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24 >
메뉴를 고민하던 우진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폐허가 된 도시 속에서도 아름답게 빛나는 간판.
그건 바로 편의점이었다.
“내 영혼의 안식처로구나!”
황폐한 도시지만 주요 시설은 모두 멀쩡하다.
‘폐허가 된 이유는 일종의 연출이자 장애물이니까.’
물론 입장하려면 시설 복구 이벤트를 거쳐야 하는 경우도 있고, 특수한 화폐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편의점은 프리 패스!’
— 딸랑!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일행을 반겨주는 그리운 소리.
르쉬가 천국에 온 것처럼 주위를 살핀다.
“마... 마법의 음식이 가득가득.......”
여기서도 점수가 화폐가 된다.
‘즉, 여기 있는 거 다 사도 푼돈이다!’
그가 오랜만에 외쳤다.
“르쉬! 내가 쏜다! 먹고 싶은 걸 모두 골라라!”
“우와아앗!”
대형 편의점을 뛰어다니는 자신의 수하.
우진도 흐뭇하게 물건을 골랐다.
‘나도 오랜만에 그걸 먹어 볼까나?’
지구에선 질리도록 많이 먹었지만...
여기선 정말 귀해서 먹지 못했던 그 물품.
그건 컵라면이었다.
‘이게... 자주 먹으면 물려도, 못 먹으면 미친듯이 땡기거든.’
빠르고 간단한 인스턴트의 정점!
월드의 음식은 상당히 맛있다.
돈만 있으면 지구보다 미식 행위를 즐기기 좋다.
그래도 고향의 맛은 따라가기 힘들다.
특히 맵고 짠 음식은 지구식 인스턴트를 따라가기 힘들었다.
그가 빠르게 라면 두 개를 조리해 하나를 르쉬에게 건넸다.
“따뜻하고... 맵고... 맛있습니다...!”
각자 시원하게 한 그릇씩 먹은 후엔 취향껏 다양한 음식을 즐겼다.
때로는 르쉬에게 먹는 방법을 알려줘야 했지만 그것조차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흡혈귀가 가장 마음에 들어한 것은 우습게도 딸기 아이스크림이었다.
‘편의점 아이스크림이 맛있긴 하지.’
저번에 대도시에서 한번 맛을 보여준 이후로 잊지 못한 모양이다.
아이스크림 통에 연신 숟가락을 넣으며 신나게 퍼먹고 있었다.
그러다 눈치를 본다.
“총대장님도 좀 드십시오....”
“나는 이가 안 좋아서....”
“헉...!”
흡혈귀에게 가장 중요한 치아!
그게 안 좋다니 비상사태다!
“당연히... 농담이다. 우리는 이 빠져도 다시 나잖아.”
“아! 맞습니다!”
그제야 이마를 탁 치는 르쉬.
우진도 껄껄 웃었다.
식사를 마친 후엔 보급을 챙기기 위해 이동했다.
‘보급이라면 편의점보다 더 좋은 장소가 있거든.’
근처를 탐사해 커다란 슈퍼 마켓에 들렀다.
도시 구역에서만 구할 수 있는 효율 좋은 식량들이 가득한 곳.
“으아아앗...! 천국이 더 커졌다...!”
복도 끝에서 끝으로 뛰어다니는 르쉬.
점수도 많으니 뭐든지 고르게 했다.
이것저것 한아름 들고 행복해 하는 르쉬.
‘슈퍼마켓에서 보급이라.’
사실 이건 상당히 비효율적인 행동이다.
여긴 마음껏 먹으라고 있는 장소가 아니기 때문.
화폐가 부족한 모험가들에게 박탈감과 고통을 주기 위한 장소에 가깝다.
‘일종의 고문이지.’
실제로 전생엔 점수가 아까워서 효율만을 따져 식사를 했다.
슈퍼마켓은 그림의 떡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설령 남아도 되니 마음껏 챙겼다.
“이제 가자!”
“예, 가자!”
— 펄럭!
근방에서 가장 높은 빌딩에 올라가 지리를 살폈다.
저 멀리 그에게 익숙한 시설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지하철을 타자꾸나. 그게 우리를 순식간에 남부로 데려다 줄 것이다.”
기계 정글, 도시 정글, 도시의 숲 등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 구역은 면적만 따지면 수해(樹海)보다 넓다.
그렇기에 단순히 날거나 달리는 것보다 더 빠른 이동수단을 택할 필요가 있었다.
‘그게 바로 지하철이지.’
— 펄럭!
역으로 이동하는 중 창공에서 내려다보니 드문드문 탐색을 하는 파티가 보였다.
도시가 워낙 넓고 복잡하니 천천히 나아가는 모험가들.
‘고생들 하시오.’
여기서야 성실한 탐사, 그리고 착실히 쌓아온 전투력이 유일한 동아줄일 뿐.
자신이 따로 도움을 줄 필요는 없었다.
— 후웅!
역에 도착하자 지상 선로에 놓인 지하철이 보였다.
다른 차원에서 온 자들에겐 아예 용도를 짐작하기 힘든 기계 뱀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지구 출신들은 최소한의 이용 방법 정도는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말 그대로 지하철이니까.’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시설의 용도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것.
지구 출신의 극장점이 된다.
자신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구역에선 모두가 나를 원했지. 나는 말하자면 패스파인더였다.’
떠올리기만 해도 보람찬 추억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 3구역까지 가는 것만으로도 큰 난관이 따랐을 것이다.
또한 여기서 쌓은 친분 덕분에 3구역 ‘협력의 땅’도 생각보다 빨리 클리어 할 수 있었다.
— 끼긱....
그가 능숙하게 티켓 발권을 했다.
개찰구를 지나 승강장까지 도달하는 것도 일사천리였다.
— 삐빅!
마침내 지하철에 탑승하자 들려오는 알림.
[다음 출발은 27분 후입니다.]
이곳의 지하철은 지구와 조금 다르다.
운행 간격도 넓고 역마다 서지도 않는다.
그래도 최고의 장점이 있다.
그건 바로 속도.
일종의 유사 워프였다.
‘진짜 워프보다는 몇 수 아래의 능력이지만... 그래도 매우 빠르다.’
— 쿠구궁....
이내 출발한 지하철.
지하를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나가더니 마침내 지상으로 향했다.
우진이 지상 구간에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창밖을 보았다.
그 기계 정글의 풍경을 보고 있자니 일이삼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녀석들은 잘 있을까나....’
바깥 고리에도 정글이 있다.
여기와는 다른 진짜 정글.
거기서 힘을 키우겠다며 출발한 세 얼간이.
마물 사냥도 하고 악인 사냥도 하면서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가끔 녀석들을 통해 자잘한 스킬이 입수되어 포인트로 바꿔 먹었다.
이제는 너무나 소소한 양이 되었지만 그래도 놈들이 잘 지낸다는 소식이라 반가웠다.
“르쉬야.”
“예!”
“한센, 올로, 칼슨이 보고 싶지 않더냐? ”
“이, 이름을 기억하시는군요...!”
“물론이지.”
신뢰의 눈빛.
그건 우진 뿐 아니라 자신의 부하들에 대한 신뢰기도 했다.
“괜찮습니다! 그 녀석들이라면 잘 하고 있을 겁니다.”
“어디 간만에 목소리라도 들어볼까?”
[지령] 스킬을 써봤지만 아쉽게도 연결 되지 않는다.
바깥 고리와 중심부는 이렇게나 격리된 장소인 것이다.
그러나 그걸 뛰어 넘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곧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우리 쪽에서 필요해진다고 해야겠지.”
“오...! 그렇습니까!”
협력의 땅.
그곳에선 놈들의 힘이 필요하다.
녀석들 뿐 아니라 애쉬라인과도 만날 일이 생길 것이다.
그때 지하철이 잠시 멈췄다.
어마어마한 거리를 이동하는 중이니 중간에 휴식 시간이 주어진다.
— 끼이이익....
약 1시간의 정차.
이럴 때 보통은 그냥 지하철 내부에 있는 것이 정석이다.
나가는 순간 다시 모험가의 입장에서 ‘탐사’를 해야 하는 셈이니까.
어지간히 모험심이 넘치지 않고서야 일단 목적지까지는 몸을 사리는 게 기본이다.
하지만 우진은 태연하게 밖으로 향했다.
우선 바깥으로 나가 역에서 휴게소 식품을 먹었다.
점수가 많으니 돈이 넉넉한 여행자가 된 기분이다.
“오, 구슬 아이스크림 기계다.”
“우와아아!”
벤치에 나란히 앉아 사이 좋게 퍼먹고 있는 와중....
‘음?’
무언가가 접근하는 것이 느껴졌다.
정확히는 수십 개체의 ‘기계 거미’였다.
기계형 적들이 도시의 정글 속에서 모험가를 노리며 다가온다.
“흐흐. 그래, 이래야 탐험이지.”
우진의 전신이 푸르게 빛나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백호지세. 극뢰의 파도.”
— 촤차차착!
최강의 번개가 한 바퀴를 돌고 나자 정리된 일대.
모든 기계들이 뻗어 버렸다.
“확실히 대형 구획답군.”
공격해 오는 마물도 많고, 그 대신 이용 가능한 시설의 종류도 늘어난다.
“르쉬, 여기선 이런 녀석들이 덮쳐오니 기억하고 있어라. 약점은 이 핵 부분이다.”
“예!”
이제 놈들의 ‘시체’를 챙기는 우진.
‘이 녀석들은 스킬은 주지 않지만 아주 유용한 걸 주지.’
드워프의 고대 유적처럼 기계형 적들은 따로 스킬을 주지 않는다.
대신 대량의 희귀 금속을 획득할 수 있었다.
만족스러운 우진.
‘이걸로 용암의 강에서 거래할 수단이 생겼군.’
모든 기계를 챙긴 그가 역 중앙의 시계를 확인했다.
‘휴식 시간은 1시간 정도 남았나. 그 안에 해결 해야 할 일이 있다.’
여기서 얻어 가야 할 물건이 있다.
그건 바로 르쉬의 무기!
우진이 충성스러운 자신의 수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녀석의 무기술이야 경지에 달했으니 좋은 무기만 들려주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겠지.’
최근에 신주(神酒) ‘화룡점정’까지 마셨으니 더욱 신비한 기예를 선보일 것이다.
“가자!”
우선 무기 상점으로 향하는 우진.
빠르게 삭막한 도시를 뚫고 전진하기 시작했다.
‘이 도시에 지름길이 이렇게 많았을 줄이야.......’
힘이 강해졌더니 모든 것이 산책을 하듯 순조롭다.
‘평범한 도전자라면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모험이 되었겠지.’
하지만 자신은 다르다.
그야말로 슈퍼마켓에 가듯 콧노래를 부르며 접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초대형 무기 상점.
— 쿠구궁...!
그곳에 들어서자 어마어마한 양의 무기들이 보였다.
[어서오십시오, 우진 님]
[지구의 무기 상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카탈로그를 좀 보여다오.”
[예, 본 상점의 판매 목록을 보여드리겠습니다.]
— 촤르르륵!
우진이 빠르게 스크롤을 넘기자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최하단에 있는 아이템이었다.
‘이건 원래 너무 비싸서 못 사지.’
게임으로 치면 경품 중 가장 비싸서 호기심만 자아내는 그런 품목이다.
‘5만 점의 점수는 실제로 모으기가 불가능한 수준이니까.’
하지만 고양이 수인 레이카가 사용하는 것을 보고 깨달았다.
그게 진짜 살 수 있는 아이템이었단 사실을.
게다가 성능이 어마어마했다.
별의별 무기가 다 있는 레이카조차 이것을 주력으로 사용했을 정도니까.
그건 바로 레이저를 이용하는 쿠크리.
이 도시에서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전설 아이템이다.
그가 화끈하게 5만 점을 지불하고 구입했다.
[레이저 쿠크리] [전설]
— 피슝!
광선검과 같은 멋진 아이템이 나타났다.
‘드디어 내 수하에게 전설 아이템을 무장시켜 주었구나!’
물건을 받아든 르쉬가 감격스럽게 말했다.
“이, 이거 정말 제가 써도 괜찮습니까...?”
“필요 없으면 내가 쓰마.”
“헉...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무기를 꼭 끌어안고 황홀한 표정이 된 르쉬.
“나만의 무기....... 내 소중한... 총대장님이 주신.......”
사람도 없건만 누가 훔쳐갈 까봐 긴장한 모습이다.
우진이 껄껄 웃으며 승천비보를 불러냈다.
[잠시 후 지하철이 출발합니다.]
역에 도착한 후엔 시간을 기다렸다가 다시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빠르게 움직이는 신비의 이동 수단.
창밖의 풍경이 서서히 바뀐다.
‘슬슬 다 와 가는군. 거의 남쪽 끝까지 왔어.’
— 끼이이익....
그때 마침내 지하철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엄청난 거리로 일반 모험가는 최소 몇 달이 걸렸을 여정.
자신이라고 해도 며칠은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하철 덕분에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역을 나와 조금 더 남쪽으로 이동하자 곧 ‘중심부 최남단’이라 할 만한 구역에 도착했다.
‘덥군.’
이곳엔 실제로 와본 적이 없다.
진광의 얘기만을 들었을 뿐.
‘정말로 여기선 이 지긋지긋한 도시 정글이 끝나는군.’
도시의 풍경은 사라지고 척박한 대지가 보였다.
그곳에 있는 것은 거대한 강.
그런데 그 강에 용암이 흐른다.
용암의 강인 셈이다.
‘저걸 건너야 하는데.’
그 앞의 나루터에 뱃사공들이 있었다.
이 자그마한 어인 녀석들은 여기서만 볼 수 있는 NPC와 마찬가지의 존재였다.
‘짧고 통통한 게 꼭 개구리처럼 생겼군....’
그가 일단 어인족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잔뜩 경계하는 놈들.
“뭐냐!”
“여긴 왜 왔느냐 인간아!”
기본적으로 불친절한 놈들이고 위협까지 하려고 든다.
어차피 여길 지나가려면 자기들 외엔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진은 이놈들의 수법을 알고 있다.
‘진광은 여기서 다 족치고 단 한 녀석만을 살려둔 뒤 거래를 성사시켰다고 했지.’
물론 자신은 좀 다른 방법을 쓸 생각이다.
일단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너희와 거래를 하고 싶은데.”
그러자 어인들이 호기심을 보였다.
“무슨 거래?”
“글쎄, 목숨에 관련되었다고만 해두지.”
오싹함을 느낀 어인들.
“누구의 목숨을 마, 말하는 것이냐...?”
고개를 든 우진이 씩 웃었다.
“나는 아니겠지?”
그가 왕의 기운을 뿜어낸 순간, 모든 어인족이 얼어붙었다.
<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2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