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22 >
로크의 모습은 모든 도전자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 쿠구궁....
거조(巨鳥)가 도전자에게 완벽한 예를 갖춰 고개를 숙인 것이다.
창공에 나타났을 땐 반드시 관측자의 목숨이 사라진다는 괴수.
그가 인간에게 예를 갖추다니?
당연히 우진이 일개 도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와, 왕이라고...!”
“왕격을 획득했단 말인가...!”
월드 역사에 왕격을 가진 모험가가 도대체 얼마나 있었단 말인가?
자신들은 전설 속의 존재를 보고 있는 셈이었다!
그때 우진의 몸에서 장엄한 기운이 터져나왔다.
왕격만이 발현할 수 있는 왕의 기운.
무형의 ‘왕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으어어....”
“우엇...!”
감당할 수 없는 기세에 사람들이 밀려나 몸을 낮췄다.
그것은 힘에 복종한 것이 아니라 격의 차이에 스스로 몸을 굽힌 것과 같았다.
그 무의식의 배례(拜禮) 가운데 우진이 거조를 향해 외쳤다.
“로크! 네게 요구 사항이 있다.”
<왕이시여, 부디 무엇이라도.>
“지배자의 시험에 통과하고 싶은데. 너를 꼭 죽여야만 하는가?”
그건 바로 3번째 시험에 관한 것.
지배자를 죽여야 하는 시험이지만, 로크를 굳이 죽이지 않을 수 있다면 그 방법을 택하고 싶었다.
로크가 주저 없이 답했다.
<제 혼백은 이 구역에 귀속된 것. 죽어도 1주일 뒤 부활할 수 있습니다. 주저 말고 목숨을 거둬주십시오.>
“다른 방법은 없는 건가?”
잠시 고민하던 로크가 말했다.
<번거로우시다면 제 권한으로 통과 시켜드리겠습니다. 또한 다른 시험 또한 면제시켜 드릴 수 있습니다.>
“아니다. 혼자 힘으로도 통과할 수 있어. 나뿐 아니라 모든 도전자가 말이야. 그렇지?”
그제야 우진의 의도를 알아차린 로크가 미소와 같은 것을 보이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뜻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결전의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터져나온 탄성.
“오오...!”
결전의 땅 모든 도전자가 감탄했다.
로크의 거체는 워낙 잘 보이기도 하고, 정신에 전해지는 그 목소리 모두에게 들리기 때문이다.
“좋다! 그러면 일단 지배자 시험만 통과를 부탁한다.”
<물론입니다. 절 죽이고자 하면 1초 내로 목숨을 거두실 수 있는 분이시니 그 정도는 매우 간단합니다.>
로크의 평가는 절대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주변의 모든 사람도 동의할 수 있었다.
우진이 뿜어내는 도저히 같은 ‘인간’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로크가 눈을 감고 무언가를 하자 우진에게 알림이 떠올랐다.
[지배자의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고맙군.”
<영광입니다.>
그때 로크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 정말 저를 죽이지 않으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저는 제법 높은 양의 경험치를 제공해드릴 수 있습니다.>
우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네가 나를 왕으로 인정해주었는데, 나도 신하에 대한 예우를 다 해야지. 굳이 죽일 필요 없으니 신경 쓰지 마라.”
그러자 충격에 빠진 듯한 로크의 눈빛.
<이럴 수가....... 왕 되신 자께서 제 목숨까지 신경 써주시다니.... 그렇다면 제 충심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이걸 가져가 주십시오.>
“이건...?”
<이 구역에서만 얻을 수 있는 아이템으로, 본디 저를 사냥하는데 성공하면 아주 낮은 확률로 등장하는 물품입니다.>
그건 로크의 문양이 새겨진 반지였다.
[창공의 지배자]
[비행 상태일 때 모든 능력이 대폭 상승한다.]
“오우... 엄청난 아이템이구만! 고맙다 로크야!”
<영광입니다. 왕이시여.>
우진은 언제든 날아다닐 수 있다.
이건 상시 적용되는 최상급 버프를 얻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럼 언제든 찾아주십시오. 왕께서 계신 동안은 이 땅의 도전자를 해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오! 고맙다!”
떠나가는 로크의 모습은 날개짓만으로도 위엄이 있었다.
사람들이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중얼거렸다.
“보스랑 대화를 나눈다.... 그게 가능한 일이었단 말인가......?”
“대화를 나눈다고? 방금 그건 로크가 완벽하게 복종한 거였다네....”
“사냥은커녕 하늘에서 내려오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힘든 보스를....”
“굳이 하늘에서 내려올 필요도 없지... 날고 있을 때 더 강한 마물이니까....”
그때 누군가가 화들짝 놀라며 우진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게 중요한가? 왕격이라네... 왕격!”
우진을 보는 시선이 완전히 바뀌었다.
미치광이에서 전설적인 영웅이 된 것이다.
게다가 우진이 이 땅에 있는 동안은 로크가 도전자들을 해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엄청난 위협 중 하나가 사라졌으니 구역의 모든 도전자가 큰 은혜를 입은 셈이었다.
‘저 분하고 같이 다니면 죽을 위험이 0%로 떨어지지 않을까?’
슬금슬금 몰려드는 사람들.
마치 천상의 귀인(貴人)처럼 경외하면서도 곁을 떠나가지 못했다.
마치 그의 옆에 있으면 엄청난 버프라도 받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때 우진이 주변 사람들이 들으라는 듯 말했다.
“나는 이제 남은 시험을 치르러 가봐야겠구만! 사람 죽이는 것보다 훨씬 좋은 방법인 결전의 시험을 말이야!”
르쉬도 눈치를 채고 장단을 맞춘다.
“맞습니다! 시험을 다 통과할 정도로 실력을 기르면 다음 구역도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겠지요?”
“오! 실력을 기르면서 구역을 통과한다! 정말 일석이조구만! 빨리 시험을 보러 가고 싶어!”
“맞습니다! 일거양득입니다!”
둘 다 연기 실력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왕격을 가진 자가 그렇게 말하니 신뢰가 갈 수밖에 없다.
그 어색한 말투에서 어딘가 귀족적인 고풍스러움마저 느껴지는 것이다!
‘오오.... 왕격을 가진 강자마저도 시험을 택한단 말인가?’
‘어찌보면 그게 진짜 좋은 방법 아닐까?’
‘이 구역의 정답은 바로 결전의 시험이었던 것이다!’
월드의 미혹.
규칙이 주는 혼란에 빠져 있던 자들의 머리에 하나둘 새로운 방식에 대한 생각이 스며들었다.
미소 지은 우진이 특별 보상을 이용해 순간 이동을 발동했다.
“가자! 르쉬!”
“예!”
4번째 산의 정상에 도착한 우진.
우선은 ‘고속(高速)의 시험’을 보기로 했다.
석문 안의 넓은 장소에서 일정 거리를 제한 시간 내에 이동하면 끝나는 간단한 시험이다.
각자 그림자 이동술과 블러드 드라이브를 사용한 것만으로 가볍게 통과할 수 있었다.
[고속의 시험에 통과했습니다.]
“좋다! 이제 마지막 시험이군.”
최후의 석문 앞에 선 우진.
‘이번엔 조금 특별한 방식의 시험이지.’
이것은 ‘신뢰(信賴)의 시험’.
최소 2인 이상을 요구하는 독특한 방식의 시험이다.
‘중심부는 결코 솔로 플레이로 완주할 수 없으니까.’
반드시 동료의 도움이 필요한 구간이 존재한다.
이건 다음 구역인 ‘협력의 땅’에서 보다 분명한 형태로 드러난다.
일단은 르쉬가 있으니 이번 시험은 문제가 없었다.
우진이 통과하는 방식을 설명했다.
“일단 내부에 들어갈 사람을 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의 코스를 완주해야 하지. 바깥의 사람들이 길을 알려주고 내부에선 환상이 보이는 구역을 달려나가는 것이다.”
그 환상은 매우 위험하며, 실제로 도전자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종의 마법이다.
“따라서 이번 시험엔 2명 이상이 필요하며 내부로 들어간 1명은 조금 위험해질 수 있는.......”
“제가 하겠습니다!”
번쩍 손을 든 르쉬.
우진이 웃으며 답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망설이면 위험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자신이 가겠다고 하는 르쉬.
믿음에 믿음으로 보답하기 위해 들여보냈다.
허나 첫 번째부터 난감하다.
한쪽은 낭떠러지, 한쪽은 불구덩이.
어느 쪽을 택하든 죽을 것 같은 환영이 보이는 것이다.
우진이 입술을 깨물었다.
‘여기선 반드시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신뢰가 부족한 파티에선 보통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왼쪽이다!>
<맞아?>
<지금 안 가면 바뀐다고!>
<에이씨, 간다!>
<아냐아냐, 이제 바뀌었어! 오른쪽이 안전한 길이다!>
허나 도전자에게 보이는 것은 여전히 낭떠러지.
수시로 선택지가 바뀌고 위험 요소도 변경 되기 때문에 완벽한 믿음이 없으면 통과하기 어렵다.
이게 끝이 아니다.
<저 새끼가 실수한 거라면? 왼쪽 오른쪽을 헷갈린 거라면? 아니, 애초에 그걸 모르는 얼간이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의심이 생겨난다.
두렵기 때문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면 심각한 망상까지 생겨난다.
목소리가 환청은 아닐까, 지시가 마법으로 왜곡된 것은 아닐까, 애초에 밖에서 보고 있는 안내가 가짜라면?
‘나도 애 많이 먹었지.’
진득한 독극물 지대와 수십 개의 날카로운 창살 함정.
누군가의 말만 듣고 몸을 던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르쉬는 달랐다.
“오른쪽이다!”
바로 반응하는 르쉬.
일체의 망설임이 없는 즉각적인 움직임이었다.
“왼쪽!”
— 스팟!
“다시 왼쪽이다!”
“또 왼쪽!”
의심을 할 만한 구간에서도 지체 없이 몸을 날리는 르쉬.
오히려 혼자 판단하는 것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달려나갔다!
“이야아아!”
마침내 결승점에 도착하여 포효하는 르쉬.
달려간 우진이 수하를 얼싸 안고 펄쩍 뛰어올랐다.
“대견하다!”
“감사합니다!”
속도나 힘보다 믿음이 중요한 시험.
르쉬의 절대 신뢰를 통해 가볍게 통과했다.
총대장을 향한 믿음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그때 반가운 알림이 떠올랐다.
[최단 시간으로 시험을 통과하였습니다.]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오오?”
[신주(神酒) - 화룡점정(畵龍點睛)]
“우왓!”
우진이 허공에서 나타난 2개의 술병을 잡아챘다.
— 찰랑!
신비하게 빛나는 붉은 술병은 그것만으로 엄청난 가치를 지닌 보물이었다.
물론 그 안에 담겨 있는 액체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신주는 종류도 적고 구할 수 있는 장소도 한정 되어 있어서 매우 귀하지.’
화룡점정의 경우엔 특히 좋은 효과를 지니고 있다.
그건 바로 마력을 비롯한 모든 힘의 운용력 상승.
무공으로 치면 혈도가 뚫리고 체질이 바뀌는 효과였다!
‘이미 경지를 넘어선 자가 마시면 그야말로 화룡점정의 효과가 나는 환상의 명주!’
게다가 맛까지 좋다!
— 꿀꺽꿀꺽
“캬아!”
사이 좋게 나눠 마신 사제가 하늘을 보며 붉은 불꽃을 뿜어냈다.
“좋구나!”
“온몸이 짜릿....”
애초에 2병으로 나왔기에 건배까지 할 수 있었다.
[지배자의 축원]
<최단 시간 기록이 갱신된 것은 아주 오랜만의 일입니다. 두 분의 앞길에 축복만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로크의 목소리에 우진과 르쉬가 화답했다.
“고맙다!”
“고맙습니다!”
초고속으로 모든 시험을 통과한 사제.
이제 아예 따라다니며 구경하던 도전자들이 석문 밖에 등장한 우진과 르쉬의 모습에 감탄했다.
“다섯 번째 시험까지...!”
“이렇게 빠른 속도로!”
“통과할 수 있다! 모든 시험은 분명 통과할 수 있는 시험이다!”
하늘로 날아오른 우진.
“전 이제 구역을 떠납니다! 여러분도 건승하십쇼!”
“우와아아!”
반지의 힘으로 더욱 빨라진 속도!
그가 지체 없이 다시 중앙을 향했다.
“자! 이제 오지랖 좀 거하게 부려보자.”
구역 자체를 바꿀 순 없다.
규칙을 바꿀 수도 없다.
하지만 목표를 좀 더 명확하게 만들어줄 순 있다.
‘시험의 존재를 모르는 자들도 있으니까.’
그런 자들에겐 다른 도전자를 죽여서 얻는 점수만이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또한 시험에 응하기 어려운 자들도 있다.
서로가 서로를 노려야 하는 구역의 규칙.
극도의 긴장을 불러 일으키는 구조다.
그 와중에 다섯 산을 오가며 시험을 보러 다닌다는 것이 절대 쉬울 리 없다.
우진이 그 2가지를 다 해결 해주기로 했다.
그가 일단 다시 로크를 만났다.
<모든 시험에 통과하신 것을 감축드립니다.>
“고맙다 로크야. 그런데 미안하지만 부탁이 하나 더 있다.”
<무엇이든 말씀해 주십시오.>
로크에게 얘기한 것은 구역 규칙을 변경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방식으론 점수를 못 얻게 할 수 있을까?”
로크가 정말 죄송하다는 듯 말했다.
<그건 세계 자체의 의지. 저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천의(天意)입니다.>
“음... 역시 그런가.”
잠시 고민하던 우진이 얘기했다.
“그럼 이건 어떨까?”
계획을 설명하는 우진.
<오오.......>
로크의 눈이 커졌다.
설마 그런 방식을 얘기할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다는 눈치였다.
<그거라면 가능합니다! 충분히 가능하지요.>
과연 왕의 생각이라는 듯 놀라는 거조!
우진이 빙긋 웃었다.
“그럼... 당장 오늘부터 부탁할 수 있을까?”
<물론입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저로서도 재밌는 일이 되겠군요.>
“좋다! 그럼 나는 나대로 할 일이 있으니 일단은 해산이다.”
<예!>
우진과 로크가 각자의 임무를 향해 흩어졌다.
그건 결전의 땅을 변화시키기 위한 왕과 지배자의 합동 작전이었다.
<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2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