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27 >
“우와아아...!”
협력의 땅에 우뚝 선 것은 거대한 탑이었다.
멀리서 보아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대한 전경.
압도적인 크기의 저것이 3구역의 메인 무대이다.
저건 단순한 탑이 아니다.
한 층 한 층이 수해만큼의 크기와 끝이 없게 느껴지는 높이를 지닌 불가사의한 거탑(巨塔).
마법이 아니면 성립할 수 없는, 지구에는 존재조차 할 수 없는 하나의 신비.
‘여기는 내 힘만으로 통과가 불가능하지.’
체이서를 얻고 기뻐했던 이유 중 하나는 이곳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혼자서는 깰 수 없는 과제를 완수하여 층을 올라가야 한다.
그렇기에 ‘협력’이란 이름이 붙은 것.
‘그래도 르쉬와 함께라면 거의 다 통과할 수 있다.’
물론 특정 구간에선 반드시 애쉬라인과 세 얼간이의 도움이 필요하다.
또한 ‘그것’의 도움도 필요하다.
‘그럼 일단 캐스케이드부터 불러볼까!’
진명의 맹세 덕에 모든 선원과 연결된 우진.
지령으로 그들을 불렀다.
<들리는가!>
<오오! 사령관님!>
<지금 이쪽으로 와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캐스케이드 전속 발진!>
연결된 정신을 통해 녀석들의 이동이 느껴졌다.
— 훙! 훙! 훙!
그의 ‘소유물’이기에 깔끔하게 모든 벽을 통과해 초고속으로 날아오는 거선!
잠시 후 공중에서 반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어마어마한 비행선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쿠구구구...!
쩌렁쩌렁한 선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령관 님!”
“오오! 캐스케이드!”
근처의 모험가들도 일제히 고개를 들고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우진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어서 오십시오!”
“잘들 지냈나! 일단 이것 좀 먹으면서 얘기하지.”
선내로 들어간 우진이 슈퍼마켓에서 산 음식을 영체화시켰다.
“이, 이건 도대체 무엇입니까?”
자랑스러운 얼굴로 손을 벌린 우진.
“아아, 이건 김치 만두라고 하는 음식이다. 살살 녹지.”
“김치... 만두...!”
초열로 따끈따끈하게 만든 후 변화시켰기에 그 온기는 유령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마, 맛있다!”
“맛있습니다!”
이거 말고도 신기한 음식이 잔뜩 있었다.
잠시 온갖 것들을 먹고 마시며 재회의 즐거움을 나눈 선장과 선원들.
마침내 선교로 간 우진이 용건을 꺼내놓았다.
“얼마 후에 저 탑 내부로 너희를 소환할 것이다. 그때 날 좀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전방으로 몰려든 선원들이 모두 감탄했다.
“으앗... 정말 어마어마한 크기군요....”
“그래, 저건 하나의 세계와 맞먹는 규모의 탑이니까.”
캐스케이드가 평범한 하늘처럼 비행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
모든 유령들이 믿음직스럽게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저희는 그러기 위해 이 땅에 온 것이니까요.”
“고마운 얘기야.”
우진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후 물었다.
“다른 문제는 없나? 혹시 심심하다거나....”
선장이 씩 웃으며 선원들에게 지시했다.
“얘들아. 보여드려라!”
유령들이 새로 만든 노래와 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 ♬♪
“와아아아!”
르쉬는 뮤지컬을 보듯이 즐거워하며 박수를 쳤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희의 시간 감각은 사령관님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니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정말 고마운 얘기야. 그럼 곧 보자고!”
“예! 사령관님!”
도열한 유령들의 칼 같은 경례를 뒤로하고 우진과 르쉬가 지상으로 뛰어내렸다.
“3구역. 광속 돌파 준비 됐나!”
“예!”
우진과 르쉬가 탑의 입구로 접근했다.
단순히 ‘문’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거대한 규모였다.
그 문 하나가 산(山)과 같은 크기였다.
‘확실히 마법이 아니면 성립하지 않는 불가사의한 공간이다.’
주변에도 몇 팀이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순서를 지키거나 할 것도 없이 입구의 너비만으로도 수km에 이르니 그냥 진입하면 된다.
“르쉬, 내가 일전에 얘기했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준비해라.”
“예!”
수하가 정신을 집중하는 모습을 본 우진이 자신도 기세를 가다듬었다.
— 후우웅!
무형의 벽을 통과하는 순간 강력한 속박감이 찾아왔다.
‘이 기분 오랜만이군.’
이 탑 전체는 일종의 봉인지(封印地).
기본적으로 모든 능력이 제한된다.
스킬은 완전히 봉인되며 스탯 또한 반감된다.
처음엔 이 상태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애를 먹게 된다.
하여 르쉬에겐 명상으로 연습해두라 지시했으며, 자신도 틈이 날 때마다 모든 상황을 가정하여 수련을 해두었다.
‘본체의 능력만으로 싸우는 연습을 한 것도 여길 위해서였지.’
그 노력은 충분한 보답으로 돌아왔다.
조금 어색한 것을 빼면 가뿐히 걸어다닐 수 있었다.
그때 옆에서 누가 쓰러졌다.
자신들처럼 새로 진입한 자들 중 한 명이었다.
“어어어... 몸이 왜 이래...!”
— 쿵!
그의 동료들도 비틀거리며 맥을 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곳에 온 자들은 다들 저런 과정을 겪기 마련이었다.
‘갑자기 전신의 힘이 반으로 줄어들면 누구나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지.’
평소와 감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계단에서 마지막 단인줄 알고 헛디뎠을 때의 푹 꺼지는 느낌.
그런 느낌을 한동안 느껴야만 한다.
‘고생들 하시오.’
그래도 다들 숙련된 모험가이니 각자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벌써 적응하여 비틀비틀 걸어다니는 사람도 보였다.
그리고 몇 걸음을 더 걸어갔을 때였다.
‘음?’
우진이 무언가를 깨닫고 멈춰섰다.
‘나한테는 봉인이 반만 먹힌 건가?’
모든 능력이 제한 되어야 하는 이 장소.
자신 역시 스킬이 막히고 스탯도 줄어들었다.
그나마도 너무 수치가 높아서 막대한 양이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욱 신기한 사실.
어둠 능력과 언데드 능력은 그대로다.
— 훙....
손에 맺힌 것은 분명 암흑의 투기.
어둠은 물론이고, 언데드 폼과 그와 관련된 전지의 감각, 무형지기 등의 능력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게다가 언령까지!
‘내가 별종은 별종인가보군.’
아무래도 근원의 핵이 정말 대단한 물건인 것 같았다.
또한 언데드 폼이라는 것 자체가 월드도 예상하지 못한 예외적인 능력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설마?’
조심스레 손가락에 기운을 모은 우진.
— 파지지직....
신수의 힘인 극뢰와 초열도 발동이 가능하다.
언령은 말할 것도 없었다.
기분 좋은 일이었기에 흔쾌히 받아들였다.
‘특혜를 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이게 아니어도 우진은 체이서 등의 신외지물(身外之物)이 많아서 쉽게 진행 가능하다.
대부분은 르쉬와 둘이서도 클리어 가능한 수준이리라.
얼마를 걸어가자 평원이 나타났다.
“헉... 건물 안에 산과 들판이 있습니다!”
“흐흐... 하늘을 보면 더욱 놀랄 것이다.”
고개를 든 르쉬가 기우뚱 뒤로 넘어갔다.
“끄... 끝이 없다...!”
건물 안인데도 하늘이 드높게 펼쳐져 있었다.
우진이 르쉬를 가볍게 받아 일으켜 주었다.
“여길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머리만 복잡해진다. 그냥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면 될 뿐이니 날 믿고 따라와라.”
“헛... 예!”
계속 걸어가는 일행.
1층부터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원체 넓고 내부의 지형도 단순한 원이 아니라 현실처럼 산과 들이 있다.
층마다 하나의 세계가 있는 곳.
원래라면 이 자체가 탐험의 일부가 되었을 것이다.
더 놀랄 일은 중앙부에 도시까지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도시에 들어서자 대단한 풍경이 펼쳐졌다.
도저히 건물의 내부라고 생각할 수 없는 하나의 세상이었다.
르쉬가 입을 쩍 벌렸다.
“우와아아! 대도시보다 커다란 곳입니다!”
잘 정리된 도로와 건물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
아이스크림 판매상도 있었다.
그걸 먹으며 골목길을 따라 걸었다.
기분이 좋은지 먼저 쪼르르 달려가는 르쉬.
“딸기맛 2개!”
양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가는 그 모습은 평범한 소녀처럼 보였다.
그때 누군가가 르쉬 앞을 막아섰다.
“아가씨는 탑에 초행길인가보군?”
“...?”
그때 코너에서 슥 나타난 우진.
“넌 뭐냐?”
흠칫하는 사내.
그러다 다시 음흉한 미소를 보였다.
“일행인가? 너도 이곳은 처음인 모양이군.”
“내가?”
“얼굴이 굉장히 진지해. 긴장을 잔뜩했어.”
도대체 무슨 오해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진이 근엄한 표정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난 항상 진지하다.”
그러자 슥 물러난 놈.
“흐흐흐.... 자신만만하군. 스스로의 힘을 과신하는 타입이야. 하지만 이곳의 싸움법은 좀 다르다.”
능력 제한이 있는 장소.
전투의 양상도 달라지게 된다.
주로 아이템에 많이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 푸른 구슬을 꺼낸 남자.
“얼어붙어라. 빙(氷)!”
기습적인 공격을 해온다.
뭘 하려는 건진 뻔하다.
여기서도 비겁한 악인들은 똑같은 짓을 하는 것이다.
‘지긋지긋한 초보자 사냥꾼들....’
우진이 손을 들고 마기의 지배로 막았다.
“거절할 거(拒)!”
구슬이 뿜어낸 냉기가 막히더니 사라졌다.
놀라서 눈을 키우는 남자.
“그, 그러고보니 너희들은 초행자인데도 몸을 잘 가누는구나...!”
“그걸 이제 알다니... 넌 정신을 잘 못 가누는구나.”
우진이 손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그냥 가면 봐준다. 그냥 가라.”
정말 좋은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다시 손을 들어올린 남자.
여전히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아무래도 저 구슬이 상당히 좋은 아이템인 것 같았다.
“얼어붙어라 빙!”
감히 힘싸움을 거는 남자.
우진의 얼굴에 무서운 미소가 어렸다.
‘넌 좀 제대로 패줘야겠다.’
그가 냉기를 밀고 들어가며 놈에게 접근했다.
— 파지지직....
그리고 가볍게 정권을 내질렀다.
“매우 때릴 타(打)!”
“크어어억!”
“심하게 갈길 격(擊)!”
바닥에 쓰러진 놈에게 분노의 3연 펀치가 들어갔다.
“죽을 사! 죽을 사! 죽을 사!”
그러자 희미하게 들려오는 사내의 애원.
“사, 살려주시오....”
하지만 우진은 이미 기회를 줬다.
“거절할 거!”
마침내 불청객을 처리한 그가 벌떡 일어나 당당하게 섰다.
“영면할 영!”
쓰러진 시체 위에서 포효하는 우진.
“승리할 우진!”
제법 큰 소란이 일어난 골목.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흔히 있는 일이라는 듯 잠깐 시선을 주고 다시 걸어갔다.
어쩌면 갑자기 어둠으로 변한 시체처럼 되고 싶지 않은 걸 수도 있었다.
“이 정도면 다른 초보자 사냥꾼은 못 달라붙겠지.”
우진이 슬쩍 기감을 퍼트렸다.
아니나 다를까 골목과 창문 뒤, 지붕 등등에서 유심히 자신들을 관찰하던 시선이 모두 사라졌다.
그가 구슬을 주워들었다.
[혹한의 구슬] [유니크]
유니크 아이템이지만 그냥 장난감으로 느껴지는 수준.
이 정도는 상급 빙결진을 살짝만 발휘해도 압도할 수 있다.
그냥 인벤토리에 쑤셔박았다.
‘이런 걸 믿고 저런 행패를 부리다니. 3구역 수준이 이 정도였나.’
자신은 아무래도 너무 강해진 것 같다.
“신고식도 치뤘는데 맥주나 한잔 할까 르쉬야?”
“오! 좋습니다!”
기억나는 주점에 들어서자 익숙한 풍경이 반겨주었다.
“여기 맥주 맛이 정말 그리웠지.”
입에 거품을 묻힌 르쉬도 동의했다.
“맛있습니다!”
안주로는 닭껍질을 튀긴 것을 먹었다.
이 소소한 음식 하나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참 좋은 곳이야. 닭도 기를 수 있고. 바깥이랑 다를 게 거의 없으니까.’
하지만 이걸 경계해야 한다.
여긴 주변엔 고정적으로 마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놈들을 잡으면 화폐인 점수를 얻을 수 있다.
‘그걸로 도시에서 NPC 상점을 이용하면 오히려 바깥보다 편한 부분도 있지.’
다른 모험가들과 크게 경쟁하지 않아도 편하게 살 수 있다.
그렇기에 눌러 사는 자들도 많다.
언젠간 층을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여기서 세월을 보내는 것이다.
‘바깥 고리에서 살아도 되지만 굳이 여기서 지내는 이유는 완전한 포기자가 되기 싫어서지.’
이게 탑의 마력이기도 하다.
도전보다는 안주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
중심부의 시험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때 큰 테이블에서 호령 소리가 들려왔다.
“자, 맥주 한 잔씩 했으면 저녁 훈련이다! 다들 일어나!”
그러자 아우성을 치는 테이블의 멤버들.
“아... 오늘 쉬는 날 아니었나?”
“오늘만 좀 쉬어요.”
“영원히 쉬고 싶어? 너희 고작 탑 1층에서 살래?”
“으으! 알겠습니다!”
결국 일어나 수련장으로 가는 파티.
우진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 저것도 일종의 협력이지.’
함께 나아가는 것.
그게 이 탑이 원하는 것이니까.
자신에게도 그런 동료가 있다.
우진이 르쉬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던 순간이었다.
누군가 주점 문을 박차고 들어와 소식을 알렸다.
“안개가 걷힌다! 샛길로 갈 사람은 어서 출발하자고!”
<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27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