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19 >
순간 형체를 감춘 우진.
사라진 것이 아니다.
백호조차 인지할 수 없는 속도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혼란에 빠진 영물에게 공포스런 얘기가 들려왔다.
“마력은 내 힘의 일부일 뿐이었다.”
— 우르릉......!
몰아치는 어둠의 기운 속에서 들려오는 우진의 목소리.
“또한 언령이라면 나도 비슷한 흉내를 낼 수 있으니.......”
무형지기의 극(極).
“막아보아라.”
신살(神殺).
신조차 죽여버리겠다는 의지를 담은 수천의 칼날.
그것이 백호를 향했다.
— 크르릉...!
울부짖은 백호가 방어막을 형성해 ‘신살’을 막아낸 뒤 역시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역시 신수로군.’
하지만 냉정히 판단했을 때 여전히 스스로가 우위에 있다.
‘놈에게서 받았던 공포를 되돌려줄 시간이다.’
무형지기로 공격을 이어가는 우진.
그의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무서운 기세로 발현되었다.
— 크르릉!
백호는 거체를 빠르게 움직이며 잘 피하고 잘 막아냈다.
반대로 뇌전의 힘이 자신을 덮칠 땐 그 역시 필사적으로 막고 피해내야 했다.
“체력이 좋구나.”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군.”
스태미너 회복 속도는 자신을 따라갈 존재가 없을 것이다.
그와 대등하게 겨루는 백호의 투지가 놀라울 뿐이었다.
그때 하늘이 심상치 않더니 존재를 멸할 정도의 뇌기가 몰려들었다.
“대뢰(大雷)를 받아 보아라!”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낀 우진이 전능의 가호로 막아냈다.
— 콰아앙!
금빛 구체에 막힌 거대한 번개가 사라졌다.
숨을 몰아쉰 백호가 감탄했다.
“내 전력을 막아내다니... 대단한 권능이군. 하지만 분명 제약이 있을 거야.”
제약.
그것은 우진도 뼈저리게 알고 있는 전능의 가호의 한계였다.
‘역시 대단하군. 이 능력의 약점을 단숨에 파악하다니.’
그건 바로 하루 1회의 제한.
가호를 발동한 이상 다시 사용하기 위해선 24시간의 대기 시간이 필요하다.
백호가 남은 힘을 끌어 모아 다시 거대한 번개를 준비했다.
“그런 귀중한 권능을 발동했다는 건 그게 아니면 막을 수 없으리란 판단이었겠지. 도전자여, 제법 잘 싸웠다만 이제는 끝이로구나. 이걸로 반드시 멸해주마.”
우진이 청백(靑白)의 투기를 뿜어내는 백호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징그럽군. 아직도 그만큼이나 힘이 남았느냐.”
“난 신수다. 날 여기까지 몰아 붙인 것만으로도 역사에 남을 대단한 일을 한 것이지.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다.”
그때 우진의 눈이 붉게 빛났다.
“아니, 이제 시작이다.”
— 콰드드득!
순식간에 변신한 우진.
“그 모습은...!”
“모습이 어떻든, 난 우진이다.”
지금까지는 그저 ‘확인’한 것에 불과했기에.
진정한 힘을 드러낸 그가 전신에 진마 투기를 둘렀다.
백호가 다급히 대뢰의 준비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맨몸으로 이 공격을 받아 보아라!”
— 콰르르르릉!
하늘이 삽시간에 어두워지며 무서울 정도의 기운이 몰려들었다.
‘세계가... 백호의 공격을 돕고 있다.’
이것이 신수의 힘!
우진이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전능의 가호는 쓸 수 없다. 그러나 내게는 아직 배리어가 남아 있다.’
번개와 가장 상성이 좋지 않은 금속 배리어는 빼고도 일단은 3개.
물의 가호. 수호의 방벽. 블러드 배리어.
그것이 3중으로 우진의 몸을 감싸고.
‘다시 마기의 지배, 어둠의 배리어, 최후엔 그걸로 막는다...!’
— 꽈과과광...!
그때 내리친 신적인 위력의 낙뢰.
— 퍼퍼펑!
순식간에 1차적인 3단 보호막을 파괴하고 우진에게로 꽂혔다.
하지만.
마기의 지배가 보호막을 형성하고 그 밑에 어둠의 배리어, 다시 무언가를 엉키게 만들어 다시 3중의 갑옷을 두른 우진.
깨진 알의 형상이 된 배리어 아래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건 번데기와 같은 모습이 된 우진이었다.
‘고맙군, 거대 나비여. 네 수법으로 나는 목숨을 지켰다.’
수백의 ‘촉수’로 꽁꽁 싸매 자신을 보호한 것이다.
신수가 대경했다.
경천동지할 위력의 번개 속에서 무사히 나타난 상대.
“아니...!”
백호가 경악하는 순간.
그 잠깐의 틈에 우진의 신형이 사라졌다.
뒤를 잡은 그가 나직하게 말했다.
“큰 기술에는 제약이 있다고 했지. 네 제약은 보아하니 찰나의 정지. 움직일 수 없는 흐름의 유격이다.”
전투에는 흐름이 있다.
백호에게도 고유한 리듬이 있고 우진에게도 특유의 동세가 있다.
그게 끊기는 단 한 번의 기회.
그건 바로 대뢰를 사용한 직후의 찰나!
서로 수준 이상의 실력을 지녔기에 적의 틈을 침범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써야만 한다.
그걸 스스로 열어 버린 한 번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이, 이럴 수가....”
백호가 아연실색하여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을 둘러싼 무형지기(無形之氣).
어떤 방향으로도 도주할 수 없는 감옥.
찰나의 순간 자신을 갈기갈기 찢어 놓을 것이다.
게다가 방금의 2차 대뢰로 모든 힘을 소진했기에....
더는 막거나 피할 여력이 없다.
“패배를 인정한다.”
— 쿠웅....
결국 백호가 거체를 내리고 사지를 꿇었다.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힘 앞에 자신의 한계를 인정한 것이다.
사신수를 상대로 거둔 우진의 첫 승리!
레비아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냈군!>
“으음!”
백호가 복종의 예를 표시한 동시에 신비한 일이 일어났다.
— 후웅!
완전히 사라진 영물.
그리고 떠오른 알림.
[왕위 찬탈]
[왕명을 계승합니다.]
우진의 눈이 커졌다.
‘백호의 왕격을 계승하고 있다...!’
전생의 마지막 순간 겪었던 일.
이걸 다시 한번 경험하게 된 것이다!
[왕명 획득] [수왕(獸王)]
[최초로 왕격(王格)을 획득했습니다.]
[모든 스탯의 효율이 상승합니다.]
[보유한 스킬의 위력이 상승합니다.]
강하기에 더욱 강해진다.
최강의 강자 싸이클.
왕격.
인간으로서 짐승의 왕이 된 우진에게 몇 배나 되는 힘이 주어졌다.
또한.
[중급 언령의 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모든 짐승이 복종합니다.]
[신수를 복속시켜 그 힘을 이어받습니다.]
[’백호의 극뢰(極雷)’를 계승했습니다.]
정신 속의 무언가가 터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힘이다!’
진정한 뇌전의 힘!
그게 자신의 것이 되었다.
번개는 지금까지 주속성으로 써먹던 것이라 전력이 대폭 상승한 셈이었다.
우진이 자신 속에 있는 신수의 힘을 이끌어냈다.
빙의한 듯한 기운과 함께 새로운 기술이 펼쳐졌다.
“백호지세(白虎之勢). 극뢰의 낙인.”
— 콰콰콰쾅!
세상을 파괴할 듯한 번개가 내리쳤다.
감탄한 우진.
그의 정신에 감동한 레비아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정말 대단한 힘이군. 더욱 강해진 것을 축하드리오.>
“흐흐... 주작은 이보다 더 강하겠지. 너도 최선의 대비를 해두는 게 좋을 것이다.”
<몰론이오. 지금부터 난 심상 세계에서 필사의 노력으로 힘을 끌어올리겠소.>
한시도 낭비할 수 없다는 듯 정신의 심층으로 사라진 붉은 용.
우진이 미소를 지었다.
‘백호에겐 레비아탄처럼 남은 숙원이 없었나보군.’
놈은 레비아탄처럼 정신이 흡수되진 않았다.
대신 극뢰의 힘과 초대량의 번개 통제력만이 그의 몸으로 온전히 빨려들었을 뿐.
이제 자신 안에 잠들었을 그 강적.
‘정말 무서울 정도로 강했다.’
속성 드래곤으로 힘을 빼놓지 않고, 전능의 가호로 첫 대뢰를 막아내지 않았다면 자신도 위험했으리라.
‘내가 가진 힘이 강력한 마나 뿐이었다면... 오룡 강신이 막힌 시점에서 죽었겠지.’
힘이 여러 개라는 사실은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 줄 뿐 아니라 특히 강적과의 싸움에서 유용했다.
‘또한 마지막 최종전. 거기서 모두를 상대하는 데도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자신은 세계의 이치를 비틀고 비틀어 겨우 여기까지 왔지만, 이런 힘을 태어날 때부터 가진 자들이 있다.
태생부터가 천재인 존재들.
그들 모두를 상대하기 위해선 더욱 강한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시간이다!
‘내가 왕격을 획득하다니...!’
— 파지지직...!
극뢰의 힘을 더 써보기로 한 우진.
쓰면 쓸수록 최고의 힘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이번엔 연계다.’
별부름. 강대해진 마력에 걸맞게 반경 수km를 채운 무형시.
만족스럽게 극뢰로 연결하려던 우진이 순간 손을 멈췄다.
‘이건... 수해가 사라질 정도의 위력이다.’
마구잡이로 썼다간 범위 내부의 모든 존재가 사라질 정도의 힘.
거기엔 자신의 수하도 포함될 것이다.
‘이거... 이제 힘을 조절해야 하는 단계까지 와버렸군.’
우진이 씩 웃었다.
자신은 이제 신수 정도의 상대가 아니면 힘을 너무 많이 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경지가 된 것이다.
결국 극뢰지기(極雷之氣)를 몸 주위에 둘러 몇 번 운용한 우진이 만족하여 힘을 거뒀다.
‘이건 격이 다른 뇌기다. 난 세계에서 가장 강한 전기 속성을 얻은 셈이야.’
무려 사신수의 힘.
이보다 더 강한 번개 계열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즉, 한 속성이나마 최정상의 격에 오른 것!
그가 멀리 대기하던 르쉬를 불렀다.
<르쉬!>
<총대장님!>
<이제 괜찮다. 돌아와라!>
<예!>
백호가 나타나기 직전 10km 이상 거리를 벌리라고 지시했더니 침착하게 자신의 명을 따른 수하.
활짝 웃으며 다시 돌아왔다.
“승리하셨군요!”
“다 네가 응원해준 덕분이다 르쉬야.”
당치 않다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저은 르쉬.
조금 망설이더니 섭섭하다는 듯 말했다.
“저도 도울 수 있었습니다. 하다 못해 미끼로라도....”
“아니,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단호한 우진.
“또한... 네가 조금이라도 다치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백호 같은 강한 존재와 싸우다 내가 흥분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싫었고.”
“아.......”
르쉬가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무언가를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 쿠구구구.......
숲의 왼편에서 다른 무언가가 등장했다.
그건 거대한 뱀으로 수해에 처음 진입할 때 봤던 구역의 지배자였다.
“오, 수해의 뱀이여.”
우진이 전혀 당황하지 않고 그 존재를 맞이했다.
“혹시 날 만나러 왔는가?”
놀랍게도 고개를 조아린 뱀에게서 정신에 전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습니다. 왕이시여. 제게는 복종할 의무가 있기에.>
우진의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중심부 한 구역의 지배자가 자신의 명을 받드는 존재가 된 것이다!
‘짐작이야 했지만 실제로 의사를 나누니 정말 기분이 이상하구나.’
전생엔 피해다니는 것도 부족해 잠을 설치게 만들고 진행을 늦추던 거대한 뱀.
놈이 무엇을 한 것도 아닌데 그저 공포에 짓눌려 수해를 헤맸다.
그런 존재가 이제 자신을 충심으로 따르는 부하가 된 것이다.
“좋다! 네 힘을 빌려다오!”
자신이 아무리 수해의 지리를 어느 정도 알고 있어도 이곳의 지배자인 이 녀석에 비할 바는 아니다.
“우리를 수해 끝까지 데려다 줄 수 있겠느냐?”
<물론입니다.>
등을 내민 대사(大蛇).
그 거대한 마물을 타고 수해의 모든 지형을 무시하며 빠르게 돌파하는 일행.
“통행증이 따로 있나. 이게 바로 살아있는 통행증이다!”
초고속으로 달려가는 수해의 뱀.
놀랍게도 마주친 모든 마물들이 부복하듯 고개를 숙이며 우진을 배웅해 주었다.
그 신비한 광경을 본 우진의 눈에 아득한 감정이 어렸다.
‘나도 이제 세계의 한 축을 움직이는 존재가 되었구나.’
그때 떠오른 백호의 마지막 말.
<내가 졌군. 하지만... 다른 세 신수는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우진이 씩 웃었다.
“바라던 바야.”
이제부터 자신을 위협할 강적들은 단순히 스탯이나 스킬의 수, 혹은 레벨 등으로 상대할 수 없으리라.
‘격(格)과 투지. 그리고 보다 높은 수준의 집념!’
진짜 싸움이 시작된 셈이다.
그때 수해의 끝이 다가왔다.
뱀과 작별할 시간이 된 것이다.
“고맙다! 덕분에 편하게 왔구나.”
그때 뱀이 뜻밖의 말을 했다.
<원하신다면 어디까지라도 시중을 들겠습니다. 구역 너머에서는 제 힘이 약해지겠지만, 그래도 다다음 구역까지는 모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너도 여기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이것만으로도 고맙다.”
<이럴 수가.... 왕격을 지니신 분이 그런 사정까지 헤아려 주시다니.... 그렇다면 제 충심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그때 뱀이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눈을 감고 기운을 집중했다.
“으음?”
— 후우웅!
거대한 뱀의 미간에서 나타난 무언가.
“오......?”
<이 물건을 가져가 주십시오. 왕께서 가시는 길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건 진녹(津綠)의 빛으로 물든 주먹만한 돌이었다.
<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19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