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14 >
우진이 눈을 감고 대지에 손을 올렸다.
이곳의 규칙을 바꿔줄 순 없다.
대신 마물을 잡아줄 수도 없다.
‘하지만 생존률을 올려줄 순 있지.’
— 쿠구구구...!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땅으로 흘러들어갔다.
폭발하듯 터져나오는 힘.
이제 5천이 넘어버린 무지막지한 마나로 ‘기적’을 창조하는 것이다.
— 스스스슷....
1구역 여기저기에 새로운 변화가 생겨났다.
우선 대지를 나누는 경계선이 그어진다.
각 마물의 영역을 나타내는 표시였다.
일종의 안전선으로 ‘위험 신호’ 역할을 해줄 것이다.
또한 해당 장소마다 석비가 솟아났다.
— 쿠구궁.....
그건 바로 그 영역에 서식하는 마물의 상대법이었다.
상세한 공략이 아닌 죽음을 방지할 최소한의 힌트.
가령 인형극 도마뱀 출몰지엔 이런 문구가 새겨졌다.
<숨어 있는 본체를 주의하시오.>
아주 단순한 경고.
허나 이것만으로도 초행자들의 생존률이 많이 올라갈 것이다.
또한 주요 길목마다 이정표를 세워 길을 안내했다.
‘1구역 황야는 넓기도 하고 너무 복잡해서 길을 익히는 것만으로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거든.’
그렇기에 도주하다가 방향을 잘못 잡아 죽는 일도 허다하다.
악어를 피해 달아나다 사자 입에 머리를 넣게 되는 것이다.
1구역 입구엔 특별히 거대한 석비를 세워 전체 지도를 그려주었다.
도전자가 다급히 도주할 경우를 위해 폐쇄된 형태의 지형에 샛길을 뚫어 지형까지 바꿔버렸다.
“후우우... 이제 기초 공사는 끝났군.”
회복약인 사막벌을 열 마리나 먹어가며 벌인 대공사였다.
모든 오브젝트에는 특별히 막대한 힘을 부어 아주 단단한 강도를 유지할 수 있게 했다.
자신보다 마력이 약한 자는 쉽게 파괴하지도 못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을 한 자리에 석상처럼 붙박혀 완벽하게 해낸 우진.
이게 끝이 아니다.
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장소는 1구역 전역이었다.
하늘에서 위치를 파악한 뒤 벼락처럼 1구역을 돌아다니며 요충지마다 쉼터를 만들어 냈다.
이 광활한 황야엔 마땅히 쉴 곳도 없다.
그렇기에 이건 일종의 황야 휴게소인 셈이다.
알고 있던 안전 지대마다 설치해 두었으니 오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전생에 이런 거 있었으면 좋겠다고 수백 번 상상하곤 했지. 이제 현실이 되었구나.’
뿌듯하게 쉼터들을 바라보는 우진.
르쉬에게 만들어 준 것과 거의 비슷한 형태였다.
다만 장기적으로 쓸 것을 고려해 더욱 강한 힘으로 단단하게 만들었다.
거대 마물과 예정에 없이 마주치면 속수무책 안전 지대로 피신해야 했던 도전자들.
이젠 최소한의 ‘퇴각 목표물’이 생겼다.
또한 이 자체로 안전 지대에 대한 정보가 된다.
‘내가 직접 구르며 엄선한 최고의 장소니까.’
다른 표지판들까지 포함하면 귀중한 정보를 수백 가지나 알려주고 가는 셈이다.
자신이야 이제 쓸 일이 없겠지만 다른 자들은 분명 생사가 오가는 순간 좀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끝이 아니다.
지역 중간에 대지의 힘으로 거대한 건물을 만들어냈다.
그건 일종의 성채였다.
보스는 일주일이면 다시 리젠될 것이고, 놈을 상대할 구조물을 만든 것이다.
또한 거대한 결계석을 수십 개 배치하여 대형 결계를 쳤다.
이건 시작의 마을에서 구매한 품목이었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기에.
마지막으로 근처의 마력을 조정해 어중간한 마물은 접근할 수 없게 만들었다.
몇 번의 마력장을 덧씌운 공간.
일종의 ‘봉인지(封印地)’를 만드는 느낌으로 안전 지대를 형성했다.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었으니 더욱 뿌듯하다.
‘전지의 감각을 얻고 나니 별 게 다 가능하군.’
어디를 어떻게 만져야 힘이 고정되고 머무를지가 보인다.
물론 이 안전 지대가 영원할 순 없다.
‘그래도... 최소한 10년은 가겠지.’
먼 훗날엔 마치 고대 유적처럼 변해 누군가가 마력을 불어 넣어 사용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거대한 안전 지대.
비용만으로도 막대한 금액이 들어갔지만 그래도 후회는 전혀 없다.
오히려 크나큰 보람이 찾아왔다.
특히 보스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 준 것 가장 만족스러웠다.
전생에 놈은 정말 공포의 존재였기에.
물론 이 성채의 사용법까지 지도해 줄 생각은 없다.
현판에 보스 공략용이라고 적어뒀으니 누구나 그 용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경험상 보스를 공략하기 가장 좋게 만들었으니 성실한 모험가라면 활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떠먹여 줄 순 없어. 내 역할은 딱 여기까지다.’
이제 르쉬와 합류한 우진.
흡혈귀의 눈이 번쩍 뜨여 놀라고 있었다.
“1구역 여기저기가...!”
“내가 했다.”
그 말에 잠시 눈을 꿈뻑이던 르쉬.
이 모든 걸 자신의 총대장이 했다는 말에 경악한다.
“왜, 왜 그런 엄청난 일을 하셨는지요...?”
우진이 빙긋 웃었다.
“먼저 굴러본 놈이 이정표 정도야 남겨줄 수 있는 법이니.”
멍하던 르쉬가 이마를 쳤다.
“이 르쉬! 또 한번 감복했습니다! 영원히 충성하겠습니다!”
우진이 껄껄 웃었다.
“그래... 이젠 내 쪽에서 네가 없으면 안 될 것 같구나.”
“헛...!”
르쉬의 얼굴이 터질듯이 빨갛게 변했다.
우진이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했다.
“가자!”
“그, 그래, 이제 가자꾸나!”
걸걸한 목소리에 순간 당황한 우진.
“아, 아니... 예...! 가자...!”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듯한 수하.
우진이 빙긋 웃고 출발했다.
그 옆을 따르는 흡혈귀의 입이 귀밑까지 걸려있었다.
*
멀리 하늘에서 자신이 바꾼 1구역을 바라보는 우진.
빙긋 웃으며 주먹을 쥐어보였다.
“건승하십쇼.”
이곳에 남긴 수많은 선물들.
이건 사실 과거의 자신에게 바치는 위로다.
그리고 다시 자신과 같은 길을 걸어갈 자들을 위한 헌사다.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 희망이 있기를.’
이제 우진과 르쉬가 구역의 출구 앞에 섰다.
당연히 2인 파티를 상정하고 움직였기에 포인트는 충분했다.
아니, 마지막 추가 사냥으로 오히려 넘쳐났다.
‘이곳을 두 번째로 통과하는구나.’
수많은 마물을 사냥하고 다양한 업적을 달성했다.
전생이라면 눈물이 날 만큼 많은 양의 스탯 포인트와 경험치를 획득했다.
하지만.
이제 그건 기본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1구역 클리어가 아닌 이 길의 끝에 있을 놈들이기 때문에.
‘쭉쭉 나아가는 거다!’
[1구역을 클리어하였습니다.]
[진행 권한이 부여됩니다.]
우진과 르쉬의 몸에 금빛 기운이 어렸다가 사라졌다.
이제 무형의 벽에 가로막힐 일은 없을 것이다.
성대한 알림이 떠올랐다.
[1구역을 완벽하게 통과하였습니다.]
[모든 마물을 압도적으로 사냥하였습니다.]
[등급 : SSS]
[점수 : 9999++/9999]
[지배자의 뿔을 획득했습니다!]
[한계 이상의 점수를 획득했습니다.]
[특별 보상이 주어집니다.]
[VIP 통행증]
[수해(樹海)를 즉시 통과할 수 있습니다.]
우진이 상태창에 새겨진 새로운 통행증을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이거라면 아주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겠군.”
어차피 백호를 만나러 가야하지만 그 후엔 손쉽게 다음 구역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좋았어! 가자!”
“예!”
벽을 뚫고 날아가는 두 존재.
경계가 찬란한 빛을 내며 새로운 여행자를 받아들였다.
그건 1구역 멀리까지 보이는 축하의 광채였다.
“오오...!”
“구역의 벽이 열린다...!”
이곳에서 도와준 모든 이들이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저 날개는!”
“구원자 님이시다!”
“그분이 넘어가신다!”
넘어가는 자를 보면 보통은 시기와 질투가 넘친다.
하지만 이번엔 모두가 그를 응원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손을 흔드는 사람들.
“구원자 님! 반드시 끝까지 가는 겁니다!”
“따라잡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번에 저희가 은혜를 갚겠습니다!”
“화이팅입니다!”
날아가던 우진이 그 단어에 반응하여 주먹을 불끈 쥐고 들어올렸다.
“오케이! 여러분도 화이팅입니다!”
그러자 터져나온 환호.
“와아아!”
“쭉쭉 나아가십쇼!”
그렇게 모두의 응원 속에서 나아가는 두 존재.
중심부 첫 번째 구역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
다음 안전 지대에 도착한 두 존재.
뒤로는 이제 갈 일이 없는 1구역의 모습이 보인다.
몇 년이 걸렸다면 눈물이라도 흘렸을 벅찬 통과였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감상에 젖을 시간은 없었다.
그 대신 더 강해질 방법을 찾아야 한다.
[구역 포인트 : 99999]
우진이 흐뭇하게 웃었다.
‘포인트가 엄청나게 남았네.’
이것도 한계치에 걸려서 그렇지 원래 더 많았을 것이다.
[포인트 상점]
상태창을 연 우진이 포인트 상점을 확인했다.
남은 포인트는 일종의 화폐가 되니 이걸 소모하고 갈 생각이었다.
어차피 1구역에서 밖에 쓰지 못하는 구역 포인트.
원래 이걸로 생존과 탐색에 도움이 되는 아이템을 사고, 반복적으로 포인트를 투자해 공략법 등을 알아내며 1구역을 돌파해야 한다.
‘그런데 난 하나도 쓸 일이 없어서 가득 가득 쌓이기만 했지.’
상점 품목은 다음과 같았다.
[시작의 마을 귀환권 (10회 제한) — 400 포인트]
[임시 안전 구역 생성 (5분) — 1,000 포인트]
[마물의 약점 공략 (1개) — 250 포인트]
.
.
[비밀 수련장 이용권 (1인) — 10,000 포인트]
이중 우진이 주목한 것은 마지막 항목이었다.
보통은 사용할 일이 없는 막대한 가격의 상품.
‘일단 수련장으로 이동해야겠군.’
다시 펼쳐진 중심부의 길.
이 대륙은 넓다.
온갖 샛길과 여러 마을, 시설, 특수한 이벤트가 존재한다.
아주 복잡한 경로를 택해 ‘끝’을 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자신은 최단 거리로 선두를 따라잡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예외는 존재한다.’
이번만큼은 하나의 샛길을 택해야 한다.
그건 숨겨진 장소에 가까웠다.
아주 강력한 힌트인 ‘이용권’이 있지만, 그걸 찾아내는 사람은 극소수뿐이었다.
숲길을 지나자 ‘건물’이 나타났다.
비밀의 수련장.
거창한 이름과 달리 1층짜리 평범한 석재 건물이다.
그러나 이건 겉보기에 불과하다.
‘이 내부에는 엄청나게 넓은 공간이 존재하지.’
일종의 심상 세계.
입구를 지나는 순간 사용자마다 새로운 공간에 진입하는 셈이다.
물론 이용권이 없으면 출입조차 할 수 없다.
“이용권은 일단 2장을 사야 하고... 방은 어떻게 하지?”
상점을 보며 고민하는 우진.
어차피 포인트는 남으면 남았지 부족할 일은 없다.
그가 자신의 수하에게 물었다.
“르쉬야, 우리는 이제 이곳에서 약 일주일 간 머무를 것이다. 따로 써도 좋고 같이 써도 좋고. 네가 편한대로 하.......”
순식간에 주먹을 치켜든 르쉬.
“같이 쓰겠습니다!”
결국 웃어버린 우진.
꼭 식량 등의 문제가 아니라도 훈련 과정에서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점도 있을 것이다.
이곳에 온 이유는 단 하나.
‘백호(白虎). 놈을 만나기 전 모든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사신수라는 것은 말 그대로 수호신!
그런 존재를 자신의 힘으로 만들기 위해선 그에 걸맞는 격을 갖춰야 할 것이다.
‘다행히 이 수련장은 그런 용도에 아주 적합하지.’
이 신비한 장소에선 구역 포인트로 성장 속도 배율을 올릴 수 있다.
원래는 1구역을 통과한 자들이 남는 포인트로 더욱 강해질 수 있게 배려해 준 공간.
하지만 자신은 이걸 훨씬 더 강력하게 써먹을 수 있을 거 같았다.
‘난 시험의 바다 보상인 1.5배가 붙어서 더욱 엄청난 성장이 가능하겠지.’
이건 레벨이나 스탯 뿐 아니라 전반적인 실력 상승을 뜻한다.
스킬 숙련도, 속성 통제력, 정신적인 깨달음에까지 관여한다고 하니 잘 써먹으면 몇 배의 파워업도 가능하리라.
‘하지만 그것치고는 인기가 별로 없지.’
우진이야 기감과 날개를 통해 쉽게 찾아왔지만, 수련장 위치부터가 아주 찾기 난감한 산중턱이다.
‘또한 이용권을 구입하기 위한 포인트도 만만치 않다.’
1만 포인트.
혼자서 보스를 2번 잡거나, 10인 파티로 20번을 잡아야 하는 막대한 가격.
게다가 사용자 모두가 탁월한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원래 이런 종류의 심상 수련에 익숙한 중원인들을 제외하면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은 정신 수련으로 강해진 경험도 있기에 이 수련장의 효능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뽑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수련장 입구에 선 우진.
르쉬와 각자 이용권을 지불하고 2인용 방을 선택했다.
— 후우웅...!
마치 워프하듯 진입한 장소.
일단은 평범한 ‘빈 방’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엔 비밀이 있다.
“수련장의 크기를 최대 한도로 키우겠다.”
그의 명령에 따라 순식간에 넓어진 방.
그 크기는 1구역의 황야보다도 광활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첫 번째 상대로 ‘놈’을 택하겠다.”
거의 무한하게 펼쳐진 창공에서 무언가가 나타났다.
여기선 원하는 적을 계속 불러낼 수 있다.
한번이라도 사냥에 성공한 상대라면 무엇이든 적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그때 창공의 적이 착지했다.
그것은 1체의 ‘하급 악마’.
그의 기억 속에 있는 무시무시한 강적이 나타났다.
본능적으로 전투 자세를 취하는 거대한 마계의 종족.
— 크르륵....
우진이 빙긋 웃었다.
“지금부터 내 상대가 되어 줘야겠다.”
— 크아아아!
거대한 하급 악마가 포효했다.
그를 상대로 맞선 우진에겐 놀랍게도 아무런 투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수련 효과의 극대화.
‘당분간 변신이나 마력, 스킬은 모두 봉인한다.’
아무 것도 쓰지 않고 맨몸으로 상대를 잡아내는 것.
그게 목표다.
“와라!”
— 후웅!
거대한 악마의 발차기가 날아오는 순간.
그 발목을 잡은 우진이 자세를 바꿨다.
— 크르륵...?
놈의 붉은 외눈에 의구심이 어린 순간.
— 쿠우우웅...!
허공에 뜬 악마가 장난감처럼 바닥에 처박혔다.
<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1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