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26 >
서로를 노리며 날아드는 거룡과 신수.
“덤벼라!”
<하찮구나.>
붉은 화염과 붉은 어둠이 충돌했다.
— 콰아아앙!
언뜻 보기엔 서로 비등한 싸움이 되는 것 같았다.
레비아탄은 수많은 전투를 거치며 쌓은 경험이 있으며, 주작에게는 타고 태어난 격(格)의 월등함이 있었다.
그때 주작이 기세를 끌어올렸다.
<초열세계(超熱世界)의 진토가 되어라....>
— 콰과과과...!
신수의 반신격.
그것이 허락한 초월적인 위력의 화염이 하늘을 뒤덮었다.
“흐으음!”
서둘러 방어막을 형성한 레비아탄.
하지만 힘의 차이는 현격했다.
— 콰아앙!
뒤로 한참을 밀려난 거체.
“레비아탄!”
그때 머릿속으로 레비아탄의 의지가 전해져왔다.
<흐흐흐! 너무 강하군.>
“괜찮나? 힘들면 교체해도 좋다.”
그때 레비아탄이 고개를 힘차게 흔들며 다시 날개를 폈다.
<이대로면 힘들겠지. 하지만 방법은 있소. 내게 진신의 힘을 허락해주시오.>
그건 우진조차도 놀랄 수밖에 없는 얘기였다.
“진신의 힘...!”
붉은 용이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린 것이다.
‘내가 이 녀석의 투지를 너무 얕보고 있었군.’
그러자 연결된 정신을 통해 답하는 레비아탄.
<그렇소. 이건 내 주인에게 드리는 최후의 부탁. 내 혼백을 해방시켜주시오. 마지막 싸움을 위해서!>
소멸을 각오한 의지.
이 투사의 혼을 지닌 용은 지금 존재를 태워 싸우겠단 각오를 품은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우진이 결정을 내렸다.
“작별이군.”
<음, 그렇겠지.>
“멋진 작별이야.”
<흐흐흐흐... 이해해줘서 고맙소.>
— 콰과광!
“좋다! 가라! 모든 걸 불태워라!”
우진의 몸에서 폭발적인 기운이 솟아났다.
그리고 문양이 사라지며 그 힘이 모조리 레비아탄에게 빨려들었다.
창공에서 붉은 용의 눈이 번쩍였다.
“으음! 이게 혼을 불사르는 느낌이로군!”
엄청난 기세가 그의 몸을 따라 피어 올랐다.
“난 레비아탄이며, 이건 보다 분명한 분노. 나 자신의 운명에 대한 분노다.”
확연히 달라진 기세에 주작의 당황이 느껴졌다.
그때 천지를 울리는 호령이 들려왔다.
“패배가 정해진 결과라면, 나는 그것을 집어 삼키겠다!”
하늘이 붉게 타오르듯 번쩍였다.
그리고 드러난 것은 한층 강렬해진 레비아탄의 기세.
‘저게 녀석의 진짜 육체...!’
진정한 멸세룡의 모습이었다.
지금까지는 우진의 힘을 빌려 현신한 것에 불과했다.
이제는 진신을 태우고 있기에 완전히 재현된 과거의 모든 영광!
— 콰르르릉!
진짜 자신의 몸으로 등장한 붉은 용이 세상에 외쳤다.
“나는 레비아탄! 세상을 먹는 붉은 용이니라. 이제 진정한 승부를 가릴 때가 왔으니.”
포효하는 레비아탄.
“존재를 걸고 덤벼라, 주작이여!”
신수도 지지 않고 날개를 펼쳤다.
<조금 더 강해진 정도로 날 꺾을 수 있으리라 생각치 마라!>
주작이 전방위로 화염을 뿜어냈다.
그걸 모두 뚫고 고속으로 날아가는 붉은 용.
그때 주작의 궁극기가 다시 발동되었다.
<초열세계(超熱世界)에 먹혀 버리거라!>
하늘을 덮은 신의 불세례.
— 콰과과과!
그것에 완전히 휩싸인 레비아탄.
그때였다.
무서운 불꽃의 지옥을 뚫고 악룡이 나타났다.
<흐흐하하하! 난 세계를 먹는 용이니라!>
붉은 용의 전신이 타올랐다.
“진신멸세(眞身滅世)!”
거체가 뿜어내는 기세.
그것은 모든 것을 바쳐 싸우려는 투사의 혼 그 자체였다.
— 꽈르르릉!
경악할 정도로 강한 위력의 붉은 어둠이 하늘을 뒤덮었다.
주작의 당황이 전해져왔다.
<이런... 넌 설마 죽음을 각오한 것이냐...!>
“난 이미 죽었노라.”
초열세계를 압도하는 투혼이 신수를 덮쳤다.
— 콰아아앙!
주작과 붉은 어둠이 서로 충돌했다.
그리고 거대한 폭발과도 같은 것이 일어났다.
<으아아아아!>
“하하하하하!”
그 결과는 동귀어진.
주작의 기운도, 자신의 동료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결국 선천지기를 모두 소모해 승리한 것이다.
“레비아탄......!”
하늘의 불꽃도 어둠도 사라졌을 때.
그의 마지막 의지가 전해져왔다.
<반신격을 상대로 무승부라. 내가 이겼군.>
씩 웃는 듯한 목소리는 진심으로 즐겁게 들렸다.
<하나 애석한 점은... 그대와 이별한단 것 뿐이군. 이런 승부를 벌이게 해주어 진심으로 감사드리오.>
“나야말로 멋진 승부를 볼 수 있어서 고마웠다.”
그의 의식이 점점 멀어졌다.
<내 싸움은 여기서 끝이지만... 그대는 최강의... 세상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존재가... 되시오.>
어느새 완전히 희미해진 목소리.
<이제... 갈 시간이군.>
“잘 가라. 넌 최강의 용이었다.”
<으음!>
사라진 의식.
쓸쓸한 대지에 자신과 르쉬만이 남았다.
마음이 허전했으나 그를 말렸으면 더 큰 후회가 생겼으리라.
자신에게도, 레비아탄에게도.
그때 레비아탄의 잔재가 자신에게 빨려드는 것이 느껴졌다.
— 후우우웅!
몸을 따라 차오르는 거대한 힘.
[멸세룡 ‘레비아탄’의 의지를 계승했습니다.]
놈은 자신을 태워 더욱 강한 힘을 전해주고 간 것이다.
“고맙다. 레비아탄.”
그의 투지 덕분에 자신은 한층 강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
“넌 정말 최강의 용이었다.”
용격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신수를 사냥한 용은 오로지 세상에 레비아탄 뿐일 것이다.
— 후우우웅!
그때 주작의 힘 또한 자신에게 빨려들었다.
그리고 시작된 변화.
[반신(半神)의 격을 흡수해 왕격이 강화됩니다.]
[모든 스탯의 효율이 대폭 상승합니다.]
[보유한 스킬의 위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격이 바뀐다는 것은 정말로 엄청난 일이었다.
혼 자체에 차오르는 엄청난 힘.
뿐만이 아니다.
[신수를 복속시켜 그 힘을 이어받습니다.]
[’주작의 초열(超熱)’을 계승했습니다.]
그의 전신에 강대한 붉은 기운이 어렸다.
마치 빙의한 듯이 찾아온 주작의 힘.
“주작지세(朱雀之勢). 초룡승천(超龍昇天).”
거대한 화염의 뱀이 대지를 뚫고 하늘로 치솟았다.
불기둥의 몇백 배나 되는 위력이었다.
그야말로 신적인 힘의 발현.
‘엄청나군.’
또한 느껴지는 정신의 이질적인 감각.
[중급 언령의 힘이 강화됩니다.]
언령의 사용 가능 범위와 효과가 증가했다.
‘그 반동이라고 해야 할까, 마나를 엄청나게 빨아들인다.’
원래도 극심하던 마나 소모가 더욱 증가했다.
그나마 자신은 5천이 넘는 마나가 받쳐주니 사용 가능한 것이지, 다른 이들은 아예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우진이 씩 웃었다.
“과연 반신의 힘답다.”
그래도 신(神)적인 능력이 한층 발달한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그가 그 힘으로 첫 번째 기적을 만들어냈다.
“최강의 용이 이곳에 잠들다.”
— 쿠구구....
위령비가 솟아올라 대지를 장식했다.
레비아탄의 문양이 새겨진 거대한 비석.
단순히 마력으로 끌어올린 것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와 강도의 기념비였다.
월드에 새긴 자신과 레비아탄의 의지 그 자체.
세계가 끝날 때까지 남아있으리라.
“잘 있어라. 네 투혼은 내가 정점까지 가져가겠다.”
잠시 녀석을 기린 우진이 돌아섰다.
“르쉬, 고생 많았다. 이제 가자꾸나.”
“예!”
돌아갈 때는 역시 불꽃 정령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싸울 기분도 아니었기에 힘을 끌어올렸다.
그의 몸을 중심으로 막대한 양의 마력이 퍼져나갔다.
“멈춰라.”
모두 복종한 가운데 우진과 르쉬가 그 사이를 가로질렀다.
붉은 카펫이 깔린 대지 가운데를 걸어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놈들이 멀어졌을 때였다.
“돌아가라.”
초열의 기운을 피워 올려 이 땅의 주인이 바뀐 것을 보여주자 놈들이 모두 물러났다.
마침내 용암의 강에 도착했을 때였다.
“어어어! 진짜로 벌써 왔다!”
뱃사공 녀석이 꾸벅꾸벅 졸다가 번쩍 눈을 떴다.
“부, 불꽃 정령들을 만나지 않았냐! 걔들은 엄청 사나운데!”
허우적거리는 어인족.
우진이 레비아탄을 떠올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만나고, 헤어졌다. 인생이 그렇듯이....”
그로서는 상념에 젖어 레비아탄을 추억한 것이지만...
어인족으로서는 기겁할 만한 얘기였다.
‘설마 불꽃 정령들을 죽인 건가! 1마리? 2마리? 3마리?’
그때 우진이 녀석에게 말했다.
“돌아가는 길을 좀 부탁하마.”
“아, 아아! 그건 걱정마라! 약속이니까!”
허겁지겁 정신을 집중하는 놈.
아마도 강 건너편의 다른 녀석들과 공명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길이 열렸다.
— 끼이익....
다시 나룻배를 타고 돌아오자 어인족들이 눈을 키웠다.
“하루만에!”
“아니, 몇 시간만에!”
“벌써 볼일이 끝나다니 정말 왕격을 가진 존재는 대단하구나!”
그때 주변을 서성이던 놈이 우진에게 다가왔다.
리더 격으로 보이던 녀석이었다.
망설이던 놈이 정말 불쌍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인간아 혹시 금속 더 있냐...?”
우진이 어이가 없어서 입을 벌렸다.
“이놈들 설마...?”
분명 아까 커다란 자루에 가득 찬 금속을 주었다.
한 달 치 식량이라 해놓고 벌써 다 먹은 것이다.
“너네 정말... 대책 없이 사는구나?”
그러자 울상이 된 어인족들.
“배고프다. 너무 배고프다 인간아....”
여기 찾아오는 인간이 자주 있지도 않으니 배고픔이 일상이 되어 버린 놈들.
사정을 파악한 우진이 손을 탁탁 털었다.
“얼간이들! 나를 따라와라.”
“따라간다? 인간을? 우리가 왜?”
2번째 금속 자루를 꺼낸 우진.
“이거 줄게.”
“으와아아! 맛있는 냄새다!”
금속 냄새를 맡은 놈들이 졸졸 따라오기 시작했다.
마치 오리 어미가 된 것 같은 심정으로 도시 구역으로 이동한 우진.
제법 먼 거리를 움직여야 했지만 이 녀석들도 충분히 올 수 있는 거리였다.
그리고 그가 지시했다.
“다들 삼지창 꺼내라.”
“꺼내라? 왜 꺼내냐?”
— 휘이익!
우진이 휘파람을 불자 폐허에서 기계 거미들이 나타났다.
“저 녀석들을 직접 사냥하는 거다.”
그러자 반발하는 어인들.
“지, 직접 사냥해서 먹는다?”
“귀찮다! 힘들다!”
— 콰쾅!
어쩔 수 없이 우진이 한 마리를 직접 사냥해서 치킨 다리를 흔들듯이 유혹했다.
“아이고... 맛있겠다. 냄새가 참 좋네.”
감탄하는 작은 어인족들.
“우... 우아아아!”
“맛있겠다...!”
“나 줘라! 나 줘라!”
하지만 빠르게 인벤토리에 넣어버린 우진.
— 키르륵!
다시 기계 거미들을 유인했다.
“너희도 할 수 있다. 직접 사냥하면 더 보람찰 걸?”
간파로 확인한 이놈들의 능력치는 분명 거미를 사냥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망설이더니 달려나간 어인들.
“우아아아!”
“찍어라! 찍어라!”
다들 힘을 합쳐서 기계 거미를 사냥하더니 허겁지겁 먹어치운다.
“사냥해서 먹으니까 더 맛있다!”
“내일도 또 오자! 또 오자!”
“아니다! 지금 또 하자!”
우진이 씩 웃었다.
“그래, 배고프면 참지 말고 직접 구해서 먹어라.”
아무리 죽어도 살아나는 NPC라 해도 배고픈 괴로움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배고픈 거 진짜 고통스럽지.’
자신도 잘 안다.
원래 가지고 있던 자루 속 금속은 각자 사냥을 해오면 추가 보상을 주는 식으로 분배해주었다.
“여기 한 마리 잡았다!”
“그래, 이거랑 같이 먹어라.”
자루가 텅 빌 때까지 사냥을 반복한 놈들.
마침내 다시 기세가 살아났다.
“이제 사냥 어렵지 않다!”
“할 수 있다!”
아예 사냥 전문가처럼 폼을 잡고 서 있다.
누가보면 베테랑 사냥꾼이라고 생각할 만한 모습이었다.
“그래, 뜻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 설령 혼을 태워서라도. 그걸 기억해라.”
“이야아아! 인간아 고맙다!”
“고맙다 인간아! 정말 고맙다!”
이제 떠나는 우진과 르쉬.
“잘들 있어라!”
“바이바이 물고기들아!”
원체 독특한 놈들이라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방법도 알려줬으니 마냥 굶지는 않겠지.’
진짜 못 견디겠으면 며칠에 한번이라도 사냥을 나갈 것이다.
최소한 지금처럼 누군가를 기다리다 몇 달에 한 번 겨우 배를 채우는 생활은 끝나지 않을까.
그때 르쉬가 재밌다는듯 말했다.
“금속을 먹다니 참 신기한 녀석들입니다.”
“나는 어둠과 시체를 먹고 르쉬 너는 피를 먹지. 흐흐흐....”
“앗.... 그렇군요!”
정말 놀랐다는 듯 눈을 키우는 르쉬.
이 녀석과 다니면 저런 반응만 봐도 즐겁다.
“이 맛에 제자 키운다.”
“아...!”
껄껄 웃으며 걸어가는 우진.
르쉬가 그 뒤를 빠르게 따랐다.
“이제 남부에서 볼일은 끝났군.”
다음 장소로 향하는 일행.
도시 구획에서 통행증을 사용해 구역을 스킵했다.
복잡한 탐사를 모두 할 필요는 없으니 바로 협력의 땅으로 향한 것이다.
“가자!”
“예! 가자!”
— 스팟!
공간을 뛰어넘어 새로운 세계에 도달했을 때.
“우와아아!”
인지를 벗어난 엄청난 건축물이 보였다.
주먹을 움켜쥔 우진.
“드디어 여기까지 왔군.”
3구역의 메인 무대.
그건 거대한 탑이었다.
<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26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