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21 >
순살(瞬殺).
블러드 레이지를 터트리며 변신한 르쉬.
우진만이 파악할 수 있는 경로 속에서 모두의 목숨을 거뒀다.
“꺽...!”
“끄악...!”
“커헉...!”
피가 튀는 가운데 하나의 클랜이 눈 깜빡할 새에 사라졌다.
르쉬가 붉은 섬광처럼 돌아와 척 고개를 숙인다.
“지시하신 대로 리더만 남겨두었습니다.”
“고생했다.”
짧은 순간 보낸 눈짓을 읽고 오로지 리더만을 살려두었다.
정말 완벽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수하.
그때 실성한 리더가 시체들 사이에서 발악하듯 외쳤다.
“네가 무슨 권리로 우리를 죽이느냐...? 우리의 죄를 심판하는 것이냐? 크흐흐흐흐.... 너도 우리와 똑같은 것이다.... 결국 너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별로 반박할 마음도 들지 않았기에 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대신 난 더 확실하게 더 많이 더 빨리 죽이지.”
“뭐... 뭐라고...?”
“잘 가라.”
변신한 우진이 놈을 반으로 찢어 버렸다.
그리고 툭 내던지자 애처롭게 하늘을 바라보는 놈의 동공.
‘몸이 피범벅이 되었군.’
놈의 말에 맞는 구석도 있었다.
본질이 사람 죽이는 일이란 건 바뀌지 않는다.
그때 르쉬가 다가와 얼굴의 피를 닦아주었다.
“발악일 뿐입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괜찮다, 르쉬야. 난 그저 이게 너나 내 피가 아니란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역시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수하.
우진이 그녀의 얼굴을 마주 닦아주었다.
그러자 배시시 웃는 르쉬.
“핏물 속에서 상쾌하게 웃지 말아주겠나. 정들겠군.”
“아하하하....”
그때 수많은 알림이 떠올랐다.
순식간에 올라가는 구역 점수.
우진이 시체들을 바라보았다.
‘점수 때문에 사람을 죽이다가 결국 점수만 남기고 사라지는구나.’
이 구역이 가진 규칙의 진의는 이러하다.
서로 경계하게 만들어 아무도 통과하지 못하게 하는 것.
‘점수를 많이 보유하게 되는 순간 맛 좋은 먹잇감이 되는 셈이니까.’
통과에 가까워질수록 죽을 위험이 늘어난다.
즉, 여기선 누구도 쉽게 빠져나가지 못한다.
‘심지어 같은 클랜 내부에서도 내분이 일어나 혼자 구역을 넘어가려는 사람들이 생겼지.’
실제로 바로 눈앞의 시체들에게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가장 먼저 포기한 건 그들의 리더였다.
동시에 넘어가자는 허울 좋은 이야기는 사라지고, 몇 년 후 피와 살육으로 점철된 내분이 일어나 모두가 죽었다.
하지만 이제 아무도 넘어갈 수 없다.
이곳은 원래 그런 곳이다.
이런 놈들이 있는 한, 계속 그런 모습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날로 먹으려드니 탈이 나는 것이다.’
놈들은 충분히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극뢰로 정찰조를 단숨에 도륙한 것은 일종의 경고였으니까.
또한 클랜원을 모두 죽일 것이라 한 것도 보다 직접적인 경고였다.
하지만 놈들은 자신을 찾아와 기어코 사자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 넣었다.
왜냐?
큰 점수를 얻기 위해서!
‘너희의 행동 원리를 알면서도 그렇게 유도했으니... 어찌보면 내가 너희를 부추긴 셈이기도 하지.’
후회는 없다.
입에 처넣을 수 있으면 일단 넣고 보는 짐승들.
그런 놈들에게 자신이 쥐약 역할을 해준 것이니까.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으나 진실은 하나였다.
죽지 않고 죽였다.
전생과 다르게 자신은 죽지 않고, 상대는 죽었다.
우진이 각오를 다졌다.
‘내가 마인(魔人)이라면 불패의 마인이 될 것이고, 네가 악인이라면 한 번의 기회를 준 후 죽일 것이다.’
그거면 됐다.
놈들에게서 돈과 아이템을 회수한 우진.
처음 던져준 돈은 물론이고 훨씬 거액을 챙길 수 있었다.
구역 점수 또한 얻었지만 아직 모자라다.
르쉬의 몫까지 2인분을 얻어야 하며 또한 자신들의 경지가 높아 필요량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괜찮다. 원래 쓰려던 방법을 쓰면 되니까.’
초원을 둘러보자 산이 있었다.
이곳은 산맥에 감겨 있는 지형이다.
‘저 산들 꼭대기에 우리의 목표물이 있지.’
다섯 개의 산.
초원을 둘러싼 그 오악 정상에 있는 제단에서 시험을 치르면 큰 점수를 얻을 수 있다.
“우선 시체를 정리하자꾸나.”
“예!”
일단 르쉬가 광역 흡혈을 한 뒤 우진이 어둠으로 시체를 빨아들였다.
이제는 자연스런 수순이 된 전투 후의 작업.
숲을 나와 다시 초원으로 향했다.
들판은 여전히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여기 얼마나 많은 피가 뿌려졌을까를 생각하면 좀 스산하기도 했다.
‘아름다운 지옥. 그 말이 딱 맞는 곳이지.’
일단 첫 번째 산으로 향했다.
높은 산은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힘든 일이 된다.
또한 거기 시험 장소가 있다는 걸 밝혀내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날개와 비행 탑승물이 있는 자들에겐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정상에 도착하자 석문(石門)이 있었다.
이것이 결전의 시험을 치르는 장소다.
사람을 죽이지 않고도 대량의 점수를 얻을 수 있는 곳.
‘정확히는 첫 번째 시험의 장소지.’
이곳의 존재는 아주 비밀스러운 것은 아니었으나, 다만 통과하기 귀찮고 어려웠다.
‘힘이 있으면 사람을 죽이는 쪽이 훨씬 빠르고 간단하지.’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렇게 이 구역을 통과했다.
‘선구자 클랜이 이곳에 오래 머무르며 강자 행세를 했다는 건.... 오히려 놈들이 구역을 넘어가기엔 너무 약했다는 뜻이니까.’
여기 몇 년을 머무르며 강자로 군림한 것은 결코 놈들이 진짜 강해서가 아니다.
반대로 느리고 약해서다.
‘강해지니 알겠다. 놈들은 군림한 것이 아니라 이 구역에 붙들려 있었던 것이다.’
마치 지박령처럼 말이다!
자신은 그렇게 될 생각이 없다.
‘일단 첫 시험부터 통과하자.’
첫째는 ‘공허(空虛)의 시험’이라 불리는 것으로 남들에겐 다소 까다로운 방식이었으나 우진과 르쉬는 아주 간단히 통과할 수 있었다.
— 쿠구궁...!
우진이 시험장 앞에 서자 석문이 열렸다.
내부는 큰 공간이었다.
그 중앙에 돌로 만들어진 우물 같은 것이 있었다.
이곳에 종류를 불문하고 ‘아이템’을 일정 가치 이상으로 바쳐야 한다.
우진보다 먼저 온 자들이 푸념을 늘어 놓고 있었다.
“뭐여 시부럴.... 아이템을 넣으라고?”
“야, 너 뭐 좀 있냐?”
“왜 날 봐? 아 마법사는 방어구 필요 없다 이거냐?”
“아니 그게 아니고....”
서로 눈치를 보는 중형 파티.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면 대단한 모험가들이다.
게다가 사람을 죽여 점수를 모으는 게 아니라 결전의 시험을 택했으니 성정도 비교적 온건할 터.
하지만 이런 방식의 시험은 좀 난감할 것이다.
하지만 우진은 달랐다.
“많이 준비했으니 다 먹어라.”
아이템을 구하러 나간 중형 파티.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우진이 우물에 무언가를 쏟아 넣었다.
그건 바로 대량의 레어 아이템이었다.
탈탈이 아니라 콸콸 수준으로 부어 넣는 장비들.
심지어 인벤토리를 정리해 주는 것 같아 고맙기까지 했다.
‘무법도시 자이하츠부터 시작해서 녹림까지.... 난 지금 세상에서 잡템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아낌 없이 털어 넣은 수백 점의 레어템들!
유니크 이상은 단 한 개도 넣지 않았는데 조건이 만족되었다.
게다가.
[1회 투입으로 조건이 만족되었습니다.]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원래는 조금씩 넣어가며 음식 간을 맞추듯이 섬세하게 해야 하는 작업.
그런데 시원하게 쏟아넣으니 시스템이 감명을 받은 것 같았다.
[추가 보상]
[결전의 땅 자유 이동권]
“오. 이건 순간이동 능력이군.”
비록 구역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지만, 그래도 대단히 유용한 능력이었다.
“르쉬야 벌써 시험 1개가 끝났다!”
“오! 대단하십니다!”
순식간에 시험을 통과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전생에 이걸 통과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기억하기 때문이다.
‘잡템을 대량으로 구하러 바깥 고리까지 다녀왔지.’
그 여정을 위해 귀환권을 구하려고 1구역에서 마물을 사냥하며 포인트를 모아야 했다.
그러고도 또 아이템을 살 돈을 모아야 했다.
잡템을 긁어 모으러 가게를 돌아다니는 것도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얼마가 걸렸더라.......’
사실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살아서 시험을 통과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천운으로 만난 동지들.
바깥 고리에서 잡템을 사 모으던 중 우연히 비슷한 짓을 하는 남자를 만났다.
<혹시...?>
<설마...?>
그렇게 그 남자의 소개로 결전 구역 공략 파티에 가입할 수 있었다.
어차피 다 사람 사는 곳이라 선자(善者)들의 모임 같은 것은 아니었다.
각자의 목표를 위해 힘을 합쳤을 뿐.
그래도 비교적 비슷한 성향을 지닌 자들과 함께 남은 시험도 통과할 수 있었다.
‘나는 전투력이 부족해서 가진 밑천을 다 털어야 했지.’
돈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그 당시엔 너무나 궁금했다.
대체 다음 구역엔 무엇이 있는지. 월드의 끝엔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자신은 더 강해질 수 있을 것인지.
그 모두가 미치도록 궁금했다.
이제 마음껏 알아볼 차례다!
“르쉬야 내 허리를 잡아라!”
“예!”
우진이 자유 이용권을 발동해 다음 제단으로 순간 이동했다.
석문 위에 나타나자 주변에 있던 자들이 기겁했다.
“흐엇...!”
“죄송, 실례합니다.”
석문에서 뛰어내린 우진이 지체 없이 입장했다.
중앙에는 거대한 2개의 수정이 있었다.
공허의 시험이 아이템의 가치를 측정한다면 이것은 ‘맹공(猛攻)의 시험’으로 도전자의 힘을 확인한다.
대기열이 있어 얌전히 줄을 서서 기다렸다.
마침 커다란 수정 앞에서 손목을 터는 남자.
“아오! 오늘도 실패네.”
“너만 통과하면 넘어갈 수 있다고. 잘 좀 해봐라!”
낄낄거리며 동료를 비웃는 파티원들.
그래도 화목하니 분위기가 좋아보였다.
우진도 빙긋 웃으며 그들을 관찰하다 르쉬에게 설명했다.
“충분한 힘이 있으면 통과다. 난 마력으로 하겠다. 넌 편한 방식을 취해라. 아마도 그냥 달려가서 한 대 세게 후려치면 끝날 것이다.”
“예!”
차례가 되자 우선 우진이 왼편의 수정에 마력을 방사했다.
푸른 수정이 끝까지 차오르며 찬란한 빛을 냈다.
[맹공의 시험을 통과하였습니다.]
“오오...!”
“완벽하게 통과하는 사람이 있다니...!”
구경꾼들이 감탄성을 냈으나 아직 놀랄 일이 남아있었다.
르쉬가 쏜살 같이 달려나가 오른편 수정을 가격하자 흰 수정이 끝까지 차오르더니 시원하게 빛난 것이다.
바닥에 착지한 르쉬가 밝게 웃었다.
“통과입니다!”
“오케이! 가자!”
“우오오오.......”
남은 사람들이 경악하여 지켜보는 가운데 사제가 시험장을 나섰다.
벌써 2개의 시험을 통과했다!
쏟아지는 시선 속에서 우진이 빠르게 승천비보를 타고 하늘로 떠올랐다.
‘이제 남은 시험은 세 가지. 그 중 하나는 이 구역의 지배자를 죽이는 것이다.’
어차피 만나야 할 녀석이니 미리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또한 이곳의 지배자에겐 반가운 ‘특성’이 하나 있다.
‘녀석은 짐승형이니 그걸 써먹으면 뜻밖의 일이 가능할지도....’
산에서 날아올라 순식간에 구역 중앙으로 이동한 우진.
그가 하늘을 향해 외쳤다.
“구역 지배자를 만나고 싶다! 나타나라!”
주변 사람들이 어이가 없어 그를 바라보았다.
“미, 미친 놈인가...?”
“구역 지배자를 부른다고?”
언뜻 무방비한 상태로 보이니 점수를 위해 살기를 피우고 접근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 콰콰쾅!
우진이 손가락으로 극뢰를 쏘아 수km 밖의 커다란 나무 하나를 터트리자 허겁지겁 물러났다.
“허억......!”
“이 먼 거리에서... 저런 커다란 나무를 흔적조차 없이.......”
그때 중앙 제단을 향해 거대한 새가 날아들었다.
구역 지배자의 등장이었다.
“로크다!”
“로크가 나타났다!”
넋이 나간 채로 물러나는 사람들.
구역의 지배자는 특히 강한 마물이다.
여기까지 넘어온 자들이 여럿이 힘을 합쳐야 겨우 도전이라도 해볼 수 있는 초강적.
그렇기에 모두 공포에 질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물론 단 한 사람을 빼놓고 말이다.
우진이 당당하게 외쳤다.
“로크! 날 알아보겠나!”
거대한 새의 눈에 이채가 돌더니 바닥에 착지했다.
괴수의 위용은 과연 대단해서 모두를 얼어 붙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가 하는 말이 모두의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주군이시여. 거조(巨鳥) 로크가 새로운 왕을 뵙습니다.>
결전 구역.
이 땅의 지배자가 우진에게 고개를 숙이고 예를 갖췄다.
<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2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