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18 >
수해(樹海).
우진과 르쉬가 그 깊숙한 구역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평범한 모험가라면 한 발을 내딛는 것도 조심스러울 공간.
숲의 바다는 지형도 알려져 있지 않고 내부의 정보도 없다.
그렇기에 진입 또한 목숨을 걸 용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쏜살 같이 달렸다.
마치 길을 알고 있는 것처럼!
그때 좌측 저 멀리 거대한 뱀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우진이 감탄했다.
‘저 녀석은...!’
수해의 뱀!
수해의 지배자 격인 존재로, 영물인 백호와는 다르게 구역 지배자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
백호가 서방(西方) 전체를 수호한다면 저 녀석은 수해만을 담당하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백호보다 몇 수 아래의 존재이며, 백호를 섬기고 따른다.
“어찌할까요?”
“무시한다. 우리의 목표는 백호이니.”
“알겠습니다.”
백호도 마찬가지고, 저 뱀도 건드리지 않으면 따로 공격성을 드러내진 않는다.
다만 숨막힐 정도의 힘과 기세로 도전자의 정신을 무너뜨릴 뿐.
그 습성을 아는 우진은 그저 나아갈 뿐이다.
‘전생엔 저 뱀을 보고 패닉에 빠져서 며칠이나 정찰과 탐색을 반복하며 조금씩 나아갔지.’
이젠 다르다!
길을 막으면 죽인다는 생각으로 바라보니 두려울 것도 없었다.
— 스슷!
그렇게 순식간에 수해의 한복판에 도착한 두 존재.
어느새 온갖 마물에 포위 당했다.
다행히 수해의 뱀은 저 멀리 어딘가로 사라졌지만...
그 외의 모든 존재가 달려든 기분이었다.
나무 위, 아래, 그리고 하늘에서까지 모험가를 노리는 괴물들!
‘대요괴의 울음소리를 사용해 볼 좋은 기회군.’
우진이 자세를 잡고 말했다.
“르쉬, 귀를 막아라.”
자신의 수하는 ‘격 이하’라고 보기엔 충분히 강하다.
그러나 굳이 조금의 고통이라도 주지 않기 위해 대비를 시켰다.
— 콰드드득!
순식간에 변신한 우진이 포효했다.
— 크아아아아아!
쩌렁쩌렁 울리는 흉성(凶聲)에 모든 마물이 일시에 쓰러졌다.
제일 강한 녀석은 비틀거리며 버텼지만 그나마도 십이단검에 미간이 뚫려 쓰러졌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일기당천!
위험한 수해의 적들을 쓰러트린 우진이 생각했다.
‘슬슬 올 텐데.’
자신의 영역에서 소란이 일어났으니 ‘놈’은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걸 위해 펼친 거창한 힘의 과시.
그때였다.
‘온다...!’
전신이 짜릿해질 정도로 강대한 기운이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점점 빨라지더니 이내 지척에 다가온 그 존재.
포효에 이끌려 ‘놈’이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것마저도 우진의 계획이었다.
‘와라 백호여!’
그때 깊고 깊은 수해를 달려 순식간에 나타난 거대한 영물.
그건 바로 신적인 강적 백호였다.
수해 최강.
아니, 중심부 서쪽의 최강자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절벽 위에서 자신을 바라보다가 뛰어내린 사신수의 첫 존재.
— 크르릉....
‘역시 강하다.’
생을 뛰어 넘어 다시 만난 백호는 기억 속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과거엔 몇백 미터 밖에서도 몸이 굳는 지경이었다면, 지금은 당당하게 강자 대 강자로 마주할 수 있었다.
그때 놀랍게도 백호가 말을 걸어왔다.
“네놈은 무엇이냐.”
그 목소리는 위엄이 있고 신비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짐승이 인간의 말을 하다니?’
잠시 당황했던 우진이 이내 정신을 차렸다.
신수이니 그 정도는 예상했어야 하는 것이다.
“난 우진이다. 그리고 널 만나러 왔다.”
잠시 말이 없던 백호가 이내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우진이라....”
그러더니 마치 산신령처럼 얘기했다.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무엇이냐가 중요하지.”
“그러냐.”
고개를 든 백호가 말했다.
“넌 죽음에 속해 있으나 삿된 기운이 없이 맑고 강맹하다. 이는 마치 빛나는 어둠과 같군.”
‘빛나는 어둠이라.’
70세 마법학자가 들려준 얘기가 떠올랐다.
그의 몸 속엔 서로 반하는 개념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자신은 역시 모순된 존재였다.
그때 우진의 생각을 알아차린 듯 백호가 말했다.
“그러나 그 모순이 스스로를 뒤틀지 않고 오히려 더 강대한 힘이 되었으니.... 조화롭다. 또한 길(吉)하다.”
“그런가.”
“그래. 그걸 모두 품을 수 있는 그릇이란 건... 네가 하늘이 내린 천재란 뜻이겠지.”
순간 우진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천재(天才)!
그 어마어마한 단어가 자신을 가리키다니.
“그런 건 아니고... 운이 좀 좋았다.”
겸손함을 가장해 대답한 우진.
그래도 헤벌쭉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지구에서 쓰던 천재란 단어와는 조금 뉘앙스가 달랐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은 건 좋은 거다.
그때 백호가 약간의 살기를 내비쳤다.
아주 미량이었으나 순간 전신이 찢겨나가는 듯한 환상이 느껴졌다.
“그런데 설마 나를 만나러 왔단 얘기는.... 나와 힘을 겨룰 생각인 게냐? 네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든 나는 신수다. 반신격을 우습게 여기지 마라.”
그건 우진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바였다.
‘이 녀석... 진짜 괴물처럼 강하다. 전력을 다 해야 해.’
자신이 천재라면, 신수는 반신격.
하늘의 의지(天意) 그 자체인 것이다.
‘간파도, 영혼 약탈도, 흉안이나 환각통 그 무엇도 먹히지 않는다.’
느껴지는 백호의 기운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단단한 속성과 스킬 방어 능력.
어지간한 기운은 모조리 먹어치우는 듯한 진정한 ‘포식자’.
전지의 감각이 없었다면 정확히 무슨 존재를 마주하고 있는지 이해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영역 외엔 관심이 없다는 게 안심이 될 정도로, 먹이 사슬 속에 존재하지 않고 자연지기를 흡수하면 살아간다는 사실이 축복처럼 느껴질 정도로 강하다.’
주먹을 움켜쥔 우진이 말했다.
“인정한다. 넌 정말 강해. 네가 이 정도면 주작, 현무, 청룡은 도대체 어느 정도인 거지?”
사신수에서 백호의 순번은 첫째.
즉, 전투력만으로 따지면 다른 세 놈에 밀린다.
그런데도 이 정도라니.
그때 백호의 눈빛에 흥미롭다는 기색이 떠올랐다.
설마 그런 걸 궁금해 할 줄은 몰랐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야 이유가 있지. 다른 신수들이 정말 신위(神位)를 지닌 신비한 존재들이라면... 난 일종의 수왕(獸王). 세상 모든 짐승의 왕이기 때문이다.”
짐승의 왕...!
신수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으니 놈은 분명한 왕격(王格)이다.
그러나 더욱 충격적인 것은... 백호조차도 아직은 ‘동물’의 영역이란 사실이었다.
놈은 겸손한 듯 말했지만 우진에겐 어마어마하게 아득한 감정이 밀려왔다.
‘내가 올라갈 곳이 아직 많이 남았구나!’
주작과 현무, 그리고 청룡은 과연 얼마나 강한 존재일까.
그리고 눈앞의 백호는 또 얼마나 강할 것인가!
그때 백호가 먼저 기선을 제압하려 들었다.
“복종해라.”
순간 느껴지는 엄청난 압박감.
우진이 힘의 정체를 깨달았다.
‘언령(言令)이다.’
영기로 발하는 능력이 아닌 절대적인 존재의 명령(命令).
세계의 의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과연 수호신의 격을 지닌 존재답군.’
짐승이라 해도 그들의 왕.
이 정도로 강한 능력을 발휘할 자격은 충분하다.
하지만 자신도 호락호락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거절한다.”
완벽히 무효화된 언령의 힘!
놈의 입장에서야 자신에게 거역하는 이질적인 존재를 일단 제압하려는 의사겠지만...
반대로 자신 또한 놈을 제압하러 찾아왔다.
고작 말 한 마디에 뜻이 꺾여선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 후우웅!
상쇄되며 피어나는 강렬한 힘의 기류.
“아니...!”
백호가 기겁하며 눈을 키웠다.
이건 신수의 언령이기에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다.
그런데 완벽히 차단당한 자신의 명.
그 이유는 단 하나.
우진에겐 초월적인 특수 능력이 있다.
중급 언령 무효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강력한 정신 방어 능력.
“넌 대체... 무엇이냐...?”
“확실한 건 인간은 아니다. 그렇다고 평범한 마물도 아니지.”
그제야 알아차린 백호.
“그래... 너는 상리(常理)를 벗어난 초월적인 존재로군. 어쩐지 수많은 힘을 품고도 육신이 붕괴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어.”
“그러냐?”
“허나 그건 오로지 너의 혼백이 강해 모든 것을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 존재에게나 생길 수 있는 기적은 아니지.”
그때 백호의 기세가 갑자기 바뀌었다.
“그러니 지금부터 난 중심부의 수호자로서 널 판단하겠다. 네가 품은 뜻과 목적을 밝혀라.”
우진이 빙긋 웃었다.
“알고 있잖아.”
자신은 지금까지 호승심을 감추지 않았다.
백호라 버틴 것이지 평범한 마물이나 인간이라면 이미 기절하거나 혹은 즉사했을 것이다.
순간 신수에게 미소와도 같은 것이 떠올랐다.
“진명의 승부라. 좋다.... 싸움을 피할 생각은 없으니. 이 또한 세계의 질서가 새겨지는 방식이겠지.”
백호가 자세를 잡았다.
“와라! 네 존재를 걸고 덤벼보아라!”
대요괴의 울음소리에 비견될 만한 포효.
— 콰르르릉!
그 힘의 폭풍 속에서 우진이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그래, 널 위해 준비한 힘이 있으니 천천히 맛보아라.”
자신도 아무 생각 없이 저 강적과 대면한 것은 아니다.
그가 준비한 첫 번째 대응책. 그건 바로 속성 드래곤.
빙룡(氷龍)을 불러 기선을 잡으려던 우진이 손을 거두고 미소를 지었다.
“아니, 단순히 한 마리로는 힘들겠지.”
정신을 집중하는 우진.
“그리하여 내가 특별한 선물을 가져왔다.”
순간 주변의 모든 나무가 흔들릴 정도로 강한 마력이 터져나왔다.
“아니...!”
흩날리는 옷자락과 머리칼 사이에서 우진의 나직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오룡(五龍) 강신.”
— 훙! 훙! 훙! 훙! 훙!
현재 그의 마나는 5700.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기점이라 알려진 1000의 스탯.
그것이 각기 다섯 마리의 용에 부여되고, 5000의 마나를 일신의 통제력으로 부리는 기적이 수해에 펼쳐졌다.
이런 힘을, 그것도 다섯 속성을 인간의 몸으로 한 번에 다루려 시도했다간 몸이 찢겨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는 인간이 아니었다.
또한 유물 장갑이 터질듯한 빛을 발하며 그의 통제를 돕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타난 것은 오색의 용들.
“짐승의 왕이여. 다섯 용과 겨뤄보아라.”
— 크르르....
다섯 용이 각기 속성을 발현하며 울부짖을 때.
지상 최강의 생물 백호가 포효했다.
“사신수의 힘을 얕보지 마라!”
순간 시작된 것은 인세를 벗어난 거대한 격돌이었다.
*
— 크르릉....
“후우우....”
거의 1시간이 지났을 때.
“대단하군....”
“너야말로.”
필생의 승부를 벌인 두 존재가 서로 기세를 가다듬었다.
백호 입장에선 5:1의 대전투를 벌여야 하니 일생에 없던 고전을 해야 했다.
또한 우진 입장에선 다섯 마리의 드래곤을 조종하며 그 속성의 힘을 발휘해야 하니 역시 뼈를 깎는 집중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결국 오룡을 다 꺾고 기진맥진해진 백호.
우진이 감탄했다.
‘과연 대단한 힘이다.’
이 녀석은 ‘번개’를 통해 싸운다.
전생에는 관찰할 기회조차 없었던 지고의 능력.
고작 놈의 숨소리에 전신이 얼어 붙었기에 진짜 힘이 무엇인지 알 수도 없던 신비의 존재.
하지만 이번엔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엄청난 뇌류(雷流)다.’
번개 다발을 자유자재로 휘둘러 적을 공격하는 그 힘은 마치 신이 휘두르는 전기의 채찍 같았다.
그것에 결국 모두 찢겨버린 자신의 드래곤들.
이제 서로의 본체만이 남았다.
백호가 푸른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말했다.
“나도 지쳤지만... 너 역시 남은 마나가 없겠지.... 그러니 승부는 이제부터다.”
사실이다.
오룡 강신은 우진의 ‘속성 궁극기’.
가진 마나를 모두 퍼부어야 발현할 수 있는 기적의 힘이다.
하지만 그에겐 융합이라는 더 상위의 기적이 있다.
절대적인 회복의 권능.
그렇기에 준비한 사막벌을 먹으려던 우진.
‘아니... 여기서 마나를 회복하는 건 반칙이지.’
자신은 이 싸움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
백호를 꼭 완벽하게 제압하고 싶은 것이다.
그가 사막벌을 내던졌다.
“믿거나 말거나 내게는 완전 회복 능력이 있다. 하지만 이건 쓰지 않겠다. 불공평하니까.”
놈을 복속시키려면 압도적인 무위를 보여야 한다.
의지 대 의지의 대결이기에.
“하지만. ‘다른 힘’을 쓰는 건 어떨까.”
그때 우진이 어둠의 힘을 드러냈다.
백호가 밀려날 듯한 기세에 당황했다.
“무엇이...? 마력이 그 정도로 강대한 존재가 또 다른 힘을 그 수준으로 품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물인 백호.
그의 눈엔 우진의 전신에 마력보다도 더 강한 힘이 피어 오르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아지랑이가 발생할 정도의 아득한 힘!
‘이... 이건 악마들의 왕 수준의......! 이미 왕격을 갖기에 충분한 힘이다...!’
그때 더욱 믿을 수 없는 말이 들려왔다.
“난 죽기 위해 이곳에 온 게 아니다. 더욱 강해지기 위해 찾아온 것이니, 네 말대로 승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대비하려 한 순간.
우진의 신형이 사라졌다.
거대한 영물의 전신에 느껴지는 것은 선명한 예기(銳氣).
“무... 무슨...!”
— 스르릉!
의지가 검이 되어 피어날 때.
“막아 보아라.”
수천의 보이지 않는 칼날이 백호를 향했다.
<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18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