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03 >
산채를 둘러본 우진.
산적이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다들 무장 수준도 훌륭하고 기세도 잘 갈무리 되어있다.
‘과연 중심부. 다들 강하구나.’
바깥 고리의 잔챙이들과는 수준 자체가 다르다.
하지만.
“우리가. 더. 강하다.”
헤아릴 수 없는 무력이 하늘을 뒤덮기 시작했다.
무수한 그림자.
밤이 온 것 같았다.
산채를 둘러싼 거대한 골렘들은 악몽에서나 볼 법한 광경이었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인지를 초월한 거대한 형체.
“저... 저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그때 하늘에 우레와도 같은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꽈르릉거리며 귀를 파고드는 위엄있는 울림.
“나는 레비아탄이니라.”
전율을 느끼는 산적들.
적이란 것을 알면서도 공포보다 경외심이 들었다.
‘레, 레비아탄!’
믿을 수 없는 이름.
하지만 저 모습을 보면 믿을 수 밖에 없는 전설의 이름!
각자 붉은 용에 대한 무서운 전설들을 떠올렸다.
“하룻밤만에 도시 하나를 절멸시켰다는...!”
“메테오 스트라이크를 정면으로 마주해 박살냈다는...!”
“세계를 먹는 붉은 용...!”
우진이 껄껄 웃었다.
‘나도 하룻밤...이 아니라 2시간만에 도시 하나를 밀어버린 적이 있었지.’
자이하츠의 이야기도 먼 미래엔 전설처럼 전해질 지도 모른다.
확실히 이 용은 자신과 잘 맞는다.
“레비아탄. 저 용들을 이끌어다오.”
“으음. 좋소. 명령은?”
“휩쓸어라.”
스산한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군.”
레비아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자! 어둠의 용과 기계의 용이여!”
— 구오오오...!
세 마리의 용이 날아가는 것은 장관이었다.
“르쉬. 넌 그림자와 원혼들을 이끌어라.”
“예.”
“규칙은 간단하다. 투항하면 모두 살려줘라. 저항하면 가차 없이 죽여라.”
“예!”
“좋다. 난 여길 정리하고 따라가마.”
“존명!”
마지막으로 명령을 내리는 우진.
“베히모스!”
— 구오오오오!
“넌 그냥 쭉 걸어가라.”
— 쿠구구구.......
산 너머를 향해 걸어가는 거수.
지형을 무시하고 쭉 밀고 있다.
“좋아!”
그렇게 다들 어딘가로 떠나간 뒤 혼자 남은 우진.
산적들이 뭔가 싶어서 얼 빠진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
“왜 막대한 병력을 소환하고 혼자 남았는지 궁금한가?”
그 이유는.
저 모든 괴물들 중....
“내가. 가장. 강하다.”
— 쿠구구궁...!
치솟는 투기에 모두가 얼어 붙었다.
부채주가 식은땀을 흘리며 협상을 시도했다.
“모, 몰라 뵈었소...! 도대체 어디까지 진출했다 돌아온 것이오...?”
“난 오늘 이곳에 도착했다.”
“오... 오늘...? 그러니까 신입이란 뜻이오...?”
“그래,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마. 반성하고 사죄해라. 그리고 녹림에서 떠나라. 아니, 중심부를 떠나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마.”
“이이이익...!”
열 세 명의 눈이 비열한 시선을 교환했다.
— 휘이익!
그리고 휘파람 소리와 함께 달려든 근처의 병력들까지.
‘아직도 모르는군.’
강대한 괴물들이 다 떠나가고 우진 혼자 남았으니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럼 좋다.’
더욱 강한 투기를 발산한 우진.
“신병 받아라!”
힘차게 더플백을 던지는 심정으로, 괴물 신입이 날뛰기 시작했다.
*
“큭....”
“커어억....”
모두를 제압한 우진.
일단 어둠으로 짓눌러 뒀다.
순식간에 합공을 펼쳐왔지만 그런 걸 허용할 거면 녹림 토벌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어디 다른 녀석들은 잘 하고 있나 볼까?’
하늘에서 보니 경계 지대가 시원하게 정리되고 있다.
산맥을 타고 올라가는 아름다운 파괴의 흔적.
‘일직선 지우개로구나...!’
용 3마리와 그 수많은 어둠의 생물이 휩쓸고 지나갔는데 멀쩡할 수가 없다.
사방 모든 곳에 자신의 수하들이 있었다.
‘베히모스 이 녀석... 열심히 하고 있군.’
산채 하나를 머리에 얹고 나타난 흙의 거수.
계속 그대로 걸어가고 있다.
그 자체가 파괴의 현장이었다.
더 멀리에는 레비아탄이 내뿜는 풍압만으로 산채가 흔들리고 있다.
— 콰콰콰쾅...!
날개짓만으로 산채들을 터트리며 날아가는 악룡.
그 옆으로는 무수한 그림자와 원혼들이 하나의 산채를 완전히 뒤덮고 있었다.
기갑마룡이 입으로 뿜어내는 거대한 광자포도 빠질 수 없다.
그 사이 본 골렘들이 거대한 주먹을 내리찍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전광석화처럼 여기저기 번쩍이는 적색의 광채.
‘저건 르쉬겠군.’
활동량이 어마어마하다.
‘과연 0개의 심장...!’
흡혈귀 파워가 대단하다!
그때 마침 르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총대장님!>
<오! 르쉬. 무슨 일이더냐?>
<투항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오오, 좋다. 따로 빼서 잘 묶어두어라.>
<예!>
우진이 지면에 착지해 포로들을 바라보았다.
“너흰 이제 괜찮다.”
“괘, 괜찮다는 건....”
“반기를 들지 않는 놈들도 있다는 걸 확인했거든. 굳이 너희까지 살려줄 필요가 있나 싶다.”
솔직히 고민 좀 했다.
왜냐면 녹림을 토벌하다 너무 많이 죽이게 될까봐.
하지만 이제 확인했다.
선택권을 준 이상 악어의 입에 머리를 들이민 것은 저놈들이란 사실을.
“으... 으아아아...!”
무언가를 깨닫고 앉은 채로 물러서는 놈들.
놈들의 등이 어딘가에 닿았다.
— 크르르르....
그건 세상에 소환된 십이늑대였다.
— 스컥....
일시에 목이 사라진 산적들.
“고맙다. 내 든든한 호위병들아.”
모든 병력을 다 보내도 이 녀석들만 있으면 자신은 몇인분이나 해낼 수 있다.
우진이 자신의 손으로 돌아온 단검을 바라보았다.
‘늑대 소환에 이기어검까지. 아주 고마운 무기야.’
모든 시체를 어둠으로 빨아들인 우진이 다시 날아올랐다.
— 펄럭...!
‘일단 완벽한 토벌을 위해 위치 파악부터 하자.’
곤충 지배로 산채들의 위치를 수색했다.
광범위한 산맥을 일시에 파악하는 경이로운 능력.
‘좋다! 72개 모두 확실하군.’
거기다 마지막 ‘녹왕전(綠王殿)’까지 확인했다.
산채라고 부르기엔 대단한 규모의 성채.
‘저기 녹림왕이 있겠군.’
일단 모조리 쓸고 마지막에 선택권을 주기로 했다.
우선 정보를 르쉬와 레비아탄에게 전달했다.
<이곳들을 모조리 휩쓸어라.>
<으음! 확인했소!>
<확인했습니다!>
다시 멀리 산맥 여기저기에서 빛이 번쩍이고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나도 빠질 수 없지!”
날개를 편 우진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 쿠콰콰쾅...!
폭발음과도 같은 것을 내며 창공을 가로지르자 구석구석 숨어있는 산채들이 보인다.
살아남은 산채는 자신이 번개처럼 들러 모조리 정리했다.
“관운장이시여...! 미염공이시여...! 내가 그 모습을 재현하겠소이다!”
오관 돌파를 방불케 할 72채 돌파의 현장.
산채의 규모와 전력은 천차만별이었으나, 대체로 숫자가 높아질수록 점점 강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49번째 산채에 뛰어내린 우진.
“오우! 여긴 좀 재밌겠는데!”
사방을 경계하고 있던 병력.
그들에게 벌써 몇 번이나 반복한 통보를 시작했다.
“오늘 녹림은 끝난다. 투항하면 살 수 있고, 저항하면 죽일 것이다.”
“투, 투항하겠습니다!”
상황 파악이 빠른 몇 놈이 투항했다.
“좋다. 나머지는?”
그러자 무기를 움켜쥐는 산적들.
“이제부터 2번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바로 심판에 들어간 우진.
다들 외공 위주의 수련을 했기에 위협적인 녀석은 없었다.
‘녹림도의 한계지.’
순식간에 제압 후 호탕하게 외쳤다.
“너희의 외공은 투신에 비하면 풍선 근육에 불과하다!”
생존자들이 기함을 토했다.
“투... 투신을 아십니까...?”
하지만 고개를 젓는 우진.
“투신은 날 모른다. 곧 알게 되겠지만.”
생존자들 사이에 의문이 번졌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아무튼 너희는 여기로 오너라.”
투항자들 모두 기절시킨 뒤 어둠으로 묶어버렸다.
그리고 대지를 띄워올려 이동 감옥을 만들었다.
“우진의 움직이는 감옥!”
— 쿠구궁...!
창살까지 만들어 놓으니 제법 그럴싸하다.
“공중에서 대기하거라.”
하늘로 띄워놓은 뒤 다시 달려나가는 우진.
61채 쯤에 달해서는 수준이 제법 올라갔다.
‘암기!’
사방을 덮쳐오는 암기는 모두 가지각색이었지만 목표는 하나, 우진이었다.
필중지세의 공세.
하지만.
‘어둠의 배리어.’
우진이 부분 배리어를 펼쳤다.
마치 껍질이 깨진 알처럼 자신을 둘러싼 장막.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최소한의 힘만 발휘한 것이다.
암기들이 일렁이는 검은 장막에 꽂히듯이 머물러 있었다.
그걸 강혼으로 모조리 되돌려줬다.
— 푸와아악...!
사방에 터지는 핏물들.
우진이 그 사이를 걸어가며 다음 산채로 향했다.
“남에게 비수 꽂으려다 실패하면 네 머리가 터지는 법이다. 저승에선 그걸 명심하고 살아가라.”
마치 산채마다 하나의 유파들처럼 특징을 지니고 덤벼오니 좋은 상대가 된다.
그리고 마침내 68채에 달했을 때였다.
‘대단한 기세군.’
한가롭게 앉아있는 민머리 사내.
상체를 드러낸 채 풀잎을 물고 여유롭게 눈을 감고 있다.
그런데 풍기는 기운이 엄청났다.
자신의 경험으로 알게된 무림인의 특징 중 하나.
‘빡빡이는... 강하다.’
이상하게도 머리털이 없는 무림인들은 죄다 강했다.
주위에는 정말로 아무도 없다.
저 남자 뿐이다.
고수 혼자 지키고 있는 곳임이 분명했다.
“이봐, 너 혼자냐?”
눈을 뜬 남자가 하품을 하더니 말했다.
“여긴 요충지. 그렇기에 나 혼자 지킨다.”
언뜻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지만 우진에게는 이해가 되는 말이었다.
“너 정도 실력자가 왜 녹림에 몸을 담고 있는 것이냐?”
“편하니까.”
너무 뜻밖의 대답에 어이가 없어진 우진.
“편하다고...?”
“너 우리 통행세가 얼마인지 알고 있느냐?”
“그래,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지.”
“중심부로 건너올 정도면 다들 여유가 있다. 그 정도는 낼 수 있어. 그들에게 재물을 걷으면 72채의 모두가 풍족하게 지내고 다시 또 새로운 동도를 포섭할 여유까지 생긴다.”
“그래, 산채 주제에 아주 잘 꾸며놓고 살더구나.”
이곳도 연못에 정자까지 있다.
앞에 놓인 상차림도 대단한 산해진미였다.
술도 종류는 몰라도 비싼 놈이 분명했다.
이를 간 우진이 말했다.
“그래서 이게 네가 말한 ‘편함’이냐?”
그러자 남자가 자세를 바꿔 드러누웠다.
“그래... 정말 편하다. 네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일 거야. 매일 놀고 술이나 마셔도 부족한 게 하나도 없거든. 심심하면 바깥 고리에 나가서 며칠 쉬다 오면 그만이야.”
“그럼 바깥 고리에서 계속 지내지 왜 여기서 개짓거리를 하느냐?”
그러자 피식 웃는 남자.
“귀찮아. 거기선 내가 알아서 해먹어야 하잖아. 여기선 그냥 이름만 빌려주면 된다.”
“이름을 빌려줘?”
“정확히는 녹림의 이름에 힘을 보태주는 것이지. 새로운 강자 아무개가 녹림과 뜻을 함께 한다...! 그 얘기만으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
혀를 차는 우진.
“정말 한심한 얘기군.”
“하하하... 물론 우리 녹림도만 좋자고 하는 일은 아니다. 지갑을 비운 이들 또한 홀가분한 마음으로 새롭게 중심부 생활을 시작할 수 있으니 서로 이득이 아니겠느냐?”
개소리를 듣던 우진이 최후의 질문을 건넸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산적질을 하다 사람을 죽인 적이 있느냐?”
“글쎄. 귀찮게 저항하면 때려주긴 했다만.... 죽었는진 나도 모르지.”
마침내 결정된 심판.
“좋다. 죽여도 부담이 없겠군.”
그러자 슬쩍 눈을 뜬 사내.
“글쎄. 누가 죽을지....”
— 훙!
순간 섬전처럼 주먹을 날려왔다.
지금까지의 일장연설은 모두 실력에 자신이 있어 부린 여유였기에.
하지만.
‘어...?’
사라진 우진의 형체.
‘피했어?’
혼신의 공력을 담은 정권이 물처럼 흘려졌다.
그것도 종이 한 장 차이로.
‘마, 말도 안 돼...! 내 모든 공력을 부었거늘...!’
1할도 아니다, 5할도 아니다, 10할 전부를 담았는데 그걸 피했다.
초전박살. 그게 자신의 승리 비결이었기에.
‘이건 회피 따위가 아니야. 투로를 완벽히 파해당했다...! 일견 초수에...!’
단순한 주먹질이 아니라 일생의 수련이 담긴 자신의 절초였다.
그게 단 한 번에 허무하게 스러졌다.
그때 우진의 반격이 시작됐다.
“네놈은 편한 건 충분히 했으니. 이제 반대를 할 시간이다.”
— 퉁...!
순간 뒤를 잡혀 수도에 당한 남자.
그 귀에 공포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아주 고통스럽게 죽을 것이다.”
“컥...!”
단전에 박힌 정권.
순간 사내의 혈도를 따라 진득한 어둠이 퍼졌다.
그건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무서운 감각이었다.
“내가 무림인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다. 달게 받아라.”
단전에 무언가가 들어차는 것이 느껴졌다.
“이... 이건...!”
사내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자신의 내공이... 내부의 무언가로부터 ‘먹히고’ 있었다...!
<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다 103 > 끝