이 고개를 돌려 저 먼 곳의 산지를 바라보았다.
다음 신수(神獸)를 만날 시간이 된 것이다.
일단은 ‘북극(北極)’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따로 특별한 무형벽으로 막혀 있기에 정확한 경로를 택할 필요가 있었다.
승천비보를 불러낸 우진이 크기를 키워 르쉬와 탑승했다.
“북쪽으로!”
쏜살같이 날아가는 승천비보.
몇 시간을 이동하자 북부의 험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금방 왔군.’
물론 우진 기준으로 금방 온 것이지 상당히 먼 거리였다.
— 휘이이잉.......
주변 풍경이 바뀌고 눈 덮인 협곡이 등장했다.
그곳에 기다란 줄다리가 위태롭게 걸려있었다.
— 드르르릉.......
그 앞에는 무언가가 기둥에 기대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눈을 감고 팔짱을 낀 세눈박이 거인이었다.
착지한 우진이 놈을 살폈다.
“특이한 놈이군.”
처음 보는 녀석이었다.
아마도 이 길목의 수문장일 것이다.
팔이 네 개가 달려있어 제법 위협적이었다.
“주먹을 보니 권술가인 모양이야.”
초대형은 아니지만 그래도 키가 5m에 육박하니 상대하기 제법 까다로운 상대였다.
팔이 여러 개라는 이점을 살리면 끔찍한 강적이 되리라.
그때 놈이 실눈을 뜨고 눈동자를 휙 움직였다.
“누가 이리 시끄럽게 구느냐....”
“나다.”
놈이 시큰둥하게 하품을 하며 우진과 르쉬의 행색을 살폈다.
“이곳은 금지(禁地)와 연결된 길이니라... 도전자는 다른 통행로를 알아보아라.”
우진이 빙긋 웃었다.
“그래도 가야겠다면?”
“음?”
놈이 마침내 세 개의 눈을 다 뜨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우진의 기세가 심상치 않은 걸 알아챈 것이다.
“이런... 단순한 미아가 아니로군. 신원과 목적을 밝혀라.”
“우진. 북극의 신수를 만나러 갈 생각이다.”
— 푸히히히히히....
놈이 이상한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워낙 커다랗고 기이해서 그렇지 분명한 비웃음이었다.
그때 우진이 마기(魔氣)를 드러냈다.
“왜? 자격 시험이라도 필요한가?”
이제야 팔짱을 풀고 이쪽을 향하는 거인.
놈이 턱을 긁적였다.
“넌 참으로 괴이한 놈이군. 죽음이 드리워져 있어.”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세 눈이 요리조리 우진을 살폈다.
네 개의 팔도 어깨를 풀듯 움직이며 전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좋아, 가겠다면 가야지. 하지만 넌 그냥 보내주고 싶지 않다.”
“그럼?”
“히히힛.... 나와 승부를 겨뤄서.......”
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 콰드드득!
우진이 순식간에 변신하여 쇄도했다.
“어......?”
놈이 눈을 깜빡인 순간, 승부가 결정되었다.
“으으아아아아!”
그건 참으로 아름다운 형태의 승리였다.
<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39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