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31 >
“와! 공기 좋다!”
“바다 냄새가 납니다!”
3층에 도착한 2개의 폭탄이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그건 바로 우진과 르쉬였다.
우진이 과거 3층을 진행하던 추억을 떠올렸다.
‘진주 모으기 진짜 힘들었지.’
이번 층의 통과 과제는 진주 10개를 모으는 것.
물 속에 있는지라 별별 방법을 다 강구해야 했다.
‘그래도 여기선 내가 활약을 좀 했지 흐흐흐...’
어깨가 으쓱해진 우진.
기계 정글에서 길잡이 역할을 한 것과 더불어 자랑스러운 기억 중 하나였다.
이 층 바다의 물은 매우 깊고 맑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게 사람들의 공포를 불러 일으켰다.
비현실적으로 깨끗한 물과 그 속에 도사린 마물.
거기서 진주를 캐오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은 물에 대한 공포가 없는 편이었다.
그 덕분에 전투조가 마물을 유인하여 사냥할 때 잽싸게 진주를 캐오는 ‘채집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샤다스 놈 때문에 연습한 수영 놀이가 도움이 되는 날이 올 줄이야.’
르쉬랑 잡담을 하며 아름다운 길을 걸어가는 우진.
풍경이 특이할 뿐 아니라 비현실적인 측면이 있었다.
대지에 커다란 조개들이 있고 하늘도 파스텔 톤이었다.
“와아아아! 너무 예쁩니다!”
“여긴 바다가 주제인 층이거든.”
마치 이국적인 나라의 독특한 유원지에 온 것 같았다.
특히 바다를 제외하면 마물이 없는 곳이라 마음이 더욱 편했다.
그때 무언가 불온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주 멀리서부터 빠르게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 층의 특성상, 놈들은 반드시 사람이다.
‘꽤 많은 숫자다. 뭐하는 놈들이지?’
미세한 살기.
치밀하게 감추고 있지만 자신의 감각을 피해 갈 순 없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수가 오건 간에 자신은 우진이다.
마침내 놈들이 지근거리로 접근했다.
— 척 처처척....
근처에 자리를 잡고 은신한 놈들.
대규모 포위진과 같았다.
‘이 지긋지긋한 초보자 사냥꾼놈들....’
아마도 신입을 노리기 위해 나타난 사냥꾼들이리라.
한 가지 특별한 점은 놈들이 모두 3층에 걸맞는 수준의 강자였다는 사실이다.
즉, 모두가 파티의 주전 역할을 하기 충분한 놈들이었다.
‘이 정도 수준의 병력이 이렇게 대규모로 다닌다고?’
아무래도 정확히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우진이 목청을 키워 외쳤다.
“나와라! 얼굴이나 보고 얘기하자.”
그러자 순간 오싹할 정도의 적막이 찾아왔다.
갑자기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없는 것처럼 조용해지니 어색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렇게 잠시 고요가 흘렀을 때.
— 펑!
허공에서 연기와 함께 한 명의 사내가 등장했다.
이 탑에선 스킬을 쓸 수 없으니 저건 아이템이다.
마력의 움직임으로 보아 평범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건 아니었다.
‘층계 특수 아이템인가?’
특이한 점을 눈치챈 우진.
이번엔 뭔가 다르다.
평범한 사냥꾼들이 아니었다.
그때 나타난 사내가 고개를 숙였다.
“모셔오시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뜬금 없는 얘기에 되묻는 우진.
“모셔와? 누가?”
“이 층의 지배자, 오직 하나뿐인 진리, 아슬락님께서 얼굴을 보고 싶어하십니다.”
제법 정중한 남자의 목소리.
하지만 몇 가지가 맘에 걸린다.
일단 지배자라는 단어가 이상하다.
‘이번 층에 지배자가 있다고?’
이 층에는 보스가 없다.
있다고 해도 인간이 마물에게 복종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살기나 감추고 얘기해라. 그리고 왜 한 놈만 나오는 건데? 나머지는 낯을 많이 가리는 모양이군.”
남자는 분명 혼자뿐인 것처럼 연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진에겐 별 시답잖은 연극 놀이로 보일 뿐이었다.
다 느껴지니까.
남자가 흠칫하고 놀랐다.
스탯이 반감 되면 감각조차도 둔해진다.
그런데 치밀하게 숨긴 미세한 살심(殺心)을 어찌 파악했을까?
게다가 자신들이 여러 명이라는 건 또 어찌 알았을까?
그때 우진이 스산하게 말했다.
“총 270명.”
공간이 얼어붙는 듯한 살기가 일대를 덮쳤다.
“그냥 가면 봐 준다.”
우진이 목소리에 마력을 담아 최후 통첩을 날렸다.
“덤비면 모두 죽는다. 선택해라.”
대규모 척살조의 리더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상대는 모든 걸 눈치채고 있다.
“어쩔 수 없군. 쳐라!”
최악의 선택을 내린 리더.
“흐으으읍!”
“흐아아앗!”
사방에서 덤벼드는 놈들.
마치 인간의 폭우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힘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270 대 1은 반응하기 어렵다.
100개의 공격을 막아도 170개가 남아있는 것이다.
도저히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는 합공.
하지만 우진은 달랐다.
“느려져라.”
언령을 사용하자 막대한 마력이 방사되었다.
“으어어엇?”
마치 슬로우 모션에 걸린 것처럼 느려지는 놈들.
도합 270의 인원이 뛰어드는 자세 그대로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그것만으로도 장관이었다.
느려터진 놈들 사이를 가볍게 걸어가며 진 흑참도를 꺼낸 우진.
— 파지지직...!
그 기다란 도신에 극뢰가 감기고 놈들의 눈에 공포가 어렸다.
— 스스슷...!
마치 귀신이 움직이듯 일대를 정리한 우진.
정지한 그림 속에서 우진만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모든 놈에게 공평한 죽음의 손길이 닿았을 때였다.
— 후두두둑...!
언령의 힘이 사라지며 모든 시체가 일시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야말로 한 호흡에 모든 적을 섬멸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우진은 다른 것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언령을 이 정도로 쓰는 건 상당히 힘드네.”
아무리 자신의 마력이 강해도 무제한은 아니다.
따라서 가지고 있던 스탯 포인트는 모조리 마력에 밀어 넣었다.
그래서 이제 7,000이 넘은 마나.
이건 인간을 초월한 수치였다.
그런데도 이 정도의 대규모 이적(異跡)을 발현하는 건 상당히 힘든 수준이었다.
‘하긴 신의 힘을 쓰는 건데 이 정도는 되어야지.’
그래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놈들은 대체 뭐하는 것들인데 이렇게 떼로 다니지?’
사막벌을 먹어 마나를 회복한 우진이 놈들의 시체를 조사했다.
특이하게도 동일한 문양이 새겨진 옷을 입고 있었다.
‘유니폼? 3층에 이런 게 있었나?’
아무래도 뭔가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집단이 있는 것 같다.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일부러 살려둔 리더의 멱살을 쥐고 들어올린 우진.
상대를 고문하듯이 정보를 캐냈다.
“아는 것을 모두 말해라.”
스킬이나 직접적인 폭력은 필요 없었다.
우진의 이글거리는 눈빛만으로도 놈은 모든 것을 술술 불었으니까.
곁에 약 270구의 시체가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공포 스킬’이 되는 것이다.
“고맙다.”
필요한 걸 모두 알아낸 우진이 놈에게 작별을 고했다.
“으, 으아아아!”
멱살을 통해 전달된 극뢰가 남자의 전신을 훑었다.
놈이 부르르 떨더니 축 늘어졌다.
우진이 놈의 말을 떠올리며 저 먼 곳을 바라보았다.
‘한 층을 자신의 힘으로 통제하는 지배자라고?’
아슬락이란 이름의 남자.
3층의 지배자는 진주를 상납 받고 있다고 한다.
통과를 위해서 모으는 게 아니라 이걸로 이번 층의 특수한 상점을 독점하며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다.
‘이거 완전 또라이 아냐?’
이번 층에선 원래 진주 10개가 있으면 통과다.
하지만 실제론 놈에게 15개를 바쳐야 갈 수 있다.
그나마도 자기 기분에 따라 사람을 죽인단다.
게다가 힘이 약한 자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진주를 대량으로 모으고 있다고 하는데....
‘이만저만 악질이 아니군.’
일단 과제 수행 장소에 가보기로 했다.
모든 해변에서 작업이 가능하지만 진주와의 거리가 가장 짧아 사람이 몰리던 바닷가가 있었다.
해변에 도착하니 과연 처참한 광경이 보였다.
마치 사람들이 공장처럼 분업을 해서 일을 하고 있었다.
정보를 토설한 놈의 말대로였다.
‘어이가 없군.’
아름다운 주변 경관과 맑은 바다.
그것에 대비되는 노예 노동의 현장은 처참했다.
게다가 관리자처럼 보이는 놈들이 감시까지 하고 있었다.
일단 관리자 놈들을 죄다 기절시킨 뒤 바닷가로 접근했다.
“어...!”
“무, 무슨 일이야...!”
놀라는 노동자들.
“안심하십시오. 저는 여러분을 도와드리러 온 것입니다.”
우진이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일단 쉬지도 못하고 일하던 사람들의 노동을 중지시킨 뒤 마물을 유인해서 극뢰로 다 잡아주었다.
— 파지지직!
“으엇...! 철갑 거북이들을 일격에....”
바다에 살고 있는 저 거북이들은 방어력도 강하고 공격력이 높은 수(水) 계열 스킬을 사용한다.
하지만 극뢰를 맞자 마치 쥐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픽픽 쓰러진다.
[’해수포(海水砲)’를 계승했습니다.]
우진이 거북이 시체들을 모조리 빨아들인 후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어인의 숨결을 활용해 바다를 유영하며 진주를 엄청나게 모아들였다.
— 파파파팟!
원래 맨몸으로도 자주 했던 일인데 종족 능력까지 발동하니 길에서 돌을 줍듯이 간단했다.
“우어어엇....”
“단숨에 진주를 저렇게 많이....”
바깥에 나온 우진이 일단 르쉬 몫까지 20개를 챙기고 나머지는 노동자들에게 건넸다.
“이걸 분배해서 층을 통과하십시오. 저도 이제 층을 넘어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만류했다.
그들이 심각한 공포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
“그, 그걸론 부족합니다.”
“부족해요?”
그러자 다급히 고개를 끄덕이는 노동자들.
“토, 통과 시도라도 해보시려면 최소한 30개는 가지고 가셔야 할 겁니다....”
“괜찮습니다. 둘이 합쳐 20개면 거스름돈까지 받을 수 있어요.”
“헉....”
바닷가를 등진 우진이 굳은 얼굴로 저 먼 곳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풍경 저 멀리 ‘진주의 제단’이 보였다.
돔 형태의 크리스탈 건물.
‘저길 거처로 쓴다는 건 놈이 정말 이 층에서 왕이나 다름 없다는 뜻이지.’
진주를 바치러 제단을 사용하려면 놈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
게다가 다음 층으로 가는 거대한 계단까지 점거하고 있는 꼴이었다.
‘아무래도 넌 죽어야겠다.’
노동자들이 느끼는 저런 공포는 보통 고생을 해야 나오는 게 아니다.
정말 쥐어짜는 것도 모자라 죽음까지 고려할 정도로 굴렸으리라.
우진이 르쉬에게 신호를 보냈다.
지형을 날듯이 달려 크리스탈 돔에 도착한 일행.
당연히 보초와 경계 병력이 있었으나 우진의 상대가 되기엔 한참 멀었다.
— 뻑! 뻐어억!
“으아아아!”
그렇게 마침내 중앙 강당까지 일사천리로 진입한 두 존재.
거기 놈이 있었다.
3층의 지배자 아슬락.
우진에게 척살조를 보내놓고도 심심했는지 누군가를 괴롭히고 있는 놈.
마치 샌드백처럼 사람을 때리며 몸을 풀고 있었다.
“이거는 진짜 뭐하는 새끼야?”
분노한 우진이 달려가 드롭킥으로 날려버렸다.
“커어어억!”
날아간 아슬락이 몇 바퀴를 구르다가 겨우 일어났다.
그사이 우진이 주변의 다른 놈들에게 촉수를 뿜어 목을 꺾어 기절시켰다.
“내가 탑에 일찍 오길 잘 했네. 이런 놈이 있었을 줄이야.”
입가를 슥 훔친 아슬락이 침을 뱉었다.
“일찍 와? 우리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군.”
우진을 보며 붉은 눈을 치켜뜨는 놈.
누군지도 묻지 않는 걸 보니 상황 파악은 끝난 모양이다.
게다가 바로 전투를 준비하고 있다.
‘확실히 보통은 아니네.’
그때 놈이 자신의 무기로 기습을 가했다.
그건 활이었다.
— 콰앙!
마치 폭발음 같은 것을 내며 날아드는 거대한 철시(鐵矢).
우진이 촉수를 뿜어 막아냈다.
그러나 자신에게도 조금의 충격이 전해졌다.
‘나를 밀리게 할 정도라고?’
역시 강하다.
보통 실력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게 이상했다.
능력이 반감되는 이 탑에서 내기엔 너무 큰 힘이었다.
‘스킬이 스탯에 보정을 주는 타입이군. 패시브도 막히는 곳이니 아마도 성장 과정 자체에 관여했을 확률이 크다.’
가령 스탯 10을 올리면 15가 적용되는 식의 ‘특수 성장계’.
그게 사실이라면 엄청난 스킬이다.
똑같이 성장해도 종국엔 남들을 압도할 수 있게 되니까.
일단 우진이 떠봤다.
“너 스킬이 특이하구나? 스탯 자체에 관여하다니.”
아슬락이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그, 그걸 어떻게....”
자신의 능력은 비밀에 가까웠다.
혹시라도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기에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데 그걸 한 번에 알아챌 줄이야.
놈이 뿌드득 이를 갈았다.
“널 죽일 이유가 한 가지 더 늘었군.”
그때 우진이 무형활을 캐논폼으로 바꾼 뒤 상대를 겨눴다.
“나도 마찬가지야. 일단 누가 더 강한 궁수인지나 겨뤄보자.”
“무, 무슨...!”
아슬락이 자신의 시위를 당기는 순간, 무형활에 무서운 기운이 모여들었다.
“막아봐.”
다음 순간 아슬락을 향한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한 형태의 초월적인 화살.
캐논폼 최대 출력이 만들어낸 1식 극(極).
7,000의 마나가 담긴 신살포(神殺砲)였다.
<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3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