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28 >
갑자기 나타난 사내의 말에 주점이 술렁였다.
“안개가 걷힌다고?”
“그래! 안개가 걷히고 있다고! 이번 주엔 좀 빨리 찾아온 모양이야.”
“그럼 놓칠 수 없지!”
몇 명은 서둘러 짐을 챙겨 주점을 빠져나갔다.
“놓치면 안 된다! 샛길 초반부를 빠져나가려면 지금이 최고의 타이밍이야!”
그러나 몇몇은 그저 의자에 푹 기대서 술을 마실 뿐이었다.
“안개가 있으나 없으나, 그건 어차피 초반부 한정이고. 우리는 계획대로 다음 달에 움직인다.”
“그래도 장관이잖아. 구경이나 하러 갈까?”
“그걸 봐서 뭐해? 분통만 터지지. 귀찮다 귀찮아.”
“왜? 그냥 구경하기만 해도 재밌잖냐.”
“젠장... 넘어가지도 못하는 거, 봐봐야 성질만 난다.”
우진이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자신들은 운이 아주 좋은 것 같았다.
“우리도 슬슬 저녁 일과를 하러 가자꾸나.”
“옛!”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잽싸게 따라오는 르쉬.
그가 도시를 벗어나 1층의 끝으로 이동했다.
거기 있는 것은 거대한 절벽.
그곳을 감싸고 있던 자욱한 안개가 좌우로 갈라지고 있었다.
“오오오오!”
“언제 봐도 신기한 현상이군.”
르쉬도 다가가서 입을 쫙 벌렸다.
“우와아아!”
안개가 열리고 드러난 것은 수km나 되는 건너편.
그곳에 있는 거대한 계단의 입구였다.
역시 하나의 산(山)과 같은 크기의 문.
이 먼 거리에서 봐도 어마어마한 크기가 느껴진다.
저것이 바로 2층으로 가는 통로였다.
‘오늘도 모험가들을 열심히 유혹하고 있군.’
지금 이 현상은 갈 길을 잃은 도전자들을 인도해주는 이정표인 셈이다.
뻔히 보이는 목적지.
하지만 어마어마한 규모의 절벽으로 막혀 있다.
새까만 절벽 아래는 지옥의 입구처럼 입을 쩍 벌린 무저갱 뿐이다.
저기 도착하고 싶다면 머나먼 샛길을 통해 우회해야 한다.
‘말이 좋아 샛길이지 장거리 모험과도 같다.’
가는 길도 멀고 죽여야 하는 마물도 많다.
힘을 합치지 않으면 상대할 수 없는 강적들도 널려 있다.
그러나 유일한 길이기에 가야만 한다.
— 휘오오오!
그때 강풍이 불어와 사람들을 덮쳤다.
불어오는 바람에 기겁을 하고 물러나는 초행자들.
그러면서도 하나의 희망을 품었다.
<그냥 절벽을 건널 순 없을까?>
여기까지 왔으면 다들 비행 수단 하나둘 정도는 가지고 있는 법.
하지만 다음 바람이 불어오는 순간 모두가 직감했다.
— 후우우우웅!
귀신의 울음소리 같은 것을 내며 불어오는 무서운 강풍.
이건 평범한 바람이 아니다.
절대 통과하지 못하는 돌풍 지대.
강력한 마력풍(風)이 불어와 도전자를 밀어낸다.
“에이, 역시 힘들겠군. 샛길로 가자고.”
주변 사람들을 따라 샛길로 가는 초행자들.
그래도 이 시기엔 안개가 없어서 샛길 초반부를 뚫기가 수월하다.
몇몇 파티가 각자 발광 마법 등으로 어두운 저녁을 밝히며 이동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다가와서 우진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신입이지?”
아무래도 절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초행자처럼 보인 모양이다.
“우리 파티에 들어와서 막내 노릇을 하면 같이 데려가 줄게.”
제법 선량한 목소리였다.
또한 진짜 초보자라면 반가운 제안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에겐 다른 계획이 있어 정중하게 거절했다.
“말은 고맙지만 괜찮소. 일 보시오.”
하지만 계속 치근덕거리는 녀석.
“그러지 말고...... 어라? 이 빨간 머리는 네 동료냐? 아가씨라도 같이 갈래? 우리가 잘 대해주지. 흐흐흐....”
르쉬를 발견하고 음흉하게 웃는 남자.
벌떡 일어선 우진이 저벅저벅 놈에게 다가갔다.
별 말을 하기도 귀찮아서 주먹으로 날려버렸다.
“멀리 날아가라.”
— 퍼어엉!
“어...!”
순간적으로 마력풍의 흐름을 따라 저 멀리 날아가는 덩치.
풍선처럼 도시를 지나 거의 1층의 입구까지 날아가버렸다.
물론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언령으로 세상의 법칙에 관여하는 우진만이 할 수 있는 기예였다.
“이놈이...!”
“감히 우리의 리더를...!”
떨거지들도 모조리 날려버린 우진.
그가 다시 절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여기 바람에는 마력이 깃들어 있다. 이걸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방금 그 일에서 무언가 힌트를 얻었다.
‘언령으로 마력풍을 이용한다면 어떨까?’
조용히 건너편을 보는 우진.
그건 누가 봐도 절벽의 거리를 가늠하는 모습이었다.
대략 10km의 거리에 마력풍까지 불어오는 이 절벽은 절대 건널 수 없다.
건너라고 존재하는 지형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의 얼굴에 수심이 어렸다.
<위험할 텐데....>
<힘이 강한 거랑 절벽을 건너는 거랑은 완전히 다른 거라고!>
<진짜 할 셈인가?>
<미친 짓이야!>
원래라면 실제로 참견을 했겠지만 생각만으로 그친 주변인들.
방금 하나의 파티를 모조리 날려버린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우진도 마찬가지다.
전생에는 이런 방법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굳이 먼 길을 택할 이유가 없었다.
묘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력풍.
원래 자신을 방해하기 위해 있는 녀석이 자신을 돕는다면, 장애물은 곧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아쉽게도 나 또한 날개는 쓸 수 없지만....’
몇 가지 예외가 있지만 비행 능력만큼은 완벽하게 봉인된 상태.
그래도 탑승물을 이용하는 건 가능하다.
‘물론 그것조차도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말이야.’
마침내 결정을 내린 우진.
‘하지만 방법은 있는 법이지.’
그가 멀찍이 뒤로 물러나 자세를 잡았다.
— 쿠구궁...!
우진의 몸에서 피어나는 엄청난 기운.
“어...?”
“어어어어!”
뭔가를 예감한 사람들이 우르르 물러났다.
“서, 설마?”
“저 사람 진짜로 절벽을 건너려고 한다!”
그때 우진의 폭발적인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르쉬! 날 믿고 뛰어라!”
“예!”
모든 사람들이 눈을 키운 순간.
두 존재가 절벽을 향해 몸을 날렸다.
새까만 허공으로 떠오른 우진과 르쉬.
얼핏 무모한 듯 보이는 광경 속에서 모두가 숨을 죽였다.
그때 우진이 체이서를 집어 던지듯이 소환했다.
“날아라 체이서!”
이건 사실 레이카가 말해준 방법이다.
그 괴물은 탑승물을 징검다리처럼 이용해 수km의 절벽을 뛰어 넘었다고 했다.
‘반감된 스탯으로 그런 기행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하나. 놈의 집중력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높기 때문이다.’
자신도 비슷한 일을 할 생각이었다.
르쉬와 함께 합을 맞춰야 하니 난이도는 더욱 올라간다.
하지만 자신에겐 최강의 탑승물과 언령이라는 기적의 힘이 있다!
“르쉬!”
일단은 각자의 힘으로 공간을 가로지르는 우진과 르쉬.
우진이 수하의 팔을 잡아 앞으로 끌며 추진력을 더해 주었다.
체이서는 어느새 전방 멀리까지 날아간 상태였다.
자신들을 태우고 날면 체이서의 점프력이 약해진다.
그러니 일단 저 녀석을 최대한 멀리 보내야했다.
“불어라.”
그때 우진이 언령을 이용하여 마력풍의 방향을 바꿨다.
엄청난 마력이 빠져나가며 대기의 흐름이 변화했다.
— 후우우우웅!
놀랍게도 뒤에서 불어오는 강풍!
비거리가 아슬아슬했지만 우진이 르쉬를 감싸 안고 안전하게 체이서에 착지했다.
그리고 발동된 부스터.
— 콰과과과!
두 존재를 태운 체이서가 엄청난 출력으로 뻗어나갔다.
그러나 아직은 힘이 부족하다.
그때 정신을 집중한 우진이 하늘에 무언가를 소환했다.
“와라!”
— 펑! 퍼퍼펑!
몇 번의 워프를 거쳐 수십km를 뚫고 나타난 조력자.
그것은 기갑마룡이었다.
체이서를 조작해 수직 상승한 그 가슴에 합체한 우진이 안도했다.
‘됐다! 이러면 힘이 충분하지.’
어느새 다시 역방향으로 불고 있는 마력풍.
전진을 방해하는 바람이 절벽을 덮고 있었다.
언령이 아무리 신적인 힘이라 해도 우진의 마력이 무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정적으로 앞을 향하는 기갑마룡.
‘성공이다!’
처음부터 기갑마룡을 타고 출발했으면 힘이 부족했을 거다.
하지만 중간에 소환해서 마력풍의 저항을 거의 다 흘려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긴 이르지!’
몸을 낮춘 채 무언가에 손을 댄 우진.
새까만 마옥(魔玉)에 어둠을 불어 넣었다.
— 쿠구구구!
어둠의 힘이 거대한 탑승물에 흘러들어갔다.
더욱 힘차게 발진하는 기갑마룡.
마력풍의 거친 저항을 뚫어내고 마침내 건너편에 도착했다.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이 보이던 10km의 도약에 성공한 것이다.
내려선 르쉬와 우진이 손뼉을 마주쳤다.
“성공이다!”
“이야아아!”
기갑마룡과 체이서를 둘 다 인벤에 수납한 우진이 뒤를 돌아보았다.
까마득한 거리에 사람들이 보였다.
다들 놀라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안개가 걷힐 때보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신비한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들 입장에선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바, 방금 봤어...?”
“저게 가능한 일이야...?”
“절벽을 그냥 뛰어 넘었다!”
엄청난 거리.
가물가물하여 잘 보이지도 않는 형체 2개가 분명 거대한 문 앞에 있었다.
그때 1cm도 안 되는 한 형체가 손을 들어 이쪽을 향해 흔들었다.
“먼저 갑니다.”
그건 바로 우진이었다.
그리고 2명의 형체가 모두 사라졌다.
*
— 푸슝!
[2층으로 진입합니다.]
반가운 알림과 함께 도착한 곳은 새로운 층계.
처음 반겨준 것은 붉은 하늘이었다.
불길하게 어른거리는 적색의 풍경.
이곳엔 아침과 낮이 없다.
오직 저녁과 밤 뿐.
그 어둑한 곳에는 다시 넓다란 평야가 펼쳐져 있었다.
“여기가 2층이다, 르쉬야.”
“예.”
“이곳에선 눈에 보이는 것을 모두 의심해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평야를 얼마간 걸어간 일행.
그때 반대편에서 사람들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헛....”
그들이 주저하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경계하던 선두가 멈춰서 물었다.
“사람이오?”
의미심장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 구역에서는 자연스런 질문이기도 했다.
대답이 없자 남자가 다시 물었다.
“사람 맞소? 맞다면 증거를 보이시오.”
솔직히 말하면 자신들은 사람은 아니다.
초월종 언데드와 흡혈귀니까.
하지만 우진은 저들의 질문이 무슨 의도인지 알기에 인벤토리에서 물건을 꺼내 보였다.
즉 허공에서 잡동사니 몇 개를 꺼낸 것이다.
저들이 의심하는 ‘그 존재’는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오오...! 사람이 맞군.”
“그쪽도 보여주시오.”
그러자 역시 인벤토리에서 물건을 꺼내는 사내.
이곳의 암묵적인 규칙이다.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으로 서로의 정체를 밝히는 것.
그제야 안심하며 지나가는 사람들.
“고생들 하시오.”
“그쪽도 고생들 하시오.”
무슨 일인지 의아한 르쉬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이곳엔 마물인지 사람인지 알 수 없는 모험가들이 다수 섞여 있다. 일종의 인간 미믹 같은 놈들이지.”
“이... 인간 미믹!”
놈들은 외관으로 알아차리는 방법은 없다.
오직 하나.
감(感).
이 녀석들은 마물이기 때문에 틈이 보이면 사람을 공격해서 그 시체를 잡아 먹는다.
지독하게 교활한 괴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일종의 적대적인 NPC에 가까운 녀석들이지만... 그만큼 말도 안 되는 보정을 받아서 반사속도나 파괴력이 초월적이다.’
이 탑은 능력이 반감되는 장소이기에 놈들은 더욱 두려운 존재가 된다.
전생에는 이곳에서 하루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보이는 모든 것을 의심하느라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상황 자체를 이해하는 것도 힘들다.
우진이야 이 구역의 위험 요소를 알고 있지만 처음 온 자들은 아예 알 방법이 없다.
누군가 알려주거나 우연히 전투를 목격하게 되어도 헷갈리게 된다.
얼핏 보면 모험가와 모험가들이 싸우고 있을 뿐이니까.
‘이번엔 이걸 어떻게 뚫을 것이냐....’
우진이 고민하며 걸어갈 때였다.
저 멀리 하나의 소형 파티가 다가왔다.
6인 규모의 파티는 겉보기엔 평범했다.
하지만 우진의 눈에는 뭔가가 포착되었다.
‘뭐야? 그냥 보이는데...?’
명확히 구분되는 놈들 내부의 어둠.
인간과는 다른 일렁임이 느껴졌다.
‘이게 왜 보이지?’
이런 조화를 부릴 능력이라면 하나 뿐이다.
‘전지의 감각. 이거 정말 엄청난 능력이군.’
그때 놈들이 다가와서 친근하게 인사를 건넨다.
“저쪽에서 ‘놈들’을 몇 마리 잡고 오는 중입니다. 당분간은 안전할 거요.”
일단 놈들의 말을 받아주었다.
“고생들 하셨군요.”
“말도 마시오. 얼마나 전투가 격렬했는지. 하하하....”
우진이 마주 웃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런데 모습이 아주 깨끗하시네요. 피냄새도 안 나고.”
순간 당황하는 놈들.
우진이 쐐기를 박았다.
“마치... 방금 변신한 것처럼.”
순간 놈들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이내 웃기 시작했다.
“눈치가 빠르네?”
<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28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