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06 >
— 콰아앙...!
외성 내부의 병력을 늑대들이 휩쓸기 시작했다.
개시는 강력한 마나의 광선이었다.
체이서의 광자포가 훑고 지나가며 거치된 모든 마력총을 박살냈다.
든든한 우두머리처럼 진입각을 만든 기계 야수.
— 크르르륵...!
그 틈에 빛의 늑대들이 뛰어들었다.
워낙 빨라서 점멸하는 것처럼 보이는 녀석들.
‘빛 속성이 강해졌더니 늑대들이 더... 튼실해졌군.’
원래도 사람 하나는 꿀꺽 삼킬만한 놈들이 이제 발톱 한 번 휘두르면 철문이 찢겨나갈 정도가 되었다.
다른 속성을 부여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은 넘쳐나는 포인트로 ‘모든 속성’을 다 강화시켜줬으니까.
“끄아아악!”
순식간에 제압된 모든 병력.
— 크르르르...!
다시 돌아온 늑대들에게선 피비린내가 났다.
그 시체의 정원에서 우진이 내성을 바라보았다.
“이제 진짜 왕만 남았군.”
부하들 뒤에 숨어있던 악의 원흉.
겁쟁이 왕을 처단할 시간이었다.
— 콰아앙...!
그런데 내성으로 진입하자 또 많은 병력이 대기하고 있었다.
“많기도 하구나.”
마치 독사가 잔뜩 든 항아리를 연 기분이었다.
“르쉬. 성벽 위와 망루를 부탁한다.”
“예!”
— 파지지직...!
핏빛 투기가 피어오르고 순식간에 사라진 르쉬.
붉은 번개가 치는가 싶더니 벽 위의 모든 기척이 사라졌다.
— 척....
다시 돌아온 르쉬를 뒤로 하고 우진이 중앙을 향해 걸어나갔다.
그가 목소리에 마력을 실어 말했다.
“투항해라. 그러지 않으면 반드시 죽는다.”
산적들 사이에 느껴지는 막대한 긴장감.
“항복해라. 그러면 반드시 살 수 있다.”
고민하듯 굴러가는 눈알들.
‘그래. 투항해라.’
하지만.
“놈은 혼자다! 마나가 떨어진 게 틀림 없다!”
“고작 한 명이 뭘 할 수 있다는 말이냐!”
어리석은 판단을 한 녀석들.
“으아아아! 우리가 녹림이다!”
누군가 투창을 던져왔다.
연이어 날아드는 스킬과 무기들.
— 스르르....
안개가 되어 모든 공격을 흘려낸 우진이 다시 그 자리에 나타났다.
경악한 산적들.
“너희의 대답은 정확히 알아들었다. 죽음으로 갚아라.”
그가 걸어가는 사이 어둠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피날레니 특별히 풀파워를 개방해주마.’
인간이 내뿜기엔 너무나 강대한 어둠.
이제야 자신들이 누굴 건드린 것인지 알게 된 산적들이 헛숨을 삼켰다.
“너, 너는 무엇이냐.......”
“나는 너희의 악몽이다.”
— 휘오오오....
하늘에 불꽃 신호탄을 응용해 거대하게 웃는 악마의 얼굴을 만들었다.
먹구름 속 붉은 눈과 입이 섬뜩하게 세상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배경으로 어두운 창공에서 변신한 우진.
이번엔 악마 폼이었다.
언데드 폼이 검푸른 야수라면...
이것은 칠흑의 전투 생물.
극한의 어둠 통제력을 발휘하는 암흑 그 자체의 형상.
“몰아쳐라.”
하늘에 어둠이 몰려들어 밤을 만들어냈다.
그 속에서 새까만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칠흑 대선풍.”
이내 거대한 토네이도가 되어 모든 것을 휩쓰는 어둠.
그 안에 빙결 속성을 섞어줬다.
— 휘오오오...!
“으그그그....”
몸을 감싸는 산적들.
뼈를 파고 드는 한기가 느껴졌다.
얼어 붙은 놈들 사이에서 우진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울려퍼졌다.
“멸(滅).”
— 파지지직...!
— 꽈과광...!
파고든 냉기 사이에서 붉은 칼날이 터져나왔다.
산산조각으로 깨져버린 놈들.
그 처참한 광경도 잠시. 모두 어둠으로 변해 우진에게 빨려들었다.
시체조차 남지 않은 완벽한 섬멸.
바닥에 착지한 우진이 인간형으로 돌아왔다.
‘정말 어리석구나.’
기회를 줘도 발로 찬다.
자신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태.
사고 방식이 다르니 이해하려는 것 자체가 헛된 일일지도 모른다.
‘하긴... 말한다고 알아들을 놈들이면 애초에 이런 짓도 안 했겠지.’
그리하여 마침내 도착한 최심부.
우진이 모든 인간이 사라진 내성을 바라보았다.
‘이게 사실상 71번째 산채로군.’
모조리 격파하며 달려온 길.
그 숫자는 도합 71개.
이제 마지막이다.
그가 최후의 내전에 진입했다.
‘정말... 생쥐처럼 잘 숨어있네.’
외성에 내성도 모자라서 한 번 더 관문을 만들어놨다.
복잡한 미로 같은 형태의 건물은 그 목적이 분명했다.
침입자의 저지.
이대론 끝이 없다.
바닥에 손을 짚은 우진.
“겨울 왕국이나 되어버려라.”
— 쩌저저정...!
얼음의 세계가 펼쳐졌다.
순식간에 완전히 얼어붙은 복도.
예술적인 컨트롤로 왕의 방을 빼고 전부 얼려버렸다.
우진이 지면을 차올렸다.
“르쉬!”
“예!”
뒤에 올라탄 르쉬와 함께 빠르게 미끄러져 나갔다.
“가자!”
쾌속의 질주.
그가 찾는 건 오직 하나의 존재였다.
“겁쟁아! 숨지 말고 나와라!”
쩌렁쩌렁 마지막 적을 부르는 목소리.
그것이 빠르게 가장 내밀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 왕은 숨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녹림왕 자신의 주장에 따르면 말이다.
*
내전 깊숙한 곳.
거대한 방에 호화찬란한 집기들이 가득하다.
산맥 전체를 그려놓은 병풍도 그럴싸하다.
녹림의 지존.
왕의 처소.
하지만 정작 왕은 좌불안석이었다.
“무기를 가져와라. 아무래도 내가 직접 상대해야 할 것 같구나.”
“예!”
낑낑거리면서 거대한 굉격추(宏擊錘)를 가져오는 부하들.
거대한 추 사이에 쇠사슬이 연결된 유성추 형태의 무기였다.
부하가 속으로 투덜거렸다.
‘아니, 인벤에 좀 넣어놓지. 왜 맨날 가져오래.’
그래도 왕이라 어쩔 수 없다.
그때 염소 수염을 기른 참모가 나섰다.
“나가서 상대 하시겠습니까?”
광소를 터트린 녹림왕.
“나는 왕이다. 알현하러 오고 있다는데 너그럽게 기다려주지.”
겉으론 호탕한 모습을 유지하는 녹림왕.
하지만 속으론 오만가지 생각이 오가고 있었다.
‘우사(牛士)까지 당했다고......’
금강저를 다루던 소 가면 기인은 자신의 수하 중 가장 강한 존재였다.
‘어찌해야 한단 말이냐....’
솔직히 이런 일은 처음 겪어보는지라 대응할 방법을 찾기 어려웠다.
‘동시다발적으로 모든 산채를 공격하고 있다고...?’
왜?
통행세를 거둘 땐 선별 작업을 거치고 있다.
자신들이 살아남은 이유이자, 중심부 극초입에 자리잡은 이유다.
‘갓 넘어온 놈들은 약하다. 여길 지나간 놈들은 앞만 보며 달려간다. 그러니까 여기 올 때부터 강한 별종들만 걸러내면 우린 안전하다!’
녹림의 생존 수칙.
신입이 너무 강하면 그냥 ‘검문’조차 나가지 않는다.
그가 위엄을 유지하려 애쓰며 물었다.
“그... 선별 작업은 잘 되고 있는 것이냐...?”
“물론입니다.”
여유로운 참모의 얼굴.
그는 믿고 있었다.
자신의 왕이 이 소란을 잠재울 것이라고.
하지만 녹림왕은 되려 언짢았다
왜 이렇게 태평해?
“다시 말해 보아라. 선별이 정말 잘 되고 있는 것 맞느냐?”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참모.
“아... 그럴 것입니다.”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로 달려오고 있는 침입자는... 왜...!”
말을 삼킨 녹림왕.
더 말했다간 자신의 체면이 무너진다.
‘그 정도 힘이 있는 놈이면 분명 걸러졌어야 하는데....’
누가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건드린 것이란 말인가?
왜 저렇게 강한 놈이 화가 나서....
‘나한테까지 오느냔 말이다...!’
그때 이상한 한기가 방을 파고 들었다.
— 파지지직...!
‘냉기가.......’
순간 한기가 강해졌다.
그리고 스노우 보드를 타듯 등장한 우진.
그 뒤로 밀려오는 것은 얼어붙는 세상이었다!
“어... 어... 어...!”
다가오던 얼음의 파도가 뾰족하게 변해 참모와 병사들을 모조리 꿰뚫었다.
“끄어어억...!”
완전히 얼어붙더니 산산조각이 나는 모든 병력.
— 콰지지직...!
터져나가는 부하들을 보며 녹림왕이 자신의 무기를 움켜쥐었다.
“이... 이... 이런.... 이런 무엄한...!”
실제로 본 침입자는 보고와는 다르게 혼자였다.
그러나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녹림왕이 이를 악물었다.
“예를 갖춰라! 넌 지금 녹림의 왕을 보고 있느니라!”
모든 힘을 털어넣은 사자후.
하지만.
“네 죄를 말해라.”
나타난 침입자에겐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순간 아찔한 공포심이 찾아왔다.
‘무, 무슨 죽은 자와 대화하는 기분이다....’
오금이 저리는 녹림왕.
이런 일은 난생 처음이었다.
‘나, 난 모든 것을 가진 녹림왕이다.... 그런데 왜....’
자신의 힘은 강하다.
경계 지대의 그 누구도 감히 대적할 수 없다.
자신이 기세를 드러냈다는 건 상대는 주눅이 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저 침입자는 다르다.
자신 앞에 섰던 자들이 보여줬던 공포도, 두려움도, 경외심도 없다.
그저 차분한 눈동자 뿐이었다.
그 앞에서 녹림왕이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죄를 말하라.... 무슨 죄. 강한 죄? 세력이 강성한 죄? 돈이 많은 죄?”
우진이 빙긋 웃었다.
“그래. 그 돈을 벌어들인 경위에 대해 말해보자꾸나.”
“경위? 뭐 통행세? 그게 불만이냐?”
“잘 알고 있군. 네가 무슨 권리로 통행세를 걷는 것이지?”
슬슬 혀가 길어지는 녹림왕.
“돈들이 알아서 굴러들어 오잖아. 그런데 왜 안 주워야 하느냐? 내가 무슨 자비심으로 그래야 하지? 왜?”
우진이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나도 무슨 자비심으로 너랑 대화까지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가볍게 쏴낸 기탄.
빠르게 거대한 유성추를 휘둘러 튕겨낸 녹림왕.
— 투퉁...!
반동에 밀려 한 걸음을 물러났지만 박수를 쳐줄만 했다.
“그래. 왕 흉내를 낼 정도는 되는구나. 그런 실력을 산적질에 쓰다니 애석해.”
“우리는 정당한 세력이다. 산적질을 한다는 건 네 오만한 판단에 불과해!”
“약한 자를 위협해서 돈을 갈취하는 게 산적이 아니면 무엇이냐?”
“갈취라고? 이게 왜 갈취냐? 우리 덕분에 경계의 질서가 유지되는데, 그 비용을 받는 것이 마땅하지.”
우진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 난 세상 정의가 나에게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도 있을 순 있지.”
“그래서?”
“산적질을 권리로 여기지 마라. 돈이 필요하면 차라리 구걸을 해.”
잠시 말문이 막혔던 녹림왕이 광소를 터트렸다.
“으하하하하! 하하하하하! 귀엽구나... 귀여워.... 포부는 가상하다만 넌 아직 세상을 모른다. 세상 쓴맛 못 보고 자란 어린 녀석아.”
“아니, 너무 많이 봐서 지겹다 이제.”
흙탕물을 마시고 시궁창을 기어다녔어도 약한 사람 삥 뜯을 생각은 안 했다.
하물며 저 정도 힘을 가지고 대규모 산적질이나 하고 있다?
봐줄 이유가 하나도 없다.
“하자.”
시작된 전투.
우진이 맨손으로 자세를 잡았다.
— 훙! 훙!
유성추가 매섭게 공간을 점거했다.
“난 녹림의 왕이다. 쉽게 생각하지 마라!”
“난 초고열 화산파의 우진이다.”
상대의 실력을 가늠하는 우진.
그래도 이 정도 세력을 규합할 실력은 되는 것 같았다.
녹림왕이 선공을 날려왔다.
— 후우웅...!
매섭게 날아온 유성추.
하지만 가벼운 고갯짓만으로 그걸 피해낸 우진.
다시 연속으로 날아온다.
한 방만 맞아도 반드시 죽을 만한 파괴력이었다.
“무거운 걸 잘도 휘두르는군.”
칭찬으로 알아들은 녹림왕이 신이 나서 외쳤다.
“크흐흐...! 내 힘 스탯은 무려 1200이 넘는다!”
근력에 몰빵한 자신의 괴력.
어지간한 강자는 목을 움켜쥐는 것만으로도 죽음에 이른다.
그때 유성추를 콱 움켜쥔 우진.
“3892.”
“뭐...?”
“내 힘 스탯.”
녹림왕의 눈이 커진 순간.
“컥!”
— 후우웅...!
블랙홀에 빨려드는 듯한 속도감.
유성추와 함께 자신이 휘둘러져 날아가고 있었다.
“어... 어떻게.......”
— 콰아앙...!
벽에 처박혀서 겨우 눈을 뜬 순간.
침입자가 저벅저벅 걸어왔다.
그건 오금이 저리는 광경이었다.
“네가 먼저 시작했으니 나도 오늘 힘 자랑 좀 제대로 해보자.”
자신을 번쩍 들어올린 침입자.
“지금부터 너를 100번 메치겠다. 버티면 살려줄게.”
“뭐... 무슨... 이.......”
— 콰아아앙...!
다음 순간, 녹림왕의 거대한 몸이 지붕을 뚫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말도... 안... 된다....’
세상이 멀어지는 듯한 기분.
그때 창공에서 나타난 우진이 두 손을 모아 놈을 망치처럼 찍어내렸다.
“끄어어억......!”
— 쿵...!
바닥에 처박혀 겨우 숨만 쉬고 있을 때였다.
믿을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98번 남았다.”
<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06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