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33 >
크리스탈 돔.
그 강당 내부에서 신비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고작 하나의 존재가 수백 명의 인간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수백은 모두 아슬락의 부하들이었다.
또한 그들 앞에 선 것은 우진이었다.
일단 우진이 손을 들었다.
1만이 넘어간 마나 덕에 그의 손짓만으로도 위압감이 생겼다.
강당 끝에는 아슬락의 화려한 집무실이 있었다.
“이리 와라.”
집무실 내부의 물건들이 모두 떠올랐다.
우진이 흩날리는 물건들 가운데 아슬락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는 물건을 불러들였다.
“스킬이 돌아오니 편하군.”
강혼으로 그의 손에 안착한 것은 아슬락의 ‘장부’였다.
잠깐 훑어 본 그가 장부에 마력을 실어 던졌다.
“커어어억...!”
— 콰가가각...!
몇십 명이 고작 장부 하나에 맞아 날아갔다.
마치 바다가 갈라지듯 쫙 밀려나는 인간의 파도.
“원위치.”
우진이 그 광경을 보고도 냉막하게 말했다.
“커... 커억...! 원위치!”
모두가 허겁지겁 일어나 빠르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크윽....”
“으억....”
신음하는 놈들.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은 고통이 찾아왔다.
하지만 항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슬쩍 던진 것으로 이 정도 위력이었으니까.
제대로 각도를 살려 힘을 줬으면 자신들은 반으로 갈라졌을 것이다.
그때 우진의 싸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화가 난 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
“모, 모르겠....”
대답하려던 놈들이 황급히 입을 멈추었다.
모르면 끝이 아니다. 머리를 굴려서라도 답을 짜내야 하는 것이다.
그때 우진이 말했다.
“장부가 너무 길어.”
모두에게 오싹한 감정이 찾아왔다.
단순히 길어서 화가 났다고?
떨거지들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잘못 걸렸다....>
저 정도라면 숨소리가 거슬린단 이유로 자신들을 몰살시킬 수도 있다.
물론 우진이 그 정도로 나쁜 놈은 아니었다.
그의 진심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렇게 길고 두꺼운 장부가 필요할 정도로 해먹었다는 뜻이잖아. 그리고 도대체 진주를 수탈한 걸 하나하나 기록해서 어디다 쓴 거냐?”
우물쭈물하는 놈들.
“설마 너희들끼리 공적 경쟁이라도 했어? 아슬락한테 잘 보이려고?”
그러자 하나둘 고개를 드는 놈들.
“그, 그걸 어떻게......?”
“자랑이다 이 새끼들아.”
그가 아슬락의 집무실을 터트려서 목재로 굵은 몽둥이 수백 개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강혼으로 정확하게 단체 배송하듯 날렸다.
결국 모든 이들의 손에 몽둥이가 하나씩 들렸다.
의문에 빠진 놈들.
갑자기 자신들에게 무기를 쥐여준다.
<이게 뭘까? 이걸 주는 의도가 뭐지?>
너희가 모두 덤벼도 소용 없다는 자신감의 표현?
그게 아니면.......
그때 우진이 말했다.
“서로를 매우 세게 쳐라.”
망설이던 놈들이 결국 그 말에 따랐다.
아니면 우진에게 맞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죽는 것보다 차라리 각자 몇 대 때리는 편이 낫다.
“으, 으아아아!”
“아아아악!”
그렇게 매타작이 끝난 후에는 놀랍게도 모든 몽둥이가 회수되었다.
— 화르르륵!
허공에서 타오르는 나무들.
마치 신의 불꽃처럼 아름답고 신비한 진홍의 화염이었다.
“회개의 세례는 잘 받았느냐?”
“예... 예!”
벌떡 일어나서 각을 맞춰 차렷 자세가 된 녀석들에게 우진이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라.”
그가 장부를 띄워 올려 허공에서 펼쳐지게 만들었다.
“우선 이 장부를 정확히 확인해라. 그리고 부당하게 넘어가지 못 한 사람들은 바로 넘어갈 수 있게 조치해라.”
“예, 알겠습니다!”
제법 빠릿빠릿하게 답하는 놈들.
허나 그걸로는 부족하다.
“또한 바닷가에서 노역한 자들에게는 기간에 따라 진주를 추가로 지급해라. 그리고 아슬락이 모아둔 다른 물건도 공평하게 분배해라.”
그가 창고를 터트려 그 안의 물건을 모조리 강당으로 이동시켰다.
“난 머리가 나빠서 뭐가 공평한 건지 모르겠는데 너희는 밥 먹고 계산기만 굴리는 놈들이니 나보다 잘 할 수 있겠지.”
이번엔 한쪽에 보관된 진주 더미를 옮기는 우진.
“뭐가 이득인지, 뭐가 손해인지.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더 가질 수 있고,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더 뺏어 먹을 수 있을지 궁리하던 놈들.”
그가 진주를 띄워 올려 모든 놈들에게 한 발씩 발사했다.
마치 대포알에 맞은 것처럼 날아가는 놈들.
“커어억...!”
— 콰광!
우진이 놈들을 강혼으로 다시 일으킨 뒤 곁에 있던 놈들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그게 무조건 나쁘다는 건 아냐. 근데 아슬락 같은 놈하고 붙어 먹어서라도 이룰 만한 일도 아니지.”
마침내 놈들의 중심에 선 우진이 선포했다.
“그러니 내 말에 동의하라고 얘기하진 않겠다. 다만.”
그가 언령을 발동했다.
“복종해라.”
— 쿠웅...!
언령과 왕의 기운이 합쳐지자 모두가 저절로 무릎을 꿇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우진이 말했다.
“아슬락 다음 자리가 누구였느냐? 윗대가리 나와.”
공포에 질린 놈이 쭈뼛쭈뼛 걸어나왔다.
“네가 여기서 제일 상급자야?”
“예, 그렇습니다....”
놈에겐 특히 강한 마력으로 언령을 걸었다.
“네가 책임지고 이들을 이끌어라.”
“예...!”
“지금까지 내가 말한 사항을 단 하나도 어기지 말고 정확히 이행해라.”
1만의 마나를 회복한 우진이 최후의 언령을 발동했다.
“이게 지켜지지 않으면 너흰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된다.”
섬찟한 기분을 느끼는 놈들.
그냥 말뿐이 아니란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목숨을 위해서라도 지금 이 명령을 꼭 지켜야 했다.
우진이 다시 말했다.
“내가 너희를 살려주는 이유는 하나다. 어쩔 수 없이 아슬락에게 복종한 놈들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게 너희가 잘 했다는 뜻은 아니니 앞으로 착하게들 살아라.”
“예!”
모두가 그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했다.
또한 그의 말을 그대로 따를 것이다.
계속해서 언령을 발동했기 때문이다.
물론 우진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거 진짜 엄청나네. 영혼이 털리는 기분이다.’
복잡한 규칙의 언령을 써본 것은 처음인데 정신력 소모가 어마어마했다.
이제 마무리를 할 시간이다.
우진이 밖으로 나가 하늘로 날아 올랐다.
그리고 새로운 스킬 [천공의 음성]을 발동했다.
<아, 아.... 잘 들리십니까?>
파스텔 톤의 하늘을 퍼져나가는 그의 음성.
“어...?”
바닷가에 모여 있던 노동자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었다.
처음엔 2층 보스의 스킬처럼 느껴져 공포스러웠다.
그런데 그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오히려 안도감이 찾아왔다.
아주 믿음직스럽고 정직한 음성이었다.
<아슬락은 죽었습니다. 이제 층을 통과하기 위해선 각자 10개의 진주만 모으시면 됩니다.>
그러자 감탄하는 사람들.
“오오...!”
<이제 여러분은 노예가 아닙니다. 다시 모험가가 되신 겁니다.>
마지막 말이 들려왔다.
<모든 분들의 건투를 빕니다.>
그리고 목소리가 사라졌다.
잠시 멍하게 서 있던 바닷가의 노동자들.
그들이 마침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상황을 파악했다.
아까 이 해변에 찾아와 관리자들을 모두 제압한 모험가.
진주 수백 개를 쌓아 놓고 간 그가 층의 독재자를 박살낸 것이다.
누군가가 한숨을 쉬듯 말했다.
“난 언젠간 이 악몽이 끝날 거라고 생각했지.”
아슬락은 사람을 가려가면서 독재를 했다.
특별한 강한 모험가와 힘의 균형을 위협하는 대형 파티는 그냥 보내줬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독재는 완벽하지 않았다.
위험성은 언제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단 하루만에 끝날 줄은 몰랐네.”
그가 고개를 들어 알록달록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나타난 영웅.
그는 저 독특한 빛깔의 하늘보다도 더 신비한 인물이었다.
이 바닷가에 있는 모든 이들의 운명을 하루만에 뒤바꾼 남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노동자에서 다시 모험가가 된 사람들.
모두가 각자 어디있는지도 모르는, 누군지도 모르는 인물을 향해 감사 인사를 외쳤다.
*
— 피슝!
[4층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제단에 진주 10개씩을 바치고 계단을 오른 우진과 르쉬.
‘지체할 시간 없다! 가자!’
마지막으로 본 아슬락의 부하들은 열심히 장부를 확인하며 진주를 분배하고 있었다.
자신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다.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 정신에 새겨진 구속이니 걱정할 건 없으리라.
그리고 일행이 새로운 층에 도착했다.
그들을 반겨준 것은 푸르른 녹음(綠陰)이었다.
우거진 숲의 모습.
“으악, 벌레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르쉬가 몸 여기저기를 털며 기겁을 했다.
페인텔 지하 아지트의 악몽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흐흐, 벌레를 막고 싶거든 배리어가 도움이 될 것이다.”
“오! 역시 총대장님이십니다!”
우진과 르쉬가 각자 배리어를 발동하고 나아갔다.
— 스스슥....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밀림을 조금 진행하자 아름다운 풍경이 나타났다.
“우와아아!”
거대한 강이 휘감은 녹초지.
폭포와 계곡이 보이고 저 멀리 습지와 산지도 있었다.
숲과 동굴, 과일 나무도 보인다.
‘4층. 결실의 낙원.’
이곳은 야생의 땅이었다.
마물의 수는 적지만 강적이 도사리고 있다.
천만다행으로 지배자는 없다.
오직 어마어마한 과제가 있을 뿐이다.
이곳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인내심만이 유일한 열쇠인 곳이지.’
전투력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아주 오래 걸리는 층이었다.
협력하지 않으면 절대 통과할 수 없는 구역.
혼자서 한다면 평생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소규모 팀이라도 몇 년은 잡고 움직여야 할 정도의 과제.
그건 바로 ‘채집’이었다.
엘프가 살 것만 같은 이 대자연.
그 속에서 다양한 과실과 약초를 모아야 한다.
‘게다가 광석과 보석까지 과제에 포함되지.’
그 수는 대략 5,000개.
모든 품목을 모으기 위해선 반드시 힘을 합쳐서 분담해야 한다.
1개의 품목을 발견하면 최대한 많이 채집해오고, 같은 방식으로 다수의 모험가가 힘을 합친다.
‘그렇게 일을 분담해야 모든 콜렉션을 완성할 수 있지.’
일단 우진이 자신이 가야할 길을 확인하기로 했다.
“층의 도감(圖鑑)을 보여다오.”
우진이 명령하자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건 상태창과 비슷한 형태의 도감이었다.
수없이 많은 빈 칸이 보였다.
이걸 모두 채워야 한다.
그것도 지정된 물품들로만 말이다.
이게 바로 4층의 과제, 도감 채우기였다.
자신은 속도가 빠르니 르쉬와 둘이 힘을 합치면 몇 주 안에 끝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렇게 긴 시간을 보낼 생각은 절대 없다.’
다른 방법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우진은 앞으로 24시간 안에 탑을 돌파할 생각이었으니까.
이제 스킬을 쓸 수 있으니 충분히 가능하다.
‘어차피 힘을 합칠 사람도 별로 없어 보이는군.’
지난 층의 독특한 지배 구조.
그 때문에 새로운 인원이 보충되는 속도가 늦어졌다.
그래서 유독 4층만 사람이 적은 현상이 발생한 것 같았다.
모두 독재자 아슬락 때문이었다.
이제 우진 덕에 그런 일도 끝날 것이다.
‘음?’
그때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건 바로 근처였다.
생각보다 많은 수였다.
그런데 살기는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온건한 기색이 느껴졌다.
“거기 숨어 있지 말고 나오시오. 얘기나 해봅시다.”
순간 일대에 긴장이 느껴졌다.
그리고 수풀 속에서 한 무리가 등장했다.
매우 긴장한 모습의 모험가들이었다.
‘공격할 의사는 없는 것 같은데.’
우진은 태연했다.
오히려 상대방들이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야 저들의 기운이 다 읽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들 입장에서 자신은 아마도 백지(白紙), 혹은 끝없는 암흑처럼 느껴질 것이다.
도무지 흐름을 알 수 없는 폭풍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그가 미소를 지었다.
“가까이 오십시오. 잡아먹지 않습니다.”
그러자 겨우 용기를 내서 다가오는 인물들.
그들이 천천히 다가와 예를 갖췄다.
“난 우진인데 당신들은 누구요?”
“저희는 바깥 고리에서 ‘백사자 기사단’의 이름으로 활동하던 자유 기사단입니다.”
우진이 감탄했다.
백사자 기사단!
‘어쩐지 모두 같은 갑옷을 입고 있더라니.’
자신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정의롭고 강한 집단이었다.
자유 기사단이라는 특수한 단체가 된 이유도 영지 밖의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강한 힘이 있으며 그 힘을 약자들을 위해 사용한다 하여 칭송을 받았다.
그들이 일제히 중심부를 향한다고 했을 때 매우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여기 있었구나.’
전생의 모험에서는 만날 기회가 없었다.
중심부가 워낙 넓기도 하고 각자 출발한 시기가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때 우진의 귀에 뜻밖의 얘기가 들려왔다.
“저희의 은인께 인사를 드립니다.”
모든 기사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3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