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20 >
거대 뱀이 꺼내 놓은 물건은 진녹색의 돌이었다.
<이것은 ‘수해석(樹海石)’으로 언제든 이곳으로 돌아오실 수 있는 차원문을 형성하실 수 있습니다.>
수해석을 집어든 우진.
“오호. 차원문이라.”
어떻게든 쓸모가 있을 것이다.
기분 좋게 챙겨두려는데 뜻밖의 추가 설명이 들려왔다.
<또한 그 문은 쌍방향입니다. 즉, 문이 열리면 이쪽에서도 왕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갈 수 있는 것이지요.>
“오오...! 그 말은!”
언제든 수해의 마물들이 자신의 힘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거대한 뱀을 포함해서 말이다!
일종의 수해 소환술!
“고맙다!”
뱀이 예를 갖추고 사라졌다.
끝까지 자신을 따르겠다 했으나 마음만 고맙게 받았다.
— 쿠구구구.......
녀석이 돌아가는 모습을 잘 살피니 주변에 온갖 짐승형 마물들이 따르고 있었다.
우진을 배웅하러 나온 온갖 짐승들.
‘이건 분명 큰 도움이 될 거야.’
짐승형에 한하더라도 ‘왕’의 권세를 부릴 수 있다는 건 대단한 능력이었다.
‘왕이 어디 그냥 이름 뿐인 존재인가. 어마어마한 능력이다. 잘 사용해보자.’
이제 다음 구역으로 넘어가기 위해 준비를 하는 우진.
2구역에는 조금 귀찮은 존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르쉬야, 이 다음 구역에선 바로 전투가 일어날 것이다.”
“예.”
“물론 긴장할 필요는 없다. 당분간 우리를 해할 수 있는 존재는 없을 테니.”
“믿습니다!”
허세가 아니다.
마지막 구역 전까진 거의 최강자로 군림할 수 있다.
중심부에서도 가장 특별한 그 땅이 아니라면 말이다.
— 후우웅!
수해의 출구에 선 우진.
메인 구역이 아니기에 클리어 절차는 따로 없다.
그러나 이 수해를 무사히 통과한 것 자체가 자격 증명이었다.
“가자!”
무형의 벽을 통과한 일행.
새로운 세계로 가는 느낌이 전해졌다.
— 후우웅!
그리고 나타난 것은 초원!
푸른 하늘이 아름답게 펼쳐진 드넓은 목초지였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평화로운 분위기.
그러나 그것은 눈속임에 불과하다.
우진의 기감이 사방으로 발산되었다.
‘열일곱 명이라. 많이도 마중 나왔군.’
각자 치밀하게 몸을 숨긴 ‘정찰조’들.
그 와중에 대놓고 살기를 드러내고 있어 웃음이 났다.
이 구역의 수준을 드러내는 모습이었다.
‘강하지만 아직은 어설프다.’
이곳은 결전의 땅.
결전 지역이라고 불리는 중심부 2구역이다.
이곳에선 도전자들끼리 서로 죽여 점수를 획득하거나, 혹은 결전의 시험을 통과하여 점수를 얻을 수 있다.
또한 그걸 일정량 이상 모아야 구역 통과가 가능해진다.
점수를 벌기 제일 쉬운 방법은 당연하게도 이곳에 처음 들어오는 놈들을 죽치고 앉아서 죽이는 것.
지금 느껴지는 살기가 바로 그 때문이다.
‘왜 쉬운 방법은 이렇게 더러워지는 건지.’
전생엔 이곳에서 호되게 당했던 기억이 있다.
수해에서 백호를 만난 충격을 잊기도 전에 나타난 적들.
놈들의 이름은 ‘선구자 클랜’.
이 아귀다툼의 초원에서 가장 강한 세력이기도 했다.
‘결국 모종의 사건으로 와해되고 말았지만... 불운하게도 우리는 놈들의 습격을 당해야 했다.’
아무런 정보가 없던 우진의 파티.
결전의 땅에 들어오자마자 놈들의 습격을 받았다.
혼비백산하여 하나씩 죽어가던 파티원들.
그때 탱커 역할을 하던 남자가 정신을 차리고 모두를 이끌었다.
<이대로면 다 죽는다! 목숨을 걸고 싸워라!>
총력을 다해 놈들과 싸워 몇 놈을 죽였다.
그러자 선구자 클랜 놈들도 손해가 더 크다고 생각했는지 퇴각했다.
그렇게 겨우 목숨만을 건져 반토막이 된 일행.
그게 결정적인 사건이 되어 파티는 모두 흩어졌다.
그 후로 몸을 사리며 결전 구역을 탐사하던 우진은 ‘결전의 시험’이라는 정답을 찾아내 이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초입에서 죽치고 있는 감시조부터 박살낼 생각이다.
바로 주변에 느껴지는 17개의 살기.
‘놈들도 아직 상황을 판단하고 있군.’
아무리 신입이라도 결전의 땅에 진출한 강자다.
어떤 힘을 가지고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놈들도 일단 정찰을 통해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다.
우진도 기감으로 놈들의 수준을 파악했다.
그리고 약간의 허무함마저 느꼈다.
‘너무나 약하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약하다.
전생에 고작 저 수준의 존재들에게 목숨을 위협 받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일단 우진이 투기를 드러냈다.
그에 맞춰 더욱 강해지는 살기들.
“얼굴이나 보고 얘기하자꾸나.”
이기어검을 발현하자 흠칫하는 놈들.
하지만 여전히 나올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 방식대로 하지.”
— 콰콰쾅!
주위의 지형지물을 모조리 날려버리자 마침내 놈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칫....”
“크윽....”
— 스스슷!
리더 격으로 보이는 녀석을 중심으로 제법 그럴싸한 진형을 형성했다.
17명의 포위망에 갇혀 있으면서도 우진의 기세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놈들도 어중간한 각오는 아닌지 각자의 무기를 들고 자세를 잡았다.
씁쓸한 우진.
‘하긴... 점수는 상대방이 강할수록 더 많이 부여되지. 반대로 강자일수록 더 많은 점수를 모아야 한다.’
즉, 저들 입장에서 우진은 대어(大魚).
놓치고 싶지 않은 먹잇감인 것이다.
그가 어딘가 착잡한 마음에 하늘을 바라보았다.
“내가 여기 오면서 다짐한 것이 있다. 너희 같은 놈들에게 두 번은 물어보지 않기로 했지. 대신 한 번은 이해해보기로 했다.”
이제 살기를 넘어 뚜렷한 분노를 드러내는 우진.
“이게 너희에게 주어진 첫 번째 기회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해라. 그리고 중심부를 떠나라. 그럼 목숨만은 건질 수 있을 것이다.”
복면인들에게선 아무 대답이 없었다.
오히려 짙어지는 살기.
모두 말은 아직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그 찰나.
누군가가 비틀거리며 도망치려고 자세를 잡았다.
아주 현명한 퇴각 시점이었다.
“사, 살려주시오....”
하지만 그 또한 일종의 눈속임.
연기였다.
“살기나 감추고 얘기해라.”
— 스컥!
놈이 은밀히 준비하던 암기를 이기어검으로 걷어내고 그 손목까지 날려버린 우진.
피를 뿜어대며 비명을 지르던 복면인이 쓰러졌다.
“크... 크아아악!”
“정말 1초도 방심할 수 없는 놈들이군.”
마침내 자세를 잡고 덤벼들려는 놈들.
그때 우진의 무시무시한 음성이 일대를 뒤덮었다.
“모두 멈춰라.”
최초로 발동된 언령.
사자(死者)의 몸으로 반신의 권능이 뿜어져나왔다.
— 쿠우웅!
자신의 숙련도 문제도 있고 상대방들의 저항력도 무시할 순 없었다.
하지만 제법 잘 먹힌 신수의 힘!
순간 모두의 몸이 굳은 것처럼 정지한다.
‘대단한 능력이군.’
“이제 죽어라.”
— 콰콰쾅!
터져나간 기운과 동시에 사라진 놈들.
형체조차 남지 않고 죽어 버렸다.
언령은 아니고 극뢰의 발현이었다.
하지만 남들의 눈엔 정말 말 한 마디에 모두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바로 새된 비명을 지르고 있는 저 남자처럼 말이다.
“흐익... 흐이이익...!”
유일하게 숨이 붙어 있는 놈.
한 명만은 살려두었다.
사라진 자신의 동료들 사이에서 주춤주춤 물러나는 복면인.
우진이 그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러자 놈이 이를 악물고 목숨을 구걸했다.
그건 일종의 회유였다.
“그... 그 정도 힘이면 우리와 손을 잡읍시다...! 그... 그럼 이 구역을 순식간에 통과할 수 있을 거요...! 제발... 제발....”
우진이 빙긋 웃었다.
자신은 ‘손 잡기’에 별로 좋은 기억이 없다.
“선자불래(善者不來). 손 내미는 놈에겐 언제나 다른 목적이 있는 법이지. 누구 도움 빌려야만 갈 수 있는 길이면 애초에 출발하지도 않았다.”
손가락을 까닥하자 바람이 불어와 남자를 일으켰다.
그리고 우진이 무언가를 꺼내 남자에게 던졌다.
— 콰앙!
그건 돈 꾸러미였다.
무겁기도 하지만 상당한 마력을 실어 던졌다.
그렇기에 바깥 고리 수준의 모험가라면 저걸 받기는 커녕 몸이 터져 죽었을 것이다.
“커억...!”
— 콰가가각...!
이 자도 공처럼 감싸 안고 밀려나며 몇 바퀴를 구른 후에야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이건 너희 클랜 전체에 주어지는 첫 번째 기회다. 지난 일은 묻지 않을 테니 그 돈으로 천천히 수련하며 자신을 갈고 닦아라. 그리고 정정당당히 이 구역을 통과해라.”
이제 공포보다 더욱 큰 당황에 빠진 남자.
모두를 죽이더니 갑자기 돈을 준다고?
우진이 빙긋 웃었다.
“그러나 안심하진 마라. 내자불선(來者不善). 나 또한 너희에게 좋은 마음을 품고 온 것은 아니니.”
— 콰드드득...!
순식간에 언데드 폼으로 변신하자 공포에 질린 남자.
“다... 당신은... 무엇이오......?”
“나는 마물이다. 너희 같은 양아치들을 먹고 사니 알아두면 좋을 것이다.”
순간 뻗어 나온 기세에 남자가 눈을 감았을 때 우진이 선포했다.
“가서 전해라. 선구자 클랜은 오늘 안으로 결전 지역을 떠나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내 손에 모두 죽을 테니.”
강한 투기를 드러내자 밀려나듯 달아나는 남자.
“으아... 으아아아아!”
허겁지겁 사라지는 그 뒷모습을 보던 우진이 주변을 향해 말했다.
“이제 다들 가서 일들 보시오. 선구자 클랜은 오늘 부로 어떤 식으로든 활동을 정지할 테니.”
근처에서 사태를 지켜보던 구경꾼들.
최대한 기척을 숨기고 있었지만 우진의 기감을 피할 순 없었다.
“헛....”
“으엇...!”
순간 사라지는 기척들.
“됐다. 이 정도면.”
초보자 사냥을 영원히 방지할 순 없다.
구역의 생리니 언젠간 선구자 클랜과 비슷한 짓을 하는 놈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래도 당분간은 멈추겠지.’
이제 자리를 뜬 일행.
초원을 어느 정도 이동하자 마을이 보였다.
이곳은 시작의 마을처럼 여러가지 건물과 시설들이 존재한다.
물론 힘이 없으면 목숨을 걸고 사용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점수를 노리는 자들에게 목숨을 잃을 테니까.’
자신은 힘은 있지만 휴식이나 정비가 필요 없어 마을을 그저 가로질렀다.
대신 약간의 보급품만을 챙겼다.
그새 우진의 소문이 퍼진 것인지 사람들이 경계하는 기색이 완연했다.
“저 자가....”
“선구자 클랜의 감시조를 모두 죽인 신입.......”
물러나고 피하는 사람들.
그 사이사이 명백한 살기가 느껴졌다.
마을 구석구석, 골목과 지붕 등에서 지켜보는 시선들.
그 정체는 말할 것도 없이 ‘놈들’이었다.
그가 마을을 벗어나 일부러 인적이 드문 숲길로 향했다.
“르쉬야.”
“예.”
“곧 올 것이니 준비해라.”
“알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외진 길을 걷다 보니 하나 둘 기척이 늘어나며 자신들을 포위하는 것이 느껴졌다.
선구자 클랜이 잘못된 판단을 내린 것이다.
‘전원이 다 행차했군.’
그의 얼굴에 스산한 미소가 떠올랐다.
‘바라는 대로.’
어차피 결말은 하나였으며 그게 아름다운 모습이 되긴 힘들었다.
르쉬와 등을 마주하고 주위를 살피는 사이.
숲 여기저기에서 대략 50명은 되어 보이는 인원들이 등장했다.
모두가 복면을 쓰고 있었으며 느껴지는 기운 또한 심상치 않았다.
그 강한 힘들을 느낀 우진의 마음이 더욱 착잡해졌다.
“하나 묻자. 이러면 정말 너희 모두가 다음 구역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그냥 강자의 위치에서 남을 죽이는 일을 즐기는 것이냐?”
리더가 기분 나쁜 웃음 소리와 함께 말했다.
“우리는 공평하게 점수를 모아 한번에 넘어갈 것이다. 이간질은 통하지 않으니 집어 치워라.”
우진이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질문을 아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때 위협적으로 몰려드는 수십의 살기들.
그 중앙에서 리더가 제법 우아하게 손을 내밀었다.
“말은 길게 하지 않겠다. 손을 잡거나... 여기서 죽어라. 너 정도의 강자라면 제법 높은 자리를 줄 수 있다.”
우진이 빙긋 웃었다.
“나도 간단히 말하겠다. 네 손 따위 잡고 싶지 않으니... 없어져라.”
말을 하는 순간 리더의 손이 사라졌다.
— 훙!
잘라낸 것은 무형지기였으나 세상에서 소멸시킨 것은 분명히 언령의 힘이었다.
— 펑!
“크아아악...! 크악......!”
발악하며 손목을 움켜쥐는 리더.
무서울 정도의 피가 뿜어져나와 주변을 적셨다.
“클랜장 님!”
“이, 이런 제기랄...!”
혼란에 빠진 선구자 클랜.
우진이 시선조차 주지 않고 수하에게 명을 내렸다.
“숨 쉬는 것은 모두 죽여라.”
“존명.”
모두가 인식하기도 전.
압도적인 살육이 시작되었다.
<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20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