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11 >
동굴 깊숙한 곳에서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 차르륵....
전신에 금속 배리어를 두른 우진이 마물을 향해 걸어갔다.
완벽한 밀착 발동.
물의 가호로 충분히 연습했으니 새로운 스킬도 어려울 건 없었다.
‘내가 강철 남자다.’
그렇게 초강력 방어막을 두른 채 상대를 몰아 붙이는 우진.
구석에 몰린 동굴 마귀가 죽음을 각오하고 덤벼들었다.
— 까득...!
— 끼에에엑...!
하지만 부러진 이빨.
입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신음성을 토한다.
그 앞으로 우진이 계속 다가갔다.
“그래, 물어보아라.”
울부짖으며 물러나는 마물이 완전히 벽에 몰렸다.
— 크르르륵! 크르르르륵...!
나름대로 살려달라는 제스처를 보이며 어필하는 마물.
하지만 자비심은 이럴 때 쓰기 위해 남겨둔 감정이 아니다.
어두운 동굴 속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건 평소처럼 희생양이 아니라 동굴 주인의 비명이었다.
— 끼에에에엑...!
진정 마물이라 할 만한 존재의 쩌억 벌어진 입 속에서 긴 혓바닥이 나타났다.
“넌 특별히 생식이다.”
수많은 인간을 잡아 먹은 마물.
그 최후는 자신이 먹히는 것이다.
그리 먹음직스러운 모습은 아니었으나...
어차피 기생충부터 구울 시체까지 냠냠 잘도 먹어온 자신이다.
- 끄아아아아!
깊고 깊은 동굴 속 마귀의 절규가 울려퍼졌다.
*
“꺼억, 잘 먹고 갑니다.”
이제 동굴을 나선 우진.
방금 잡은 마귀는 마지막 남은 ‘강적’ 중 하나였다.
르쉬가 걱정할까봐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위험도 극상의 마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너무 쉽게 잡아버렸네.’
솔직히 너무 쉬워서 사냥이 아니라 놀이에 가까웠다.
그리고 또 하나의 성과.
이 녀석이 언데드라 종족 경험치를 제법 얻을 수 있었다.
‘확실히 1구역에서 구슬을 많이 채울 것 같았는데. 정말 그렇게 됐군.’
종족 경험치를 나타내는 핏빛 구슬.
그것이 눈에 띌 정도로 차올랐다.
‘이 정도면 1구역을 넘어가기 전에 변화가 찾아올 지도 모르겠어.’
만족스럽게 상태창을 닫은 우진.
“가자! 이제 마무리다!”
다시 1구역을 종횡무진하며 마물들을 휩쓸었다.
정찰과 탐색을 반복하며 사냥해야 하는 마물들.
자신은 모두 알고 있으니 거칠 것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해가 저문 시각.
“오늘 업무 끝!”
상쾌하게 만세를 올리는 우진.
보통은 1, 2년이 걸려도 못할 일을 하루 만에 해냈다.
이건 빠른 속도라고 말하기도 부족한 기적의 속도였다.
때마침 르쉬가 돌아와 고개를 척 숙였다.
완벽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나타난 것이다.
“고생 많았다, 르쉬야!”
“아닙니다! 총대장님도 고생하셨습니다!”
피범벅이 된 수하.
그러고보니 자신도 모습이 엉망진창이다.
머리 위에 시원하게 물을 쏟아내려 몸을 닦았다.
“상쾌하구나!”
“상쾌합니다!”
어느새 밤.
르쉬도 말은 안 하지만 배가 고파 보였다.
“밥부터 먹을까?”
그러자 거의 즉각적으로 솟아오른 르쉬의 팔.
“예!”
“좋다! 오늘은 재료도 많으니 내가 제대로 솜씨를 발휘해보지.”
기분 좋게 야영 준비를 시작했다.
그 장소는 1구역의 황야 어딘가였다.
이동 속도가 빠르니 안전 구역에 가거나, 아예 시작의 마을로 돌아가도 된다.
대신 자신이 알고 있는 최고의 안전 지대로 르쉬를 안내했다.
황야의 야트막한 지대에 올라선 우진.
주위가 잘 보이지만 바위가 있어 엄폐하기에 좋다.
“이 자리엔 아주 많은 추억이 있지.”
전생에 우연히 발견한 안전 지대.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은 마물들의 행동 반경에서 아슬아슬하게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즉, 서로 영역이 나뉜 마물 서식지의 사각 지대인 것이다.
우진이 불을 피우자 따스한 온기가 퍼져나갔다.
“이 정도면 제법 아늑하군.”
원래라면 불을 피우는 건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멀리서도 잘 보일 테니까.
영역이 있는 마물이라고 해도 불빛에 이끌려 달려오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마물이 다가오면 그게 바로 놈이 죽을 자리가 될 것이다.
그때 저 멀리에서부터 하나의 무리가 다가왔다.
그건 마물이 아닌 인간의 파티였다.
“저... 혹시 저희도 근처에 야영을 해도 되겠습니까?”
“어라...?”
그 얼굴을 알아본 우진의 얼굴에 반가움이 떠올랐다.
낮에 지네들에게서 구해준 파티의 리더였다.
“오! 물론입니다.”
그렇게 불빛에 이끌려 사람들이 찾아왔다.
하나 둘 모여든 파티들.
우진이 워낙 좋은 자리를 잘 잡아놨기도 했고 아무래도 한 사람이라도 더 있는 곳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커다란 야영지가 형성되었다.
마물은 얼씬도 하지 못할 대규모 캠프였다.
그 구성원에는 지네 팀 외에도 낮에 봤던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낮에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까 구해주시지 않았다면 여기서 다시 볼 일도 없었겠지요.... 정말 감사합니다.”
하나 둘 감사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에게 우진이 겸연쩍게 답했다.
“하하... 오늘 밤은 푹 쉬십시오.”
그리고 식사 준비가 시작되었다.
먹을 수 있는 마물 사체는 한 덩이씩 챙겨 왔기에 여러 가지 맛을 보며 즐겁게 식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헉... 그 두꺼비 고기 식량으로 써도 괜찮습니까?”
“이거 끓이면 독기가 전부 빠집니다. 그럼 건져서 다시 한 번 끓여주시면 드실 수 있죠.”
자신이나 르쉬는 보통 식재료처럼 다뤄도 되지만, 내성이 없는 사람들은 좀 더 세심한 주의를 요한다.
그래도 여러 번 끓이면 먹을 수 있다.
그 외에 먹을 수 있는 식물에 대한 정보도 공유했다.
“오...! 감사합니다!”
“이제 이 녀석 시체는 챙겨다가 먹거나 팔아도 되겠군.”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시작된 식사.
마물 고기를 종류별로 먹어치우니 그 맛이 각별하다.
“맛있다!”
“맛있구나!”
남은 고기를 주변에 나눠주자 답례로 술이 돌아왔다.
“오... 이거...!”
“하하... 불꽃의 정수를 아시는군요?”
“알다마다요! 이런 귀한 걸!”
“아무리 귀해도 목숨 값이 되긴 어렵겠지요. 낮엔 정말 감사했습니다. 워낙 경황이 없어 가시는 걸 보고만 있었는데... 이렇게 다시 뵙게 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중년인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퍼져나가는 훈훈한 분위기.
우진이라는 존재 덕분에 진짜 캠핑장 같은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이 살벌한 장소에서도 껄껄 웃으며 밥을 먹는 우진과 르쉬의 모습은 어딘가 희망을 가져오는 모습이었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는군.’
‘이런 여유가 얼마만인지....’
다들 정말 오랜만에 평온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우진 역시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 거의 다 찼네.’
흐뭇하게 핏빛 구슬을 확인하는 우진.
새로운 지위가 머지 않았다.
한동안 인간들을 상대하느라 종족 경험치로 먹어치울 놈들이 부족했다.
하지만 이제 다시 시작된 마물 사냥.
그것도 제법 대량으로 썰어재꼈다.
그 많은 시체를 융합했기에 구슬이 제법 차올랐다.
그 수치는 무려 85%!
핏빛 구슬이 곧 즐거운 일이 생길 거라는 듯 찰랑거리고 있었다.
‘곧이다 곧!’
자신의 새로운 힘을 상상하니 설렌다.
그때 하늘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밤을 가르며 날아오는 초대형 마물이 저 멀리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엇...! 보스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들고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젠장.... 밥 먹을 때 건드리기냐?”
“어쩌죠?”
“전원 퇴각! 전원 도주해!”
여기저기 도망치는 파티들.
평화롭던 저녁 시간이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으음...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저 녀석 타이밍 정말 더럽게 맞춰서 나타나네.’
밤 하늘을 뒤덮고 날아오는 거대한 괴물은 이마에 뿔이 달린 날개 원숭이였다.
뿔을 통해 마법적인 능력도 발현하고, 성정도 흉폭하여 재미로 사람을 죽이는 놈이다.
1구역을 어렵게 만드는 주범이자 랜덤 출몰하는 밤의 제왕이었다.
‘저 녀석은 반드시 대규모 파티 사냥을 강요하기 때문에 정말 난감하지.’
게다가 등장 타이밍도 자기 멋대로라 사냥하기 극도로 까다로웠다.
전생엔 저놈이 날아올 때 나는 독특한 바람 소리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지경이었다.
‘특히 밤에 자다가 들으면 정말 살이 떨리다 못해 치가 떨렸다.’
한밤 중에 저 소리에 눈을 뜨면 정말 오금이 저리도록 무서웠다.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오히려 잘 됐다.’
우진이 당당하게 야영지를 가로질렀다.
그 방향은 다름 아닌 마물이 날아오고 있는 쪽이었다.
홀로 역주행을 하는 사이 감춰둔 투기가 서서히 끓어올랐다.
그건 도망가던 사람들조차 고개를 돌려 바라보게 만드는 기세였다.
그때 우진이 창공을 향해 외쳤다.
“마물아! 뿔을 내놔라!”
무려 5000 포인트의 희귀품!
게다가 저 녀석을 잡으면 ‘수련장’에서 저 녀석을 무한으로 불러낼 수 있다.
어찌보면 놈 자체보다 그게 더 좋은 보상이었다.
<키이이...?>
그때 만족스럽게 달아나는 자들을 바라보던 원숭이 보스의 붉은 눈에 무언가가 포착되었다.
그건 매우 거슬리는 무언가였다.
<저 작은 인간은 왜 도망가지 않는 거지?>
바로 다음 순간.
지상의 조그만 존재가 뛰어오르나 싶더니...
순식간에 자신의 코앞에 다가왔다.
“까꿍.”
인지했을 땐 이미 늦었다.
“오오오!”
“저 거대한 검은...!”
“설마!”
도망조차 멈춘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형참(處刑斬)!”
1구역의 지배자를 향해 거대한 흑검이 내리찍히고 있었다.
— 후웅...!
마물의 목덜미에 서늘한 감각이 느껴졌을 때.
그 눈에 멀어지는 자신의 몸통이 보였다.
— 스컥!
예고조차 없는 참수형!
하지만 바닥에 착지한 우진은 빠르게 다음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고작 이 정도로 끝날 녀석이 아니거든.’
이런 마물들에게 상식적인 모습을 기대해선 안 된다.
그때 시작된 2차 변화.
목이 분리된 시체가 진득진득한 액체가 되더니 하나로 합쳐졌다.
이내 크기는 더 작지만 응축된 인간형 전투 생물이 되어 몸을 일으킨다.
— 키리릭...!
놈은 놀랍게도 정신에 울리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내 목을 한 번에...! 재밌구나!>
놈이 웃고 있다.
우진을 흥미로워하는 표정.
게다가 진화형이 되니 사기(邪氣)와 투기가 한층 강해졌다.
— 캬아아아아...!
공기를 떨게 만드는 포효.
체감은 노역장에서 독각마귀를 처음 봤을 때와 비슷했다.
그 포효만으로도 벌써 귀를 틀어막고 주저 앉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공간 결계로 일단 막아준 우진.
악마 휘장 2단계의 능력이 놈을 세상에서 분리시켰다.
‘이대로는 좀 곤란하군.’
주변 사람들이 위험하다.
결계를 무한정 유지할 순 없으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전투 장소를 옮기자.’
삼라만상으로 파악한 지하 동공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르쉬. 아무 걱정하지 마라. 전투가 끝나면 돌아오마.>
<예!>
놈을 끌어안듯 붙잡고 외친 우진.
“내려가자꾸나!”
지하로 빨려드는 보스와 우진의 몸.
마치 깊은 물 속에 들어가듯 사라지고 있었다.
“사, 사라졌다...!”
사람들의 경악성을 뒤로 하고 지하 동공에 내려선 우진.
오로지 둘만이 남았다.
<왜 모든 지원군을 두고 이곳에 내려온 거지...?>
의문스럽다는 듯 우진을 살피는 괴물.
그 이유는.
— 콰드드득....
“널 상대로 테스트해볼 것이 좀 많아서 그렇다.”
변신한 우진이 한 발자국을 내딛는 순간, 검은 괴물의 등에 섬전과도 같은 공격이 꽂혔다.
나뒹구는 놈의 뒤에 우진이 착지했다.
“최대한 오래 버텨다오.”
이 녀석은 나름대로 중심부의 보스.
잘 관찰하면 재밌는 전투 방식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 펑! 퍼엉!
그렇게 치열한 몇 합을 나눈 두 존재.
반사 신경이 극도로 발달해 있고 가끔 각이 보이면 마치 액체 괴물처럼 자신의 몸을 펼쳐서 감싸 안으려고 한다.
그 외에는 입으로 토해내는 발사체를 제외하면 위협적인 것은 없었다.
확인을 마친 우진.
이건 전투가 아니었다.
그저 ‘1구역 보스’를 상대로 자신의 힘을 확인한 것.
그리고 상대의 재주를 파악하는 과정일 뿐이었다.
“그저 본능에 따른 살해 욕구 뿐. 배울 점은 없는 것 같군.”
이제 끝낼 시간이다.
그가 흐물거리는 부정형의 몸체를 보며 미소지었다.
“액체는 얼기 마련이지. 네가 몇 도까지 버틸지 확인해보겠다.”
지독한 한기가 지하를 채우기 시작했다.
<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1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