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04 >
상대가 주먹을 내지르기 전이었다.
이미 우진의 눈에는 무언가가 보였다.
놈의 단전에서부터 뿜어지는 막대한 에너지.
“그게 내공이구나.”
우진이 미소를 지었다.
“보인다. 너희의 단전이란 것이.”
놈의 하복부에 일렁이는 힘의 소용돌이가 명확하게 보인다.
전생엔 너무나 신비했던 힘.
이제는 두렵지 않다. 미지의 존재가 아니다.
그리고 덤벼온 상대.
— 후우웅...!
우진이 상대의 권격을 바라보았다.
‘영체 수호자의 주먹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물론 빠르고 교묘하다.
권법에 조예가 없는 사람이라면 뭐에 당했는지도 모르고 머리가 터져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진은 저런 권술가들을 많이 봐왔다.
전생에 스킬과 스탯 외에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매던 시절.
중원인들의 무공을 죽어라 연구하고 관찰했다.
물론 아무도 전수해주지 않았지만 그 움직임을 연구해 습득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성과는... 대단히 미미했지만.’
고양이 수인 레이카는 관찰만으로 독자적인 응용 무공을 창안한 것 같았지만 자신에게 그런 재주는 없었다.
하지만 치열하게 관찰하고 연구했던 기억만큼은 남아있다.
‘전생이라면 알아도 피할 수 없었겠지.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발동된 초월의 인지 능력.
수라의 감각.
— 스슷....
1보(步)를 귀신처럼 움직여 적의 공격을 간단히 피했다.
짧은 순간 당황으로 물든 사내의 얼굴.
그 표정은 다시 고통으로 물들었다.
“컥...!”
우진의 손이 투기에 휘감기고.
전광석화처럼 꽂아 넣은 복부 펀치.
‘오 여기가 단전이군.’
그가 상대의 몸을 조사하듯 살폈다.
“가만히 계십시오. 상태가 위중합니다.”
— 주물주물....
그리고 상대의 하복부에 기운을 흘려넣었다.
“크아아악! 뭐... 뭐하는 짓이냐!”
“힘이 넘쳐서 머리가 맛이 간 상태인데. 제가 갱생시켜 드리겠습니다.”
어둠을 통해 상대의 힘을 먹어치우는 간접 융합이다.
이름하여.
“내공 먹기.”
그때 분기탱천한 사내가 외쳤다.
“이... 이런 짓을 그냥 두고 볼 줄 아느냐...!”
사내의 내부에서 어둠이 밀려났다.
단전에 이상한 감각이 들자 순간적으로 힘을 끌어올려 터트린 뒤 어둠을 막아낸 것이다.
감탄한 우진.
하는 짓이 신기해서 그냥 내버려뒀다.
“일종의 상쇄로군. 확실히 무림인들은 참 재밌는 녀석들이야. 이제부턴 안 통할 거다. 상쇄를 상쇄할 거니까.”
전략을 바꾼 우진.
놈의 단전에 어둠의 기파를 쏜 뒤 성질을 바꾸었다.
“커억...!”
그건 지독한 독기였다.
“내공을 끌어올려라. 그게 널 죽음으로 이끌 테니.”
행공을 하더니 헉헉거리기 시작한 남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능력을 선보이는 괴물에게 물었다.
“너, 너 뭐하는 놈이냐.”
“신입이다.”
그때 토혈을 할 듯이 기침을 하던 놈이 어둠을 게워냈다.
“쿨럭....”
응어리 져 바닥에 떨어진 어둠.
“신기한 재주로군.”
입가를 훔친 사내가 우물거리더니 침을 뱉었다.
“자주 하는 일이라.”
그리고 사내가 다시 기세를 끌어올렸다.
— 쿠구구구...!
“내가 밀린 건 방심한 탓이다. 이제부터 전력으로 가마.”
“그 말이 몇 명의 유언이었을지 궁금하군.”
그런데... 확실히 달라지긴 했다.
순식간에 보법을 밟아 접근해 오는데 알지 못 하면 정말 눈 뜨고 당할 만한 신비한 움직임이었다.
“무공은 정말 독특한 힘이긴 해.”
하지만.
“르쉬가 더 빠르더구나.”
훤히 보이는 빈틈.
주먹을 뻗은 사내 어깨와 허리를 잡아 그대로 바닥에 메쳐버렸다.
“끄어어억...!”
허리가 부러진 것처럼 꿈틀거리는 남자.
결국 발악하듯 외쳤다.
“크아아악...! 어째서 그렇게 빠른 거지? 넌 도대체 뭐냐...!”
“우진.”
수라의 감각.
이게 있는 한 자신은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까지 포착해 공격할 수 있다.
상대가 마침내 결심한 듯 눈을 부릅떴다.
“이거 통하는 게 하나도 없군.... 그럼 나도 힘을 좀 더 써야겠구나.”
누운 채로 뭔가를 먹는 사내.
새까만 환단 1알이었다.
우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저건...?’
상대의 기세가 이상해졌다.
‘갑자기 투기가 몇 배로 상승했다.’
벌떡 일어나서 다시 기세를 끌어올리는 남자.
아무래도 저 환단에 뭔가 특별한 공능이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저런 걸 마구잡이로 먹었다간 몸이 버티지 못할 거야.’
고작 약 1알로 저런 힘을 얻는 건 불가능하다.
무엇이든 대가로 바쳐야 하는 게 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수명이다.’
즉, 막대한 부작용을 감수하고 힘을 얻는 사악한 수법.
“아, 이거 역시 좋구나....”
눈을 뜬 빡빡이가 환희에 젖은 얼굴이 되었다.
우진이 씁쓸하게 물었다.
“넌 다른 방식으로도 충분히 강해질 수 있는데 왜 그런 부작용을 감수하는 것이냐?”
“글쎄... 편하니까.”
우진이 혀를 찼다.
“됐다. 뭔가 있는 놈인 줄 알았는데 그냥 나무늘보였군. 내가 영원히 편하게 만들어주마.”
초속으로 몇 합을 겨룬 두 존재.
팔이 얽히며 자신의 공격이 모두 차단되자 남자의 눈이 커졌다.
“어, 어떻게 흑령단을 먹은 내 속도를 따라오는 것이냐...!”
우진이 어둠을 뿜어냈다.
“난 항상 마기로 가득찬 상태거든.”
순간 커지는 남자의 눈.
“마, 말도 안 된다.... 그 정도의 어둠을 인간은 버틸 수 없다......!”
“난 인간이 아니다.”
그때 우진이 순식간에 변신했다.
그리고 남자가 달려오는 자세 그대로 들어서 바닥에 꽂아버렸다.
“컥... 커어억....”
이제 힘의 격차를 완전히 깨달은 남자가 살기 위해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살려.. 살려다오....”
하지만 놈을 들어올린 우진.
— 꾸우웅...!
머리부터 상체 전체가 땅에 박혀서 버둥거리던 놈이 축 늘어졌다.
“고수라 배울 점이 있다 생각했거늘. 이런 식이면 길게 놀아줄 이유가 없지.”
놈에게 한 수라도 배워보려고 했던 자신이 바보다.
시원한 발차기로 날려버렸다.
— 투웅...!
바닥을 굴러가는 놈의 모가지.
‘너에게 걸맞는 최후다’
자기가 편하자고 남을 갈취 했으니 용서 받기엔 너무 멀리 왔다.
그리고 계승된 스킬.
남자의 능력은 정말 예상 외였다.
[’명경지수(明鏡止水)의 마음’을 계승했습니다.]
‘깨끗한 거울과 고요한 물이라.’
정신적 수련을 할 때 상승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확실히 집중을 하면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우진이 죽은 사내를 바라보았다.
‘참 안 어울리는 스킬이군.’
왠지 놈의 과거를 알 것도 같다.
이 녀석 이걸로 무공 수련을 하다가... 어느날 지겨워진 것이다.
더이상 수행은 하기 싫지만, 마음 속으로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넘어온 중심부.
여기에 오면 새로운 흐름을 탈 수 있다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런 초입에 눌러 앉아 버리고 말았다.
‘됐다. 네 과거사까지 알 바 없다.’
사연 없는 악당이 어딨겠는가.
자신도 마찬가지다.
이들 입장에선 악적에 불과하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사연이 있다.
“난 네놈들 행태가 맘에 안 들고, 너흰 그런 내 생각이 맘에 안 들겠지. 옳고 그른 건 힘으로 정하자꾸나.”
무림인에 대한 염려는 이제 끝났다.
이번 전투로 깨닫게 되었다.
‘무공을 수련하면 확실히 스탯과 달리 독자적으로 강해질 수 있다.’
대신 한계가 찾아오면 더 지독한 벽에 가로막히게 된다.
그 벽을 넘지 못하면 끔찍한 허탈감에 빠진다.
‘녹림은 어쩌면... 벽에 막힌 무림인들의 보금자리 같은 곳일지도 모르겠군.’
나아가기보다 멈추기를 선택한 자들.
우진이 과거를 떠올렸다.
‘이제야 알겠어. 중원인들이 왜 몇몇을 제외하면 결국 잘 보이지 않게 되는지.’
중심부에 중원인들이 많이 건너온 건 사실이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아주 고강한 자들 몇을 빼놓으면 잘 보이지 않았다.
그게 무공의 ‘벽’ 때문이었다.
‘물론 그 벽을 뛰어넘은 자들은 정말 무서울 정도의 힘을 냈지.’
특히 화경 이상의 고수들.
경지를 넘어선 존재들은 ‘공간의 힘’을 다루기에 평범한 방식으론 대적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들과 맞서려면 자신도 하루빨리 더 성장해야 할 것이다.
‘아 그 전에. 내공 흡수 확인부터 해봐야겠군.’
우진이 시체에 손을 뻗어 어둠으로 쭉 빨아올렸다.
[상대방의 잔여 내공을 계승합니다.]
[스탯 강화 포인트를 470 획득했습니다.]
‘내공도 포인트가 되는군.’
계승 이 녀석 정말 알뜰하다.
물론 죽은 자의 내공만 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살아있는 상태에서 뽑아낼 수도 있었다.
아까 놈의 단전에 주먹을 박고 흡수할 때 확인했다.
[스탯 강화 포인트를 1 획득했습니다.]
[스탯 강화 포인트를 1 획득했습니다.]
[스탯 강화 포인트를 1 획득했습니다.]
.
.
[스탯 강화 포인트를 1 획득했습니다.]
놈을 ‘먹으려’ 했을 때 계속 떠오르던 알림.
즉 내공은 어떤 식으로든 포인트가 된다.
‘중원 출신 악인들을 만나면 포인트를 왕창 벌어들일 수 있겠군.’
좋은 정보였다.
그때였다.
강대한 기운이 이쪽을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음?’
고개를 든 우진.
‘여러 명이다.’
네 녀석이 각자의 병장기를 쥐고 걸어왔다.
각자 특색이 있는 방어구에 보기 드문 무기인 극(戟), 삭(索), 저(杵), 련(鏈)을 다루는 고수들이었다.
“멋있네. 녹림 사천왕이냐?”
말 없이 걸어오는 4인방.
“고수 맞네.”
자신의 경험 상 강한 놈들은 말이 별로 없었다.
“흡!”
순간 뛰어오른 놈들이 멀찍이서 사방을 둘러쌌다.
그리고 마침내 한 녀석이 입을 열었다.
소 가면을 쓴 사내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했다.”
어이가 없는 우진.
“뭘 충분히 해?”
“돌아가라. 가진 힘이 있으니 불문(不問). 모두 잊고 각자의 길을 가자꾸나.”
“거절한다.”
그러자 혀를 차는 가면의 남자.
“네 목적이 무엇이냐? 돈이라면 돈을 주고 자리라면 자리를 주마.”
“녹림의 파멸.”
“어린 놈이 무엇이 그리 급해 명을 재촉하느냐?”
“나이로 싸울 거 아니면. 힘을 드러내라.”
주먹을 쥔 우진이 투기를 끌어올렸다.
“그러지 않으면 죽을 것이니.”
그 기세만으로 뒤로 주춤 물러나는 4인방.
그때 소 가면을 쓴 인물이 다시 앞으로 나섰다.
“으으음...!”
바닥을 따라 달려온 기운이 우진의 내부로 침투했다.
“이게 무림인들 방식이군.”
힘 싸움을 거는 것이다.
은근히 기운으로 누르려고 하기에 압도해주었다.
— 쿵!
발구름과 함께 기세를 되돌려준 우진.
놈이 그대로 밀려났다.
“허어억...!”
입가의 선명한 핏자국과 함께 무릎을 꿇은 놈.
“우사(牛士)!”
동시에 나머지 3인방이 그를 바라보았다.
우사라 불린 남자가 피를 닦으며 일어섰다.
“괜찮다.... 하지만 무력 행사를 해야 할 것 같군.”
그리고 일시에 무기를 치켜든 4인방.
“네가 제법 강하다 해도 넷을 동시에 상대할 순 없을 것이다.”
서서히 좁혀오는 포위망.
“그래?”
우진의 등 뒤에 떠오른 십이단검이 동시에 4배로 늘어났다.
하나하나가 붉은 어둠으로 이루어진 환상의 비기.
“너희는 48자루의 검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을까?”
그리고 격돌이 시작되었다.
“흐아아압!”
덤벼드는 놈들 사이를 바람처럼 움직이는 우진.
도합 48개의 검이 모든 독특한 무기를 희롱하듯 쳐내며 상대하고 있었다.
“이이익...!”
“도, 도대체 그 나이에 어찌 이 정도 성취를...!”
“내가 보이는 것보다 조금 더 먹었다.”
그리고 결정한 우진.
“녹림 수준은 잘 알았다.”
순간 모두가 무기를 떨궜다.
정확히는 일시에 손목이 떨어져 나갔다.
“크아아악...!”
“아아악...!”
잘린 손에서 피를 분수처럼 뿜으며 허우적거리는 놈들.
“너희도 충분히 했다. 쉬어라.”
마지막으로 연습 삼아 좋은 걸 보여주기로 했다.
“흐으읍!”
수백의 우진이 나타나 놈들을 둘러쌌다.
분리의 묘.
무량(無量) 분신술.
4인에게 포위당했던 것과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각기 48개의 검을 거느리고 일시에 손을 든 우진들.
순간 수천의 비도가 모두 치솟아 바닥을 향했다.
모든 우진이 합장했다.
“천수뇌인(千手雷印).”
모든 검 사이에 푸른 뇌기(雷氣)가 맺히기 시작했다.
“아... 아... 아... 안...!”
“돼.”
떨어져 내리는 비검들.
— 콰콰콰쾅!
그건 세상에 소환된 푸른 지옥의 모습이었다.
<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0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